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초점] '청년취업 프로젝트'가 사라지는 날
- ▲ 윤영신 경제부장
4년제 대학 대폭 줄이고 전문대 늘리면
청년실업·대입·사교육 문제동시에 해결…
기술인력 탄탄한 中企도 늘 것
어느 중소기업 이야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재작년 말 여성의류업체인 거연인터내셔널의 권혁비 사장과 변종훈 회장 부부에게 시련이 닥쳤다. 매출이 갑자기 30% 줄고, 겨울 신상품들이 모조리 재고로 쌓였다. 발빠른 경쟁 업체들은 매장을 줄이거나 직원들 정리해고에 나섰다. 거연인터내셔널도 직원 숫자를 줄이는 구조조정 없이는 생존이 불투명했다.
'과연 누구에게 해고라는 십자가를 지워야 하나.' 부부는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몇 번이고 직원 명단을 훑어봤다. 30여명 중에 당장 회사 밖으로 쫓아낼 직원을 골라내야 했다. "직원들 이름을 보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나오더군요."(권 사장) 곁에 있던 변 회장이 그의 손을 잡았다. "여보, 괜한 고민 하지 맙시다. 가족 같은 직원들을 쫓아내고 우리 마음이 편하겠소. 해고 없이 버텨봅시다."
그 후 1년2개월여가 지났다. 권씨의 직원들은 모두 남아 지금 옷을 만들고 있다. 부부는 오히려 내핍 경영을 하면서 '가족'을 불렸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은 인원이었지만….
불황 속에서도 직원을 내몰지 않고 신입 사원을 채용한 권씨 부부 같은 '작은 영웅'들 덕분에 조선일보와 기업은행은 지난해 '청년취업 1만명 프로젝트'를 달성했다. 전국 2500여개 중소기업들이 한명씩, 두명씩 사람을 뽑아 1만명을 이뤄냈다.
조선일보와 기업은행은 올해에도 1만명을 더 취업시키는 '청년취업 2만명 프로젝트'를 펼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50만명이 넘는 대졸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중 정규직 취업은 절반에도 못미친다. 현재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취업을 준비중이거나, 구직을 포기하고 놀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백수' 상태에 있는 사람이 300만명을 넘는다. 일자리를 갈구하는 300만명에 비하면 '1만명'이란 숫자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선일보와 기업은행이 올해 1만명을 추가하고, 내년에 또 1만명을 추가하고, 내후년에도 이 프로젝트를 계속해도, 84%가 대학을 가는 '대졸자 과잉의 나라'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
조선일보와 기업은행은 지난해 구미, 창원 등 9개 지역을 찾아가 '잡월드 로드쇼'(현장 채용 박람회)를 열었다. 대부분 2년제 전문대학 캠퍼스에서 행사를 했다. 현장에 갈 때마다 느낀 것이 있었다. 정작 행사장이 마련된 전문대의 학생들은 취업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은 밝고 캠퍼스는 평화로웠다. 행사장에 몰려와 진땀을 흘리며 면접을 보는 젊은이들은 대개는 다른 지역에서 온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었다. 반면 전문대 졸업생들은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직장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 기술과 지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전문 인력은 매우 부족하고, 전문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매우 많다.
해마다 수십만명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구직난(求職難)과, 중소기업들이 기술인력을 못 찾아 애를 태우는 구인난(求人難)이 공존한다. 기업들은 미래 성장 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기술인력이 없어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실업자를 양산하는 4년제 대학은 2000년 161곳에서 지난해 177곳으로 늘고, 기술인력의 산실(産室)인 2~3년제 전문대는 2002년 159개에서 지난해 140여개로 줄었다. 지난해 '청년취업 1만명 프로젝트'의 현장에서 본 우리나라 청년실업의 해법은 간단했다.
4년제 대학을 과감히 줄이고, 전문대를 많이 늘려 풍부한 기술인력을 키워내는 대학 구조조정 외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해서 우수한 기술 인재들이 중소기업에 속속 들어가 중견기업을 일궈내고, 그 기업들이 삼성·LG 같은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4년제 대학 구조조정에 성공하면 청년실업과 대입문제, 사교육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중소·중견기업이 탄탄한 경제강국으로 키울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에 꼭 하겠다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 언론사나 은행 같은 곳이 청년취업 캠페인을 벌이는 일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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