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세요…‘월세시대에 살아남는 법 11가지’
집값이 떨어지자 월셋집이 전셋집을 밀어내며 임대차 시장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월세는 전세보다 주거비용이 높고 주거 안전성도 떨어진다. 지난 2월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소 창문에 월세 세입자를 구하는 광고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
표지이야기|전세의 종말
주인이 5% 넘게 올리지 못해요,
교섭력 발휘해 잘 조정해보세요
세가 세입자에게 혹독한 제도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주거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집값이 떨어져도 보증금은 지킬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벽지나 장판 비용을 집주인이 부담하고 소득공제를 받는 것도 월세만의 특권이다.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최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와 김준하 팀장, ‘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 박미정 생활경제상담센터장 등 전문가들에게 물어 <한겨레21>이 월세시대에 살아남는 법 11가지를 추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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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세 거부감을 접어라
심리적 저항감을 누그러뜨리고 비용 구조를 따져보는 게 첫걸음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현재 1억5천만원짜리 집에 살고 있다. 집주인이 오른 전세 보증금만큼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를 요구한다. 현재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이율(월세 전환율)은 서울이 연 7%, 전국 평균 연 10% 정도다. 은행 금리보다 2배 높다. 법정 상한선은 연 14%로 더 높은데 금리가 연 7~8%일 때 정해져서다. 그 집을 사려면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려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은 연 4% 초반으로 월세 전환율보다는 낮지만 매달 지출해야 하는 돈은 더 많을 수 있다. 집값이 앞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고려해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2. 교섭력을 발휘하라
월세 시세는 상당히 유동적이다. 집주인이 처음엔 무리한 액수를 부르는데 일종의 떠보기다. 이때 필요한 게 교섭력이다. 하지만 새집의 경우 협상이 쉽지 않다. 집을 짓느라 대출을 많이 받은 집주인이 높은 월세를 고집한다. 집주인도 빚에 시달려 운신의 폭이 좁아서다. 게다가 대출해준 은행이 세입자보다 앞순위 근저당권자여서 안전성도 확실치 않다. 반면 오래 산 집은 교섭이 가능하다. 집주인이 경제적 여유가 제법 있고 빈집으로 몇 개월간 버려두는 것보다 적은 월세라도 받는 게 낫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3. 상한선을 정하라
세입자 스스로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월세가 30만원을 넘으면 저축하기가 힘들어진다. 맞벌이 부부라면 좀더 여유 있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다. 지난해 정부가 처음으로 임대 실태를 조사해보니, 월세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20%였다. 하위 20%의 저소득층은 소득의 최고 42%까지 월세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상한선을 정하지 않으면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흔들린다.
4. 저당 금액이 30% 이하인지 따져봐라
등기부등본을 뗐을 때 저당 금액이 집값의 30% 이하면 안전하다. 그 이상이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집이 경매에 들어가면 통상 아파트는 시세의 80%, 빌라는 70%에 낙찰된다. 따라서 이미 잡혀 있는 근저당권 금액과 자신의 보증금을 더했을 때 집값의 70∼80%를 넘지 않아야 한다. 꼼꼼히 따져보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파기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가계약도 마찬가지다.
5. 한 명이라도 전입신고를 하라
주민센터(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고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는 게 이삿날에 할 일이다. 경매나 공매가 진행될 때 확정일자를 받은 세입자만 배정 절차에 참가할 수 있다. 전입신고를 할 때는 세입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나 다른 가족의 주민등록도 유효하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빨리 주민등록을 옮기도록 하자. 우선변제로 보호하는 소액임차인은 보증금이 7500만원 이하(서울시 기준)인 경우다. 그중 2500만원은 뒷순위라도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먼저 변제받을 수 있다.
6. 여름에 보일러를 돌려라
보통 전세는 세입자가 직접 벽지나 장판을 바꾸지만 월세는 집주인이 비용을 댄다. 보증금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는 어떨까? 월세를 내는 만큼 집주인이 부담하는 게 맞다. 확실히 하려면 월세 계약서의 특약 사항에 명시하는 게 좋다. 애매한 상황도 있다. 여름에 이사했는데 겨울이 돼 보일러를 돌려보니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세입자의 과실인지, 보일러가 낡아서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 만약 하자가 있었던 거라면 집주인이 수선 비용을 부담한다. 하지만 세입자의 과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새집에 들어가면 상하수도·보일러 등을 한 번씩 점검하자.
7. 월세를 꼭 내라
월세를 두 차례 이상 연체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연속적으로 두 달의 월세를 연체한 경우는 물론 10월분을 연체하고 11월분은 내고 다시 12월에 연체해도 마찬가지다.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 이사한 경우에도 나머지 월세를 지급할 의무가 세입자에게 있다. 아주 어려울 때는 대출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신한은행 및 서울보증보험과 협약을 맺어 ‘월세나눔통장’을 내놓았다. 대출금리는 연 5~6%으로, 제2금융권(연 15~24%)보다 낮다.
8. 연 5% 초과해 올릴 수 없다
계약 기간 중 사정에 따라 집주인이나 세입자는 월세를 올리거나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감액은 별다른 제한이 없지만 증액은 연 5%를 넘지 못한다. 또 임대계약을 체결하거나 월세를 인상한 뒤 1년까지는 또다시 인상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연 5%가 넘게 월세가 인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이유는 2년마다 재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계약을 연장할 때는 ‘5% 이하’가 적용되지만 계약이 일단 끝나고 새로운 계약을 맺으면 이런 제한이 사라진다. 집주인이 월세 인상을 청구할 때 이사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결정한다.
9. 집주인이 바뀌어도 계약은 이어진다
월세 기간 중 집주인이 바뀌어도 계약은 그대로 이어져 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필요가 없다. 통상 계약이 완료되는 한 달 전에 집주인이 별다른 말이 없으면 계약 기간이 자동 연장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묵시적 갱신이 이뤄졌다면 이후 집주인이 맘대로 집을 비우라고 요구할 수 없고 2년의 임대 기간이 지속된다. 하지만 세입자는 언제든지 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3개월 뒤에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줘야하는 의무가 생긴다.
10. 보증금 분쟁은 서울시청에서 해결하라
계약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무조건 이사를 나가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없어진다. 특히 경매 가능성이 있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서울시 거주자이고 이사 시기가 엇갈린 경우라면, 서울시 전월세보증금 지원센터를 찾아가보자. 보증금을 단기 대출해준다.
11. 소득공제를 받아라
연봉 5천만원 이하 근로소득자(무주택 단독세대)는 월세의 40%를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오피스텔·고시원 등 일반 주택이 아닌 준주택 월세 세입자는 소득공제 대상에서 빠져 논란이 되고 있다. 간혹 집주인이 세입자의 소득공제 신청을 막을 때가 있다. 소득세를 줄이려고 월세 수익을 감추려는 속셈이다. 임대계약을 맺을 때 소득공제를 특약 사항에 넣으면 불필요한 분쟁을 막을 수 있다.
달콤한 월세의 쓰디쓴 ‘끝물’
(한겨레 2013.03.10 12:07)
[표지이야기] 오피스텔 공급 과잉에 분양가는 높아지는데 임대료는 제자리, 수도권 월세 이율 더 낮아져 강남권은 0.7%… 집값 오르지 않는 시대, 수익률 기대하기 힘들어![](http://img.hani.co.kr/section-image/09/news/icon_han21.gif)
집값이 떨어진 자리에 ‘수익형 부동산’이라는 달콤한 꿈이 피어났다. 고용이 불안하고 월세 시장이 커지자 임대주택 월세를 받아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출렁인 것은 오피스텔 분양이다. 국토해양부 통계를 보면 오피스텔 건축허가 면적은 2011년 287만5천㎡에서 2012년 433만2천㎡로 50.7% 늘었다. 같은 기간 아파트 허가 면적은 8.7% 늘었다. 지금 분양 중인 서울 시내의 주요 역세권 대단지 오피스텔도 1500가구가 넘는다.
“분양 뒤 1~2년은 사정이 괜찮지만…”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서는 오피스텔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얼마 전 분양을 마친 서울 공덕역 오피스텔 앞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갈수록 분양가는 높아지는데 오피스텔끼리 경쟁이 치열해져 월세 임대료는 제자리 수준”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분양 뒤 1~2년은 사정이 괜찮다. 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같은 값이라면 새로 지은 오피스텔을 찾는다. 기존 오피스텔 소유자들은 어쩔수 없이 월세를 5만~10만원 내리게 된다. 지금은 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월세가 내리지만 계속 오피스텔이 들어선다면 새로 지은 오피스텔도 몇 년 뒤를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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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은 주거용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수익을 올리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온나라 부동산정보 통합포털(www.onnara.go.kr)에서 발표하는 월세 이율 조사를 통해 추측해볼 수는 있다. 월세 이율은 전세금에서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이율이다. 월세 비율이 크게 늘기 전 월세 이율은 통상 1%였다. 전세 보증금 1천만원을 올려주는 대신 월세 10만원을 내는 식이다. 2012년 2월과 비교하니 수도권 월세 이율은 0.88%에서 0.85%로 낮아졌다. 특히 임대료가 높은 강남의 월세 이율은 0.7%로 1년 새 0.1%가 줄었다.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당시에는 전세 보증금을 기준으로 수익률을 책정했다면 실제로는 그것의 70%, 사정에 따라서는 50% 정도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충고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종철(50·가명)씨는 2년 전 살던 집의 전세를 빼서 오피스텔 3채를 샀다. 자신도 월세로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이 비는 것을 막으려면 주변보다 월세를 낮춰야 했다. 김씨는 3채를 모두 부동산에 매매 의뢰해놓은 상태다. 오피스텔 수익률이 이렇게 줄어든 것은 무엇보다 분양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강남역에서 분양하는 한 오피스텔 52.8㎡형(실제 전용면적 25.8㎡)의 분양가는 2억7800만원이다. 분양사 쪽에서는 오피스텔을 임대하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00만~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익률은 4% 중반쯤으로 은행 금리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수익형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부동산 칼럼을 연재하는 한상분씨는 “수익형이 대세라는 최근 트렌드에 취해 오피스텔 가격이 너무 오르고 임대 가격은 그에 맞춰 올라주지 않고 있다”며 “한 사람이 쓰는 거처로 10평 남짓한 공간에 한 달에 100만원 넘는 월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거대 오피스텔과 경쟁하기 벅차
오피스텔에서 차오르는 끝물은 도시형 생활주택(85㎡ 이하의 소형 공동주택)으로 밀려왔다. 서울 마포부동산을 운영하는 서영석씨는 “정부에서 도시형 생활주택에 각종 혜택을 주자 골목골목 초소형 공동주택 짓기가 붐이다. 그러나 대단지 오피스텔도 임대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원룸 주택들은 공실이 생기기 일쑤”라며 “월세 수익의 꿈을 꾸고 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용산에 사는 이형석(45·가명)씨는 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분양광고를 보고 같은 동네의 전용면적 33㎡가 조금 넘는 도시형 생활주택을 2억원에 분양 받았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00만원 정도로 세를 주면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역세권 오피스텔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60만원으로 월세를 크게 내리고 자신이 분양받았던 금액보다 낮춰서라도 집을 다시 팔려 하고 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시대에는 주택의 감가상각이 예전보다 훨씬 매섭게 적용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승준(62·가명)씨는 몇 년전 살던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보태 서울 청파동에 다세대주택을 구매했다. 대지 79.2㎡ 정도의 작은 집이다. 정씨는 이 집이 대학 바로 앞에 있는 점을 고려해 원룸 3개를 지닌 다가구주택으로 개조했다. 퇴직 뒤 월세와 연금으로 생활을 꾸릴 요량이었다. 대출금을 줄이려고 정씨와 가족들도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개·보수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매달 월세를 받아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서영석씨는 “노후 대책으로 월세가 나오는 주택을 찾는 중·노년층이 많지만 일반 주택도 크게 올라 그런 수요를 충당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이 바뀌었다. 재개발 시장에서 큰 땅 주인만 유리한 것처럼 월세 시장에서도 작은 집 주인은 얻을 게 별로 없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과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등 부동산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부동산 수익률은 자본수익률과 임대수익률로 나눌 수 있다. 임대수익률이 보장된 상태라 하더라도 집값이 내리는 추세에서 자본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적은 자본으로 살 수 있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은 위험성이 높은 수익형 부동산이기 때문에 그 위험성도 감당할 수 있는 소득과 자본을 지닌 사람들이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월세를 받겠다며 적은 돈으로 주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넓지 않은 셈이다.
“부동산, 그들만의 리그 될 것”
새로 집을 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오래전부터 집을 가지고 있던 집주인들에게는 월세 시장이 넓어지는 게 좋은 일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한상분씨는 “저금리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금리 이상을 거둘 수 있는 부동산은 안정적 투자 수단이 될 것”이라며 “월세는 집값 하락의 방어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박원갑 전문위원은 “지금까지는 전세 보증금이 집값 하락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2006년에도 집값에 대한 기대가 부풀자 임차인들이 갑자기 매매 수요로 전환했다. 전세가 대세일 때는 무주택자들이 매매 시장으로 들어올 문턱이 낮다. 그러나 월세는 그게 되지 않는다. 집을 가진 사람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이 크다. 그것도 기존 세대의 리그가 된다”고 했다. 신규 구매 수요가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 불안 요인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전세시대 종말 “신혼 월세서 시작하리라곤…”
(한겨레 2013.03.07 15:34)
[표지이야기] 임대차 시장의 표준이었던 전세와 보조였던 월세의 비중이 21.7%, 20.1%로 엇비슷해져 주거 안전성 떨어져 가난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불리, 이들 보호할 대책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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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웅(43)씨는 2004년 전세로 얻은 서울의 32평(약 105m²)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전세금 1억5천만원은 부부가 모은 저축에 양쪽 집에서 보탠 결혼자금을 더해 마련했다. 4년 뒤인 2008년, 그는 34평(약 112m²) 아파트를 6억원에 분양받았다. 집값이 비싼 탓에 몇 달 간격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치를 때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새집을 세입자에게 내줘 전세금을 끌어오는 것은 물론 퇴직금 중간정산, 주택담보대출, 마이너스통장대출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래도 이제 3천만원가량의 대출만 갚으면 번듯한 아파트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친구나 회사 동료들은 결혼하며 곧바로 집을 사거나, 적어도 전세로 살다가 얼마 뒤에 집을 샀다. 워낙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신혼을 월세로 시작하리라 생각 못했는데…”
오는 5월 결혼하는 김종규(37)씨는 얼마 전 경기도의 24평(약 79m²) 주거용 오피스텔에 신혼집을 차렸다. 보증금 6천만원을 맡기고 다달이 월세 60만원씩 내는 ‘보증부 월세’ 계약이었다. 애당초 그의 선택지에 월세는 없었다. 대출을 받더라도 1억5천만원 정도의 전셋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매달 내는 임대료가 부담스러운데다 신혼집에 월세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도 달갑지 않아서다. 그러나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전세로 나온 소형 아파트는 없었다. 그나마 보증금이 많고 월세가 적은 보증부 월세를 찾는 게 최선이었다. “한 번도 신혼을 월세로 시작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양쪽 부모님께도 낯이 안 선다. 이렇게 전셋집을 마련하기도 어려운데 언제 내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혼집을 마련하는 풍경이 10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이전엔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한 뒤 전세금을 종잣돈 삼아 차근차근 내 집 마련 준비를 해나가는 게 신혼부부의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 신혼부부들 사이에선 그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보증금에 추가로 매달 임대료를 내는 보증부 월세는 물론 보증금은 거의 없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는 순수 월세로 신혼집을 마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택 임대차 시장의 구조가 전세에서 월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951호 표지이야기 그래프 |
‘월세시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을 보면 주거 형태 중 전세 비중은 1995년 29.7%로 정점을 찍은 뒤 2010년 21.7%까지 떨어졌다. 반면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는 같은 기간 11.9%에서 20.1%로 비중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임대차 시장의 표준이었던 전세와 보조였던 월세의 비중이 엇비슷해진 것이다. 같은 기간 자가 주택 비중이 53.3%에서 54.2%로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전셋집에서 나온 세입자들 대부분이 월셋집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소득이 낮을수록 자가·전셋집에서 월셋집으로 넘어간 비율이 높았다. 임대차 시장만 놓고 봐도 1995년 34.4%에 불과하던 월세는 2010년 49.7%로 절반까지 늘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만큼 지금은 월세가 전세를 앞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전세시대가 저물게 된 근본적 배경은 집값 하락이다. 1970년대 이후 집주인들이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해온 건 부동산 상승기에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당시엔 민간 은행이 개인에게 주택담보 대출을 해주지 않아 전세가 무이자로 목돈을 융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집주인들은 무이자 대출 격인 전세금을 끼고 아파트를 샀다가 되팔아 높은 시세차익을 누렸다. 그러다 1990년대 말 민간 은행의 주택금융이 허용되자 전세의 독보적인 지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집주인들이 더 이상 전세를 끼고 집을 살 필요가 없어지게 되자 전세의 활용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비슷한 시기부터 저금리 기조가 이어져 전세금의 이자수익이 감소한 것도 전세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론적으로 수익률만 놓고 보면 전세의 수명이 이미 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산업대학원 교수(부동산학)의 분석이다. “앞으로도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지금처럼 낮을 것으로 가정했을 때, 집주인이 수익 극대화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전세 계약은 이미 2010년에 사라졌어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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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259조원, 완전한 종말이 어려운 이유
이론과 달리 아직도 전세가 명맥을 유지하는 건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집주인들이 수익만을 좇아 전세를 월세로 모두 전환하기엔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금·보증금이 너무 많다. LG경제연구원이 추정한 전세금과 보증부 월세의 보증금은 2010년 기준으로 259조원에 이른다. 전체 전·월세 주택 가격(769조원)의 33% 수준이다.
이미 상당한 가계빚을 떠안고 있는 집주인들한테 이 어마어마한 전세금을 모두 돌려줄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진다 하더라도 전세가 완전한 종말을 맞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신 월세의 비중이 주택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월세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의 설명이다. “전세금 반환 부담이 적은 소형 아파트나 원룸 등은 지금도 월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매매 가격이 9억원이 넘는 고가 주택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기엔 부담이 커서 전세로 유지될 것이다. 그 중간은 월세와 전세의 중간인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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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시대로의 전환은 세입자들의 주거비용을 직접적으로 증가시킨다. 일단 전세시장에 남으려는 세입자들은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집값 하락으로 주택 매입을 꺼린 세입자들이 전세로 몰리는 반면, 시장에 공급되는 전세 물량은 줄어들어 전셋값이 치솟는 ‘전세난’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KB국민은행 주택 가격 동향 조사를 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2010년 말 대비 2012년 말에 21%나 뛰었다. 같은 기간 아파트 매매가 상승폭(9%)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는 공급이 늘어난 덕에 주택 유형에 따라 임대료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졌다.
월셋값이 제자리라고는 하지만 월세로 옮아온 세입자들은 전세를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은 주거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월세 임대료는 원래 전세금보다 높게 설정되는 탓이다. 집주인에게 임대 수익률이 되는 월세전환율(전세금에서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이율)은 최근 연 10.28% 정도다. 반면 2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연 3%에 그친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은행에 맡기는 대신 순수 월세로 돌리면 수익이 3배 이상 늘어난다는 의미다. 물론 그만큼 세입자들의 부담은 커진다. “요새는 집주인의 99%가 기존의 전세를 월세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실질수익이 3~4배는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목돈을 잘 굴려 은행 이자보다 높게 낼 자신이 있는 극소수만 전세를 유지한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물량의 80% 이상이 월세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대신공인중개사 정재영 대표의 설명이다.
세입자들에게 높은 부담을 지우는 월세는 주거의 안전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은 월세도 전세와 마찬가지로 최소 2년간 계약을 보장하고 있지만 월세가 밀려 보증금마저 까먹으면 세입자는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월세에선 수입이 줄어들면 곧바로 주거를 상실할 수 있다. 주거 취약 계층을 시작으로 세입자들이 월세에 익숙해지는 데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 저축 효과가 있는 전세금은 서민층이 내 집 마련을 통해 중산층으로 이동하는 희망의 사다리로 활용됐다. 반면 월세는 서민층·저소득층이 미래를 위한 자산을 모으기 어렵게 만든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모습. |
전세금을 헐자 상황이 금세 나빠져
월세시대는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사다리도 서서히 무너뜨린다. 전세금 마련은 세입자에게 큰 부담이 되지만 목돈이 강제로 저축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상당수 서민들이 자산을 축적해나가며 계층 상승을 이룬 과정에 전세금이 적잖은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매달 임대료만 내면 되는 월세에는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월세 지출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니 생활이 더 팍팍해질 가능성이 높다. 두 자녀를 둔 김소희(31)씨 사례가 그렇다. 그에겐 1년 전만 해도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있었다. 2억6천만원의 전세금이 그 증거였다. 그러나 급전을 융통하느라 전세금을 헐게 되니 상황이 금세 나빠졌다. 남은 전세금 1억5천만원으로는 4명의 가족이 살 전셋집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80만원짜리 15평(약 49m²)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한 달 500만~600만원의 수입에서 월세와 관리비로 100만원을 빼면 생활비와 교육비로 쓰기에도 빠듯하다. 전셋집에선 매일 돈을 모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매일 돈을 까먹는 느낌이다. 집의 노예가 됐다.”
월세시대는 젊은 세대에게 더 잔인하다. 열악한 임금에서 높은 월세를 빼고 나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여유 따위는 없다. 부모의 도움을 받을 처지가 아니라면 월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 달 살이’ 인생이다. 직장인 최희철(29)씨는 한 달 230만원의 수입 가운데 60만원가량을 월세와 관리비로 낸다. 보증금이 1천만원밖에 없어 반전세는 꿈도 못 꿨다. 월세와 생활비에 눌려 지난 2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저축한 돈은 500만원도 안 된다. “이 속도라면 보증금 3천만원짜리 월세라도 얻으려면 6년은 더 있어야 한다. 100년 뒤에나 결혼할 수 있을 듯하다.”
대학교 졸업반인 고윤정(24)씨도 미래 희망을 월세방과 맞바꾼 지 오래다. 그는 대학에 입학한 뒤 내내 40만~50만원대 원룸 자취방에서 지냈다. 방값·생활비·등록금을 모으느라 학기 중에도 쉬지 않고 과외를 3개씩 했지만 늘 돈에 허덕였다. 이번 학기에는 대출을 받아 2천만~3천만원짜리 단칸 전세라도 얻어볼까 했지만 대학가에 그런 방은 없었다. 결국 그는 남들과 화장실·거실을 공동으로 쓰는 38만원짜리 월세에 다시 터를 잡았다. “가르치는 학생들의 중간·기말고사 때가 되면 내가 더 떨린다. 시험 성적이 잘 나와야 과외를 6개월 연장해 방값을 낼 수 있지 않겠나.”
사정이 이렇다보니 월세시장은 세대 간 갈등이 벌어지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됐다. 갈수록 열악한 주거 환경에 내몰리게 된 젊은 세입자들은 집을 보유한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이상 장·노년층에게 적개심마저 보인다. 과거에는 시세 차익을 얻으려고 부동산 가격을 띄워 젊은 세대를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로 만들더니 이제 와선 임대료 욕심에 전세를 월세로 돌려 또다시 젊은 세대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32평(약 105m2)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강희택(37)씨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2년 계약 만료를 앞둔 두달 전에 집주인에게서 통보를 받았다. 2억6천만원의 전세를 보증금 1억5천만원에 월세 100만원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우리 부담을 3~4배는 높이겠다는 거였다. 50~60대가 30~40대를 착취하고 있다.”
깡통주택 안고 고꾸라지는 사람들
그러나 월세시장의 집주인들이 모두 매달 높은 임대료 수익을 원하는 장·노년층인 건 아니다. 가계부채에 짓눌린 하우스푸어들도 월세시장을 키우는 주요 공급처다. 은행 대출금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그들의 깡통주택을 받아줄 곳이 월세시장밖에 없는 까닭이다. 남궁희(37)씨는 1년 전 자신이 보유한 2억6천만원 전셋집을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110만원짜리 반전세로 돌렸다. 2006년에 구입해 한때는 매매가가 5억5천만원을 호가하던 아파트가 3억원 후반대까지 고꾸라진 까닭이다. 은행 대출로 아파트에 2억4천만원의 근저당이 잡히자 2억원대에 전세를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없었다. 매달 80만원의 대출이자를 감당할 방법이 없던 그는 이자라도 내려고 반전세를 선택했다. 대신 목돈이 사라지자 그도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70만원짜리 반전세를 얻었다. “3년 전에 집을 내놨는데도 팔리지가 않아 속을 태웠다. 그래도 전세에서 월세로 돌리자 숨통이 트인다. 내 주변의 하우스푸어들은 거의 이런 식으로 견디고 있다.” 하우스푸어는 월세시장의 주요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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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구조적 변화다. 전세시대로 돌아갈 방법은 저성장·저금리의 선진국형 경제구조에서 과거 고성장·고금리의 개발도상국 경제구조로 후퇴하는 것뿐이다. 다만 월세시대가 연착륙할 수 있게 최대한 부작용을 줄여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월세시대를 맞이할 준비도 거의 안 된 상태다. 일단 공급 측면에서 안전장치가 돼주는 공공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하다. 세입자가 10년 이상 머무를 수 있는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전체 주택의 5.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5%)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월세 세입자를 위한 보호 대책도 거의 없다. 각종 제도가 아직 전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월세만 있는 영국 등 해외 선진국이 대부분 갖춰놓은 공정임대료제(물가 상승과 기존 임대료를 고려해 적정 임대료를 산출)도 아직 도입되지 못했다. 전·월세의 인상폭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진전은 없는 상태다. 그나마 서울시가 월세를 통제하는 첫 단계로 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한 월세전환율 상한선(14%)을 낮추는 방안을 법무부에 건의했는데,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외에서처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보조해주는 정책도 미미하다. 서울시가 2010년부터 일부 저소득층에 대해 자기 소득의 일정 수준을 넘는 임대료 차액을 보조해주는 주택바우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게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도 예산 제약 때문에 대상이 제한적이고 보조 금액도 가구당 최대 월 7만원 정도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의 지적이다. “일단 공공과 민간이 수요자의 소득이나 세대에 따라 맞춤형으로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 여기에 공정임대료제 등을 도입해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관리해야 한다. 지금은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세입자) 간 관계가 너무 불평등하다. 월세시대의 고통을 줄이려면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전·월세 상한제 반대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월세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는 듯했다. 대선 당시 공약집을 보면 구체적인 내용이 부실하기는 해도 서민·저소득층의 주거복지를 위한 방안으로 전·월세 상한제, 장기 임대주택 확대, 저소득층 월세 지원 등이 제시돼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작 정부가 출범하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전·월세 상한제 등 세입자 보호에는 반대하면서 각종 규제를 풀어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서승환 연세대 교수를 지명했다. 철 지난 방식으로 또다시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고 주거복지 공약을 폐기하거나 후순위로 미룰 위험이 커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는 월세시대의 충격을 줄일 능력도, 의지도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봄철 전세잔혹사…“전월세 상한제로 악순환 끊어야”
(한겨레 2013.02.19 10:23)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아파트 102㎡형(공급면적)에 전세로 살고 있는 최아무개씨는 이 아파트에 이사온 지 4년 만인 다음달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한다. 3억2000만원인 전세를 시세에 맞춰 4억원으로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통보를 지난달 받았는데, 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씨가 2009년 이 아파트에 처음 들어올 당시 전셋값 2억2000만원에 견줘 4년 만에 1억8000만원(82%)이나 뛴 것이다.
본격적인 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세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셋값 급등이 쓰나미처럼 시장을 덮쳐 ‘전세 대란’이 벌어졌던 2년 전 이맘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새해 들어 지금까지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셋값이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1월 중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3%, 수도권은 0.2%의 상승률에 그치면서 비교적 소폭의 상승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이사철이 시작되면 전셋값 오름세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올봄 전세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은 지난 2년간 뛰어오른 전셋값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살던 전셋집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오른 전세금을 내야 하고,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으면 짐을 싸서 전셋값이 싼 곳으로 떠나야 할지 모른다.
케이비(KB)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월 대비 올해 1월 아파트 전셋값은 서울이 평균 15%, 수도권은 15.8% 상승했다. 서울에서는 서초구(18.4%) 강동구(18.1%) 중랑구(18.1%) 송파구(17.5%) 광진구(17.5%) 성북구(17.5%) 등이 많이 올랐고, 서울 외 수도권에서는 오산(33.2%) 화성(30.0%) 이천(31.5%) 평택(27.7%) 광명(22.5%) 양주(22.9%) 등이 큰 폭으로 뛰었다.
수도권 전셋값 2년새 15% 급등
부동산경기 침체로 재개발 줄고
2~3년 집값 하향세에 매입 꺼려
상승분 월세 전환 ‘반전세’ 늘고
‘깡통주택’에 전세금 떼일 우려도
“중소형 공공임대 공급확대 시급”
전셋값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중단되면서 신규 입주 물량이 줄어든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만 해도 대규모 노후 주택 단지를 철거한 이후 빈터로 방치된 재개발 사업장이 곳곳에 널려 있다. 여기에다 지난 2~3년간 집값이 꾸준히 내린 탓에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조차 주택 매입을 미루면서 전세로 돌아서는 수요가 증가한 것도 전세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집값은 내리는데도 전셋값은 오름세가 멈추질 않으면서 전셋집을 아예 구하기 어려운 ‘전세 품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뛰어오른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들은 살던 곳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반전세’로 내몰리고 있다. 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돌려 내는 반전세는 과거에는 중대형 주택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중소형 아파트단지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반전세가 늘어나면서 전세 매물은 점차 씨가 말라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982가구 규모 대단지인 마포 삼성아파트의 경우 현재 나와 있는 순수 전세 매물은 10건도 안 된다. 지난해부터 반전세나 월세가 빠르게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전세금과 주택 담보 대출금을 더한 금액이 집값에 가까워진 이른바 ‘깡통주택’이 늘어나면서 이사하려는 세입자가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깡통주택은 세입자가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집주인이 집을 팔아 전세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주택경기 침체로 거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깡통주택은 집주인이 파산해 경매로 넘어가는 최악의 경우 세입자가 전세금을 전액 회수하지 못하고 상당액을 떼일 가능성도 높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은 집을 경매에 넘겨도 금융회사에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없는 깡통주택 소유자가 전국적으로 19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 거래 활성화로 시장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한편, 임차인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세입자 권리 보호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김남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벼랑끝에 몰리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소액보증금 우선 변제 범위를 확대하고,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권과 전월셋값 상한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갱신 청구권은 재건축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임차인이 희망하면 현재 2년인 계약기간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는 제도다.
저렴한 가격의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원갑 케이비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최근 몇년 동안 1인 가구를 위한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공급은 늘었지만, 2~3인 가구가 입주할 만한 아파트는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새 정부는 ‘렌트 푸어’ 대책의 초점을 값싼 중소형 공공임대를 더 늘리는 쪽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상폭 연 5%로 제한’ 임대차보호법안 국회 계류
(한겨레 2013.02.18 08:55)
여야, 대선전 경쟁적 발의뒤 해 넘겨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전월셋값 급등을 막기 위한 처방으로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전월세 상한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각각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9월 여상규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전월셋값 상승률이 높은 지역에 대해 인상폭을 제한하도록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방안은 특정 지역에서 2개월간 전월세 상승률이 같은 기간 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3배 이상이거나 연이율로 환산해 10% 이상이 되면 그 지역을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더이상은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대표발의 조경태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은 지역에 관계없이 전월셋값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하도록 돼 있다. 또 주택이 경매될 경우 세입자가 임대차 보증금 중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금액을 보증금의 3분의 1 이상으로 정했다. 현재 서울지역의 경우 보증금이 7500만원 이하인 세입자가 2500만원을 최우선 변제받도록 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의 범위를 늘리고 우선변제 금액도 좀더 높이도록 했다.
정부도 소액 보증금 보호 확대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법무부는 2010년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우선변제 대상 임차인 범위와 변제금액을 조정했는데, 그 뒤 전셋값이 크게 오른 점을 고려해 보호 대상과 금액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현재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는 또 집주인이 전세에서 월세로 임대 형태를 바꿀 때 해당 월세 전환 이율의 상한선을 두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업계에서는 전월세가격 관리지역 도입을 뼈대로 한 새누리당의 전월세 상한제 방식은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방안은 이미 전월셋값이 대폭 뛰어오른 곳에서 가격이 더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데 그쳐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연이율 10%(2년 20%)로 제시된 상승 제한폭이 최근 2년간 수도권 전셋값 상승률보다 크다는 점에서 너무 느슨한 규제 장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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