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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도의 힘으로 청년의 목숨 구했을까? (서울신문 2009.06.25)

정말 기도의 힘으로 청년의 목숨 구했을까?
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김모(77) 할머니가 24일 오전 한때 위급한 순간을 맞았지만 사흘째 스스로 호흡을 계속하고 있어 생명의 오묘함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도 한 젊은이의 기적적인 생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일간 ‘위치타 이글’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캔자스주 콜위치에 사는 20세 청년 체이스 키어의 극적인 생환이 가족과 친구들의 기도 덕분인지 규명하기 위해 바티칸 교황청의 조사관 안드레아 암브로시가 26일 위치타를 찾을 예정이다.그는 키어의 주치의를 만나 의학적 소견을 듣는 등 키어가 목숨을 구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허친슨 커뮤니티 칼리지의 육상부원이었던 키어는 지난해 10월 장대높이뛰기 훈련을 하던 중 바닥에 머리를 찧는 큰 부상을 당했다.사고 직후 그는 헬리콥터에 태워져 근처의 바이어 크리스티 레지어널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가족들은 헬리콥터가 병원에 내리는 순간부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키어의 부상은 심각했다.두개골은 양쪽 귀를 가로질러 갈라졌고 뇌는 푹 주저앉았다.누구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지 않았다.두개골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 도중에라도,아니면 감염 때문에 그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료진은 경고했다.

 가족들은 몇달 전 암에 걸린 한 신부가 이곳에서 열심히 기도한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세인트 프랜시스의 작은 예배당을 찾아 기도를 올렸다.이 예배당은 캔자스주 필센 출신으로 한국전쟁 도중 다른 병사들을 구해내고 숨진 에밀 카파운 신부의 혼령을 모신 곳이었다.가족들은 예배당 안의 모든 신도들에게 함께 키어의 회복을 기원하기를 청했고 신도들은 기꺼이 응했다.

 키어는 사고 후 7주 만에 자신의 힘으로 걸어 집 현관을 들어섰다.이웃 주민들은 그에게 ‘기적의 사나이’란 별명을 붙여줬다.사람들은 키어의 어깨나 팔에 손가락을 대고는 “기적과 접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카파운의 영웅적인 희생은 1953년 휴전과 동시에 풀려난 미군 병사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육군 8기병여단 소속 군목이었던 그는 전장에서 다친 병사들을 헌신적으로 구조했고 부상이 심해 걷지도 못하는 아군 병사들을 중공군이 처형하려 하는 것을 목숨을 걸고 막아냈다.수용소에서도 음식을 훔쳐 포로들에게 나눠주고 지붕의 양철을 구부려 냄비와 팬을 만들어 포로들로 하여금 눈과 얼음을 끓여 마실 물을 구하게 했다.

 정작 그는 휴전을 2년여 앞둔 1951년 5월 수용소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미국 태생으로 지금까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는 딱 두명.카파운 신부가 성인 칭호를 얻으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바티칸의 이번 조사도 그를 성인 반열에 올리는 자격 심사의 성격을 갖는다.가톨릭에선 두 차례의 기적이 입증되면 성인으로 추앙된다.

 어머니 폴라는 “우리 아들이 살아난 건 부분적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카파룬 신부님 혼령에 살려달라고 열심히 기도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른쪽 얼굴을 가로지른 길다란 봉합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키어는 여름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있으며 모교에서 장대높이뛰기 코치로 일할 계획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어머니가 “그래,너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너무 멋진데요.”라고 또렷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