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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이현군의 옛지도여행]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을 찾아 (조선일보 2015.02.07 13:59)

[이현군의 옛지도여행]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을 찾아

◆ 동해안 최북쪽으로, 고성이 아니라 간성이다.

남북한이 분단된 현재, 동해안 제일 북쪽은 강원도 고성군이다.

조선후기 지방지도 간성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조선시대 고성군은 휴전선 너머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이다. 남한의 강원도 고성군은 조선시대 고성군이 아니라 간성군이다.
조선후기 지방지도 간성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조선시대 고성군은 휴전선 너머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이다. 남한의 강원도 고성군은 조선시대 고성군이 아니라 간성군이다.


 

강원도 고성군 위치. 노란 점선이 휴전선이다. 남북한 양쪽에 강원도 고성군이 표시되었다. 네이버 지도 참조.
강원도 고성군 위치. 노란 점선이 휴전선이다. 남북한 양쪽에 강원도 고성군이 표시되었다. 네이버 지도 참조.

고성군으로 가려면 진부령을 넘어야 한다.

백두대간 진부령 표지석
백두대간 진부령 표지석

진부령 미술관 앞에 ‘여기는 진부령 정상입니다. 해발 520m’ 라 적힌 교통 표지판이 보인다. 곰 동상 하나 서 있고 ‘백두대간 진부령’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간성향교
간성향교

진부령 넘어 처음 도착한 곳은 간성향교(杆城鄕校)이다. 고성군에 왔는데 왜 간성향교가 있는가? 조선 8도에서 유래한 도 이름 중에서 남한과 북한 두 곳 모두에 있는 게 강원도이다. 강원도의 고성군도 마찬가지. 남한에도 강원도 고성군이 있고 북한에도 강원도 고성군이 있다. 고성군이 경상남도에도 있다. 이건 한자가 틀리다. 경상남도 고성은 固城이고 강원도 고성은 高城이다.

[옛지도읽기] 조선시대 후기 강원도 고성군 옛지도
[옛지도읽기] 조선시대 후기 강원도 간성군 옛지도

어떻게 남북한 모두에 강원도 고성군이 있게 되었는가? 조선시대에는 간성군과 고성군이 별도의 군현으로 있었다. 1914년에 두 군이 합해져 고성군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고성군은 휴전선 북쪽 북한 땅이고 현재의 남한 고성군은 조선시대 간성 땅에 해당한다. 그래서 간성향교가 있는 것이다.

간성 향교 앞의 나무는 사진으로 봐도 멋지지 않은가. 현재 위치는 고성군 간성읍 교동 664번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건 아니고 여러 차례 옮겨 다니다 인조 18년(1640)부터 이곳에 있었다. 휴전선 근처에 있었으니 한국 전쟁 때 불타는 건 당연한 일. 1956년, 1960년, 1966년, 1982년에 건물을 계속 지어 지금 모습이 된 것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 본 풍경
통일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 본 풍경

이제 남한의 북쪽 끝 통일전망대로 간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일 때 생긴 가게들은 거의 개점 휴업 상태로 보였다. 통일안보공원에 가서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북쪽으로 간다. 검문소의 군인은 차량에 블랙박스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일품이었다.

사진 왼쪽으로 난 길이 금강산 관광을 가는 육로이다. 그 오른쪽은 남북한을 연결하는 철길이다. 두 길이 겹치는 지점 부근이 군사분계선이다. 군사분계선 양쪽에 한국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가 있다. 바닷가의 풍경 좋은 곳이 해금강이다.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여행이라도 자유로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따라 두만강까지 가서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로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분단 상황이니 남한은 섬처럼 폐쇄된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니 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주차장 근처에는 옛날 기차가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으니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대진항 등대를 구경하고 화진포로 갔다. 화진포 해양 박물관을 지나면 화진포 해변이 나온다.

화진포 해변. 광개토대왕 수릉이라 주장하는 곳
화진포 해변. 광개토대왕 수릉이라 주장하는 곳

화진포 해변에 서면 앞에 섬이 하나 보인다. 금구도이다. 금구도가 보이는 곳에 설명문이 하나 세워져 있다. 거북이 모양이라 금구도라 부르고 화진포 거북섬이 광개토대왕의 수릉이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이 직접 자신의 수릉축조 공사현장에 왔었고 장수왕이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다고 설명해 놓았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옆에 가을 동화 촬영지라고 소개한 곳은 믿겠는데.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화진포 해변에서 보면 해안 절벽 위, 소나무 숲 사이로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안내문을 보니 화진포의 성(城)이라 불리는 곳이다. 1937년에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었던 외국인 휴양소를 이곳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1938년에 독일 건축가 H.Weber가 건립하였다. 예배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38선 북쪽이니까 1948년 이후에는 북한에서 귀빈 휴양소로 이용하였다. 김일성과 부인 김정숙, 자녀인 김정일, 김경희 등이 묵고 간 적이 있어 김일성 별장이라는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역사 안보 전시관으로 이용되며 입장료는 2000원. 안내는 군인들이 하고 있었다. 근처의 화진포 콘도 안내 데스크에도 군인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기붕 부통령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화진포 콘도 뒤편으로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외국인 선교사 휴양소로 쓰이다가 해방 이후에는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휴전 이후에는 이기붕 부통령과 부인 박마리아의 개인 별장이었던 곳이다.

화진포 호수
화진포 호수

해변도 멋있지만 화진포에는 아주 큰 호수가 있다. 원래는 바다였는데 퇴적 작용으로 호수가 되었다. 둘레 16km의 석호이다. 이렇게 큰 호수는 처음 보았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
이승만 대통령 별장

이 호숫가에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 있다. 1954년에서 1960년까지 대통령의 별장이었다. 지금은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쓰인다. 안에 들어가 보면 옛날 사진들을 걸어놓았다.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데 소파에는 대통령 부부가 앉아 있는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거진항의 야경
거진항의 야경

화진포에서 남쪽으로 가면 거진항이 나온다. 해안도로는 정말 경치가 좋다. 거진항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이 날이 11월 26일이었다. 이 시기에 많이 잡히는 것이 도루묵이다. 항구 시멘트 바닥에 도루묵이 쌓여 있었다. 옆에 작은 트럭이 서 있었는데 물건을 받아서 소매로 판매하기 위한 차량이었다. 트럭 위 박스에는 도루묵 20마리 1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루묵
도루묵

배가 고파 식당으로 갔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그래도 항구에 왔는데 회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제일 싼 게 한 접시 4만원하는 잡어회였다. 비싸도 시켰다. 먹으면서 이게 무슨 물고기냐 물었더니 도루묵이란다. 좀 전에 항구 바닥에 잔뜩 쌓여 있던 거다. 그걸 지금 내가 이 돈을 주고 먹는단 말인가.

숙소를 구해야 했다. 동해안을 답사하다보면 다양한 민박집을 경험할 수 있다. 가난한 연구자가 혼자 답사 가서 비싼 호텔이나 리조트, 콘도에 잘 수는 없지 않은가. 민박도 그냥 민박이 있고 원룸식 민박이 있고 콘도식 민박이 있다.

그냥 민박에는 이불 말고 아무 것도 없다. 원룸식 민박에는 오래된 컴퓨터가 한 대 있다. 인터넷은 안 된다. 콘도식 민박에는 싱크대 비슷한 게 있어 수돗물이 나온다. 가스레인지는 물론 없다.

거진항에서는 콘도식 민박에서 잤다.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들고 있었다. 이제는 물고기도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선원들이 잡는다. ‘바다 위의 궁전 어촌계 민박’ 206호에 혼자 누워 있으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고성 왕곡마을 저잣거리 입구
고성 왕곡마을 저잣거리 입구

다음날 아침,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그래도 답사는 계속. 남쪽으로 간다. 고성 왕곡마을에 도착했다. 강릉 함씨 동족촌이다. 50년에서 180년 된 한옥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민박도 가능하다. 1871년에 건립된 함희석 효자각도 있고 동학사적 기념비도 있었지만 내 눈을 사로잡는 건 저잣거리 재현 모습이었다. 이 동네는 한과가 유명하다. 저잣거리 주변에 체험장, 전시장, 홍보영상실, 향토 식당이 들어서 있다. 여러 명 같이 왔으면 좋을 뻔 했다.

송지호 철새 관망타워
송지호 철새 관망타워

왕곡마을에서 좀 더 남쪽으로 오면 송지호가 나온다. 송지호도 바다였다가 퇴적 작용으로 호수가 된 곳이다. 습지가 잘 조성되어 철새들이 많이 오기에 철새 관망 타워를 만들어 놓았다. 이 날 나는 한 마리의 철새도 보지 못했지만, 안에 들어가 그림으로 구경했다.

천학정
천학정

동해안을 따라 가다보면 곳곳에 누정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천학정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지만 정말 경치가 좋다.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177번지에 있는 정자다. 1931년에 만들어진 정자라 옛 지도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절벽에 세워져 있는데 바다와 함께 최고의 풍경을 자랑한다. 사진으로 봐도 멋지지 않은가. 좋은 풍경을 원한다면 천학정은 꼭 가보시길.

청간정
청간정

천학정이 경치는 좋지만, 동해안의 정자라면 역시 청간정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고 명종 15년(1560)에 크게 수리했다고 하니 그 이전에 지은 정자라 추정할 수 있다. 원래 위치는 바다에서 5-6보 정도로 붙어 있었는데 192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새로 만들었다. 청간정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관동 팔경 중 한 곳이다.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이 청간정을 그렸다.

여기까지가 강원도 고성군이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속초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