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새벽, 29세 여성 최모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지난 9월에는 충북 청주시에서 P씨(여·26)가 목을 매 숨졌다. 20대 꽃다운 나이인 두 여성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이면에는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있었다. 거식증·성형중독 취업준비생 이모(25)씨는 현재 심각한 외모 스트레스로 인한 거식증과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2007년 초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씨는 8월에 있었던 모 병원 수시모집에 이력서를 냈다. 이씨는 성적만 보는 1차 서류전형은 합격 했지만,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들었던 병원 간호사들의 수군거림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나가는데 뒤에서 ‘저렇게 뚱뚱한 여자가 무슨 간호사를 하겠어?’라고 하더라고요. 면접 때 입어야 하는 정장 사이즈가 없어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했던 것, 다른 사람들의 시선, 면접 때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려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딱 붙는 보정속옷을 입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말은 정말 못 참겠더라고요.” 때문에 최근처럼 취업이 힘겨운 상황에서 외모는 취업에 성공하기 위한 좀 더 현실적인 고민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취업전문카페 ‘취업뽀개기(http://cafe.daum.net/breakjob)’에는 지난 11월 28일 면접이미지 상담을 위한 성형 폴더가 개설됐다. 인턴이나 구인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티에서 성형폴더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외모가 구직자들에게 중요한 스펙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인기피증 연거푸 취업에서 미끄러지고 난 후에 자괴감에 빠져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는 취업준비생들도 적지 않다. 졸업한 지 1년이 넘은 박동진(28)씨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서울 시내 유명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취업에서 번번이 낙방하면서 자신감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4.5만점에 3.8의 학점, 토익 900점, 봉사활동과 인턴 경험도 있다. 다른 이들에 비해 크게 모자람이 없는 스펙임에도 면접은 물론 서류전형에서도 떨어질 때면 박씨는 “속이 타들어간다”고 한다. “처음 한두 번 떨어졌을 때는 ‘뭐를 보완해야 하지?’라고 고민도 했지만 몇 십 군데 회사를 떨어지고 나니 막막해지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특히 자신과 비슷했던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위축되는 자신을 느낀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몰려다녔던 친구 중 한 명은 내과의사, 한 명은 성형외과의사예요. 또 다른 친구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데 배경이 좋아 모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기다리고 있고요. 친구들과 대등하게 설 수 없다는 것에 점점 위축되는 것을 느끼죠. 요즘은 친구들한테 연락 오는 게 제일 무서워요.” 숙명여대를 졸업한 김나영(24·가명)씨는 “휴학까지 해 가면서 취업을 준비했지만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의 패기는 이제 없다”며 “이제는 아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아는 번호로 오는 전화만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원서를 냈던 회사에서 오는 전화인가 싶어 모르는 번호가 더 반가워요. 아는 번호로 온 전화는 자꾸 ‘지금 뭐하냐’ ‘어디 취업했냐’고 물어보니깐 부담스러워서 피하게 되고요.” 탈모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년째 휴학 중인 전모(28)씨는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3번째 낙방했다. 학원을 가기 위해 그가 늘 챙기는 것 중 하나가 모자다. 처음 시험에 떨어졌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전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모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미용실에 갔는데 조그마한 ‘땜빵’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취업준비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심리적 부담감과 압박감에 계속 시달리다 보니 탈모가 더 심해졌어요.” 전씨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탈모 치료제로 자가치료를 해왔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어 심리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중독·도박 20대 취업준비생과 30대 이상의 실직자들이 취업 및 재취업에 실패하면서 온라인게임을 탈출구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대인기피로 주변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만큼 온라인게임에 빠지는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온라인게임의 경우 손쉽게 집에서 하거나 PC방에서도 시간당 1000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고정수입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가장 저렴한 여가활동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중독을 호소하는 취업준비생 대부분은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게임만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중앙대 김정민(가명·24)씨는 영어 공부를 위해 군 제대 후 휴학했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영어실력에 게임에 더 집착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군대에 다녀오니 수업도 못 따라 갈 정도로 영어실력이 굳었더라고요. 취업하려면 토익점수, 학점 모두 다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 일단은 휴학부터 했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안 풀리니깐 컴퓨터만 붙잡게 돼요.” 이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를 찾는 취업준비생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정신치료학회 부회장이자 검단신경정신과 원장인 심상호씨는 “최근 상담을 요청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취업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며 “우울증, 거식증, 대인기피 등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증상을 보이지만 결국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취업준비생은 자신의 정신과 치료 기록이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상담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각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 서비스에서 ‘정신과상담’과 ‘취업’을 함께 검색하면 정신과진료기록이 취업에 불이익이 되진 않는지 문의하는 글들이 줄을 이룬다. 이에 대해 심상호 원장은 “개인의 진료기록은 철저히 비밀이 보장돼야 하기에 병원에서는 절대 진료기록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적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의 정신과 상담기록을 수집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라는 것이다. 때문에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전문상담기관이나 병원을 찾아 적극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적인 조언자 없이 혼자서 정신질환을 극복해보려고 참거나 회피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 상황이 꼬일 수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상담, 약물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하는 만큼 본인에게 맞는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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