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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말춤' 뜬 이유는 결국 말때문이다 (데일리안 2012.11.07 11:27:55)

싸이 '말춤' 뜬 이유는 결국 말때문이다

<김헌식 칼럼>수단과 자원에서 행복의 친화적 존재로

 

◇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를 뒤흔들 고 있는 가수 싸이.

 

우리나라에서도 말은 정신이나 의식에 깊은 관련이 있었다. 또 신화나 설화에서 제왕 혹은 장군의 탄생, 출현의 징후로 등장한다. 신라 박혁거세의 백마, 고구려 주몽의 기린마(麒麟馬), 동부여 금와왕의 눈물 흘리는 말 등이다. 또한 불운을 예시하는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붉은 말, 머리가 둘인 말 등은 국가에 이변을 예고했다.

주몽 설화에서 능력과 재주 많은 주몽은 첫째 왕자인 대소를 비롯한 일곱 왕자에게 시기를 받았고, 대소가 후환이 두려우니 없애자고 하나 금와왕은 듣지 않고 말먹이는 곳으로 보내 버린다. 고려·조선에서 궁중의 가마·마필(馬匹)·목장 등에 대한 관장 기관 사복시(司僕寺)쯤에 해당하는 곳에 보냈을 법하다.

주몽은 빠르고 강인한 준마(駿馬)는 마르고 여위게 하고, 다른 둔한 말들은 살이 찌게 했다. 물론 살이 찐 말들은 왕과 왕자들이 가져갔다. 마르고 여윈 준마는 주몽이 왕자와 신하들의 살해를 피하고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빠져나가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그만큼 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 본기 유리왕 11년(B.C 9년)의 기록을 보면 선비와 전투에서 승리한 후 반간계(反間計·정보전, 첩보전)을 사용하며 승리를 이끈 공로로 왕이 부분노(扶芬奴)에게 식읍을 주려하자, 그는 황금 30근에 따로 청한 것이 우량한 말(良馬) 10필이었다. 대무신왕 3년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가 부여에서 신마(神馬)인 거루를 얻어 크게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고구려 왕실의 권위를 더욱 강화시켰던 것. ‘고려사’ 태조 9년(926년)의 기록을 보면 후백제 견훤이 고려에 말을 돌려달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백제 절영도의 명마가 고려로 가면 망한다는 도참(예언)에 솔깃해 고려로 보냈던 말을 다시 달라고 한 것이다.

역사적 기록만이 아니라 미술, 민간신앙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특별한 미식가외에 말고기를 먹지 않으며 벽사의 상징으로 모셔놓는 풍습도 있었다. 전국에 말 무덤이라는 이름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말을 존중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잘 말해준다. 개무덤이나 황소무덤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런 말문화 코드는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문화적 가능성이 있다.

이런 차원에서 새삼 말이 주목받고 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핵심은 말이다. 말 춤이 없었다면 노래도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마의’는 말을 등장시켰고 월화드라마 1위를 기록했다. 몇 년 사이 말이 등장하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차태현의 ‘챔프’, 김태희 양동근의 ‘그랑프리’, 임수정의 ‘각설탕’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지자체는 관련법도 제정되어 말 산업 육성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말인가. 우선 한류차원에서 말은 문화할인율이라는 난제를 어느 정도 극복해준다. 일단 문화 간의 장벽은 언어에서 비롯하므로 비언어 퍼포먼스가 필요한데 말춤은 이에 적합하다. 더구나 보편적으로 동물의 움직임을 적용한 댄스는 대중성을 가질 수 있다. 동물 중에서도 말은 미국과 유럽에 통할 수 있는 문화코드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말을 타고 서부를 누비던 카우보이의 문화 코드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아직 말 문화는 존재한다. 유라시아 문화권에서 말은 매우 보편적이며 우리도 말 문화에 밀접하다. 말 문화는 경외와 일상생활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말은 인간이 부리고 있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친숙한 것 같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은 특별한 장소, 특별한 시간에만 접할 수 있는 존재이자 대상이다.

대중들이 말 춤에 호응을 보내는 것은 일상적이지만 비일상적인 말의 춤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직접 인간보다 우월한 말의 몸짓을 해보는데 똑같지 않기 때문에 희화화한 태도로 웃어넘긴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은 말처럼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만약 강남스타일을 이렇게 직접 우월한 말의 몸짓을 해보지 못한다면 대중매체나 플래시 몹으로 각광받기 힘들 것이다. 누구나 같이 참여하고 어울리고자 하는 본능은 공통으로 존재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지난 1980년대 이래 27편의 말 관련 영화가 제작되었고 올해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워 호스(War horse)’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전쟁에 끌려온 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들은 주로 경주마와 기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마장에서 1등을 두고 벌이는 레이스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마사회의 지원이 한몫을 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말 문화는 경주마 내지 경마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극에서 말은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물품으로 취급당한다.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한국의 전통 말이 아니라 해외에 수입한 말들이다. 역사의 재현이지만, 역사의 재현은 아닌 상황에서 말은 그럴듯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기병의 탁월한 전투 능력을 찬탄하면서도 그 말을 관리하는 체제나 인력은 생각지 않는다.

한번 전쟁을 나간다고 할때 이 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필요할 것이며 질병과 부상을 치료하는 의사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것이 마의(馬醫)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마의>는 인간을 시술하는 인의로 이동하고 있어 초기의 컨셉이 퇴색하고 있다. 유럽에서 영웅주의가 휩쓸 때 말도 영웅성을 드러내는 용맹한 존재로 부각된다.

조선에서 말은 문인화의 기풍 때문인지 전쟁보다는 여유자적한 한가로운 자연속의 풍광을 드러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윤두서의 ‘유하백마도’, 15~16세기 작자미상의 ‘방목도(放牧圖)’, 17-18세기 ‘류계세마도(柳溪洗馬圖)’ 이 그렇다. 고려의 ‘천산대렵도’나 고구려의 벽화 속의 말은 쾌속질주하는 속도성이 부각된다.

타히티의 여인들을 그린 폴 고갱은 말과 제3세계 여인들을 동급으로 놓았다. 말은 순수한 자연의 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 순수함은 타이티의 여인들과 같았던 것이다. 다만, 역동적인 힘에서 느껴지는 순수성인데, 이중섭의 소가 지니고 있는 느낌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말을 형상화 하는 것은 답답한 현대문명속에서 자유와 순수성이 속박받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싸이의 말이 파워와 유희성을 적절하게 섞어버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데 그것은 순수예술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순수예술은 정신의 부여이지만 싸이의 말에는 정신보다는 육체,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포지션을 갖는다. 현실에 말은 전투용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감을 위한 존재로 바뀌어간다.

지역에서 말산업을 육성하려는 것은 레크리에이션과 레저때문이다. 가족단위로 체험하고 각종 관련 오락과 여가 프로그램, 시설, 콘텐츠를 운영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사행성의 혐의가 짙은 경마산업과는 차별화된다. 즉 여가를 위한 가족형 승마산업으로 탈바꿈 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완전히 자리 잡은 재활 승마의 경우에는 단순히 즐거움과 오락성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일반 정신 장애만이 아니라 요즘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전자게임중독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다.

말은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의 지배문화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코드를 보편적으로 공유시키고 있으며 이제는 물리적 전쟁이나 운송수단이 아니라 문화콘텐츠 차원에서 인간의 삶을 다르게 풍부히 만들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