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국회의원을 모시는 보좌진들한테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잘나가던 검사, 변호사, 교수를 그만두고 국회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고생문이 훤하게 열리는 걸 알다보니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인데 특히 공무원 출신 의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 장병완 의원(58·광주 남구)은 보좌진들이 생각하는 '안타까운 의원' 1순위에 오른다. 장 의원은 기획예산처에서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며 사무관부터 장관까지 지낸 고위 공직자기 때문. 장 의원의 한 측근도 "지난 7.28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에 늦게 들어간 만큼 몇 배로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며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장 의원은 그런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일이 많다보니 더 삶이 의욕적이다. 다시 젊었을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여유까지 보였다. "공직에서 있었던 지난 30년을 호락호락하게 보내지 않았다. 나만큼 대통령 앞에서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다.
특히 '해병대 출신'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자 장 의원이 사뭇 달라보였다. 작은 체구와 순한 인상의 그에게서는 쉽게 연상이 되지 않는 과거를 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쯤되자 '반전 드라마'같은 그의 인생에 호기심이 생겼다. 교장선생님 아들로 자란 어린시절, 월남전으로 형을 잃은 사연, 해병대와 야학 그리고 기획예산처 사무원에서 국회의원까지 잠잠한 듯하면서도 파도가 끊이지 않았던 장 의원의 인생을 들어봤다.
교장선생님 댁 '모범생'아들, "고3 때 형 죽음 앞에 대학 진로 변경해"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장 의원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교장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이곳저곳으로 전학을 다녀 친구들과 몇 번의 이별을 겪었던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고민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말도 한 번 들은 적이 없어요. 놀고 싶으면 놀고 싶은 대로 자고 싶으면 자고 싶은 대로, 잘못된 길로만 가지 않으면 크게 간섭을 안하셨어요. 뭐든 제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주셨죠."
그래서일까. 장 의원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는 저녁 때 밥을 먹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학교 가기 전까지 아버지의 책장에서 책도 꺼내 보고 시간이 남으면 그 날 공부할 부분을 미리 읽었다. "어렸을 때 봤던 책 중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 게 삼국지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 방학 때인가,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삼국지를 4번 정도 읽었는데 그러고 나니 한자 공부는 따로 안해도 됐었거든요."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옛말은 그에게도 적용됐다. 순탄한 삶을 살던 장 의원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 7살 위의 친형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받았다. 믿을수도, 믿어지지도 않는 소식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며칠을 슬퍼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는데 문득 '형님이 지망했던 서울대 상대를 내가 대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했죠. 성적이요? 형님이 하늘에서 도와주셨는지 전과하고 2번째로 본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웃음)"
해병대 자원한 '행시 사무원', "매일 맞았어도 야학하며 후회 없던 시절"
서울대 상대에 단번에 합격한 장 의원은 낭만이 가득한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한쪽으로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독서와 사색도 즐겼다. 그는 대학시절을 추억하며 공부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대학 8학기 중에 휴교령이 없었던 학기는 한학기 밖에 없어요. 어떤 때는 레포트만 내고 끝난 학기도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에 참여하면서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관련 서적도 많이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봤죠."
인생의 로드맵을 완벽히 세운 장 의원은 대학 4학년 때부터 행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기획예산처의 사무관으로 들어가 2년 동안 일했다. 하지만 그는 승승장구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불현듯 해병대에 자원해 장교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지체없이 백령도 앞바다로 떠났다. "사회생활 하다보니까 군대는 제대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운동신경도 좋았고 해서 겁없이 자원했죠. 그 때는 단 하루도 안 맞은 날이 없었어요. 매일 30~50대씩 맞아서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멍이었을 정도니까요."
장 의원은 군시절을 떠올리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매일 맞았다는 사람치고는 보람이 묻어나는 표정에 궁금증이 생겼다. 이유를 묻자 "학생들이 떠올라서 그렇다"며 차분히 대답했다. 장 의원은 군시절 중 약 1년 동안 백령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가르쳤다. "애들이 참 순박했어요. 가르쳐주는대로 열심히 배우려하고 눈망울도 초롱초롱한 게 안가르쳐 주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저하고 다른 군인하고 둘이서 가르쳤었는데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기획예산처 '장 장관', "대통령 요청에 가장 많이 외친 말은 'NO' "
장 의원은 군시절만큼이나 기획예산처에 있었던 지난 30년에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그의 억양에서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막중한 부처에서 젊음을 바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기획예산처 사무관부터 시작해서 장관까지 갔습니다. 근 30년을 일하면서 휴일이라고는 매주 일요일 오전뿐이었죠. 야근도 밥 먹듯이 해서 항상 차에 여벌의 셔츠를 갖고 다녔어요. 밤을 지새웠어도 대통령이나 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에 갈 때는 좀 깨끗하게 하고 가야 하잖아요.(웃음)"
웃으며 말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고생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장 의원은 기획예산처 시절 가장 진땀을 뺐던 때로 대통령과 맞서야 했던 순간을 꼽았다. 대통령 및 총리와 회의를 할때면 절반 이상은 '거절' 해야 해서 골머리를 앓았다는 것. "이미 '안된다'는 답을 갖고 회의에 참석하는 날에는 이동하는 차에서부터 스트레스죠. '어떻게 하면 이걸 요령있게 안된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장관 그만두고 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겠어요."
일에 있어서는 만점을 욕심내는 장 의원이었지만 가정 생활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많은 듯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하느라 제대로 된 가족 휴가 한 번 떠나지 못한 자신을 '0점 아빠'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여름에는 예산 편성철이라 못 쉬고, 겨울에는 국회에서 예산계획이 넘어 오니까 못 쉬고…일에 묻혀 살다보니 애들한테는 많은 관심을 못 가져줬던 것 같아요. 가끔 애들이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아빠가 너무했다'고 섭섭함을 드러낼 때면 미안할 따름이에요."
D- 20개월 '국회의원', "MB정부, 명분에만 집착하는 건 옳지 않아"
지난 7.28 재보선으로 국회의원 뱃지를 단 장 의원은 지난 2년 반의 업무를 한 번에 익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그는 "기획예산처에 있으면서 국회 운영의 실태를 잘 인지하고 있어 힘이 된다"며 "늦게 들어온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내보였다. "제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던 건, 아직 나이도 있고 건강하기도 하니까 나라에 봉사하고 싶어서였어요. 지금도 그 마음은 변화가 없습니다. 제 경험이 국가 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균형발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 중입니다."
장 의원은 현 정부의 문제점으로 '명분에 집착하는 효율성'을 지적했다. 과학기술교육부처럼 두 개의 부처가 합쳐지면서 둘 중 한 곳은 이전에 비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 "과학기술교육부만 해도 교육적 현안이 많다보니까 과학은 그쪽 장관이 그만큼 할애를 못합니다. 당장 IT분야만 해도 몇 년 사이에 후퇴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방만한 경영을 해서는 안되지만 현 정부가 너무 줄인다는 명분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장관 자리 하나 두개 줄여서 얻는 이익보다 그 분야를 진두지휘할 장군이 없어서 발생하는 손해가 더 큰데 말이죠."
정부가 바르게 운영되도록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장 의원에게 오는 10월 3일에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민주당의 정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 지역구 의원으로 이번 민주 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광주시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민주당을 걱정하고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다음 대선 때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도록 당을 이끌어갈 사람이 대표가 됐으면…'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당대회가 잘 치러지기를 힘써 지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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