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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위험한 20대 (주간조선 2008.12.13)

지난 11월 13일 새벽, 29세 여성 최모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지난 9월에는 충북 청주시에서 P씨(여·26)가 목을 매 숨졌다. 20대 꽃다운 나이인 두 여성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이면에는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있었다.
경제침체가 몇 년간 지속되면서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월 취업자 증가 수가 10만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3년 8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 20대가 13만명이 줄어 취업자 감소폭이 가장 컸다.

이에 따라 20대 청년층 구직자들의 취업 스트레스 역시 최고조에 달했다. 온라인 리쿠르팅업체 잡코리아(
www.jobkorea.com)가 2005년부터 3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에는 구직자의 88.1%가 “취업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한 반면 2007년에는 93.4%가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답했다.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의 비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현재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 구직자 1011명 중 76.8%는 자신들이 받고 있는 취업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으며 그중 22.2%가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가 바로 구직병(求職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취업이라는 큰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몸과 마음까지 망가져 버린 20대 젊은이들의 눈물 나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거식증·성형중독
면접 떨어진 후 한 끼 먹고 운동… 살은 뺐지만 후유증
73% “취업 위해 성형수술 고려”… 고치고 또 고치고


취업준비생 이모(25)씨는 현재 심각한 외모 스트레스로 인한 거식증과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2007년 초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씨는 8월에 있었던 모 병원 수시모집에 이력서를 냈다. 이씨는 성적만 보는 1차 서류전형은 합격 했지만,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들었던 병원 간호사들의 수군거림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나가는데 뒤에서 ‘저렇게 뚱뚱한 여자가 무슨 간호사를 하겠어?’라고 하더라고요. 면접 때 입어야 하는 정장 사이즈가 없어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했던 것, 다른 사람들의 시선, 면접 때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려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딱 붙는 보정속옷을 입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말은 정말 못 참겠더라고요.”

이씨는 그날부터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해 하루 한 끼만 먹고 3~4시간씩 운동을 했다고 한다. 설사약도 먹었다. 살은 많이 빠졌지만 생리불순, 탈모 등 각종 다이어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취업 전까지는 다이어트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취업을 위해 밥을 포기한 거죠. 요즘은 말랐다는 것도 구직자들의 주요한 스펙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이는 여성 구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상수(27)씨도 현재 심각한 거식증에 걸렸다. 취업 준비를 하다 면접에서 “걸어다니는 게 아니라 굴러다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이후 평소 먹는 양의 20%만 먹고 하루에 서너 시간씩 걸었다. 183㎝의 키에 150㎏이 넘는 거구였지만 8개월 만에 60㎏ 이상을 감량해 80㎏대의 몸무게가 됐다. 그렇지만 김씨는 만족하지 않고 밥을 먹고 난 이후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거식증 외에 성형중독도 빼놓을 수 없는 병폐다. 지방소재 대학 4학년인 정지예(23)씨는 눈과 턱에 이어 얼마 전 코 성형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주변에서는 “지금도 괜찮다”고 만류했지만 정씨는 좀 더 완벽한 외모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솔직히 학벌이 좋은 것이 아니니까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경쟁이 될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반할 정도의 외모면 면접에서도 통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취업포털 커리어(
www.career.co.kr)가 구직자 13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27.4%가 “외모로 인해 면접에서 낙방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고 이들 가운데 73.4%는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통계에서 보여주는 외모와 관련된 취업준비자들의 의식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올해 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아직도 일부 기업체들이 면접자의 능력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외모차별적 고용’ 행태를 보였다.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 기재를 요구하는 유형(공기업 2곳, 민간기업 25곳)은 물론이고 사무직 면접에 응시한 여성 지원자에게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보라”고 요구하거나 “다리가 못 생겨서 치마를 안 입었느냐?”와 같은 말로 심한 모욕감을 준 경우도 20곳(공기업 1곳, 민간기업 19곳)이나 됐다. 이어 면접장에서 “뚱뚱한 건 자기관리 능력의 부족”이라며 불합격시키거나 “얼굴이 예쁘니 합격시키자”고 제안을 하는 등 ‘업무와 무관한 외모 비하 또는 편견적 태도(공기업 2곳, 민간기업 8곳)’를 취한 곳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최근처럼 취업이 힘겨운 상황에서 외모는 취업에 성공하기 위한 좀 더 현실적인 고민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취업전문카페 ‘취업뽀개기(http://cafe.daum.net/breakjob)’에는 지난 11월 28일 면접이미지 상담을 위한 성형 폴더가 개설됐다. 인턴이나 구인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티에서 성형폴더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외모가 구직자들에게 중요한 스펙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인기피증
“요즘 뭐하냐” “취직했냐” 물어볼까 겁나고 자꾸 위축
교류 끊고 전화 피하고… 친척 모이는 명절은 더 끔찍


연거푸 취업에서 미끄러지고 난 후에 자괴감에 빠져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는 취업준비생들도 적지 않다. 졸업한 지 1년이 넘은 박동진(28)씨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서울 시내 유명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취업에서 번번이 낙방하면서 자신감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4.5만점에 3.8의 학점, 토익 900점, 봉사활동과 인턴 경험도 있다. 다른 이들에 비해 크게 모자람이 없는 스펙임에도 면접은 물론 서류전형에서도 떨어질 때면 박씨는 “속이 타들어간다”고 한다. “처음 한두 번 떨어졌을 때는 ‘뭐를 보완해야 하지?’라고 고민도 했지만 몇 십 군데 회사를 떨어지고 나니 막막해지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특히 자신과 비슷했던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위축되는 자신을 느낀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몰려다녔던 친구 중 한 명은 내과의사, 한 명은 성형외과의사예요. 또 다른 친구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데 배경이 좋아 모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기다리고 있고요. 친구들과 대등하게 설 수 없다는 것에 점점 위축되는 것을 느끼죠. 요즘은 친구들한테 연락 오는 게 제일 무서워요.”


숙명여대를 졸업한 김나영(24·가명)씨는 “휴학까지 해 가면서 취업을 준비했지만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의 패기는 이제 없다”며 “이제는 아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아는 번호로 오는 전화만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원서를 냈던 회사에서 오는 전화인가 싶어 모르는 번호가 더 반가워요. 아는 번호로 온 전화는 자꾸 ‘지금 뭐하냐’ ‘어디 취업했냐’고 물어보니깐 부담스러워서 피하게 되고요.”

이처럼 대인기피증상을 보이는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이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다른 사촌들과의 비교는 물론 ‘넌 뭐하고 있니’란 눈총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3년째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는 신모(26)씨도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설날이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취업준비를 핑계로 내려가지 않아 이번에는 꼭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사촌 언니, 오빠, 동기, 동생들이 모두가 엄친아(엄마친구아들의 줄임말·무엇이든 잘 하고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 스펙이에요. 진짜 두려워요. 이건 대인기피증이 아니라 친척기피증이에요.”


탈모
취업 낙방 때마다 동전 만한 ‘땜빵’이 점점 커져
탈모카페 40%가 취업준비생… 여성 환자도 늘어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년째 휴학 중인 전모(28)씨는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3번째 낙방했다. 학원을 가기 위해 그가 늘 챙기는 것 중 하나가 모자다. 처음 시험에 떨어졌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전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모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미용실에 갔는데 조그마한 ‘땜빵’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취업준비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심리적 부담감과 압박감에 계속 시달리다 보니 탈모가 더 심해졌어요.” 전씨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탈모 치료제로 자가치료를 해왔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어 심리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탈모는 20대 여성이라고 해서 비켜가지는 않는다. 20대에게 일어나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4)씨는 친구들 몰래 탈모클리닉을 다니고 있다. “원래 머리카락이 가늘고 숱이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동전크기만한 ‘땜빵’이 생긴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최씨는 “병원에 가니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라고 했다”며 “취업 때문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 탈모 동호회의 설문 조사를 보면 카페 회원 중 42%에 달하는 사람이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두피건강협회 송지형 교육실장은 “이제 탈모는 중년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20~30대 등 젊은층까지 내려가는 추세”라며 “잘못된 식습관, 영양 불균형 등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취업 스트레스 등 사회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중독·도박
스트레스 풀려고 시작했다가 종일 게임에만 빠져
대박 노린 인터넷 도박… 취업 포기하고 사이트 전전


20대 취업준비생과 30대 이상의 실직자들이 취업 및 재취업에 실패하면서 온라인게임을 탈출구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대인기피로 주변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만큼 온라인게임에 빠지는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온라인게임의 경우 손쉽게 집에서 하거나 PC방에서도 시간당 1000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고정수입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가장 저렴한 여가활동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중독을 호소하는 취업준비생 대부분은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게임만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중앙대 김정민(가명·24)씨는 영어 공부를 위해 군 제대 후 휴학했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영어실력에 게임에 더 집착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군대에 다녀오니 수업도 못 따라 갈 정도로 영어실력이 굳었더라고요. 취업하려면 토익점수, 학점 모두 다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 일단은 휴학부터 했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안 풀리니깐 컴퓨터만 붙잡게 돼요.”

김씨가 컴퓨터를 잡고 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영어듣기평가나 인터넷 강의를 위해 컴퓨터를 켜도 항상 마무리는 게임이다. “이래선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쉽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컴퓨터가 고장이 났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깐 PC방에 와있더라고요. 상황이 점점 악화되니까 가족들 보기도 민망하고 친구들도 못 만나겠어요. 제 자신이 한심해지고요.”

특별한 소득이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일확천금을 노리고 사행성 게임에 빠지기도 한다. 로또를 비롯해 스포츠게임의 결과를 예측해 돈을 거는 스포츠 토토나 프로토 외에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에서도 취업준비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취업준비생 김모(24)씨는 최근까지 꾸준히 한 달에 40만~50만원씩 인터넷 도박에 쏟아 부었다. 매일 1만원 이상을 도박에 사용한 셈이다. 우연히 중국 서버를 이용하는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회원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온라인 도박을 접하게 된 김씨는 아르바이트로 생기는 수입을 다시 도박을 하는 데 사용했다. 운이 좋을 때는 하루에 2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도박의 맛을 보게 된 김씨는 이제는 아예 취업도 미룬 채 또 다른 도박 사이트 일을 알아보고 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경제가 이렇다 보니 취업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몇 번 떨어지다 보니 의욕도 안 생기고요. 그래도 돈은 많이 벌고 싶으니까요.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를 찾는 취업준비생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정신치료학회 부회장이자 검단신경정신과 원장인 심상호씨는 “최근 상담을 요청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취업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며 “우울증, 거식증, 대인기피 등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증상을 보이지만 결국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취업준비생은 자신의 정신과 치료 기록이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상담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각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 서비스에서 ‘정신과상담’과 ‘취업’을 함께 검색하면 정신과진료기록이 취업에 불이익이 되진 않는지 문의하는 글들이 줄을 이룬다. 이에 대해 심상호 원장은 “개인의 진료기록은 철저히 비밀이 보장돼야 하기에 병원에서는 절대 진료기록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적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의 정신과 상담기록을 수집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라는 것이다. 때문에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전문상담기관이나 병원을 찾아 적극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적인 조언자 없이 혼자서 정신질환을 극복해보려고 참거나 회피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 상황이 꼬일 수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상담, 약물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하는 만큼 본인에게 맞는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