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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

중국 최고 천재들이 모인 곳 베이징대의 특수학부, 웬페이 (주간조선 2010.05.03)

중국 최고 천재들이 모인 곳 베이징대의 특수학부, 元培(웬페이)

▲ 베이징대학의 상징인 서문.
중국 베이징시 해정구(海淀區) 이화원로에 있는 중국 최고 명문대학 베이징(北京)대. 271만㎡ 규모인 베이징대 캠퍼스 서남문 쪽엔 이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4년간 의무적으로 지내야 하는 기숙사 건물이 있다. 그런데 1만여 학생이 거주하는 50여동의 기숙사 중 특이한 동이 있다. 시설이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이곳 기숙사 학생들은 일반 학생과 다른 생활을 한다. 4인실이 보통이나 이곳에는 외국인 룸메이트와 사는 2인실도 있다. 또 4년 동안 정치사상교육, 공산당원활동, 생활관리 등 다방면에서 대학의 철저한 통제·관리를 받는다. 이들은 베이징대 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의 천재 집단’이라고 불리는 ‘웬페이(元培)’ 학부생들이다.

웬페이 학부생들은 중국 전역에서 까오카오(高考·수능시험)를 치르는 학생(2009년 기준 1020만명) 중 상위 0.0002%(2009년 기준 2761명)만이 입학하는 베이징대 신입생 중에서도 최우수 집단이다. 베이징대는 매년 신입생 중 150~200명 정도를 선별해 웬페이 학부에 입학시켜 특수교육을 시킨다. 웬페이는 베이징대의 초대 학장(재임기간 1916~1926년)이자 사상가인 차이웬페이(蔡元培)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공 안 정하고 원하는 과목 수강

각종 경시대회 수상자 위주로 선발되는 이들은 소속 학과가 없고 일반 학생에게 적용되는 한 학기 25학점 이수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은 입학 당시에 전공을 선택하지만, 이들은 2년간 공부한 뒤 자신에 맞는 전공을 택한다. 2007년 웬페이에 입학한 취엔시시(全希西)씨는 “2년간 듣고 싶은 학과의 수업을 골라 듣고 지도교수 상담과 적성검사를 통해 진로를 정한다”며 “전공이 맞지 않으면 다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웬페이 학부생에게는 ‘멘토’도 따라붙는다. 베이징대 전 학과에서 선발된 51명의 지도교수 중 자신이 원하는 교수를 멘토로 지정받아 수업선택, 전공선택, 학습방법, 연구활동 등에 대한 지속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사회 각계 유명인사들로 구성된 외부 멘토진도 있다. 이들 10여명의 외부 멘토진은 웬페이 학부생들의 졸업 후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웬페이 학부생들은 해외 유학에서도 특혜를 받고 있다. 베이징대는 예일대, 스탠퍼드대, 뉴욕대, UCLA, 싱가포르국립대 등과 교류를 맺어 웬페이 학생이 원하면 언제든지 교환학생으로 보낸다. 반대로 세계의 유명 대학에서 베이징대로 유학온 외국학생을 웬페이 기숙사 룸메이트로 지정해 웬페이 학생들과 1 대 1 관계를 맺어주고 있다.

웬페이 학부생들은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베이징대에 다니고 있지만 ‘웬페이’를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 실제로 웬페이 취재를 위해 기자가 베이징대의 중국 대학생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상당수 학생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베이징대생도 모를 만큼 베일 속에

2005년 웬페이 학부생이 된 쩌우룽(周榕·24·광고학 석사과정)씨는 “사람들은 우리가 천재집단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웬페이는 교육방식이 일반 학생과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대 신입생 전체가 고등학교 때부터 성(省)·시(市)에서 1~2등을 다투던 천재집단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특별히 천재집단으로 불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웬페이 학부생은 여타 신입생에 비해 수능성적이 분명 조금 더 높고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웬페이에 들어온 1445명 중 각 성(省)에서 수능 최고점을 받은 학생이 76명이다.

1999년 시작된 웬페이 학부가 베이징대 설립자의 이름을 딴 건 자유와 포용을 강조하는 차이웬페이의 ‘사상자유, 겸용병포(思想自由, 兼容幷包)’의 교육이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웬페이 프로젝트는 1999년 베이징대 중진 교수들이 모여 닫혀있는 중국의 교육현실을 꼬집으면서 시작됐다. 교수들은 학부 신입생이 입학을 하자마자 전공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이 전공을 결정하는 것을 비판했다. 19~20살의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개인의 취향보다 부모의 입김이나 사회적인 유행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본과에 입학한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2년 뒤인 2001년 9월 교수들의 의견이 반영돼 ‘베이징대 웬페이 프로젝트 관리위원회’가 조직됐다. 시작 당시 ‘웬페이 실험반생’이라고 불린 10여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소규모 교육 실험이 이어졌다. 웬페이 프로젝트의 특성에 대해 웬페이 학부 당총지부 서기이자 학생관리 담당자인 딩시여우(丁夕友)씨는 “웬페이의 특징은 자유분방한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며 이는 아직까지 중국의 다른 대학엔 없는 커리큘럼”이라고 강조했다.

北京大 설립자 이름에서 따와

2005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는 웬페이 출신 졸업생의 70~80%는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있다. 졸업생 중 취업생 비율은 매년 22~30%에 불과하다.<표참조> 웬페이 프로젝트 위원회 또한 웬페이들이 베이징대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 더 공부하고 돌아와서 나라에 필요한 인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딩시여우씨는 “웬페이 졸업생의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통계가 미비하다”며 “지속적인 통계조사를 통해 우리가 도입한 교육제도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경우 교육부가 향후 다른 대학에도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웬페이 프로젝트는 커리큘럼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2009년 중국 교육부가 선정한 ‘국가 인재창출 배양 개혁프로젝트 실험대상’에 선정된 바 있다.

▲ 베이징대 ‘웬페이’ 1기 졸업식 사진. / photo 웬페이학원
2003년 웬페이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한 양이판(楊一犯·26)씨는 4학년이던 2007년 12월 세계 54개국 대학생이 참가한 iGEM(국제유전공학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는 “웬페이의 자유학 과제가 아니었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전공인 생물학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웬페이의 자유학습제도를 통해 각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생물학과 물리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웬페이 졸업생 중 처음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석사과정에 합격한 쩌우옌(周岩·25)씨는 “MIT 같은 공대는 생물과 물리만 잘해서는 입학할 수 없다”며 “웬페이에서 여러 학과의 수업을 들으며 각 분야의 기초지식을 잘 다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