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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토요이슈]위기의 토종벌 사수작전 (동아일보 2014-08-16 03:37:22)

[토요이슈]위기의 토종벌 사수작전

“토종벌 에이즈에 떼죽음… 벌집 하나하나 뜯어보며 연구”

 

‘토종벌 전도사’ 김대립 씨(왼쪽)와 청주시 문의면에서 토종벌을 기르는 농민들이 벌통 가득 들어찬 꿀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위잉∼.”

별 천지가 아닌 벌 천지였다. 벌통 가까이 다가서자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듯 날갯짓이 더욱 분주해졌다. 여러 마리가 크게 원을 그리거나 위아래로 연방 날아다녔다. 언뜻 보기에도 수천 마리는 족히 돼 보였다. 이들이 일제히 날개를 움직이는 소리는 마치 전동드릴 모터 소음 같았다.


토종벌을 지키는 사람들

지난달 1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의 한 농가. 이곳에선 꿀을 따려는 이들과 지키려는 벌들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다.

“겁먹지 마시고요. 텔레파시를 주고받는다는 생각으로 눈을 마주치세요. 그래야 안전합니다. 팔을 휘젓거나 피하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김대립 씨(40)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옛 청원군(지금은 청주시) 일원에서 농민들에게 토종벌 사육법을 전파하는 ‘토종벌 전도사’다. 옆에 있던 이만수(64) 이찬희(66) 윤병환 씨(77)는 올해 처음으로 토종벌 사육에 뛰어들었다. 김 씨는 이들에게 사육과 관리 방법을 설명하고 꿀을 따는 모습도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뭐, 크게 쏘이기야 하것어. 겁먹지 말어.”(이만수 씨)

일행은 수천 마리의 벌 틈에서 긴장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벌통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김 씨는 일행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시선을 벌통에 고정시켰다. 30도를 넘는 기온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김 씨의 뺨과 목덜미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워매. 꿀이 제대로 들어찼네.”

김 씨가 벌통 뚜껑을 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아색 벌집에는 손톱보다 작은 육각형의 방마다 진한 색깔의 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벌들이 봄부터 분주히 실어 나른 꿀이었다.

“꿀이 묻은 손을 물로 씻었을 때 바로 씻기면 진짜, 잘 안 씻기면 설탕 넣은 꿀이에요.”

김 씨는 벌집틀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뒤 벌통에 입으로 조심스레 ‘호∼호∼’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벌을 통 아래로 몰고 두 번째 틀을 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이것까지만 하고 그만 닫자고.”

김 씨가 벌통 속 꿀을 4분의 1 정도 채취했을 때,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윤 씨가 말했다. 토종꿀은 시중에서 보통 한 되에 약 15만 원에 팔린다. 일반 꿀보다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일부만 채취하고 만 이유가 있었다.

“당장 돈 벌 생각만 한다면야 한 번에 다 따도 상관없겠지요.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수익이 아니라 벌들의 건강입니다.”(김 씨)

비가 오면 벌들이 꿀을 모아오기 힘들어진다. 특히 장마나 태풍 때문에 여러 날에 걸쳐 비가 올 때면 사실상 ‘영업 정지’ 상태가 된다. 꿀을 모두 안 따는 이유는 벌들이 이 시기를 견딜 수 있게 영양분을 남겨둔다는 의미다. 그래야 체력을 보충하며 여름을 보낸 벌들이 가을에 더욱 활발하게 꿀을 채집할 수 있다.

김 씨에겐 다른 이유도 있다. 건강한 토종벌의 개체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30년 동안 토종벌과 함께한 그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책임과 같다. 김 씨와 토종벌의 인연은 그가 초등학생일 때 시작됐다.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벌통 2개를 준 것이다. 김 씨는 고등학교를 나온 뒤 본격적으로 토종벌 사육에 뛰어들었다. 기술도 뛰어나 200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신지식농업인에 한봉(韓蜂) 분야 최초로 뽑히기도 했다.


90% 이상이 떼죽음… 2010년의 기억

김 씨에게 2010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남아있다. 낭충봉아부패병 때문이다. 이 병은 ‘토종벌 에이즈’라고도 불린다. 사람의 병으로 치면 20세기 초 최대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같다고나 할까. 감염된 벌통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말라죽은 애벌레들이 수북이 쌓인다. 벌들은 병으로 죽은 애벌레를 빼내다 벌통을 버리고 떠나는데, 결국엔 대가 끊겨 전멸하고 만다.

2008∼2009년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병은 2010년이 되자 전국으로 확산됐다. 전염력과 바이러스의 위력이 매우 강해 병에 걸린 토종벌 대다수가 손 쓸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김 씨의 벌통 1000여 개도 이 병을 피해가지 못했다. 낭충봉아부패병을 겨우 피한 벌통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그해 말까지 전국 1만7500농가에서 기르는 토종벌 41만8000군(群) 중 31만7000군(전체의 76%)이 낭충봉아부패병의 피해를 봤다. 하지만 토종벌 농가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전체의 90%를 넘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농식품부는 당시 토종벌 농가에 감염된 봉군(蜂群)을 격리한 후 소각하도록 했다.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죽은 벌뿐만 아니라 벌집과 벌통 덮개 등도 모두 태워야만 했다. 하지만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토종벌은 날아다니는 곤충이라 개체수를 정확하게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미연 한국한봉협회 사무장은 “당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데다 꿀을 파는 데 문제가 될까 봐 적지 않은 한봉 농가가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며 “많은 빚을 진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안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발병 원인 분석에 나섰다. 분석 결과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이 꼽혔다. 강승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연구원은 “낭충봉아부패병은 인도에서 처음 발병했는데 온난화로 기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베트남과 중국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낭충봉아부패병을 처음 경험한 베트남은 이후 꾸준히 질병을 관찰 연구해 피해를 줄이고 있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박사는 “현재 베트남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베트남의 기술을 한국에 접목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고 있다”며 “한국의 토종벌은 베트남 벌과 유전자 차이가 있다 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는 아직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상한 애벌레 잡아 부화시켜 보니…

결국 김 씨는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토종벌과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벌집을 일일이 점검하며 문제점을 찾는 데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애벌레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문제가 있는 벌집에서 꿈틀거리는 이상한 유충을 떼어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부화시켜 보니 명나방이 나오더라고요. 벌집에 자리 잡은 명나방은 벌 유충에 스트레스를 주고 면역력을 떨어뜨려요. 바이러스의 숙주 역할도 하고요. 그 결과 토종벌이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리게 되는 거죠.”

김 씨는 자신이 찾은 예방법을 알리고 보완하기 위해 곳곳을 찾아다녔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낭충봉아부패병을 경험한 중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좀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김 씨는 곧 명나방 같은 해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벌통을 고안해냈다. 이 벌통을 활용해 2012년부터 자신의 농장에서 실험을 해본 결과 약 95%의 방제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김 씨는 그해 특허청에 특허를 냈다.

그러나 주변 농가에서는 낭충봉아부패병의 악몽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지난해에도 청주시 일부 지역(옛 청원군)의 적지 않은 한봉 농가가 피해를 봤다. 한 농가는 자신의 집 주변에서 키우던 벌통 10여 개 전체가 병에 걸려 모든 벌이 폐사하기도 했다.

“몇몇 농가만 질병을 예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적어도 이 지역 전체가 동참해야만 낭충봉아부패병이 없는 청정지역을 만들 수 있고 성공사례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김 씨는 주변 농가들과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옛 청원군 지역 한봉 농가들이 공동으로 ‘2015년 청원군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제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 결과물이다. 농가들은 가까운 지역별로 3∼5명이 팀을 이뤄 공동으로 질병에 대응하기로 했다. 또 자신의 벌통에서 질병 징후가 발견될 경우 바로 소각하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발생하는 금전적 피해는 같은 팀 농가로부터 벌통을 지원받는 방식으로 보전하기로 했다.


치료제 상용화엔 시간 많이 걸릴 듯

토종벌은 벌통 안에 집을 짓고 꿀을 저장한다. 꿀이 가득 들어찬 벌집 내부 모습.

 

올해는 농가들이 결의문에 따라 행동을 시작한 첫해다. 4월 중순 한 농가가 피해를 본 것을 빼곤 아직까지 다른 농가에서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징후가 발견될 때 바로 대응하면 멀리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직선거리로 2km만 떨어지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물론 김 씨처럼 민간에서만 낭충봉아부패병을 막는 데 힘을 쏟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현재 토종벌을 증식하기 위한 ‘토종벌 종 보전사업’을 벌이고 있다. 핵심은 피해를 본 농가에 다른 농가의 토종벌을 분양하는 것. 건강한 벌을 증식하기 위한 시범단지사업도 진행 중이다. 질병으로부터 격리된 청정지역에 시범단지를 조성해 토종벌을 증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큰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다.

치료제 개발도 진행 중이지만 상용화까지는 시일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강승원 연구원은 “100∼200마리를 대상으로 한 실내 실험에서는 양호한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야외에서 직접 실험을 진행해본 적은 없다”며 “제약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일반에 판매하는 약제로 개발하려면 10년에서 15년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낭충봉아부패병을 막으려면 현장에서 좀더 면밀하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농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꿀벌의 고향은 인도 북부… 2000년전 한반도 들어와 ▼

토종벌의 역사


토종벌(왼쪽)은 서양벌보다 크기가 다소 작은 반면 날개는 조금 더 큰 편이다. 토종벌의 몸통에는 검정 바탕에 흰 줄이 있고 서양벌의 몸통에는 노란 바탕에 검은색 줄이 있다. 한국한봉협회 제공

 

꿀벌은 일반적으로 꽃에서 꿀을 채취하는 벌을 일컫는다. 원산지는 인도 북부 지역으로 이들이 전 세계로 이동하면서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분화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꿀을 따기 위해 사육하는 종은 유럽이 원산지인 서양종 꿀벌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토종벌이라고 부르는 꿀벌은 동양종이다. 인도, 베트남,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 분포돼 있으며 재래꿀벌로도 불린다. 약 2000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종과는 뒷날개 중앙에 위치해 날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맥(脈)의 모양으로 구분한다. 서양종보다 벌꿀 생산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추위를 잘 견딘다는 장점이 있다.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이 바로 토종벌이다. 베트남, 중국 등에서도 양봉농가들이 이 병으로 피해를 많이 봤다. 학계, 전문가 등은 낭충봉아부패병의 퇴치법을 찾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수도권]도심서 벌 키우는 재미, 꿀맛입니다

 (동아일보  2014-08-05 03:00:00)

서울 건물옥상-공원서 양봉 확산
고온다습한 환경, 꿀벌 살기에 적합, 노들섬 등 11곳서 양봉… 안전도 합격
생태학습장 활용에 벌꿀 기부까지

 

5월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공동체 텃밭 양봉장에서 ‘도심양봉 교육과정’ 참가자들이 실습을 하고 있다. 강동구는 지난해 도심양봉을 처음 시작해 약 400kg의 꿀을 수확했다. 강동구청 제공

 

#1. 지난달 말 서울중부공원녹지사업소 직원들은 사회복지재단에 작은 꿀 한 병을 기부했다. 직원들이 옥상에서 벌꿀 10만여 마리를 키워 채취한 꿀이었다. 처음엔 ‘진짜 꿀이 생길까’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올해 봄 꿀벌들이 근처 남산 등지에서 부지런히 꿀 2.3kg을 모아왔다.

#2. 서울 강동구청은 지난해부터 빈 땅을 텃밭으로 일구고 벌꿀통 20개를 설치해 ‘도심 양봉’을 시작했다. 올해는 아카시아와 밤나무에서 얻은 꿀 700병을 지역 로컬푸드 판매장에서 판매했다.

최근 서울시내 곳곳에 ‘꿀벌’을 키우는 도심 양봉장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운영하는 도심 양봉장은 △서울 명동 유네스코빌딩 옥상 △노들섬 △서초구 서울연구원 △강동구청 텃밭 양봉장 △남산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옥상 등 모두 11곳에 달한다. ‘도시에 웬 양봉’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도시는 ‘고온다습’한 환경이 유지돼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지에서는 도심 양봉이 국내보다 활성화돼 있다. 2008년부터 도심 양봉이 활성화된 영국 런던에서는 건물 옥상에 3200개가 넘는 벌통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다.

국내 도심 양봉은 서울시가 2012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옥상에서, 지난해에는 월드컵공원에서 꿀벌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꿀을 얻어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도 ‘생태계 지표’ 역할을 하는 꿀벌을 직접 키워보고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월드컵공원의 경우 벌통 7개 규모의 양봉을 하고 있는데, 꿀을 수확하지는 않고 도심 생태학습용으로 활용한다. 공원 관계자는 “주말마다 40여 명이 방문해 양봉 체험을 하고 갈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지자체나 자치구 차원에서 벌을 키우는 곳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민간 차원의 도심 양봉도 늘어나는 추세다. 도심 양봉업을 하는 박진 어반비즈 대표는 “지금까지 200명이 양봉 교육을 받았다”며 “대기업, 공공기관들 역시 옥상의 빈 공간에서 벌을 키우고 싶다며 문의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도심 양봉이 확대되자 중금속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최근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유네스코빌딩 옥상, 서울연구원, 강동구청 텃밭, 노들섬, 도봉산의 양봉 벌꿀 성분을 조사한 결과 납, 카드뮴 등의 중금속은 검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