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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고향 선산에서 만난 친구 (조선닷컴 2010/09/20 13:59)

고향 선산에서 만난 친구

2010/09/20 13:59 http://blog.chosun.com/kj1142/4979858

50대 후반이 되다 보니 이제는 양친이 아직 생존해 있는 친구가 드믈게 되었다.

노모만 모시고 있는 나도 추석성묘를 하러 모처럼 고향의 선산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 밖에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죽마고우를 만났다.

한국 굴지의 기업인 S사의 부사장까지 올랐던 그는 환갑도 안된 나이에 웬일인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남어지 지병으로 술은 한잔도 못하게 되었다는 그에게 억지로 소주잔을 건넸다.

조부가 일제때 군수를 지낸 그는 어릴적 아흔 아홉 칸 짜리 고대광실에서 살았다.

나의 조상들이 그의 선산에 묻힐수 있었던 것은 나의 조부가 그의 선산의 묘지기였기 때문이었다.

군수댁 도련님인 친구는 6세때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뗐고 바둑도 둘줄 알았다.

친구는 반장은 물론 전교 어린이 회장까지 도맡아 했었다.

하지만 중학교는 서울의 K중으로 진학을 했기에 나와는 초등학교 동창일 뿐이었다.

당시의 K중은 K고와 형제 학교로 전국의 수재들이 운집하는 최고의 명문이었다.

따라서 지방에서는 합격생이 일개 군에 한명이 있을까 말까하는 정도였다.

그런 그와 내가 다시 만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가난하고 평범했던 나는 사대도 감지덕지였는데 그는 법대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어릴적 그가 바둑을 두던 모습을 기억하고 대학시절 그에게 도전을 했었다.

하지만 코흘리개 시절부터 바둑을 두어온 그를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실력만 강할 뿐이 아니라 대단한 바둑예찬론자였다.

바둑은 재미뿐 아니라 교훈을 선사하기에 인간이 창조해낸 최고의 취미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바둑을 둘 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기도오득, 위기십결, 손자병법등을 줄줄이 입에 달고 있었다.

그는 바둑 사랑이 지나쳤는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고시에 번번히 실패를 하였다.

하지만 S법대 라는 간판과 실력이 있었기에 서른의 나이에도 국내 굴지의 S사에 입사할 수가 있었다.

내가 입사를 해보니 친구들은 벌써 과장을 달고 있더군! 그래서 나는 조급증에 밤낮없이 뛸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인지 그는 동창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대학시절엔 바둑실에만 가면 대개는 그를 만날수가 있었으니 내가 가장 많이 만났던 죽마고우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엔 한번도 만날수 없던 친구가 또한 바로 그였다.

명절때 그의 선산인 성묘길에서 조차 그와 만난 기억이 통 없었다.

십여년 전쯤인가 우연히 퇴근 길에 쇼핑몰에서 마주쳐 바둑을 한수 두자고 했더니 업무에 바빠 함께 저녁을 할 시간조차 없다고 했었다.

그렇게 불철주야 뛴 보람이 있어 천석군이던 그의 집안은 몰락을 하였지만 그

자신만은 승승장구 하였다.

따라서 50대가 되자 S사의 많은 또래들이 명퇴를 당했건만 그는 부사장의 지위에 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그는 강남의 타워 팰리스에 살고 스톡 옵션으로 받은 주식의 평가액도 수십억이 넘는다는 소문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신속히 옮겨져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에 언어장애까지 왔다.

그런 실정이니 비록 부사장이지만 회사는 스스로 명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가끔은 폭탄주를 마셔댔지. 그것이 일찍 화를 부른 것 같아!”

하지만 친구는 노후 대책은 충분하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몸이 이 꼴이 됐는데 돈이 있어야 뭘 하겠는가? 돈 보다 건강이 더 소중함을 이 나이에 겨우 깨닫다니…”

친구가 아직도 건강했다면 지금도 아마 못 깨달았겠지!”

가장 억울한 것은 그토록 좋아하던 바둑도 안 두며 오로지 일만 했다는 거야.

그렇다고 골프를 친 것도 아니고..”

친구는 국민학교때 피아노도 치지 않았나?”

그랬었지. 하지만 회사가 바빠 가족들과 음악회 한번을 못 갔으니내가 승승 장구할때 주위에서 적당히 사는 친구들을 경멸했지만 이제 보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했던 거야! ”

꼭 날보고 하는 말 같군!”

자네는 젊은 시절 세계를 유람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건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값진 체험이지!”

이제부터라도 좀 여유를 갖게! 나와 함께 바둑도 두고..나도 이제 하수는 아닐 걸세!”

바둑도 심신이 건강한 상태라야 즐길수 있다네. 근심걱정이 있을 땐 바둑을 둘

마음도 안 생기지!"

그가 하반신 마비가 되자 근 삼십년을 함께 산 아내가 그를 떠났다 한다.

친구는 과연 무엇을 위해 한평생 그토록 일에만 전념을 하였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바둑에서 무리를 하면 꼭 화가 따르듯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인 거야!”

헤어지면서 던진 그의 마지막 말은 지금은 건강한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바람직한 인생을 산다면 친구는 풍을 맞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평균수명이 길어져 인생이 60부터라고 한다면 인생이라는 그의 바둑은 이제 중반전을 겨우 넘긴 셈인 것이다.

친구가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그에게도 해당되는

명언이기를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