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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리니지와 게임머니 (조선일보 2010.01.11)

리니지와 게임머니

1998년 등장한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혁명'이었다. 예전 게임들과 달리 8등신 등장인물과 실감나는 그래픽으로 꾸민 리니지에 외국인도 열광하며 빠져들었다. 유럽 중세를 무대로 주인공이 아버지 원수를 갚고 왕권을 되찾는다는 국내 장편만화를 각색한 스토리도 흥미진진했다. 리니지는 3년 만에 동시접속자 30만명을 넘어섰고 2007년 누적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면서 '게임머니' 거래를 급속히 확산시켰다.

▶리니지 이용자는 기사·요정·군주 같은 등장인물 하나를 분신으로 삼아 싸운다. 괴물을 물리쳐 게임머니를 벌고, 그걸로 더 좋은 무기나 보석을 비롯한 '아이템'을 사면 더 쉽게 다음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게임머니 중개사이트에선 리니지 돈 100만 아덴이 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리니지2'에 나오는 한 아이템은 1400만원에 거래됐다. 관련 범죄도 끊이지 않아 2008년엔 중국에서 불법 프로그램으로 모은 게임머니를 들여와 420억원을 챙긴 14명이 붙잡히기도 했다.

대법원이 리니지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거래했다가 게임산업진흥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자 2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사람은 2007년 리니지 게임머니 2억3400만원어치를 시세보다 싼 값에 사들인 뒤 2000여명에게 되팔아 2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었다. 1심에선 400만원과 200만원 벌금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업계에선 이미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아이템 거래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반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게임머니 거래를 하려면 성인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이미 많은 청소년이 가족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모르는 사람 주민번호를 도용하거나, 게임머니를 불법으로 빼내 파는 '작업장'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 9~14세 게임 이용자의 46%, 15~19세 이용자 중 40%가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고판 경험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3분기에만 게임머니를 거래하면서 돈을 떼먹거나 상대방을 속인 사기 피의자 1650명 중 대다수가 청소년이었다. 가뜩이나 게임에 빠져 걸핏하면 밤을 새우는 아이들이 이제 더욱 컴퓨터에 매달릴 게 뻔하다. 학부모들로선 참 원망스러운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