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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

“복불복을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아세요?” (주간조선 2010.05.03)

[피플] 30여년 실전영어를 책으로 낸 무역회사 대표 엄봉섭씨
“복불복을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아세요?”
4월 중순의 어느 날 기자 앞으로 신간 서적이 하나 배달됐다.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The English Bible(디 잉글리시 바이블)’. 분량도 868쪽이나 된다. 또 그렇고 그런 영어책이 하나 추가됐나보다 하고 심드렁하게 책을 넘기던 기자는 잠시 후 “아니~ 이럴 수가” 하고 정색을 하면서 책을 꼼꼼히 읽어나갔다. 지난 4월 19일에는 저자에게 전화해서 “책 내용이 좋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이틀 후 이뤄졌다.

주간조선 인터뷰실에서 만난 저자 엄봉섭(嚴鳳燮·64)씨는 이웃집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친근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명함을 보니 한외통상 대표이사다. 한외통상은 엄 사장이 1978년 2월에 설립한 무역회사다. 영어 저술가가 아닌 60대의 기업인이 영어책을 쓴 셈이다.

엄 사장의 이력은 영어와 관련이 있다. 그는 충남 서산 태생으로 중학교까지 서산에서 나오고 서울 경동고를 거쳐 외국어대 영어과(67학번)를 졸업했다. 군대는 학사장교로 가서 통역장교를 했다. 직장은 외환은행, 삼성물산, 수입업체인 유로홰션에서 근무했고 1978년부터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 경력만으로 그가 60대에 영어책을 펴낸 것이 납득되지 않아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책을 쓰신 겁니까?”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은 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영어전공·통역장교 등 영어 일가견

▲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가 영어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업을 시작하면서였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과를 나온 데다 군대에서 통역장교를 했고 외환은행에서 수출입업무를 맡았고 종합상사인 삼성물산에서 금융업무를 했으며 유럽 유명 아이템 수입 판매회사인 유로홰션에서도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197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외국인과 접촉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도 영어를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인 중에서 그렇다는 말이었다. “1977년 말에 직장을 그만두고 1978년에 회사를 설립해서 해외 거래처와 직접 맞닥뜨려보니 제가 영어를 얼마나 못하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의 영어실력은 높은 축에 속했지만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영어구사력을 갈구하게 마련이다.

사업 시작 첫해인 1978년 그는 사업아이템으로 산업용 원자재를 취급하기로 하고 그중에서도 화학제품을 골랐다. 이 분야의 국내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경쟁력 있는 기업을 수소문해서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화학업체 ICL(Israel Chemical Limited)과 연결했다. 그러나 거래는 좀처럼 트이지 않았다. 참고로 유대인은 남을 안 믿기로 유명한 민족이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영어실력과 성실한 자세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조금씩 얻어갔다. 마침내 1980년 ICL은 1인기업의 CEO인 엄봉섭 사장에게 한국 총대리권을 줬다. 세계 최고 회사의 독점판매권을 얻은 그의 사업은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가 독점 취급하는 ICL 제품의 한국 시장점유율은 무려 40%나 된다. 취급물량도 초기 연간 5톤에서 지금은 2만톤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을 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내외국인들로부터 ‘영어도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성에 안 찼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의사표현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감칠맛 나게 하는 레벨이었다. 그러나 도움이 될 만한 존재는 없었다. 학창시절에 배운 영어는 ‘죽은 영어’였다. 영어책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1970년대 말에는 영어회화책은 전무하다시피했고 문법책은 시험을 위한 수험서밖에 없었다.


절묘한 표현 담은 메모 수십 권


그는 사업을 시작한 1978년 그해에 “살아 있는 영어책을 내자”고 발원(發願)을 한다. 사업 초기여서 세팅을 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영어와 관련된 사항은 빠짐없이 메모를 했다.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영어책을 읽다가 절묘한 표현이 나오면 바로 노트에 메모를 했습니다. 외화를 보거나 팝송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 32년을 넘긴 그의 메모벽(癖)은 수십 권 분량의 영어노트로 이어졌고 오랫동안 손때 묻은 이들 노트가 지금은 그의 든든한 자산이 됐다.

그는 1990년 첫 영어책을 펴냈다. 제목은 ‘라이브 잉글리쉬 & 라이브 잉글리쉬’. 2001년에 출간한 ‘마법의 영어표현 10000’이라는 제목의 영어책은 영미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생생한 표현 1만개를 상황별, 어휘별, 표현별로 정리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The English Bible’은 세 번째로 펴내는 책이고 기존에 낸 책 두 권을 포괄하면서 이들 책을 뛰어넘는 완결판인 셈이다.

‘The English Bible’은 시판 중인 기존 영어책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기존 영어책에서는 찾기 어려운 생생한 현장영어 약 2만개가 듬뿍 담겨 있다. 예를 들면 ‘△복불복(福不福) △나에겐 비장의 카드가 있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어! △꼼짝도 안 하는데 △내가 할 말을 네가 하는구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옳은 말씀! △정말 꼴불견이야~ △반반씩 양보합시다! △(전화를 써도 되냐는 말에) 그럼요. 마음껏 쓰세요!’ 등의 표현에 대한 영어가 이 책에는 나온다. 영어 표현을 보면 ‘복불복’은 ‘Man proposes, God disposes’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어!’는 ‘It’s out of this world!’이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의 경우 ‘He’s still wet behind the ears’이다. 하나같이 기존 영어책에는 잘 안 나오는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능히 짐작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전치사와 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50쪽의 분량을 할애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영미인들은 부사, 전치사를 최대한 활용해서 언어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데 반해 우리는 어려운 단어를 동원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Jane and I are going to buy some tickets for the Yankees games. Do you want in?’은 ‘제인과 뉴욕 양키스 경기 표 사러 가는데, 같이 갈래?’입니다. 우리는 이런 쉬운 영어는 못 쓰고 ‘Do you want to go together with us?’처럼 어려운 영어만 쓰고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격조 높은 표현도 몸에 익혀야 한다. 이 책에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You want to see miracle, son? Be the miracle(자네 기적을 보고 싶나? 스스로 기적이 되게)’, 영화 ‘뮬란’의 ‘The flower that blooms in adversity is the most rare and beautiful of all(모든 꽃 중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등 명대사가 많이 수록돼 있다. 이런 표현은 쉬운 단어를 모아 감동적인 문장을 만든 것이 특징. 그는 “이런 표현을 구사할 줄 알아야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를 ‘세너’라기보다 표현력 중요

그는 항상 완전한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강한 것도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소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음식을 차려 놓고 외국인에게 ‘많이 드세요’라고 말할 때 ‘Please help yourself to the food’ 또는 ‘Please help yourself’ 대신에 ‘Please’ 한 단어로도 뜻이 충분히 통할 수 있습니다. ‘Please’ 한 단어로 말한다고 해서 지식이 짧은 사람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국어를 쓸 때도 항상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 하지는 않듯 영어도 마찬가지”라며 “외국어는 오히려 처음에는 짧은 문장을 쓰다가 자신감이 붙으면 조금씩 긴 문장에 도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식 영어 발음을 흉내내기보다는 한국식 발음이라도 상관 없으니 콘텐츠를 쌓는 데 주력하고 그것을 영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터내셔널을 ‘이너내셔널’, 센터를 ‘세너’라고 미국식으로 혀를 굴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차라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한국인의 악센트가 확연히 드러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는 통념과는 달리 영어를 빨리 말하는 것은 결코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에 뛰어들면서 “I am in to win(나는 이기기 위해서 뛰어들었다)”이라는 문장을 또박또박 말해서 행사장을 감동의 도가니로 만든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민이 더 이상 ‘영어 공부’에 짓눌려 살지 말고 이제부터는 영어의 맛과 멋을 즐기면서 살 수 있도록 길을 하나 새로 개척했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반 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영어 현장’에서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책에 있는 영어 표현에는 그의 영어 구사 이력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굳이 영어책을 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사업과 좋은 영어책 내기를 ‘필생의 과제’로 삼고 평생 현역을 추구하고 있다. 기업인이 만든 영어책이지만 비즈니스 영어에 국한하지는 않았다. “사업을 잘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화제에 밝아야 합니다. 이 책은 연령, 성별, 계층에 관계 없이 모든 독자가 직면하는 다양한 시추에이션(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영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국민이 적어도 100만명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이 썼기 때문에 독자의 가려운 대목을 잘 포착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20년간 해마다 이 책의 개정판을 내고 웬만한 사람은 이 책을 한 권씩 갖고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영어 잘하는 법 5가지

영어 학습은 서당에서 천자문 외우듯 하는 것이 최고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낭독은 언어를 익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반드시 큰 소리로 리듬을 붙여서 낭독해야 한다. 한번 낭독하고 말면 안 된다. 영어 문장 하나를 1만번씩 큰소리로 반복해서 세포가 기억하게 하라는 말을 꼭 실천해 보기 바란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이라는 말은 영어 학습에도 들어맞는다.

영어일기를 쓰라

영어일기를 쓰면 영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된다. 쓰고 싶어도 영어 실력이 짧아 쉽게 시작할 수 없다면 굳이 꼭 자기의 문장으로 쓸 필요가 없다. 마음에 드는 영어소설의 한 구절, 영자신문의 한 칼럼을 베껴쓰는 방법도 좋다.

특정 주제를 항상 영어로 준비해두라

평소에 외국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특정 주제를 영어로 준비해두면 일상생활에서 영어와 친해질 수 있다. 이것을 준비하고 관리하다보면 자신도 놀랄 정도로 영어에 자신감과 흥미를 갖게 된다.

영어 글쓰기를 많이 해보라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우리는 아무리 영어로 말을 잘한다 해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만큼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어를 글로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원어민보다 크게 불리할 것이 없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 잘할 수도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평소에 인용하고자 하는 표현들을 암기하고 모방하면서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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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신문을 꾸준히 구독하면 영어와 쉽게 친구가 되고 영어 실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처음엔 큰 제목만 읽어보는 정도만으로도 구독료는 본전을 뽑고도 남음이 있다.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말고 가용 시간 범위 내에서 영자신문과 친해지면 그 어느 교재나 교사보다도 유익하다. 구독료를 건질 생각으로 영자신문을 모아두는 것은 스트레스만 늘어나므로 절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