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씨에게 빌려준 7000만원중 절반 이미 받았나
야심 많던 현직 시의원의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60대 재력가 송아무개씨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
[토요판] 뉴스분석 왜?
재력가 살인사건 피의자 김형식
▶ 현직 시의원이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수사 받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언론이 이를 ‘엽기적’ 사건으로 다룹니다. ‘엽기’(獵奇)란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니는 일을 말합니다. <한겨레>는 엽기에 반대합니다. 대신 ‘탐욕’이 어떻게 한 정치인과 인간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탐구하려 합니다. 부정기적으로 사건 관련자들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먼저 살인교사 혐의를 받는 시의원을 분석했습니다.
돈 많은 66살의 노인과, 부채와 사업 실패에 쫓기던 44살의 사업가와, 그와 동갑인 현직 시의원이 2014년 여름, 살인으로 얽혔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ㅅ빌딩 3층에서 지난 3월3일 새벽 건물주 송아무개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뒤통수를 손도끼 뒷부분으로 여러 차례 가격당했다. 66살의 노인은 재산이 많았다. 내발산동 빌딩 등 4곳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했다. 시가로 수백억원어치로 추정된다. 소규모 중국무역을 하는 팽아무개(44)씨가 피의자로 붙잡혔다. 팽씨는 살해 동기로 김 의원을 들었다. 초동수사를 맡은 강서경찰서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어, 팽씨가 “김○○이 2010~2011년 사이 피해자(송씨)에게 5억여원을 빌린 후 이를 갚지 못하고 압박을 당하자, 2012년 말 경기도 부천 상동 소재 식당에서 김○○이 ‘(팽씨에게) 빌려준 돈 7000만원을 받지 않을 테니 피해자(송씨)를 살해해 달라’고 하자 이를 승낙”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 보도자료를 보면, 김 의원은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 “팽씨가 자신(김 의원)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받자, 돈을 훔치기 위해서 피해자(송씨)를 살해한 것이라고 짐작된다며 (김 의원은) 범행을 교사한 사실에 대해 일체 부인하고 있다”고 강서경찰서는 밝혔다.
3월 살해된 66살 부자 노인
살인교사 혐의 받는 시의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서울시의회에서 ‘저격수’ 활약
박원순 시장도 신랄히 비판했다
빚독촉 피하려 친구에게
살해 부탁했다는 수사 결과
대부분 간접증거에 기반
의원 재산신고 분석해보니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 모호
“제가 국장님보다 훨씬 잘 압니다”
경찰의 수사가 실체적 진실과 맞는다면, 팽씨는 김 의원에게 꾼 돈 “7000만원”과 “친구(김 의원)가 좋아서” 살해한 것이 된다. ‘빚’과 ‘의리’가 동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야심 많은 현직 시의원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미진하다. 강서경찰서의 언론 브리핑 내용을 종합하면, ‘김 의원이 송씨에게 5억2000만원을 빌렸는데 송이 (갚으라고) 압박을 한다’는 게 동기다. 경찰은 5억2000만원 차용증과 팽씨의 진술 등 간접증거가 많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은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 김 의원이 인정하는 사실은 ‘송씨와 알고 지내는 사이이며 술 등을 얻어 마셨다’ ‘팽씨와 아는 사이다’라는 두가지뿐이다. 그는 나머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묵비하고 있다. 벌써부터 법조인들 사이에서 살인교사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간 김형식’의 이력은 살인교사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김 의원의 삶은 486 출신 야당 정치인의 전형에 속한다.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자료를 보면, 1970년생인 김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강서구 근처에서 내내 살아온 서울 토박이다. 그는 1981년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신월초등학교를 졸업했고 1984년 양천구에 있는 신월중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엔 강서구의 화곡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 85학번인 김 의원의 형도 같은 화곡고를 다녔다. 1988년 지방의 한 공과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1990년 한신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김 의원은 학생운동을 했다. 1990년 민자당이 탄생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붕괴했다. 김 의원은 1993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민중민주(PD)로 분류되는 한국노동당 계열 학생운동 정파로 알려졌다. 1997년 대학을 졸업했다. 1997~1998년 정치광고업체 등 사기업에 다녔다고 전해진다.
김 의원의 삶은 1998년 크게 바뀐다. 그해 처음 국회에 인턴제도가 생겼다. 김 의원은 국회 인턴으로 1998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신기남 의원실에서 정치 경험을 시작했다. 2001년께 정식 보좌관이 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도 했다. 강서구갑 지역구의 신기남 의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강서갑 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2008년까지 내리 3선을 했다. 2008년 총선 때 낙선했으나 2012년 총선에서 다시 뽑혔다. 김 의원은 서른일곱의 나이에 2006년 5·31 지방선거에 강서1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2010년까지 무엇을 했는지 분명치 않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 다시 나와 처음으로 시의원에 당선됐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학생운동권 출신’임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한겨레>가 2010~2014년 김 의원이 소속된 도시관리위원회(나중에 도시계획관리위원회로 개명)의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모두 살폈다. 그는 2010년 7월22일 첫 상임위 회의 때 “백전불굴의 자세로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 의정활동을 펴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뒤인 2012년 2월14일 벌어진 도시관리위원회 회의에서 박 시장이 새로 임명한 시민단체 출신 특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제가 시민사회에 대해서 운동권에 대해서 국장님보다는 훨씬 잘 압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인 김형식’의 정력적인 활동도 살인교사 혐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저격수’였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인 2010년 6월~2011년 8월 상임위에서 “제2롯데월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영공방위의 중핵을 담당하고 있는 성남비행장의 ‘전시 및 그에 준하는 사태의 작전범위’를 절반으로 축소시키는 건축물”(2010년 8월10일 도시관리위원회 회의록)이라고 비판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뉴타운’ 사업도 강하게 비판했다.
회의록에 드러난 김 의원의 발언은 당당하고 거침없다. 같은 당 소속 박원순 시장이 2011년 10·26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에도 김 의원의 신랄한 비판과 정력적인 의정활동은 단연 눈에 띈다. 김 의원은 ‘도시농업’ ‘마을공동체 사업’ ‘광화문광장 수리신고제’ 등 박 시장의 대표 사업들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2012년 2월16일 도시관리위원회 회의 때 도시계획국장을 상대로 “유럽은 우리 서울처럼 과밀화된 도시가 없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일지라도 유휴토지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곳을 일단 활용한다든지 아니면 집의 옥상이라든지, 아파트 베란다, 이런 데를 활용한 도시농업을 하거나 아니면 주말농장 형식으로 도시민들이 외곽으로 나가면서 잠깐 할 수 있는 텃밭 가꾸기, 이런 것으로 도시농업을 해야지 아니, 도시의 가치 있는 한복판의 땅에 농사를 짓는다는 게 진짜 말이….(웃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다. 비아냥에 가깝다. 이후에도 여러번 도시농업 사업이 비현실적이라며 비판했다.
박 시장이 광화문광장 사용 방식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려한 조례에 대해서는 2012년 2월20일 도시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실효성의 문제에서 분명히 집회와 시위가 불가능한 곳”이라고 반대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서는 “시중에는 지금 마을만들기 사업이 재건축·재개발 안 하기로만 비춰지고 또한 우리 박원순 시장님 들어오셔서 재건축·재개발을 늦추고 안 하는 쪽으로만 정책을 쓰다 보면 주택 공급이 멈춰지고…”(2012년 6월4일 회의록)라고 발언하는 등 여러 차례 비판했다.
사진은 60대 재력가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팽아무개씨가 같은 날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뉴시스 |
지역구인 마곡지구 개발 집요하게 요구
박 시장이 당선 뒤 에스에이치(SH)공사에 부채 감축을 요구하자 서울시의회는 박 시장과 협의 없이 에스에이치공사 재정지원 조례를 만들어버렸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에스에이치공사 이종수 사장에게 “먼저 조례(재정지원 조례) 문제 관련해서 (서울)시에서 받은 눈총 내용은 알고 있고요. 그런 것에 굴하지 마시라고 우리가 민간 전문가를 영입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시정을 견제한 것이다.
김 의원은 유능했다. 어느 전직 민주당 당직자는 김 의원에 대해 “수완이 좋다”고 표현했다. 김 의원은 도시관리위원회에서 에스에이치공사의 부채 문제를 질의하다가 “국채보다 낮은 금리로 이런 사업비를 대줄 수 있는, 사회적으로 전혀 지탄받지 않는 그런 금융회사의 사업을 이런 쪽으로 소개시켜 드린다면 한번 설명을 받아보실 의향 있으십니까?”라고 에스에이치공사 사장에게 묻기도 했다. 자신의 지역구 사업인 마곡지구 개발에 대해 임기 4년 내내 집요하게 서울시에 요구하고 질의했다. 박 시장이 2011년 당선 직후 개발사업을 보류하자 “(마곡지구) 땅 다지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요. 빨리 진행시키세요”(2012년 2월14일 도시관리위원회 회의록)라고 요구했다.
강서경찰서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남부지검은, 이처럼 살인교사와 거리가 먼 김 의원의 행적 사이에서 교사 혐의를 입증해내야 한다. 김 의원 주변 정황이 모두 투명한 것만은 아니다. 그의 행적에는 ‘비밀’이 존재한다. 수사는 ‘비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언제, 어떤 계기로 팽아무개씨 및 송아무개씨를 알게 됐는지’ 묵비하고 있다. 송씨와 팽씨 둘 다 정치인이 알고 지내기에 부적절한 인물로 보인다. <한겨레>가 법원 안팎을 취재한 결과, 팽씨는 폭행 또는 살인 등의 전과는 없었지만, 중국에 한국 상품을 밀수출하는 밀수 범죄를 돕는 등 2008~2009년 여러건의 관세법 위반 혐의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강서경찰서는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팽씨의 형을 통해 김 의원이 보좌관 시절 처음으로 팽씨를 알게 됐다고 추측한다. 살해당한 송씨도 사문서위조 등 4건 이상 형사처벌을 받았고 수십건의 민사소송에 연루된 인물이다. 지역민 사이에 평이 좋지 않았다.
김 의원이 돈 때문에 살인을 교사했다는 경찰의 혐의도 보강 입증해야 한다. 그는 부잣집 출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김 의원은 “결혼한 지 13년인데 그동안 이사를 열두번 다니면서 아파트로만 이사를 다녔다”(2010년 8월11일 도시관리위원회 회의록)고 발언한 적이 있다.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불투명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한겨레>가 2010~2014년 관보에 나온 김 의원의 정기 재산변동신고 내역을 모두 분석해보니, 2011년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가 잘 드러나 있지 않았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 의원의 부인은 2011년 10월 말 5억7000만원을 주고 강서구 내발산동의 216.78㎡ 넓이 ㅎ아파트 1채를 구입했다. 그전에 주거하던 아파트 전세보증금이 2억2500만원이므로, 신규 아파트 구입자금 3억4500만원을 어디서 충당했는지가 재산신고 내역에 소명되어야 한다. 김 의원의 재산신고 내역을 분석하면,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김 의원의 부인 예금이 약 1억5000만원 줄어들고 김 의원 본인 예금이 4300여만원 증가한다. 2억1500여만원의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셈이다. 부모의 예금은 1000여만원만 변동했다. 은행 대출도 등기부에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의원의 정기 재산변동신고는 안전행정부 윤리담당관실이 담당하며, 시의원이 허위나 실수로 재산신고를 잘못했을 경우 법령에 따라 소명을 요구한다. <한겨레>가 10일 안행부 윤리담당관실에 “김 의원이 실수 등으로 재산신고를 잘못해 안행부에서 소명을 요구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개인정보”라며 답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재산 총액은 각각 ‘7억4315만원(2010년)→8억2160만4000원(2011년)→7억4041만7000원(2012년)→7억8197만4000원(2013년)→6억8619만7000원(2014년)’으로 변동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인터뷰 거절
김 의원이 팽씨와 주고받은 돈거래 내역도 불투명하다. 경찰은 팽씨가 김 의원에게 7000여만원을 빚졌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정상적으로 채권채무 관계를 신고했다면 재산신고 내역에 나온 7000만원이 팽씨에게 빌려준 빚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김 의원의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처음 당선된 2010년에 김 의원과 부인 명의로 각각 3500만원씩 총 7000만원의 ‘사인간 채권’이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2013년 재산신고에서 김 의원 부인이 3500만원의 채권을 회수했다고 신고한 내역이 눈에 띈다. 빚 절반을 2012~2013년 이미 돌려받은 것이다. 강서경찰서의 주장과 맞지 않는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말을 아낀다. 8대 서울시의원으로 강서구 1선거구에 당선된 새정치민주연합 이창섭 의원과 도시관리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한 보좌관 출신 새정치민주연합 박진형 의원 등 <한겨레>가 접촉한 다수의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의원, 강서구의원들은 거의 다 ‘김 의원과 송씨의 깊은 관계를 몰랐다’고 주장하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실체는 아직,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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