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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사진가들이 살린 삼척 `솔섬` (조선일보 2010.01.09)

이 섬의 심장은 '찰칵! ' 소리를 내며 뛴다

입력 : 2010.01.09 03:16 / 수정 : 2010.01.09 19:19

사진가들이 살린 삼척 '솔섬'
"동해 日出 사진 메카에LNG 기지가 웬 말" 사진가들 찍고 또 찍고…

죽다 살아난 섬이 하나 있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솔섬'이다. 시작은 마이클 케나였다. 8×10인치짜리 작은 사진 한 장이 5000달러(약 600만원)에 팔리는 세계적인 미국 사진가다. 그 사람이 2007년 대한민국 솔섬 사진을 찍어간 이래 솔섬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됐다. 섬을 알린 사람, 케나는 사진가다. 그리고 '죽을 뻔했던' 솔섬을 살린 사람도 사진가들이다. 왜?


강원도 삼척 남쪽 끝자락에 솔섬이 있다.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찾는 이 소나무숲은 사진가들 덕분에 사라질 위기를 넘겼다.

대한민국 도서(島嶼) 3167개 가운데 솔섬은 없다. 섬이 아니라 태백에서 흘러오는 가곡천이 백사장에 막히면서 생성된 모래톱이니까. 그 300평 안팎 모래톱에 씨앗이 내려앉아 송림을 만들었다. 30년도 넘었다.

동해시에 사는 사진가 최영규(40)씨가 말했다.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가서 놀았지만 (마이클 케나 사진을 보기 전에는) 이름도, 그 아름다움도 몰랐다."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공간이었다.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을 향해 내려가니 호산항이다. 항구에서 1km를 걸어 바다로 갔다. 동해 특유의 희고 너른 백사장 앞에서 겨울 파도가 포효한다. 수평선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밝힌 불들이 휘황찬란하다. 그 앞에 위풍당당한 솔숲이 있다. 그게 솔섬이다.

해가 지니 별이 뜬다. 낮에는 백사장 하나였는데 이제 거기에 우주가 있다. 별들이 운항하고 바다가 화를 낸다. 한국관광공사는 물론 삼척시까지도 우리 땅에서 드문 비경(秘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이클 케나가 찍은 시간은 그 바다가 숨을 삭이던 새벽녘이었다. 케나의 사진이 발표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카메라 들고 다니는 웬만한 사람들 발길이 솔섬으로 향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TV 광고에까지 등장했다.

케나가 작품을 발표한 그해에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가 이런 발표를 했다. 'LNG(액화천연가스) 제4기지 우선 협상대상으로 삼척시 결정.' 호산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원덕읍 호산리 일대에 LNG 저장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2조7000억원 예산에 육·해상 포함해 100만㎡ 규모의 기지를 만들기로 합의했으며 1차로 전 국민 6일치 사용 분량인 80만루베(㎥) 규모의 저장기지를 만들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 숨가쁜 설명이 잇따른다. "2010년 1월 안으로 1차공사가 착공돼 2013년 1단계 공사 완공. 가스 저장설비 14기, 14만t급 선박 수용 항만시설을 완공한다, 이에 따른 경제효과는 매년 20억원이다…."

발표 후 원덕읍 풍경은 변했다. 대도시에서나 볼 법한 부동산 중개인 사무실까지 등장한 것이다. 호산해수욕장 남쪽 끝 건물은 경매로 주인이 바뀌었다 숙박업소로 변신했다. 택시 기사는 "말도 못하게 돈을 번 집"이라고 했다.

그 호산해수욕장 남쪽 접경이 바로 솔섬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방방곡곡에 있는 풍경사진가들이 몰려들었다. 별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원이 부족한 이 땅에 명분이 명분이니만큼,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마음 하나였다.

어차피 없어질 풍경이니 마이클 케나 흉내내서 사진이나 찍어두자는 개인적인 소망들도 있었다. 한 사진가가 말했다. "솔섬은 동해 일출 사진의 메카입니다." 그 소망과 마음이 쌓여서 2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온라인 사진동호회 slrclub.com 갤러리를 검색하면 2007년 이래 100건이 넘는 사진이 나온다. 동호인들이 24시간 불철주야 찍은 사진들이다. 댓글에는 "곧 없어진다며" "아쉽다"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같은 내용이 있다.

지난해 초 겨울밤 솔섬을 보려고 호산을 찾았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쯤 되는 그 한밤에 사진가 세명이 오들오들 떨면서 솔섬을 향해 렌즈를 맞추고 있었다. 입김 가득 내뿜으며 이들이 내뱉는 말은 동일했다. "없어진다며…."

이런 집단무의식이 누적된 끝에, 지난해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삼척시가 공모한 관광사진전에서 솔섬 사진이 1등을 한 것이다. 이 사진이 심사위원단들로부터 최우수작으로 뽑히자 삼척시는 당황했다.

안 그래도 LNG기지 부지 북쪽에 있는 해망산(海望山)이 주민들로부터 심각한 민원대상이 된 터였다. 해발 30m도 되지 않는 이 바위산은 예로부터 해신(海神)을 섬기는 중요한 민간신앙터다.

해망산은 산 전체에 새끼를 꼰 금줄이 둘러쳐 있다. 삼척시에서는 한국가스공사에 해망산을 부지에서 제외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가스공사는 이를 수용했다. 삼척시는 지난해 말 환경분야에 대해 보완을 추가요청했다.

특히 솔섬의 생태 및 환경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책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있다. 5일 가스공사 삼척기지건설팀 심근식 팀장은 "솔섬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다는 게 LNG 기지건설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삼척LNG저장기지는 북쪽으로는 해신(海神)을 섬기는 해망산, 남쪽으론 솔섬을 울타리로 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