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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이야기가 있는 해남 땅끝서 길을 걷다 (광남일보 2011.06.16 10:08)

레저]이야기가 있는 해남 땅끝서 길을 걷다

쉼! 사구미 해변… 윤선도가 오른 윤도산 '고갯마루'
이진성에서 만나는 '제주도'…없는 듯 다 있는 좌일장


사구미 솔숲.
 
길은 자연과 역사,문화를 담고 있는 복합공간이다.

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자연 생태 체험도 가능해 좋다. 숨겨진 다양한 문화적 사건이나 유적지가 있는 길을 걸으며 그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더 좋다. 길 위에 고스란히 쌓여 있는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도 접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길이 주는 매력이고, 그래서 우린 길을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 청산도 '슬로시티길', 무등산 '옛길'…. 길을 걷는 '매력'이 만들어 낸 '명품길'들이다. 그런데, 땅끝 해남에도 '명품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
 
한반도의 땅끝 해남, '해남의 길'은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래전엔 반도의 가장 변방 끝이었던 해남,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길'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끝이 아니라 '시작점'으로서의 의미다. 국토순례에 나선 이들의 첫 출발지가 땅끝이고, 수많은 이들이 땅끝을 '첫 출발지'로 삼는 것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길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한 구절에서 그 '평범하지 않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거기에는 뜻 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 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려있는 역사의 체취가 살아 있으며, 이름 없는 도공, 이름 없는 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 내음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일번지'라는 제목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남도답사 일번지'로 해남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지막한 구릉지 황톳길을 연신 걷다 보면 바닷가가 나오고, 향토의 흙 내음과 남녘 바다로부터 밀려온 바닷내음 가득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해남 '땅끝길'로 함께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해남 '땅끝길'은 지난해 조성된 '문화생태탐방로'다. 총 46km 4개의 노선으로 숲길, 해변길, 마을길 등 다양한 생태를 접할 수 있는 길이다. '땅끝길'은 남쪽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길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해남만의 독특한 길의 진미를 느껴볼 수 있다.

삼성마을 쉼터.
 
'땅끝바닷길'은 '땅끝길'의 첫번째 구간이다. 땅끝마을 맴섬에서 출발해 넓골~통호~사구미 마을까지 이르는 8km 구간이다. 소요시간은 넉넉잡아 2시간30분. 땅끝마을은 국토순례의 일번지로 갈두 또는 칡머리라 불리었고, 땅끝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 가운데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 통호 무른기미 해변 '소금바우'에서 바라보는 땅끝바다 풍광이 이채롭다. 모래가 고운 사구미 해변과 솔숲에서는 도보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휴식할 수 있는 곳이다.

차경마을.
 
두번째 구간은 6km의 '점재길'이다. 사구미 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북평면 이진마을에 이르는 해안가 길이다. 이 길은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를 가기 위해 가던 길이라고도 알려진 윤도산 고갯마루 '점재'를 넘고 청정계곡 '모래미골'을 지나 영전마을로 이어진다.

서홍해변.
 
'점재'는 통호마을, 사구미 사람들이 현산면에 있는 월송장을 보러 가기위해 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영전마을에서는 다양한 농촌의 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영전백화점은 고무신, 호미 등 농어촌에 필요한 갖가지 생필품이 진열되어 있는 정감어린 곳이다.

통호해변.
 
'점재길'을 지나 다음 루트로 가는 세번째 구간이 '묵동갯길'이다. 11km에 걸쳐 이르는 이 길은 영전마을 동쪽 들녘을 지나 안평마을에 이르면 뻘갯벌, 바위갯벌, 모래갯벌이 고르게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그 위를 나는 철새들을 만날 수 있는 해변길이다.
 
조선시대 수군만호진이 있었던 이진 마을은 삼남대로 남쪽 끝지점으로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최대의 관문이었다. 마을에는 아직 남아 있는 성곽을 비롯 당시 사용하였던 돌샘, 그리고 제주에서 말을 싣고 올 때 배에 실었던 현무암이 남아 있어 이채롭다. 사구미에서 이진마을까지 걷는 데는 5시간 가량이 걸린다.

 
땅끝길의 마지막 구간은 18km에 걸쳐 있는 '쇄노재 길'이다.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 가량. 이진마을에서 시작해 '땅끝길'의 종착지인 장수마을에 이르는 길이다. 이 구간은 두륜산 동편 산자락에 올망졸망 자리한 마을들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중 김치마을로 잘 알려진 동해마을은 수백년된 정자나무와 돌샘, 돌담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이 마을은 농촌체험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두륜산 뒤편 '쇠노재'는 남도사람의 애환과 살의 정서가 가득한 숲길이기도 하다.

동해마을.
 
'쇄노재 길'을 걷다 북일 좌일장이 서는 날에 이곳을 지난다면 북일면 일대 청정바다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매를 만나 애기를 나누며 진한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것도 도보 여행의 진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