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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월수입 750만원…대리기사로 연 `2막 신화` (노컷뉴스 2010-07-30 07:00)

월수입 750만원…대리기사로 연 '2막 신화'



재기 성공한 대리기사들 "긍지가 나의 힘"…관련법 제정 '한목소리'



40대. 남들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생 1막의 끝을 장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그 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예고가 없었기에 준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은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날아갔다. 남은 것은 몸뚱이 하나였다.

강제로 1막에서 쫓겨난 4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찾다 찾다 이른 종착역이 대리 운전이었다.

그마저도 치열한 경쟁이 웅크리고 있었다. 전국 7000여 업체가 난립해 있고 기사만도 무려 10만여 명이다.

사회적 인식도 바닥이었다. 고객에게 개인 기사 취급당하며 인격 모욕을 당하는 건 다반사였다.


◆ 대리기사로 시작한 인생 제2막, 월 매출 '750만원' 스포트라이트

이처럼 결코 만만치 않은 '인생 제2막'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재기에 성공한 이들이 있다.

대리기사 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김동철(51)씨가 그 대표적 예다.

김씨의 월 평균 수입은 웬만한 대기업 부장 못지 않은 400~500만원선. 지난해 12월엔 750만원의 수입을 올린 적도 있다.

"다음 목표는 월 1천만원"이라는 김씨는 "가끔 대리기사라고 무시하는 고객에게 월 소득을 밝히면 깜짝 놀라 일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쓰리잡'을 한다는 주부 배주연(50, 여, 가명)씨도 대리기사로 당당하게 인생 제2막을 연 이 가운데 하나다.

배씨는 "무역 관련 프리랜서 일과 살림까지 하느라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만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며 "월 170만원가량 벌고 있다"고 했다.


◆ 인생 제1막에서 쫓겨나 2막으로 던져지다

'신화'가 되기 전, 김씨는 어엿한 사업가였다. "3년전 중국 수입 농산물 방역 사업에 투자했는데 사기를 당해 평생 모은 돈을 몽땅 날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충격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폐인으로 살다가 오십견까지 왔다"고 좌절의 시기를 회상했다.

김씨는 "두 딸 보기 미안해서라도 다시 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며 "운동을 시작해 병을 고치면서 자신감도 얻었고 지난 2008년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배씨 역시 1막에서 좌절을 겪긴 마찬가지다. "7년 전 주식투자에 실패하고 동시에 남편 사업도 기울어졌다"고 했다.

배씨는 "평소 하던 무역 일도 안 돼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며 "우울증에 걸리고 불면증도 와 죽음까지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몇 년 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배씨는 2년전 생활정보지 구인광고를 보고 대리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40대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았다"며 "그나마 면허가 있고 운전을 좋아해 대리기사라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 "긍지는 나의 힘" 대리기사 일에 대한 마음가짐

이들이 고된 대리 운전을 하면서 버틸 수 있던 비결은 '긍정의 힘'이었다.

김씨는 "이 일을 하나의 직장이라 생각하고 규칙적으로 일을 한다"며 "하루에 6시간 자고 일하는 생활을 지난 2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고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동선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렇게 생긴 노하우를 동료 기사들에게 기탄없이 알려준다고 했다.

김씨는 "처음엔 두려웠지만 일에 대한 재미를 찾고 긍지를 갖게 되니 몸도 덜 힘들어지고 저절로 수입이 늘게 됐다"고 비결을 밝혔다.

대리기사라는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긴 배씨도 마찬가지다. "다른 대리기사가 이 일을 막장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모습에 화가 났다"며 고개를 저었다.


◆ 대리기사에 대한 인식, 처우 개선 - 대리기사 법제화가 필요

하지만 일에 대한 자긍심과는 무관하게, 구조적 모순의 벽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게 사실.

대리기사를 자신의 개인기사로 여기며 하대하는 고객의 시선, 4대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특수고용직'이라는 두 가지 벽이 가장 크다.

김씨는 "어떤 고객에게 '평생 대리나 해먹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대리기사를 친구나 선후배로 생각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여성인 배씨는 "술에 취해 '데이트하자'고 치근대는 고객도 있었다"며 "대우를 받으려면 먼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하루 빨리 대리기사 관련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배씨는 얼마전 별내IC에서 사망한 대리기사 얘기를 꺼내며 "그릇된 시선 때문에 희생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관련 법규가 제정돼 요금이 표준화되면 쓸 데 없는 요금 실랑이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것.

김씨 역시 "법규가 제정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4대보험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