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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경북 안동포 마을 (서울신문 2010.07.08)

경북 안동포 마을

시계가 멈춘 그곳, 아낙의 베틀 가락만이

경북 안동은 뜨겁습니다. 여름철 무덥기로 치자면 어느 지역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뜨거운 곳이지요. 이 뜨거운 여름, 안동의 아낙들은 안동포를 만듭니다. 아주 오래전엔 나라 안에서 가장 유명한 옷감 소재 중 하나였지요. 그런데 왜 하필 가장 뜨거운 시기를 골라 안동포를 만드는 걸까요. 만드는 과정에서도 불을 이용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공교롭게도 안동포의 원료가 되는 대마(大麻)를 수확하는 시기가 이맘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동포전시관에 가면 한겨울에도 베틀에서 삼베를 뽑아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마를 베고, 그것을 삶아 안동포를 만드는 실제 장면은 이때 아니면 볼 수가 없습니다. 답사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시원한 계곡과 바다를 제쳐두고 안동으로 모여드는 것도 바로 이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입니다. 필경 사라져 가는 것들을 추억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와중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요. 또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을까요. 어쩌면 이 세대 이후 사라질 수도 있는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면 불볕더위라도 능히 견딜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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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안동포마을 아낙들은 낮에는 논일을 하고 주로 해거름부터 삼베 길쌈을 시작한다. 우복인 할머니가 사랑채 문간방에서 베틀을 이용해 안동포를 만들고 있다.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연속성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세월의 자취 오롯한 옛집이며, 시간이 더께로 쌓여 있는 묵직한 돌담 등이 방문객의 시계를 오래전 한때로 고정시켜 버린다. 어느 것에서도 처음 지을 때 외에는 인위가 보태진 흔적이 없다. 옛집 사이사이 현대적인 집들이 섞여 있는 것은 눈엣가시.

안동포마을에서는 여느 시골 동네와는 다른, 매캐한 냄새가 난다. 안동포의 재료인 대마를 삶는 냄새다. 간혹 일부 연예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대마초 사건으로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곤 하는, 바로 그 식물이다. 이곳에서 ‘안동포 짜는 집’을 물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집집마다 안동포를 짜기 때문이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안동포 짜는 집’이다.

안동포를 만드는 과정은 여름보다 뜨겁고, 막노동보다 고되다. 우선 대마는 기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안동포짜기 무형문화재 우복인(80) 할머니 말에 따르면 잎이 떨어지거나, 옮겨 심을 경우 딱 그 상태에서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예전에 한 개구쟁이(대마 피우려고 밭을 망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가 대마를 훔쳐가다 경찰에 걸렸어. 곧바로 그 자리에 다시 심었는데 죽어 버렸어. 비오는 날이면 개구쟁이들이 대마밭에서 미친듯이 뛰어다니기도 해. 그러면 그해 대마 농사는 끝장나.”

대마는 보통 3월 말이나 4월 중순에 파종한다. 80~90일이 지난 6월 말이나 7월 초가 되면 2m 이상 자라는데, 이때 수확해 가마에 넣어 삶는다. 이 과정을 ‘삼굿’이라고 한다. 예전엔 돌을 달궈 그 위에 대마를 얹고 삶았으나, 요즘엔 철제 화덕 위에 물을 넣고 대마를 얹은 뒤 수증기로 삶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가 하필 장마철이란 것. 대마가 젖은 채 있으면 썩기 때문에 삶자마자 말려야 하는데, 비가 오면 걷고, 날이 궂으면 선풍기로 말려야 하는 등 손이 여간 많이 가지 않는다. 원래 흰색이었던 대마는 이 과정을 거치며 점차 붉은 빛깔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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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대마 ③ 대마를 말리고 있는 안동포마을의 한 농가 ④ 안동포짜기 무형문화재 우복인 할머니가 삼베 실을 뽑아내고 있다 ⑤ 한 아낙이 실에 된장을 바르는 베매기 작업을 하고 있다.

1주일가량 말리기가 끝난 대마는 작업하기 하루 전 물에 담근다. 벗기기 편할 정도로 껍질이 흐물흐물해지면 삼톱으로 불순물을 제거한다. 이 과정은 ‘바래기’라 불린다. 바래기가 끝나면 껍질을 가늘게 찢어 한 올 한 올 뽑는다. ‘삼째기’다. 자장면 면 뽑듯, 손톱을 이용해 대마 껍질을 절반씩 분리해 나가는데, 어찌나 빠르고 정교한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당연히 손끝은 말할 수 없이 아리고, 손톱은 자랄 틈이 없다.

이렇게 갈라진 삼베 가닥 80개를 ‘세’라고 부른다. 가장 촘촘한 것은 15세. 길이 55㎝, 폭 35㎝ 1자가 1200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이 22m짜리 15세 1필(40자)은 무려 1000만원이 넘는단다.

다음은 ‘삼 삼기’다. 삼베 가닥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실 꼴 때는 침을 발라. 맨허벅지에 대고 문질러 꼬는데 입술은 다 갈라지고, 허벅지는 껍질 벗겨져 화끈거려. 안동포는 그래서 기계로 못 짜.” 우 할머니의 설명이다.

삼베 가닥이 22m로 연결되고 나면 ‘베매기’를 해준다. 가닥 양 끝을 고정시킨 뒤 좁쌀로 만든 풀에 된장을 섞어 바른다. 그래야 실에 끈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때 실에 열을 가해주는 것도 필수적이다. 참숯 위에 재를 얹어 은은하게 불을 쐬어 준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친 삼베를 베틀에 올려 짜내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 옷감, 안동포가 된다. 워낙 바람이 잘 통해 ‘마포(麻布)바지 방귀 새듯’ 한다던가. 보통은 7~8세, 10세 이상은 아주 고운 베로 친다. 가격도 세 숫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안동포마을 주민들은 그러나 안동포가 수의(壽衣)로만 알려진 것이 못내 불만이다. 우복인 할머니는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옷감을,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을 만드는 등 10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을 주민들도 안동포에 치자 염색을 해 다양한 빛깔의 옷감을 만드는 등 이미지 변신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마을 위쪽 개울가엔 지하수가 나오는 파이프가 설치돼 있다. 시원한 물로 더운 목을 축여도 좋겠다. 물맛이 좋은 데다 상온에 오래둬도 변질되지 않아 먼 타지역에서 물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곧잘 눈에 띈다.

나스페스티벌(www.nasfestival.com)은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의 저자 이호준과 함께하는 ‘사라져 가는 것들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우수 여행상품으로 추천인증을 받은 상품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은 서울신문 기자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저자가 전국을 발로 뛰며 옛 문화유산들을 기록한 책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추천 올해의 교양도서에 선정되는 등 감성 에세이로 주목을 받고 있다.

나스페스티벌은 안동포마을 답사여행에 이어 30일 강원도 영월을 찾아간다. 동강축제 첫날인 이날 동강 둥글바위 변 둔치에서 1년 중 한번만 이뤄지는 뗏목 제작 과정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고사, 그리고 뗏목을 물에 띄우는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8월 강원 정선 백전리 물레방아, 9월 충남 서천 한산 모시길쌈, 10월 경북 예천 외나무다리와 삼강주막, 11월 강원 정선 등의 섶다리, 12월 돌담·사립문·당산나무 등 전통 문화 유산들을 연이어 찾아갈 예정이다. 어른 4만원, 어린이 3만 5000원. (02)336-7722.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서안동 나들목→35번 국도 영덕방향 우회전→안동대학교→길안 방향→금소교 좌회전→안동포마을. andongpo.invil.org, 822-1112. 시내버스는 안동역 옆에서 28번 버스를 타면 된다.

→잘 곳: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부근에 민박집이 몰려 있다. 강변민박(853-2566), 식당과 민박을 함께하는 하회식당(853-3786), 병산민속식당(853-2589) 등이 그중 알려져 있다. 3만원선. 고택 체험으로는 수애당(822-6661)과 농암종택(843-1202) 등이 유명하다. 4만~6만원 부터.

→맛집: ‘원조’ 안동찜닭을 맛보려면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목성교 구시장을 찾아야 한다. 중앙통닭(855-7272) 등 닭찜집들이 몰려 있다. 2만원선. 안동댐 월영교 부근에는 까치구멍집(821-1056) 등 헛제삿밥집이 몰려 있다. 6000~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