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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밤새 박스 6000개 옮기고 8만원 … 허리가 끊어질 듯했다 (중앙일보 20140928)

밤새 박스 6000개 옮기고 8만원 … 허리가 끊어질 듯했다

인턴기자가 사흘간 체험한 ‘단기 알바’

 

엑스트라 알바는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특이한’ 알바다. 강승한 인턴기자(왼쪽 첫째 가마꾼)가 지난 20일 서울 종묘에서 열린 묘현례 재현 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단기알바’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이 말은 단기간 아르바이트의 줄임말이다.

취업을 하려면 학점 관리에 ‘스펙’을 쌓아야 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대출을 갚을 일이 막막한 세상. 요즘 대학생들에게 단기알바는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 쉬운 것은 일을 구하는 것까지만이다. 실제 돈을 손에 쥐기까지 상상 이상의 고통이 따른다. 대학에 재학 중인 중앙SUNDAY 인턴기자가 3일에 걸쳐 단기알바 체험을 해봤다. 그중에서도 이상하고, 특이하고, 고된 일 한 가지씩을 택했다.

이상한 알바, 특이한 알바, 겁나는 알바

“택시비는 드릴 테니 바로 터미널로 가세요.”

결혼식장 지하에서 만난 ‘팀장’은 침을 튀겨가며 통화 중이었다. 오늘 할 일은 ‘이상한’ 단기알바, 결혼식 하객 대행 알바다. 오후 6시가 되자 젊은 커플 두 쌍과 20대 남녀 각 세 명이 모였다. 바로 ‘업무 전 미팅’이 시작됐다.

식장에 올라가는 순서와 역할도 정했다. 알바들이 한꺼번에 올라가면 어색하기 때문이다. 졸지에 생면부지인 신부의 대학 선배가 됐다. 먼저 커플 두 쌍이 올라갔고 팀장과 나머지 알바들이 시간을 두고 올라갔다. 업무 시간은 오후 7시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느닷없이 ‘대학 후배’가 된 신부를 만났다. 북적거려야 할 대기실엔 신부와 사진기사 둘뿐이다. 어색한 ‘인사 연기’를 마친 뒤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예식장은 청첩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식이 시작됐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진실된 결혼’이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귓전을 때린다. 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 순서가 됐다. 알바들이 출동해야 할 순간. 미소 가득한 하객들의 표정과 무심한 알바들의 표정이 대비를 이룬다. 표정이 어색했는지 사진기사가 분위기를 띄운다. “여러분 표정이 왜 이렇게 무서워요. 혹시 알바 아니죠?”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신랑·신부는 웃지 않았다. 촬영의 하이라이트인 부케 던지기. 사진기사가 부케 받을 친구가 나오길 종용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팀장이 신부 옆자리를 지키던 ‘대학 여자 선배’의 등을 쿡 찌른다. ‘대학 여자 선배’는 1인당 7만원짜리 저녁에 알바비, 부케까지 덤으로 받았다.

퇴근 시간. 처음 만났던 지하에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모두 말없이 봉투 하나씩을 들고 흩어졌다. 팀장에게 ‘역할 대행 알바’에 대해 물어봤다.

-어떤 역할 대행이 있나.
“모든 역할이 있다. 청첩장을 뿌린 상태에서 신부가 도망가 알바 신부를 부른 적도 있다. 부모 역할도 있고 무당 역할을 맡아 운수를 알려주기도 한다. 가짜 불륜 상대도 있다.”

-부모 대행은 평생 해야 하나.
“그럴 수도 있다. 대개 이혼했다거나 돌아가셨다거나, 이민 갔다고 둘러댄다. ‘선녀와 나무꾼’처럼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을 얘기해주기도 한다. 오늘 결혼식에도 당신이 모르는 역할이 있다.”

-뭔가.
“오늘 신랑 어머니. 그분도 알바다.”

주말 아침 출근길은 한산했다. 하지만 종묘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단기알바를 위해 모인 이들이다. 이날 종묘에선 묘현례(廟見禮) 재현 행사가 열렸다. 세자빈이 가례를 마친 뒤 왕비와 함께 종묘를 참배했던 조선왕조의 국가의례다.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특이한’ 알바, 이른바 ‘엑스트라’ 알바다. 재현 행사인 만큼 아예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람도 있었다. 팀장이 즉석에서 ‘신분’을 정했다. 50대 이상은 당상관, 몸이 왜소한 두 명은 내시가 됐다. 그럴 듯한 벼슬을 기대했지만 가마꾼 역할이 주어졌다. 전에도 가마꾼을 해봤다는 동료(?)는 ‘꿀보직’이라고 귀띔했다. 당상관급은 하루 종일 뙤약볕에 서 있어야 하지만 가마꾼은 10분만 가마를 지고 올라갔다 내려오면 되기 때문이란다.

‘고위직 엑스트라’는 땡볕서 고생

주렁주렁 장신구가 달린 당상관 관복과 달리 가마꾼은 두루마기 한 벌이 전부. 이마저도 초짜들은 옷고름을 맬 줄 몰라 쩔쩔맸다. 수염까지 기르고 온 베테랑들은 이미 의관을 정제한 뒤 여유를 부린다. 옷을 갈아입자 팀장이 가마꾼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절대로 왕비를 쳐다봐선 안 된다는 것. 시선을 땅에 두니 왕비와 궁녀들의 치맛자락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게 조선시대 신분사회인가’라는 재미를 느낀 것도 잠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현실로 다가온다. 8명이 나눠 가마를 졌는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

리허설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좀 전까지 쳐다볼 수도 없었던 왕비와 문무백관들도 가마꾼들과 함께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호위무사 역할을 한 25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엔 어떻게 왔나?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어 삼수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연기 아카데미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전에는 화장품 영업을 했는데 쉽지 않더라.”

-엑스트라 알바는 할 만한가.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편하다. 엑스트라를 하면 적어도 촬영장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서 왔다.”

오후 1시. 드디어 본공연을 위해 분장을 했다. 누구는 수염을 그리고, 누구는 수염을 붙인다. 신분 차이다. 가마꾼은 먹칠을 한 스펀지로 쓱 문지르면 끝. 절대로 수염을 그려선 안 되는 배역도 있다. 내시다.

오후 1시45분. 접시닦이를 그만둔 대학생, 중소기업 총무, 구청 하도급업체 직원과 함께 구령에 맞춰 왕비가 탄 가마를 들었다.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괜히 으쓱해져 땀 나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정전(正殿)으로 올라가는 왕비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저고리를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왔다.

이날 온 엑스트라 중엔 20대가 많았다. 대학생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생계를 위해, 꿈을 위해, 하루 4만원을 위해, 젊은이들은 땡볕에 서 있거나 가마를 짊어졌다.

일요일 하루를 쉬었다. 오늘은 ‘단기알바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택배물류 알바를 하는 날이다. 알바생들 사이에서도 고되기로 소문난 알바. 야간 11시간 동안 택배물류를 싣고 내리는 일이다.

정차해 있던 버스에서 30대 중반의 인력업체 직원이 나타났다.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짧게 한마디를 던진다. “고정 앞으로. 새로 온 사람 뒤로.”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고 버스에 올랐다. 충북과 대전을 지나 두 시간 반 만에 옥천 택배터미널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내려서도 담배만 피울 뿐 말이 없었다. 일은 단순했다. 분류돼온 택배 박스를 받아 트럭에 쌓는다. 이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택배물류 상차(上車)다.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오후 8시 정각. 주어진 시간은 20분이다. 미역국에 조밥을 말았다.

농산물 수확 시즌인 9월이 최악

잠시 후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됐다. 고참(?)은 최악의 날을 골랐다며 웃었다. 농산물 수확 시즌인 9월에다 주말 물류가 쌓이는 월요일이란다. 이런 얘기를 들을 짬도 없었다. 레일을 타고 오는 택배 박스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유의해야 할 박스는 세 가지다. 액체 박스, 아이스박스, 그리고 마대다.

액체 박스는 잘못 던지면 터져 흐른다. 감당할 수가 없다. 아이스박스에는 김치·젓갈·반찬 등이 들어 있다. 박스가 깨져 내용물이 흐르는 순간 다른 택배까지 ‘끝장내는’ 무서운 녀석이다. 그리고 마대. 500g에서 1㎏ 정도 되는 작은 박스 20개가 들어 있다. 사각형인 일반 박스와 다르다. 모양을 만들어 정리할 수가 없다. 허리를 180도에 가깝게 돌려 던져야 한다. 두 배로 힘들다.

물류창고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 레일에 박스가 뜸해질 때 교대로 2분가량 쉰다. 자정쯤에 물도 떨어졌다. 쉬는 시간엔 전속력으로 달려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셨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소변도 마렵지 않았다.

새벽녘 물류 레일은 박스들로 꽉 찼다. 일이 서툰 옆 라인 대학생은 고참에게 욕설을 들었다. 받는 일당은 같고, 시간은 정해져 있다. 신참이 못하면 고참이 더 해야 한다. 무시로 욕설이 터진다.

새벽 두 시 반. 작업반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레일이 멈췄다. 무슨 일인가 둘러보니 분류 일을 하던 알바생이 레일 밑에 빠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넋이 나간 알바생은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웅성거리는 순간도 잠시.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레일이 돌아간다. 작업 재개. 새벽 다섯 시 반. 작은 박스만 남았다. 레일에 부딪힌 무릎. 박스에 찍힌 엄지발가락, 몇 시간째 펴지 못한 허리, 목과 팔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른다. 이날 밤 고참과 나는 옥천에서 구미로 가는 택배 박스 6000개를 트럭에 실었다. 사람들은 올 때처럼 말없이 버스에 올랐다. 해는 이미 밝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동갑내기에게 물었다.

-택배 알바는 어떤 일인가.
“욕 나오는 일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
“차 사고를 냈다. 200만원 정도 빚을 졌는데 갚을 길이 없다. 좋든 싫든 또 나와야 한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온몸이 아팠다.

사흘간의 알바로 번 돈은 15만원. 전공 책 3~4개를 간신히 살 수 있는 돈이다. 한 학기에 평균 5과목을 수강한다 치면 나머지 1~2권 살 돈을 더 마련해야 한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거짓 박수를 치고, 가마를 메고, 6000개의 박스를 다시 들어야 한다.

일요일에 만난 대학 동기는 알바때문에 인턴십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알바를 그만두기엔 한 달 동안 생활비가 막막했다고 했다. ‘쳇바퀴 인생’이라고도 했다. 싫어도 먹고살아야 한단다. 먹고살기,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에 성공하면 뭔가 달라질까. 아버지·삼촌 세대들은 우리에게 많은 충고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난 묻고 싶다. “혹시 대학생 때 박스 6000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