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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똥돼지를 고발합니다” 신드롬 퍼진다 (한겨레 2010.09.07 16:00)

“똥돼지를 고발합니다” 신드롬 퍼진다

한겨레 | 입력 2010.09.07 15:51 | 수정 2010.09.07 16:00

장관딸 특채파문 타고 '사주의 아들' 지칭하는 직원들의 비속어 인터넷 확산


누리꾼들 목격담 줄이어…정부 부처, 공사, 금융기관, 학교 등 '서식지' 다양

 

유명환 외교장관의 딸 특혜 채용 파문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비슷한 사례에 대한 '고발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인터넷과 트위터에선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대기업 총수 등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채용 과정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은 이들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누리꾼들은 이들을 '똥돼지'라는 거친 표현으로 비하하며,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을 성토한다.

 똥돼지 신드롬은 한 언론사 기자가 6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에선 직원들이 사주의 아들을 '똥돼지'라고 부른다는 글을 올리면서 불붙었다. 사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이를 향해 직원들이 몰래 수근대는 비속어라는 것이다. 이후 사이버 공간에선 '우리 회사에도 똥돼지가 있어요' 라는 식의 목격담이 줄을 이었다.

 누리꾼들이 성토하는 '똥돼지'는 주로 유력자의 자녀들이다. 사장 친구의 아들, 원청업체 고위직의 사위, 조카처럼 유력자의 직계 피붙이가 아닌 '똥돼지'들도 있었다. '똥돼지'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었다. 누리꾼들이 '발견'한 '똥돼지'의 '서식지'는 정부 부처, 공사, 금융 기관, 각급 학교 등 무척 다양했다.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이나 대학의 인기학과, 군대의 편한 보직 등이'똥돼지'의 생활터전이었다.

 누리꾼들은 '똥돼지'들의 다양한 '불공정 사례'를 고발했다. "지난달 말 ㄷ시 특채 본 친구, 말일에 발표한대서 일주일 동안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막상 발표 날 보니 벌써 6일 전에 발표… 공고에 나온 필기시험도 취소였고, 결국 어느 분 특채 들러리였던 것.""내가 아는 똥돼지만도 3명, 공기업 방송국에 진출해서 20년 이상 잘 근무하고 있다, IMF 때도 빽으로 들어간 애들은 무사하고 진급도 더 잘되더라."

 '전직공무원이 본 음서제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은 누리꾼들의 큰 관심을 끌어 조회 수가 8만5천 건을 넘었고, 8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그는 "(7급 공채로)들어와서 우리과 직원 구성원을 보니 공채 출신이 50%밖에 안되더군. 공채 선배가 술자리에서 항상 하는 말이 공채 출신이 반이 안되고 전부 음서제를 통해서 들어온 애들이라고 흉을 보곤 했다"고 공무원 사회의 불공정한 특채 문제를 지적했다. 명문대 인기학과에 입학한 '똥돼지'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고3 때 학교 자퇴 뒤 일본에 몇 달 다녀온 뒤 치의예과에 합격했으며 자신과 비슷한 성적의 동창생이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의대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수시, 정시까지 다 떨어져 재수하던 학생이 아버지의 국회의원 당선 뒤 바로 수시모집에 합격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도 제기됐다.

 '빽'과 '줄'이라는 용어가 익숙한 군복무 중에 조우한 '똥돼지'들에 대한 증언도 많았다. "
카투사 복무 때, 재벌 3세 '똥돼지'가 있었어요. 이놈은 1년의 절반이 휴가였어요. ㅋㅋ 제가 인사과에 있었는데 허구헌날 휴가 신고만 하러 오더군요." 한 누리꾼은'삼촌이 4성 장군이면 나도 4성 똥돼지?'란 제목의 글에서 "카투사 복무 때 '똥돼지'들이 많아서 외압이 장난아니었죠. 그런데 어느날부터 조용해졌어요. 참다못한 선임병장 한명이 커밍아웃을 했는데 삼촌이 4성장군이더군요. 것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까불던 '똥돼지'들 완전 깨갱~"이라며 그들 사이에도 계급과 서열에 따른 차별이 있음을 비꼬았다.

누리꾼들이 만난'똥돼지'들은 대부분 무능했다. 한 누리꾼은 "직장다닐 때 특채로 오신 그 똥돼지는 영문과 졸업했음에도 사내고시(시험) 영어과목을 네번이나 연속해서 떨어졌다능... 영어랑 친하지 못한 나도 한번에 붙은...혹 대학도 똥돼지??"라고 그들의 자질을 의심했다. 그러나 누리꾼에 따르면'똥돼지'는 능력과 무관하게 관리됐다. "제가 알던 똥돼진 둘이었는데 회사를 한달에 한번꼴로 나오다가 언제부턴지 보이지도 않더만 그해에 과장 육개월후 차장승진하데요."

 '똥돼지'가 본의 아니게 주위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저희 회사에도 똥돼지가 있는데… 진급대상에서 떨어졌다고 들었으나, 실제 발표날에는 대상자에 있더라구요.나중에 알고보니 그 똥돼지 때문에 커트라인 자체가 내려가서 미적격자 20여명이 모두 진급했지 멉니까"

 그러나 '똥돼지'라고 모두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칠급 특채로 낙하산 입사한 친구가 있는데 사년을 못버티고 나오더군요. 아버지가 고위공무원에서 퇴직했고 주위의 왕따가 있었다고 해요.""대기업 클라이언트가 똥돼지였었는데… 아버지가 현직에서 퇴임하던 날 가차없이 바로 짤리더군요.""중견기업 임원이 계약직자리 정규직으로만들어 딸 입사시키더니 6개월만에 IMF에 구조조정하면서 6개월치 한꺼번에 받고 함께 퇴직하더군요."

 소문으로만 떠돌던 '똥돼지'들의 존재에 대해 누리꾼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윗물부터 썩었네요"라는 개탄에서"청년실업은 '똥돼지'가 문제였다"라거나 공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똥돼지'와 그들이 입사시킨 자녀 '똥돼지' 때문이라는 다소 감정섞인 비난들도 나왔다. "계속 공부해야 되나요"라거나 "비일류대 나와서 열심히 스펙쌓았는데. 그래도 안되는 거였구나. 차라리 기대라도 주지 말았으면"이라는 취업준비생의 한숨섞인 글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가진 자들이 모인 강남이, 이제 어디 읍면 단위의 지역사회처럼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는 공고한 네트워크가 되었다는 느낌;;;"이라며 '가진 자들의 연대'를'똥돼지' 증가의 원인으로 들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개인의 발전은 자기 성찰에서 나오는데 우리 사회는 불공정한 요인이 너무 많아 스스로를 돌아보기 어렵게 한다"며 "공정하지 않은 룰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평소에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분노를 '똥돼지'라는 대상을 향해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