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비리 왜 반복되나
이유는 선거
민선 단체장 비리가 꼬리를 무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다. 비용이 많이 드는 선거 형태에 공천까지 겹쳐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단체장은 이런 상황에서 취임 초부터 뇌물 수수의 유혹에 허덕이고 결국 수렁에 빠진다.
대전 모 자치구 공무원은 “단체장 한번 하려면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등에 대한 로비 비용, 특별당비에 선거 비용까지, 법정 선거비보다 족히 2~3배는 들 텐데 이걸 어디서 빼겠냐”며 “선거에 거액을 쏟아부어 한푼이 아쉬운 단체장이 인허가, 관급공사, 승진 인사 등 가릴 게 뭐가 있느냐”고 귀띔했다. 인허가 특혜를 주는 대가로 건설업자에게서 ‘별장’ 등을 받고 2010년 봄 위조 여권으로 해외 도피까지 시도하다 구속된 민종기 전 충남 당진군수는 재판정에서 “선거를 준비하다 보니 물욕을 이기지 못했다”고 진술했었다. 대전의 또 다른 자치구 직원은 “낙선해도 다음 선거나 여생을 생각하면 단체장들이 재직 시 돈 모으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법으로 정한 선거 비용 제한액만 해도 인구 3만명이면 1억 6000만원 안팎에 이른다. 여론조사비와 사무실 임대료 등은 별도다. 충남 한 군의 공무원은 “작은 군이라도 단체장이 재선하려면 선거 때 최소 6억원 이상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단체장 비리는 지역을 불문하고 오십보백보”라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농어촌의 경우 군청에 부부 공무원이 3분의1은 되고, 한 다리 건너면 단체장과 혈연 등으로 얽히는 데다 형님 아우 하는 사이여서 서로 감싸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것도 단체장이 눈치 안 보고 비리를 저지르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런 폐단을 방지할 수 있는 선거공영제 확대 등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실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사가 쉽게 끼어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신 돈과 권세를 가진 지역 토호들이 적잖게 당선되는 것도 끝없는 비리의 악순환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음성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정당 시스템도 문제가 크다. 유능한 인재는 물론 주민도 선뜻 끼어들 수 없는 구조”라며 “주민들이 정당에 쉽게 참여해 인재를 고르고 선거를 도와주는 정당민주화 및 개방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 막판 곪아 터진 단체장 전횡
(서울신문 2013-10-18 1면)
민선 5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자치단체장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17일 정종해(66) 전남 보성군수와 부인, 중간 브로커 등 모두 40여명에 대해 대대적인 계좌 추적에 나섰다. 사무관 승진(대상)자 20여명 가운데 몇몇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정 군수는 최근 간부회의에서 “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업무에 충실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시청 안에 검찰 수사와 관련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직원들이 쉬쉬하면서 눈치만 보고 일손을 잡지 못하는 등 어수선한 상태다. 이번 내사는 사무관 승진에서 떨어진 군 직원이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내 순천지청으로 이송되면서 착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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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적과 내부 공무원의 제보 및 줄 대기가 시작됐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20년의 민선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제 없이 예산·인사권을 거머쥐고 황제처럼 군림하는 일부 단체장의 전횡이 막판에 곪아 터져 발가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비리 등에 연루된 민선 5기 단체장이 4기보다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공천과 선거가 다가올수록 단체장 비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북에서는 일찌감치 폭발했다. 황숙주 순창군수 등 현직 군수 5명이 뇌물 및 인사 비리로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완묵 전 임실군수는 건설업자에게 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8월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이 확정돼 군수직을 잃었다. 검찰 수사 중인 진안군의 한 직원은 “정파 간 다툼이 본격화되고 승진과 인사에서 불만을 품은 공무원의 내부 정보 제공과 줄 대기 조짐이 나타나면서 단체장 비리가 터지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단체장의 비리 무감각증은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비리를 양산하는 데도 한몫한다. 지난달 경남 고성군 간부 박모(58·4급)씨 등 공무원 2명이 관급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아 검찰에 구속되는 등 지자체 공무원 비리도 줄을 잇고 있다. 최남희 한국교통대 행정정보학과 교수는 “단체장 인사 비리가 자치단체 비리의 온상이다. 단체장 선거와 공무원의 승진 욕구가 맞아떨어져 비리가 더 판친다. 단체장이 비리를 주도하거나 부하 직원들의 비리를 묵인하고 (인사 특혜를 주고) 상납받는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다”면서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감사원 감사의 초점을 토착 비리에 맞추는 등 다양한 각도에서 감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진 순위 바뀌고 개발·인허가 비리 더러운 ‘머니게임’
(서울신문 2013-10-18 3면)
[풀뿌리가 썩고 있다-기초단체장 비리 대해부] (상) ‘먹이사슬’ 맨 위에 단체장 있다…시장·군수·구청장들의 비리 백태
‘사3 서5.’ ‘사5 서7.’ 인사철만 되면 자치단체 공무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떠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6급 주사에서 5급 사무관으로, 사무관에서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할 때 공무원이 제각기 단체장에게 바치는 뇌물 액수를 일컫는다. 잊힐 만하면 단체장 인사 비리가 터져 소문만이 아님을 입증한다. 액수도 사무관 승진 시 1000만~2000만원 하던 10년 전보다 커졌다. 단체장의 개발·인허가 관련 특혜나 금품 수수 행각도 여전하다. 지자체 비리의 중심에 단체장이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선거를 앞두고 단체장 비리가 더 기승을 부린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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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비리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것이 근무성적평정(근평) 조작이다. 감사원은 올해 초 지자체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5급인 박모씨가 박 구청장 취임 후 1년간 3차례 근평을 통해 근평 순위가 9위에서 4위로 뛴 뒤 2011년 말 4급 서기관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박 구청장의 직권남용 고발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당시 구청 안팎에서는 “성씨가 같아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 과정에서 박 구청장은 인사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당시 김모 도시국장을 대전시로 강제 전출시켰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김 국장은 행정소송을 통해 복귀해 중구에서 정년을 마칠 수 있었다.
서울 모 자치구 국장을 지낸 A씨는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다른 구로 전보됐다. 문제는 A씨와 맞트레이드돼 자기 구로 온 공무원이다. A씨는 “이 친구는 승진 서열이 한참 뒤처져 있었다. (상대 구청장이) 돈 좀 받고 서기관으로 승진시킨 뒤 말썽이 안 되게 다른 자치구로 보내려고 나와 맞바꾼 것으로 안다”면서 “나는 뇌물을 바치지 않았지만 국장 승진에 3000만~4000만원을 줘야 한다는 소문은 서울 자치구에서도 회자된다”고 털어놨다.
대전경찰청 정보과 직원은 “승진 서열을 무시하고 승진시켰다면 (금품 수수) 100%다. 아무리 친해도 공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병국 전 경북 경산시장은 2011년 7월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승진을 대가로 8000만원, 시 공무원 부인에게서 1000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최 전 시장 부인도 직원 승진과 관련해 금품을 따로 챙겼다.
단체장의 인허가 관련 금품 수수나 잇속 챙기기 행태도 볼썽사납다. 김학기 전 강원 동해시장은 지난 8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등이 확정돼 시장직을 잃었다. 김 전 시장은 이전 업체 대표와 입찰 업체 관계자에게 모두 9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그의 형도 민선 1, 2기 동해시장 역임 시 뇌물을 받아 2001년 시장직을 잃었다.
충북 진천군은 2011년 지역 영농조합이 사채를 빌릴 때 사채업자에게 군 명의로 영농조합 보조금 6억 7000만원에 대한 보증각서를 써 줬다. 이후 조합은 부도가 났고 군은 8억 4000여만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감사원은 유영훈 군수가 직원들에게 사채보증을 서도록 지시했다며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에서 담당 직원만 기소되고 유 군수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됐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 전 경산시장은 아파트 시행사로부터 상하수도 원인자 부담금을 20억원쯤 낮춰 주는 대가로 2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임각수 충북 괴산군수는 부인 명의의 칠성면 밭에 군비 2000만원을 들여 석축을 쌓아 거센 비난을 샀다. 문제가 커지자 임 군수는 사비를 털어 이 돈을 모두 토해 놓았지만 주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혈세를 자신의 자잘한 사익을 추구하는 데 쓰려고 단체장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비웃음을 피하기 어려웠다.
강희복 전 충남 아산시장은 2010년 6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김찬경(구속)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 소유의 골프장 증설 허가를 내주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농림지역을 골프장 증설이 가능한 계획관리지역으로 변경해 주면 엄청난 이익이 되니 충남도 기본계획에 반영해 추진하라”고 했지만 시장의 지시 아래 직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가결된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 강 전 시장은 “변경을 서두르라”고 부하 직원들에게 독촉했고, 계획안은 후임 시장 취임 8일 만에 보고조차 생략된 채 도에 신청돼 2011년 5월 계획관리지역으로 바뀌었다. 강 전 시장은 이 골프장 사업과 관련해 김 전 회장에게 1억 2000만원을 받아 지난해 8월 구속됐다.
금거북이? 고급 시계?…뭐니 뭐니 해도 ‘머니’
(서울신문 2013-10-18 3면)
뇌물 대세는 직접 건네준 현금
3년 전 서울 모 구청 6급 주사였던 50대 김모씨는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구청장 부인에게 몰래 10돈(37.5g)짜리 금거북이를 전달했다. 김씨는 “경쟁자가 한둘이 아닌 마당에 가만히 있으면 떨어질 것 같아 고민 끝에 부담이 덜한 금붙이를 구입했다”며 “사모님을 직접 찾아가 건넸는데 거부하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씨는 그해 사무관 승진을 하지 못했다. 바친 뇌물이 약소한 탓이라고 여겼다. 사무관 승진에 2000만원 안팎이 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근무성적평정이 좋게 나왔고 1년여가 지나 겨우 승진할 수 있었다.
김씨는 “6급에서 사무관으로 승진해 기초단체 공무원의 꽃인 과장이 되면 대우가 수십 가지 달라진다”고 말했다. 우선 매달 50만~60만원의 업무추진비(판공비)가 나온다. 월급도 늘어난다. 관할 지역이 좁지만 기관장인 동장이나 면장도 할 수 있다. 부하 직원이 3~5배 늘고 인허가 등에서의 권한도 훨씬 세진다. 죽어서도 제사 때 쓰는 지방(紙榜)의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附君神位)에서 학생 대신 ‘사무관’ 벼슬을 넣을 수 있는 호사도 누린다.
많은 공무원은 자기 단체장과 연결되는 속칭 ‘마담뚜’가 누구인지 꿰뚫고 있다. 그렇지만 단체장이 자기 고향 출신만 챙기는 지역색을 너무 드러낼 때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돈을 준다고 승진시켜 줄까” 하는 의심에서다. 고향이 다른 단체장이 당선돼 오면 맞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자치구로 달아나는 공무원이 적잖은 이유다.
승진 인사와 관련해 단체장에게 뇌물로 고급 시계 등을 준다는 얘기도 일부 있으나 가장 많이 건네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현금)’다. 그것도 계좌가 아닌 현금 직접 전달이 대세다. 업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전 자치구의 한 공무원은 “(비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현금을 받아 차명계좌에 넣어두는 게 ‘안전빵’이고 곧바로 선거비로 쓸 수 있는 것도 현금 아니냐”고 반문했다.
단체장 돈거래는 은밀하게…공무원들 줄서기는 치밀하게
(서울신문 2013-10-21 5면)
[풀뿌리가 썩고 있다-기초단체장 비리 대해부] <중>갈수록 영악해지는 인사 비리 수법
최병국 전 경북 경산시장은 단체장 ‘비리 백화점’의 전형을 보여 준다. 최 전 시장 비리로 2011년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살한 경산시 5급 공무원 김모씨는 지인에게 비리 관련 문건을 남겼다. 김씨는 문건에 “최 시장이 인사청탁이나 축의금 등의 명목으로 직원 4명으로부터 수천만원씩 받아 챙겼다”고 적었다. 외부 인사가 최 전 시장의 ‘마담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계장 두 명은 시장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자신들의 계좌에서 수천만원씩을 빼내 지급했다. 한 과장은 최 전 시장 자녀 결혼식 때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냈다. 최 전 시장은 당시 “고인이 사실과 다른 문건을 왜 남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발뺌했지만 같은 해 인사 등과 관련해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있다.
출판기념식과 같은 행사는 뇌물수수 기회로 악용되고 한다. 일부 부하 공무원이나 업자들이 책 구입조로 단체장 최측근에게 수천만원을 지불하고도 책은 인수하지 않는 방식이다. 충남 모 군청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승진서열을 무시한 파격 인사가 단행되면 뒷거래를 의심할 만하지만 물증을 잡기 어려워 결국 성명서 하나 내고 만다”고 혀를 찼다. 민선 초기만 해도 주로 단체장이 인사를 전후해 측근이나 자금관리인 등을 통해 금품을 수수했으나 최근에는 선거 때부터 재임 기간 내내 뭉칫돈 인사장사를 공공연하게 벌이고 있다. 단체장 가족까지 가세하면서 현금뿐 아니라 황금열쇠, 고급시계 등 귀중품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돈다.
매관매직이 판치다 보니 공무원들의 작전도 교묘해졌다. 선거 때부터 유력 후보에게 줄서기를 한다. 박빙 혼전일 경우 ‘분산투자’를 하기도 한다. 후보들에게 몰래 후원금 조로 선거운동비를 지원하거나 지·학·혈연을 동원해 표를 몰아주고, 당선되면 승진으로 보답받는 형태다. 일부 자치단체는 문제가 될 만한 인사 때 발탁인사 등 명분을 만들어 잡음을 피해 간다. 전북 부안군에서는 연공서열 명부를 없애버리고 다시 만들기도 했다. 서울 모 자치구 국장을 지낸 A씨는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큰 폭의 물갈이 인사가 뒤따르는 것도 사실상 돈거래가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단체장이 가족이나 측근 외에 간부 공무원을 통해 인사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사전에 이런 교류를 통해 서로 신뢰할 만한 단계로 발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주언 전 광주 서구청장이 2010년 총무국장을 통해 5급 승진 대상자 두 명으로부터 3000만원과 2000만원을 받았다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게 그 예다.
감사원과 안전행정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1995년 민선자치제 실시 뒤 비리로 기소된 자치단체장은 민선 1기 23명, 2기 60명, 3기 78명, 4기 119명 등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인사비리 연루자로 자치단체 공무원 비리까지 따지면 인사비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명석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가 민선 중반 때 전국 지자체 공무원 699명을 대상으로 벌인 인사비리 설문조사에서도 90.8%가 ‘심각하거나 조금이나마 존재한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은 ‘악화됐다’고 응답했었다. 감사원이 2011년 서울 자치구 등 전국 65개 자치단체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근무평정 조작 등을 통해 저질러진 인사비리가 모두 101건에 달했고 65개 지자체 중 49곳이 인사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체장 부인·측근이 뇌물수수 통로
(서울신문 2013-10-21 5면)
비서실장이 “얼마 준비하라” 귀띔… 단체장은 문제돼도 “몰랐다” 발뺌
자치단체장이 뇌물을 수수하는 주요 통로는 가족이나 비서실장 등 측근들이 대부분이다.
충남의 한 군 지역 공무원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인데 (단체장이) 믿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경북 기초단체장을 했던 A씨는 “인사단행 전 단체장 대신 최측근이 나서 대상 직원에게 ‘○○○만원을 준비하라’고 언질을 주고 그를 통해서만 받는다. 보안과 비밀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수법”이라고 귀띔했다. 문제가 돼도 단체장이 다치는 것을 피하려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다.
경기경찰청은 지난해 8월 김학규 용인시장의 부인과 아들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인은 2010년 지방선거 때 건설업자들로부터 1억 6000만원, 아들은 납품업자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둘 다 재판을 받고 있고, 아들은 지난달 법정 구속됐다. 경찰은 김 시장의 개입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밝혀내지 못했다.
최병국 전 경북 경산시장의 부인도 2011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인사 및 인허가 청탁과 함께 시 공무원과 아파트 시행사로부터 모두 6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부부를 구속하는 데 부담을 느껴 남편만 구속됐지만 주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고을 수장의 파렴치한 가족 범죄에 당혹스러워했다. 2007년 박희현 전남 해남군수의 부인을 기소한 검찰이 “군 직원들이 사전에 군수에게 인사 청탁을 한 뒤 부인에게 돈을 건넨 게 7건 중 5건”이라고 밝혀 단체장 부인이 뇌물수수 통로역학을 한 이력이 짧지 않음을 보여 준다.
단체장 측근 가운데 외부에서 데려온 비서실장이나 6급 상당의 정무직 등이 그 역할을 많이 한다. 송영선 전북 진안군수 비서실장이 9급 여직원 명의로 된 차명계좌에 7억여원을 관리한 정황이 포착돼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이 최근 군수실까지 압수수색한 것은 뇌물 가능성이 높은 이 자금이 군수와 무관치 않다는 의혹이 있음을 반영한다. 최 전 시장은 이례적으로 광고·출판·인쇄업자 B씨를 측근으로 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7월 구속된 B씨는 재판 과정에서 “시 공무원 두 명으로부터 사무관 승진 대가로 현금 5000만원과 1000만원이 든 쇼핑백 등을 받아 최 시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었다.
검찰 관계자는 “무직인 단체장 부인과 아들에게 뇌물을 건넨 것은 결국 인사권자인 단체장에게 준 것으로 공범 행위”라며 “과거 자치단체장들이 ‘아내가 돈 받은 것을 몰랐다’고 발뺌하면 부인이 죄를 뒤집어쓰던 관행이 통하지 않도록 정밀 수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돈 줘도 밀려”… 홧김에 자해·폭행까지
(서울신문 2013-10-21 5면)
승진 누락 공무원들 “억울해”
지난 7월 경북 청송군 기능직 공무원 이모(46)씨는 흉기로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이씨는 이날 인사부서를 찾아가 “동기들은 모두 승진했고 후배들도 많이 승진했는데 왜 나만 빠졌느냐”고 한 시간쯤 항의한 뒤 별 진전이 없자 홧김에 이 같은 일을 벌였다.
인사가 끝나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좌천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된 공무원과 가족들의 불평·불만이 봇물을 이룬다. 이씨처럼 일부는 억울함에 분을 삭이지 못해 자해와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자치단체에 만연한 인사비리와 무관치 않다는 게 직원들의 얘기다.
지난 7월 충북 증평군 군수실에서 한 공무원 부인이 소동을 벌였다. 남편이 사무관 승진에서 탈락한 게 원인이었다. 그는 “내 남편이 무슨 이유로 탈락했느냐”고 따지며 군수 면담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군수 명패를 집어던지고 여직원들과 몸싸움까지 했다. 부인은 경찰에 입건됐다.
2011년 9월 당시 서중현 대구 서구청장이 돌연 사퇴를 발표했다. 검찰 내사 때문이란 설이 파다했다. 구청장에게 돈을 건넸는데도 승진 인사에서 떨어진 한 직원이 술자리에서 불만을 터뜨린 게 검찰에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었다. 서 구청장은 부인했지만 의구심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부단체장을 폭행한 사건도 있다. 명목상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경북 영양군청 A(56) 과장은 읍내 한 술집에서 B부군수와 말다툼하다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B부군수는 10㎝ 이상 찢어져 28바늘을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았다. A과장은 5급 승진 뒤 장기간 승진하지 못해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지역 공무원들은 “인사비리가 관행화돼 승진하려면 줄 대기나 금품 제공밖에 없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승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고 억울함을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요직 발탁 등 과도한 챙기기 단체장 등에 업고 ‘호가호위’
(서울신문 2013-10-22 8면)
[풀뿌리가 썩고 있다-기초단체장 비리 대해부] (하) 운동권·시민단체 출신 단체장 측근들의 비리 백태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의 자치단체장이나 측근들도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개는 단체장이 직접 연루됐다기보다 측근들이 단체장 힘에 기대어 발호하는 ‘호가호위’ 형이다. 오랜기간 함께하면서 단체장의 당선에 기여한 대가로 요직에 발탁됐고, 평소 도덕성을 강조하는 이들이지만 현실에 물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긴긴 세월 궁핍하게 살다 ‘주군’ 당선의 대가로 물 좋은 보직을 받은 뒤 앞뒤를 잘못 가려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질에 어울리지 않는 완장을 찬 데서 나온 경우도 많다. 금전을 밝히는 정도가 구태보다 더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에 대한 추문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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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인 송영길 인천시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 항공기 일반석을 이용할 정도로 자신 관리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측근들이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등 잇따라 물의를 일으켜 스타일을 구겼다. 측근들의 이권 개입이 개인 비리 차원인지 선거용 포석인지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송 시장의 최측근에 해당되는 김효석(51) 인천시 서울사무소장은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건설사업과 관련, 대우건설 건설본부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5억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지난 15일 구속 기소됐다. 김 소장은 송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보좌관 출신으로 송 시장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서울사무소장으로 전보됐다. 인천시는 김 소장 구속에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시장과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선 경계하는 모습이다. 역시 송 시장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모 인천시체육회 간부도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공사에 대한 이권개입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송 시장은 당선 직후부터 과도한 측근 챙기기로 비판을 받아 왔다.
지난 8월 군수직을 잃은 강완묵 전 전북 임실군수도 운동권 출신이다. 20여년 동안 군농민회 회장,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부의장 등을 지냈다. 강 전 군수는 2010년 5월 측근 방모(41)씨를 통해 업자로부터 84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초대 군수부터 전부 줄줄이 사법처리돼 임실군에 붙은 ‘군수의 무덤’ 속에 강 전 군수마저 빠지면서 운동권 출신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줬다. 강 전 군수는 이미 2007년 건설업자에게 공무원 인사권과 사업권 일부를 보장하는 각서를 쓴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재산신고 때 ‘마이너스’ 재산을 신고해 주민들이 큰 기대를 했지만 군수 스스로 이를 저버린 것이다.
386세대 운동권 출신인 정현태 경남 남해군수는 부인의 뇌물사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부인 송모씨는 한 영농법인 대표로부터 18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807만원이 확정됐다. 정 군수와 직접 연관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는 일종의 ‘베갯밑 공사(公事)’ 아니겠냐며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경기도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 공조로 당선된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이 골수(?) 운동권인 진보통합당 관계자 등을 시 산하기관 책임자에 앉힌 사실이 드러나 구설수에 올랐다. 전리품을 선거 공로자들에게 나눠 주는 것은 여야를 떠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권의 공격 대상이 됐다.
특히 고양시는 선거 때 최성 시장을 지지한 시민단체 2곳에 구산동 한강변 하천부지 4만 6000㎡ 등에 대해 불법으로 점용 허가를 내줘 물의를 일으켰다. 더욱이 이 중 한 단체는 점용 허가를 받은 하천부지 중 1만 5000여㎡를 야권 시의원의 소개를 받은 민간인에게 경작하도록 해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빚었다.
‘뇌물수수 차단’ 전문가 해법은
(서울신문 2013-10-22 8면)
“민선체제 정치자금으로 치부…모럴해저드 심각, 시장·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등 직선제 손질해야”
민선 자치단체장 체제 이후 단체장 및 측근들의 뇌물수수가 횡행하는 것은 예견된 ‘재앙’이다. 선거를 치르려면 많은 돈이 드는 현실에서 단체장이나 측근들이 공무원 인사나 이권에 개입해 자금을 챙기고 자리를 챙겨 주는 커넥션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는 양쪽 모두에게 편리한(?) 측면이 있다. 실력 없는 공직자들은 뒷돈으로 자리를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정상적으로 사업권을 따낼 수 없는 업자들도 뇌물만큼 확실한 수단이 없을 것이다. 지자체장 또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없고 공천 헌금이 드는 점 등을 들어 금품수수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경향마저 있다. 이래서 지방행정을 어지럽히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과거 관선 체제에서는 청탁을 대가로 오가는 돈이 뇌물이라는 것을 자타가 부인할 수 없었지만, 민선 이후에는 선거자금으로 희석되고 있다. 똑같은 사안이지만 민선 체제에서는 불가피한 정치자금로 치부되기에 죄의식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권경주 건양대 교수는 “일본의 지방자치제가 정착되는 데 15년 이상 걸린 점으로 미뤄 우리도 차차 안정될 것으로 봤는데 단체장 불·탈법은 전혀 나아지는 게 없다”면서 “수많은 단체장과 측근들이 사법처리됐음에도 학습효과가 그토록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다. 대안으로 법정 선거비용 축소,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배제, 선거사범 처벌 강화 등이 거론되지만 정치권이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촌지 수수가 관행화된 교육계에 교육감 직선으로 정치자금 개념이 생겨난 데다 교육행정을 놓고 자치단체와 충돌하는 일이 빈발해 직선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은 “시장과 교육감이 각각 직선제로 선출돼 서로 연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보다는 여러 측면에서 비효율과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학교를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지만 단체장은 학교에 개입할 수가 없어 행정을 펴나가는 데 문제가 많다”며 “현행 교육자치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시장·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단체장 임명제, 단체장 임명 후 의회 동의 선출 등 다양한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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