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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자 동 차

무공해 수소차 격돌…“자동차 역사 바꾼다” (한겨레 2015.03.08 14:11)

무공해 수소차 격돌…“자동차 역사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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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창]

‘모델T’는 포드자동차가 1908년에 출시한 첫 대중차다. 1920년대 미국의 도로는 모델T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8년 출시 당시 가격은 850달러였으나 1914년 500달러, 1925년엔 250달러까지 꾸준히 낮아졌다. 가격 인하에 힘입어 판매량은 출시 첫해 6870대, 다음해 1만대, 1913년 16만대, 1917년 73만대로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산이 종료된 1927년까지 모두 1500만대가 팔렸다. 20세기 생산 방식인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전세계에 퍼뜨린 차로, 저렴한 가격을 기반으로 모델T와 함께 지구상에 자동차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년, 이제 가솔린·디젤 내연기관 자동차가 점차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이행의 계곡’에 접어들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마다 무공해 친환경차인 순수전기차(EV), 하이브리드전기차(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전기차(PHEV) 등 플러그인전기차, 나아가 수소연료전지차(FCEV)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자동차 역사를 한걸음씩 만들어가고 있다. 북미·유럽 시장에서 테슬라 ‘모델S’와 닛산 ‘리프’ 같은 각종 전기차의 출시와 지속적인 판매량 증가는 이미 2011년께부터 이어져온 흐름인 반면, 수소연료전지차는 갑자기 올해 벽두부터 시장 선점을 위한 격돌이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불붙고 있다.

■ 수소경제가 온다…치고 나선 도요타

“지금 자동차의 역사가 바뀌려 한다.” 지난해 11월,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세단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Mirai)를 선보인 자리에서 한 말이다. 수소연료전지차는 연료전지에 주입하는 수소가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차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순수한 물만 배출하는 완전 무공해 차량이다. ‘궁극의 자동차’로 불린다. 수소탱크를 장착한 수소연료차는 플러그인전기차에 비해 한 회 충전 시 주행거리도 더 길다. 10여년 전 제러미 리프킨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영구 연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문턱까지 이르렀다”며 수소에너지의 미래를 역설한 바 있다.

새해 벽두 미국서 시장선점 격돌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도전장

도요타 미라이, 파격가로 포문
현대차 투싼ix35 국내서 43%인하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에너지 혁명
IAEA “2050년 수소차가 19% 점유”

캘리포니아가 보급 확대에 적극
차세대 최대 경쟁자는 전기차

올해 초, 수소경제가 부지불식간에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 쪽은 도요타다. 도요타는 예상을 깨고 지난해 12월부터 일본과 북미 캘리포니아 시장에서 미라이의 실제 판매가격을 한 대당 500만엔 선으로 대폭 낮추며 먼저 치고 나섰다. 미라이의 일본 출시 가격은 세전 670만엔(약 6217만원), 관련 세금을 포함하면 720만엔대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보조금(200만엔대)을 빼면 500만엔(약 49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출시 한달 만에 1500대가 계약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혼다와 폴크스바겐도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수소연료전지 콘셉트카를 잇따라 내놓으며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수소연료차는 상업용의 대중화가 본격화하는 단계에서 뒤처지면 나중에 따라잡기 쉽지 않다는 절박감이 글로벌 완성차업체마다 퍼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권성욱 연구위원은 “(100년 전의 모델T처럼) 수소연료차도 양산 체제에 들어서면서 가격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충전소 같은 인프라 구축만 뒤따라주면 차세대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거라는 관측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2020년께부터 내연기관과 차세대 친환경차 간의 본격적인 주도권 다툼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존 내연기관차는 2020년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감소세로 돌아서 2050년엔 시장점유율 14%까지 하락하는 반면, 수소차 시장점유율이 19%까지 오르는 등 친환경차가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86%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아직은 판매량이 미미하다. 지난해 글로벌 30만대를 갓 돌파한 전기차(하이브리드 제외)는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0.5%도 채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연합의 환경규제와 전기차 보급 지원 정책으로 미국에서만 지난해 11만8000대(전년 대비 21% 증가)가 팔렸다.

■ 도요타·현대차 ‘캘리포니아 격돌’ 임박

미라이의 갑작스런 시장 선점 공세에 현대차도 맞대응에 나섰다. 이미 2013년 2월 울산공장에서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스포츠실용차(SUV)형 수소연료전지차 ‘투싼 ix35’ 양산 체제(연산 1000대 생산 라인)를 갖춘 현대차는 지난달 초 투싼 ix35 국내 가격을 1억5000만원에서 8500만원으로 43.3%나 서둘러 낮췄다. 이번 가격 인하는 캘리포니아에서 미라이와 맞대결하기 위한 국내 차원에서의 사전대응이란 성격이 강하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조만간 투싼 ix35 가격을 큰 폭으로 인하할 예정으로, 국내 가격을 먼저 내림으로써 국내외 가격차에 따른 반덤핑 제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한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6월부터 캘리포니아에서 투싼 ix35 판매에 나선 바 있다.

북미 시장에서 수소차 빅3는 도요타·혼다·다임러로, 여기에 현대차가 가세하고 있는 판도다. 선두 업체들은 그동안 주로 리스 방식으로 판매하면서 중앙정부 보조금(7500달러), 캘리포니아 주정부 보조금(5000달러)을 받았다. 도요타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차원인 ‘수소생태계’ 지원 속에 수소연료차의 연료탱크 허용압력 등 관련 국제표준을 스스로 설정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심산이다. 이미 유럽연합과 수소차 연료탱크 표준화를 구축하고 이를 미국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1994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선보인 다임러는 르노닛산·포드와 손잡았고, 2002년에 일찌감치 캘리포니아에서 수소차 판매 인가를 받아 상업화에 나선 혼다는 제너럴모터스(GM)와의 전략적 제휴 아래 수소차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올해와 내년 안으로 북미 시장에 수소차를 투입할 예정이다.

■ ‘무공해 크레디트’, 자동차업체 압박

전세계 친환경차 보급을 선도하는 곳은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는 1970년대 도심에 스모그 현상이 심각해지자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머스키법을 제정하면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주도하고 있다. 2013년 9월, 매년 2000만달러까지 막대한 주정부 예산을 투입해 올해 51기의 수소충전소를 세우고 2020년엔 “캘리포니아 어디서든 6분 안에 충전소에 도달할 수 있는” 수소충전소 100기 구축을 의무화하는 ‘AB8법’을 통과시켰다. 로드맵대로 수소충전소가 구축되면 캘리포니아에서 운행되는 수소차는 2017년 9500~1만6000대, 2020년 1만7000~3만1000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대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며 압박하고 있다.

더 강력한 제도가 ‘무공해차(ZEV) 크레디트’다. 2013년 말, 미국 자동차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8개 주(캘리포니아 포함)는 ‘2025년 무공해차 330만대 보급’ 목표를 세운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제도적 수단을 동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도로 미국 11개 주에선 플러그인전기차와 수소차에 차종별 크레디트를 부여하고, 의무 확보 크레디트(가솔린·디젤차 판매량에 비례해 할당)에 미달하면 가솔린·디젤 판매 1대당 5000달러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수소차 등 무공해차 판매량을 늘려 크레디트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공해차 의무판매 비율(전체 판매대수 중 충족해야 할 친환경차 비율)은 현재 12%인데, 2020년엔 22%로 더 강화할 예정이다.

게다가 2017년부터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연비개선차는 크레디트 부여 대상에서 앞으로 배제될 예정이어서 수소차는 자동차업체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하다. 수소차는 무공해차 가운데 크레디트 7점으로 가장 많은 점수가 부여돼 글로벌 업체마다 경쟁 구도로 조기 돌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 차세대 친환경차, 누가 주도할까

북미에서 순수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연료전지 자동차는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높은 가격의 연료전지 시스템에 더해 수소 생산·수송 인프라 비용이 막대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과연 수소연료전지차와 2차전지(배터리엔진)에 외부에서 전기를 충전(플러그인)해 구동하는 플러그인전기차 가운데 포스트 가솔린차 시대를 어느 쪽이 주도하게 될까.

물론 각국 정부의 친환경차 확산을 위한 보조금 및 충전소 인프라 구축 같은 정책적 요인,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환경규제 표준이 어떻게 정해질 것인지에 달려 있다. 또 캘리포니아 주도로 시장 판도를 수소차 쪽으로 유도하는 흐름도 있다. 엘지(LG)경제연구원 김경연 연구위원은 “플러그인전기차와 수소차는 전기모터를 통해 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점이 똑같다. 따라서 파워트레인 등 기술 플랫폼을 서로 공유하면서 상호보완적으로 공생 발전해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주행거리상 일상적인 도심 단거리는 플러그인전기차가, 교외 장거리는 수소차가 맡으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성장하는 구도가 될 거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