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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창 업

창업 막는 서울대, 빌 게이츠도 궁금 (조선일보 2013.05.18 03:00)

창업 막는 서울대, 빌 게이츠도 궁금

"회사 세우려 자퇴" 질문한 대학원생에게 전화해 사정 물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왼쪽 둘째)가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100주년기념관에서 특별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홈페이지]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구상의 핵심은 창업이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좋은 아이디어가 손쉽게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15일 발명의날 기념식)거나 “창업을 쉽게 하기 위해 획기적인 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겠다”(16일 중소기업인과의 만찬)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두뇌집단이라는 서울대 석·박사들이 창업을 하려 할 때 어떤 현실에 부닥치게 될까.

박 대통령 창조경제 핵심은 창업

 박 대통령을 면담하기 위해 방한한 빌 게이츠(57)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지난달 21일 서울대에서 비공개 특강을 했을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회사를 창업하고 싶은데 학교를 자퇴하는 게 나으냐”고 물어 화제가 됐었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에게 개인이 정할 문제를 꺼낸 만큼 당시엔 황당한 질문이란 반응이 많았다. 당시 빌 게이츠는 “나는 (하버드 대학을) 자퇴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면서 받아넘겼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강연 직후 서울대 측에 “아까 그 학생과 따로 얘기하고 싶다”고 요청해 두 사람이 별도로 접촉한 사실이 17일 확인됐다. 엉뚱한 질문을 한 학생이 빌 게이츠의 눈에는 다르게 비춰진 것이었다. 수소문한 결과 질문자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이두희(31)씨였다.

학부 때 서울대 전산망 뚫은 IT고수

 그는 대학과 IT 업계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2006년 서울대 중앙전산원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서울대 구성원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당시 이 대학 의류학과를 나온 탤런트 김태희씨의 고등학교 졸업사진도 유출됐었다. 서울대 전산망을 가볍게 뚫은 해커가 바로 이씨였다. 서울대 학부에 재학 중이던 이씨는 학교 전산망의 보안이 취약하다고 수차례 얘기를 했지만 대학 측이 무시하자 자신이 해킹을 하고선 언론에 알렸다. 그는 이 일로 제적 위기에 몰렸지만 담당 교수가 간청해 간신히 징계를 면했다.

이씨는 대학원 시절엔 서울대의 모든 강의를 평가하고 공유하는 사이트(snuev.com)를 만들었다. 회원만 3만여 명으로, 서울대생의 90% 이상이 수강 여부를 결정하는 데 이 사이트를 활용하고 있다. 2011년엔 ‘울트라캡숑’을 공동창업해 대학생 소셜 커뮤니티인 ‘클래스메이트’를 선보였다. 이 회사엔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가 기업가치를 인정해 20억원을 투자했다.

 이씨는 빌 게이츠와 휴대전화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너무 바쁜 분이라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연락이 왔길래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설명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화내용에 대해선 “매우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지만 빌 게이츠와의 대화 이후 이씨는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에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회사 차렸더니 교수님들 꾸지람”

 “미국에선 학교 안 창업을 권장하고 교수님들이 제자들에게 직접 펀딩을 하기도 한다. 관련 기사도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휘어잡고 있는 IT회사들이 서울대 도움으로 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걸 깨보고자 재작년(2011년)에 같은 학부 학생 10여 명과 학교 안에 회사(울트라캡숑)를 세웠는데 교수님들께 많은 꾸지람을 받았다. 친구 중 일부는 학업을 그만뒀고 결국 회사를 강남으로 옮겨야 했다. 서울대 구조적으로 대학·대학원생이 전공을 살려 창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빌 게이츠에게 한 질문은 솔직히 나의 롤 모델에게 말 한번 걸어보는 것이었고, 그 자리에 계시던 수많은 컴퓨터공학부 교수님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교수님들, 저 정말 전공 살려서 컴퓨터 공학으로 뭐 좀 해보려는데 학교 때려치워야 하나요”라고 적었다.

 이씨는 “학생이 회사를 세우려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본인들의 철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인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조경제’ 운운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며 “서울대 관계자분들 말대로 창조적 인재가 나오려면 열심히 리포트 쓰는 학생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창업 등으로 대표되는 창조적 활동을 권장하는 구조로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뻘질문을 날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씨는 결국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서울대를 떠나기로 했다고 본지 통화에서 밝혔다. 그는 “학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아쉽지만 학교를 나가게 됐다”며 “그분(빌 게이츠)은 (제 질문에) 반응이 있었는데 학교는 반응이 없더라”고 씁쓸해 했다. 대학 현실상 매일 학교에 나와 지도교수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논문을 써야 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휴학하지 않고 창업에 매달리기는 무리다.

서울대 “창업·공부 중 택일해야”

 하지만 서울대 학칙(58조)에 따르면 학생에게 허용되는 휴학 기간은 학사과정 6학기, 석사과정 4학기, 박사과정 6학기, 석·박사 통합과정은 8학기뿐이다. 이 기간을 초과하면 제적이다. 창업만을 위해 휴학할 수 있는 규정이나 창업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는 당연히 없다. 창업을 하려다간 오히려 학교 측의 눈총을 받는다는 게 이씨의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대 관계자는 “휴학 규정은 대학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등교육법 등 상위법에 따르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창업과 공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