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대통령 만드는 미국 정치문화 |
정책은 뒤집어도 `인신공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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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연락은 계속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그는 23일(현지시간) 방영된 케이블 채널 C-SPAN 인터뷰에서 취임 후 부시 전 대통령과 계속 대화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외교정책과 안보 이슈를 놓고 전임 부시 행정부 정책을 뒤집거나 강도 높은 비판이 가해지는 등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으로서 채널은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히려 "취임한 지 4개월밖에 안 됐지만 전임자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정권 교체 후 전ㆍ현 행정부 간 정책을 둘러싼 마찰과 갈등은 흔한 일이다. 집권 정당이 바뀌었으니 각종 이념 성향을 반영해야 할 사안에서는 변화의 폭풍이 불어닥친다.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 후 이라크 파견 병력 철수와 테러 혐의자 수감 시설인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라는 두 가지 큰 결정을 밀어붙였다.
지난해 선거 캠페인 때 부시 행정부를 이어가야 하는 공화당 측 존 매케인 후보와 확연하게 다른 견해를 보였던 두 쟁점이었다. 이라크 철군은 국방부와 군내 일선 지휘관들이 신중론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약속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다만 전투병력을 철수시키는 대신 이라크군 훈련, 미국 시설 보호, 테러조직 추적 등 비전투 임무를 위한 병력 5만여 명은 더 주둔시키기로 했다.
부시 행정부가 벌인 명분 없는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다. 정책을 이렇게 뒤집으면서도 전임 부시 행정부에서부터 일해온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유임시켰다. 이라크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니 마무리도 잘할 것이라는 명분이었다.
정책은 바뀌어도 사람에 대한 비난과 질타를 구분하는 절제를 보여준다. 테러 용의자 수감 시설인 쿠바 기지 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놓고는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반대하지만 오바마는 더 강력하게 추진했다.
상원에서 관련 예산 8000만달러를 삭감하며 제동을 걸어도 오바마 대통령은 더욱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부시 전 대통령의 힘에 의한 일방주의적 외교나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가차 없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는 이날 C-SPAN 인터뷰에서도 "9ㆍ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너무 많은 안이한 방법을 취했다"며 "국민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나 `네 탓 공방`은 하지 않는다.
최근 관타나모 수용소와 CIA의 테러 혐의자에 대한 물고문 심문 폭로를 둘러싸고도 정책 결정의 최종 책임자인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부시 측에서도 딕 체니 전 부통령이 나서서 심문 기법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면서 `오히려 테러에서 미국과 국민을 보호했던 순기능이 있었다`고 오바마 대통령 측을 반박했다. 체니 전 부통령이 부시를 대신해 악역도 맡고 욕도 먹으면서 전직 대통령이 비난의 정점에 서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간 직접적인 충돌이나 맞비난은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하려는 배려이자 정치적 전통이다.
미국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활동을 위한 예산과 인력은 물론 전직 대통령 기념관 건립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허물을 오히려 덮어주려고 애쓴다. 제럴드 루돌프 포드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국민적 공분을 사서 현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 전 대통령을 사면해버렸다. 현직 대통령인 자신이 짐을 지면서도 전직 대통령을 보호하고 존중해준 것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내린 결정이라면 뒤집고 부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유명한 `ABC(Anything But Clinton)`다. 그렇지만 정책에 대한 비판과 클린턴 전 대통령을 향한 개인적 공격을 혼동하지는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전직 대통령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전통을 지켜감으로써 자신이 퇴임했을 때도 그 혜택을 누리는 상생 원칙이 가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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