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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분야/세계경제

지폐는 가라, 중국이 당긴 '디지털 화폐' 전쟁(조선일보 2020.04.22 03:00)

[새로운 '錢의 시대'가 온다]
中 인민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 실체 첫 공개로 관련株 급등
"5월부터 4개 도시서 시범 사용… 베이징 동계올림픽서 전면 활용"

美 페이스북 "CBDC 수용"
한국·EU도 구현 기술에 박차

지난 17일 오전 중국 증시 개장과 함께 필리센트(飛利信)·후이진(匯金) 등 '디지털 화폐 테마주' 주가는 4~10%씩 급등했다. 전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스마트폰 전자지갑에 중국의 관영 디지털 화폐(CBDC)가 입금된 사진과 함께 내달 중 디지털 화폐가 발행될 것'이라는 말이 퍼졌기 때문이다. 전자금융 서비스 업체 등 관련주 32개를 포함하는 디지털 화폐 테마지수는 이날 1203으로 주초 대비 8.9% 상승했다. 19일 중국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 연구소가 "당장 시장에 유통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도시에서 내부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확인해주자, 이튿날 디지털 화폐 테마지수는 1249까지 상승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관영 디지털 화폐의 실체가 처음으로 공개되며 올해가 글로벌 디지털 화폐 확산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자 결제 시스템과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화폐가 현금을 대신하는 광경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非對面) 거래 수요가 정착될 것이라는 점도 디지털 화폐 시대를 앞당기는 요인이다. 국내에서도 내년에 디지털 화폐 테스트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터치'로 결제하는 디지털 화폐

'글로벌 디지털 화폐 혁명'의 선두에는 인민폐를 기축통화로 삼아 새로운 글로벌 금융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중국이 있다. 20일 중국 현지 언론들은 "5월부터 쑤저우(蘇州)시 공무원과 구(區) 단위 공공기관 직원에게 지급하는 교통 보조금의 50%를 디지털 화폐로 지급할 예정"이라며 "4월 중에 시스템 테스트를 완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 화폐를 전면 활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조만간 선전·슝안·청두시에서도 디지털 화폐의 시범 사용을 시작할 계획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디지털 화폐의 실제 발행도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전망이 나온다.

디지털 화폐는 별도의 은행 계좌 연동 없이도 스마트폰에 직접 저장하고, 간편 송금·결제 등을 진행할 수 있게 설계됐다. 특히 '펑이펑(부딪쳐봐요)'이라는 기능이 눈에 띈다. 중국 시나닷컴은 "인터넷 연결이 안 된 상황에도 스마트폰과 결제 단말의 접촉만으로 현금을 쓰듯 결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페이스북, 리브라에 CBDC 수용

세계 금융질서 패권을 쥔 미국에서는 아직 정부 차원의 디지털 화폐 발행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미국 IT기업인 페이스북이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세계 주요 국가의 관영 디지털 화폐와 실시간 교환해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페이스북의 가상화폐 '리브라' 개발을 이끌고 있는 리브라연합은 새로운 백서를 공개하고, "달러·유로·파운드 등에 각각 연동되는 복수의 스테이블 코인(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는 가상화폐)을 발행해 각국의 디지털 화폐와 자유롭게 바꿔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애초 아예 기존 금융 체제에서 벗어난 가상화폐 리브라를 개발하고, 올해 실제 사용에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구권 정치·금융계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관영 디지털 화폐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사업 노선을 바꿨다.

페이스북의 계획대로 리브라가 유통되면 자국 관영 디지털 화폐를 소지한 이용자는 해외여행 때 리브라로 환전하는 방식으로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환율이 어떻게 책정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리브라가 일종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디지털 화폐가 미·중 패권 전쟁의 또 다른 전장(戰場)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코로나도 디지털 화폐 도입에 영향

미·중 이외 나라 정부도 디지털 화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코로나19 확산이 최근 주요국 지급 수단에 미친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현금 사용이 크게 감소했고, 비대면 결제는 확대되고 있다"며 "코로나 확산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 중앙은행 중 80%가 CBDC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디지털 화폐 도입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신용카드와 온라인 간편 결제 인프라가 잘 깔려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최근 방향을 바꿔 올해 안에 관영 디지털 화폐 구현을 위한 기술 검토를 마치고, 내년 시범운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지난해까지 CBDC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최근 일본·캐나다·스위스 등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과 함께 CBDC 공동 연구 협력 체계 구 축에 나섰다.

☞관영 디지털 화폐(CBDC)

중앙은행을 뜻하는 'Central Bank'와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를 합친 용어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 화폐와 달리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실시간으로 가격 변동이 큰 가상 화폐와 달리, CBDC는 국가가 보증해 일반 지폐처럼 가치 변동이 거의 없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