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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코로나 바이러스19

코로나 바이러스는 심장, 콩팥, 위도 노린다(조선일보 2020.04.18 09:00 )

코로나 심장 공격 국내 첫 사례 나와
폐 등 호흡기 뿐 아니라 다른 장기도 손상 가능
심장·콩팥·위장·소장 등에도 침투 가능

 

국내 최초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후 심장질환을 겪은 환자의 사례가 나왔다. 코로나는 주로 호흡기를 공격해 폐렴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장 등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케이스다. 코로나 감염 과정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심장 뿐 아니라 콩팥, 위 등 다른 장기도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가 심장도 공격한다는 국내 첫 사례 나와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구 계명대 의대 심장내과 김인철·한성욱 교수팀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 중 급성 심근염 증상을 보인 21세 여성 사례를 최근 유럽심장학회지(European Heart Journal)에 발표했다. 앞서 중국과 미국에서는 관련 사례가 나왔지만 국내에서 이런 사례가 보고된 것은 처음이다.

이 환자는 지난 2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입원했다. 입원 당시 열, 기침, 가래, 설사, 호흡곤란 등 일반적인 코로나 증상을 보였다. 다른 기저질환은 없었다. 그렇지만 폐렴 확인을 위해 찍은 엑스선 검사에서 심장이 비대해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주치의 김인철 교수는 “정상인은 엑스선 촬영시 심장이 흉곽 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50%를 넘지 않는데, 이 환자는 흉곽에서 심장의 비중이 65%로 상당히 컸다. 호흡곤란도 심해 심전도와 피검사를 시행했고 추가 이상 소견이 있어서 심장 초음파를 했더니 심장 수축 능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A는 엑스선 영상으로 흉곽에서 심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넘어 심장이 비대해진 상태임을 보여준다. 일부 폐렴 소견도 보인다. B는 심전도의 이상을 보여준다. C는 CT 영상으로, 폐렴 증상과 함께 심장이 커져 있음이 나타난다. E·F·G는 관상동맥이 정상상태임을 보여준다. N과 O는 심장의 심한 부종을 보여주는 CT와 MRI 영상이다. /유럽심장학회지 논문

의료진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검사 등을 진행했고, 코로나로 인한 심근염이라고 진단 내렸다. 심근염은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장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자가면역질환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급성으로 생긴 심근염이 심해지면 흉통 및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계속 진행하면 심장 비대와 만성 심부전으로 악화할 수 있다.

환자는 약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고 지난달 말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으로 최종 확인돼 퇴원했다. 하지만 지금도 심장 기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병원을 찾아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심근염은 흉터가 남는 화상처럼 초기 염증이 가시더라도 심장 기능이 일부 떨어질 수 있다”며 “현재 환자는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코로나 이전보다는 심장 기능이 약해진 상태”라고 했다.

앞서 중국 우한대학교 중난병원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보 심장학(JAMA Cardiology)’에 코로나 확진자 130여명을 조사해 발표한 논문에서 “중증 환자의 20%, 전체 환자의 7%에서 심장 관련 이상 증세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인철 교수는 “이론적으로 심장 손상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았기 때문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며 “이 사례에서는 심근염이 상당히 중증으로 진행됐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 정도까지 심장 쪽 손상이 일어나는 것은 드문 사례로 보인다”고 했다.

방역당국도 이날 코로나가 폐 이외의 신체장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곽진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관리팀장은 17일 브리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 이외 다른 신체장기에 침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잘 모르는 상황”이라며 “심근염도 가능성이 있는 질병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ACE2 수용체와 결합하며 다발성 장기부전 일으켜

김인철 교수는 “코로나 감염 후 급성호흡기증후군에 따른 저산소증으로 인한 이차적인 심근의 손상, 체내 ACE2 수용체와의 결합에 의한 직접적인 심근손상, 사이토카인 폭풍 등이 심근염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이 환자는 어떤 경로로 심근염이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장 쪽에 침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로 구강 점막과 폐를 통해 사람을 감염시킨다.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에는 돌기처럼 뻗은 스파이크 단백질이 있는데 이것이 구강 점막이나 폐에 많이 있는 ‘앤지오텐신전환효소2(ACE2)’라는 수용체와 결합해 사람 몸속으로 침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왼쪽)의 돌기가 인체 속 ACE2 수용체와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식도/ProSci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SARS)보다 ACE2 수용체에 20배까지 잘 달라붙는다는 미국 텍사스대 연구도 있었다. 코로나는 사스보다 감염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 국내 방역당국 설명인데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ACE2 수용체는 원래 폐와 다른 기관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에 도움을 주는 효소다. 그래서 그런데 ACE2 수용체는 폐 같은 호흡기 뿐 아니라 심장·콩팥·위장·소장 등에도 존재한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보통 폐부터 감염시키지만 이후 몸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면서 ACE2 수용체가 있는 콩팥, 위장 점막 등에서도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중증 코로나 환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숨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ACE2 가 장기 대부분에 존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김 교수는 “분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것은 소화기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뜻”이라며 “코로나 증상의 하나인 설사는 바이러스가 위장·소장의 ACE2 수용체와 결합해 염증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와 ACE2 수용체 결합 막는 치료제 연구도

이달 초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의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셀(Cell)’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ACE2 수용체를 유전자 조작한 hrsACE2 단백질을 넣을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는 ACE2 수용체 대신 hrsACE2에 달라붙는다.이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가 ACE2 수용체에 결합할 가능성이 최대 50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hrsACE2(왼쪽)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결합하는 모습의 상상도/오스트리아 분자 생명공학 연구소(IMBA)

연구를 주도한 조세프 페닝거 UBC 교수는 “이 연구는 코로나라는 전례없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한다”며 “이 원리를 활용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과학 뉴스 사이트 유레카얼럿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