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 미/연 예 가

[여성조선] 영화 <국제시장> 속 그때 그 사건 (조선일보 2015.02.01 10:28)

[여성조선] 영화 <국제시장> 속 그때 그 사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일부를 담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의 인기가 가실 줄 모른다. 한국전쟁의 아픔, 이산가족의 고통, 파독 광부로 벌어들인 외화와 베트남전이 남긴 상처, 그리고 대대적인 이산가족찾기 운동에 이르기까지, <국제시장>에 담긴 1950~1980년대 그때 그 사건을 따라가봤다.

지난 1월 14일 영화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첫 ‘천만 영화’이자 윤제균 감독 개인적으로는 2009년 <해운대>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다. <1번가의 기적>으로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윤제균 감독은 또 한 번 자신의 장기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을 와 지독한 가난 속에 살다가 광부로 파독, 이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초반, 작은 소년이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남자는 영화가 끝날 무렵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부산 출신의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는 내 아버지에 대한 헌사”라고 밝혔다.(극 중 덕수와 영자는 윤제균 감독의 부모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한편 <국제시장>은 개봉 전부터 로버트 저메키스의 명작 <포레스트 검프>에 비유되기도 했다. 주인공 톰 행크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이 영화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의 가장 유명한 사건들을 아이큐 75의 한 순박한 남자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와 유사하게 <국제시장>도 우리나라 과거사의 일부를 한 남자를 통해 훑는다. 영화 속 그때 그 사건과 실제 사건 속 현장, 촬영장의 비하인드스토리를 따라가봤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950년   6·25전쟁, 흥남 철수 작전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피란 신은 1950년 겨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흥남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중공군에 밀려 고립 위기에 처한 연합군은 흥남항 탈출을 시도하는데, 항구는 미군 함정에 몸을 실으려는 피란민들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그러나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배에 피란민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극 중 미 10군단장에게 피란민들을 함께 태워 가자고 간청하는 한국인이 눈에 띈다. 역사 속에 실재한 인물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주립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뒤 귀국, 미 육군 25사단의 통역을 맡은 현봉학 고문관이 모델이다. 참고로 현봉학 역을 맡은 신인배우 고윤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아들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결국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선적한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린 뒤 피란민 1만4천여 명을 태워 남쪽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무려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다고. 현재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1960년대   서독 파독 광부·간호사

1960년대 한국은 외화 부족 사태를 겪었고 심각한 실업난으로 청년들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가운데 덕수(황정민)의 남동생 승규가 서울대에 합격한다. 덕수는 승규의 학비를 마련할 방법을 찾던 중 친구 달구(오달수)를 따라 서독에 파견될 광부로 지원한다.

이즈음 우리나라는 외화벌이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독일로 간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보낸 외화가 한국 GDP의 2%에 달했을 만큼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고. 윤제균 감독은 “지금 삼성그룹의 전체 매출이 GDP의 4%에 달한다고 하니까 그때 그분들이 번 돈은 정말 엄청난 거였다. 그래서 독일 이야기는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해당 사건을 삽입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파독 광부의 노동 강도는 매우 고됐다. 광부들은 똑바로 서기도 힘들 만큼 좁고 낮은 탄광에서 하루를 꼬박 보냈으며, 이는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이었다. 영화에서도 가스 누출로 탄광이 무너지는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는데, 극 중 덕수와 달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실제로 그 당시 얼마나 많은 광부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참고로 극 중 간호사로 파견된 영자(김윤진)가 독일 루르 강변에서 청바지를 입고 ‘로렐라이’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독일이 아닌 한국이 배경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의상이다. 한국에 청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이기 때문이다. 

1955~1975년   베트남 전쟁

파독 광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덕수는 결혼도 하고 전보다 먹고살 만해졌지만 여전히 부모, 형제의 부담을 혼자서 지려 한다. 결혼자금이 없으니 집을 팔아서라도 보태달라는 여동생의 투정에 덕수는 또 한 번 고생길로 들어선다. 그게 베트남전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군인으로 참전하는 것은 아니다.)

1955년 시작된 베트남전은 게릴라 부대 ‘베트콩’과 북베트남의 정규전이 동시에 진행됐다. 여기에 미군의 폭격과 공습, 포격까지 가세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네이팜탄 같은 대량 살상무기와 고엽제로 많은 여성과 아동, 노인들이 사망했고, 이 죽음은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1973년 미군이 철수 한데 이어 2년 뒤 베트남 전쟁이 종료됐다.

영화 속 베트남전 신은 태국에서 촬영됐다. 그중 정글 전투 신은 야자수나무가 무성한 풍경을 찾기 위해 바나나 농장을 섭외, 베트남처럼 보이는 즉석 세트를 지었다고. 이 부근에서 덕수와 가수 남진의 만남도 이루어진다.
“아따 이노무 인기는 전후방을 안 가려 불고마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는 남진과 같은 전라도 출신의 후배 가수, 정윤호(유노윤호)가 소화했다.

1983년   이산가족찾기 운동

<국제시장>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덕수가 방송사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헤어진 막냇동생 막순이를 찾는 장면이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눈물샘이 메마른 관객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 무엇보다 어른 막순 역의 캐스팅이 ‘신의 한 수’다.

“어른 막순이를 연기할 배우를 찾으려고 조감독을 미국에 두 번이나 보냈다. 1백 명이 넘게 오디션을 봤는데 결국 못 찾았다. 나중에 조감독이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고, 배우의 이미지가 괜찮아서 그 사람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오디션에 참가시켰다.”
그렇게 선발된 재미교포 초이 스텔라 김은 “여긴 운동장이 아니다. 놀러 온 게 아니다”라는 대사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눈물바다로 장식했다. 모국어처럼 영어를 소화하는 한국인 초이 스텔라 김은 미국으로 입양된 막순이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이뤘다.

지금 10대, 20대들에게 이산가족찾기는 생소한 이슈일지 모른다. 게다가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으니까.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6·25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이 전국 도처에 있었고, 이에 KBS는 1983년 6월 30일 생방송으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특별방송을 진행했다. 5일 동안 약 5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여의도 KBS방송국을 찾았고 그중 5백여 명이 이산가족을 찾았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곡이었던 패티김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영화에도 고스란히 삽입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 속 그때 그 사람     )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

“처음엔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근데 결론은 쉽게 나더라. 이병철 회장과 달리 정주영 회장은 개성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심지어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윤제균 감독은 극 중 어린 덕수가 구두를 닦아주던 젊은 청년을 고 정주영 회장으로 설정했다. 청년은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 이 땅에 조선소를 짓겠다”는 자신만의 포부를 어린 소년들에게 털어놓는다. 덕수와 달구는 돌아서는 청년의 뒤에다 대고 “미친 거 아니냐”며 비웃지만, 정주영 회장은 1972년 3월 조선소 착공의 첫 삽을 떴다.

가수 남진

영화 속 군복을 입은 남자가 ‘님과 함께’의 한 구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흥얼거린다. 남진 역을 맡은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정윤호다. 남진과 같은 전라도 출신이라 사투리가 흠잡을 데 없다. 윤제균 감독은 “캐스팅 전 만나보니 남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역할에 대한 열정, 완벽한 사투리까지 갖추었더라. 모든 면에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캐스팅 비화를 밝혔다.

남진은 나훈아와 함께 1970년대 트로트 시장을 양분한 당대 최고의 가수다. 1965년 ‘울려고 내가 왔나’로 대박을 터뜨리며 스타 대열에 합류한 그는 이후 ‘가슴 아프게’, ‘마음이 고와야지’ 등 히트곡을 줄줄이 내놓는다. 그런 그가 1969년 돌연 베트남전 해병대에 자원입대한다. 참전으로 인한 37개월의 공백기는 가수에게 치명적이었지만, 제대와 동시에 최고가수상을 꿰차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나훈아와의 라이벌 구도가 더욱 확고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둘은 스타일이 달랐는데, 꺾기 창법이 주특기인 나훈아가 비교적 감미롭고 서정적인 정통 트로트를 부른 데 반해 남진은 박진감 넘치는 템포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남진이 전라남도 목포 출신, 나훈아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차이다. 숱한 히트곡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대표곡을 꼽자면 ‘님과 함께’와 ‘빈잔’.

전 씨름선수 이만기

‘모래판의 제왕’ 이만기는 1980년대 민속씨름의 전성기를 이끈 스포츠스타다. 1983년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뒤 1990년 은퇴할 때까지 10번이나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영화 속 어린 이만기는 덩치 좋은 마산 무학초등학교 운동부 학생으로 등장한다. 덕수, 달구와는 몸보신을 하러 찾은 어느 꼼장어집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 이후 파독 광부로 일하고 돌아온 덕수가 TV에서 민속씨름 천하장사 결승전을 보며 이렇게 외친다. “이만기 만세!” 몇 년 전 꼼장어집에서 마주친 바로 그 덩치 좋은 초등학생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디자이너 고 앙드레김

극 중 ‘꽃분이네’는 덕수의 고모가 운영하는 옷감 가게다. 어느 날 양복을 차려입은 한 젊은 남자가 꽃분이네를 찾아온다. 여자 옷을 만들려고 하는데 새로운 옷감을 구하는 중이란다. 연신 “오우 패브릭”, “오우 판타스”, “뷰리풀”을 외치는 모습이 딱 앙드레김이다. 달구는 저만치 멀어져가는 남자의 뒤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 “어이, 김봉남 씨!”
실제로 앙드레김은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출생지는 서울 은평구였지만 중학생 시절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고. 그곳에서 앙드레김은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와 의상을 보며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상경한 그는 디자이너 최경자의 양장점에서 일하며 톱 디자이너로 성장해나간다.

 

 

[영화 '국제시장' 신드롬] "3代가 함께 보는 영화… 진정성이 가장 큰 힘"

(조선일보 2015.01.29 03:06_

영자役 연기한 김윤진


	28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국제시장’의 배우 김윤진 사진
 28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국제시장’의 배우 김윤진. /자이온엔터테인먼트 제공

"여러 관객분이 '영화 두 번 봤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처음에 친구들과 같이 보러 갔다가 영화가 참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돼 다시 예매를 해서 부모님 모시고 봤다'고요."

배우 김윤진(42·사진)은 28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기 전 조선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봉 전 무대 인사 때마다 '지금 영화 보시고 나서 부모님 손잡고 다시 한 번 극장 찾아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부탁을 들어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김윤진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황정민)와 파독 광부·간호사로 만나 평생 함께한 아내 '영자'로 출연했다.

김윤진은 "세븐데이즈, 하모니 같은 모성애가 부각된 영화를 여러 편 찍었지만, 국제시장처럼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영화 출연은 솔직히 처음"이라고 했다. 영화가 여러 논란을 불러온 데 대해서는 "정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오히려 우리 영화가 가진 진정성이 관객에게 가장 큰 호소력을 발휘한 것 같아요. 감독님이 여러 인터뷰에서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 만든 영화'라고 했는데 그 마음이 그대로 잘 전달된 것 아닐까요. 모질게 힘들었지만 꿈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많아 중장년 관객들도 많이 봐주셨고요."

그녀는 "특수 분장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황정민·오달수씨만큼 고생하지는 않았다"며 겸손해했다. "저는 베트남에도, 이산가족 상봉 때도 없었잖아요. 황정민씨 유명한 수상 소감 있잖아요.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이라고. 저는 정말 숟가락도 아니고 젓가락만 얹은 것 같은데, 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어 복 받은 거죠." 영화 개봉 전 "관객 1200만명을 넘으면 그동안 기부와 봉사활동을 해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2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2일 1200만 관객 돌파 뒤 "최종 관객 수에 맞춰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윤진은 "우리 영화에도 나오는 대사지만 정말 인생은 타이밍인 것 같다. 이런 기막힌 타이밍에 배우인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