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서울' 길에서만 6시간…길바닥 행정 현주소
[길바닥 위의 공무원들-세종/서울 '기형 행정' 이대론 안된다①-1]
#지난 18일 오전 6시30분 오송 KTX역.
어림잡아 100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전날 세종청사에서 국정감사를 받은 기재부 공무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울행 KTX에 몰을 싣는다. 이튿째 국감 장소가 국회인 탓에 서둘러 올라간다.
같은 시간, 청사 앞에는 대형버스 3대가 기재부 공무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의 인원 외에 모두 국회로 향한다.
정부가 예산 5억원을 들여 만들어 놓은 국회 전용 회의장은 쓰지 않은 채 서울 국회로 간다. 이날 기재부 국감이 끝난 시간은 자정을 넘긴 0시44분.
기재부는 하루 동안 텅 비어 있었다. 사실상 '셧 다운'이다. 국정을 감사한다는 국회가 국정의 공백을 생산한 셈이다.
국감 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세종청사에선 흔한 일상이다. 실·국장과 주요 과장은 청사를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경제부처 A국장의 평범한 하루를 보자.
새벽 5시30분 눈을 떴다. 6시25분 세종행 출근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정류장이 가깝긴 하지만 여유부릴 상황은 아니다. 버스에 몸을 던진 채 이내 눈을 감는다. 오늘은 서울 일정이 없다. 세종청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챙기고 국 내 사무관들과 회의도 할 생각이다.
undefined ![]() ![]() |
1시간30분 남짓을 달린 버스는 8시10분 청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의 산뜻함보다는 장시간 버스 이동에 따른 피곤함이 크다. 간단한 회의를 마친 뒤 서류를 읽고 있는데 과장 한명이 급한 보고를 들고 들어온다. 서울에서 오후 1시30분 회의가 잡혔다는 내용이다. 끝나면 국회에도 들러야 한단다.
회의에 맞추려면 늦어도 11시43분 기차는 타야 한다. 11시10분엔 청사를 나서야 가능하다. 점심은 기차에서 해결해야 한다. 국 직원과 점심은 '또' 연기했다.
12시30분 서울역에 내려 햄버거집으로 향한다. 짧은 점심식사의 동반자는 노트북이다. '스마트폰' 등 신기종은 아직 보안에 취약해 업무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 입은 햄버거를, 눈은 자료를 먹는다.
광화문 중앙청사 회의가 끝난 시간이 오후 3시.
국회 약속은 4시30분인데 청사엔 머무를 곳이 없다. 여의도로 향하는 게 낫다. 지하철에서도 노트북을 열어 메일을 확인한 뒤 전화로 간단한 지시를 한다. 여의도에 도착하면 머뭇거림없이 커피전문점으로 간다. 사무실보다 더 익숙한 곳이다. 몇 개월간의 경험상 S커피전문점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좌석이 넉넉하고 무엇보다 전원콘센트가 많아서다. 커피값이나 맛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
한 시간만에 국회 일정이 끝났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 다시 광화문 커피전문점으로 향한다. 이 시각은 부총리는 예금보험공사 집무실에, 1차관은 은행회관에 있다. 2차관은 국회에서 협의중이고 차관보는 서울청사에서 회의중이다. 일부는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이라고 한다.
A국장은 이날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중 6시간 30분을 거리에서 보냈다. 출근한 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 것은 세종청사 3시간이 전부다. 나머지는 '길바닥'과 '커피전문점'에서 보냈다.
국가가 중앙부처 공무원에서 강제한 시스템이 만든 현상이다.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행정은 '분산' '분리'됐다.
undefined ![]() ![]() |
중앙부처만 보면 대한민국의 행정은 서울, 과천, 세종, 대전 등 네 집 살림이다. 행정은 각종 회의를 중심으로 굴러가는데 모든 회의가 서울 청사에 집중된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새정부 출범 후 9월16일까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국무조정 1·2차장이 주재한 회의 109회중 88.1%인 96회가 서울청사에서 열렸다.
정홍원 총리가 주재한 49회 회의중 44회가 서울에서 열렸고 세종청사 회의는 단 한번에 불과했다. 4회는 영상회의로 진행됐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주재하는 회의도 모두 서울에서 열린다. 국무회의(화요일), 경제관계장관회의(수요일), 대외경제장관회의(목요일), 국가정책조정회의(금요일) 등 주 4회는 기본적으로 서울 회의가 있다.
가장 '높은' 부서인 총리실과 기획재정부를 세종청사에 두면 회의가 분산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경제부처 한 국장은 "아주 기본적인 업무인 회의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곳에 쏟은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게 서울 중심으로 굴러가다보니 총리실과 기재부는 오히려 서울청사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셋방살이를 한다.
정 총리는 서울청사, 현 부총리는 예금보험공사 집무실이 더 익숙하다. 서울에라도 한데 모여 있으면 그나마 비효율성 속 작은 효율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의 경우 기재부 차관은 서울청사나 은행회관, 1급들은 서울청사와 국회 등에 흩어져 있다. 현 부총리가 급하게 고위간부 회의를 하려 해도 쉽지 않다. 전직 관료는 미국의 연방정부 폐쇄를 언급하며 "우리나라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다 길바닥에 있는 게 그게 바로 셧다운"이라고 비꼬았다.
회의를 준비하고 사전 협의해야 하는 국·과장들은 아예 있을 곳이 없다. 서울 시내 커피전문점에 자리잡고 서울과 세종을 연락한다. 지시를 정리해 전달하고 세종청사 사무관들의 보고서를 받아 손을 본 뒤 보고한다. 토론이나 다각도의 접근은 기대하기 힘들다. 사무실에선 다른 과장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남들 다 듣는 커피에서 전화기에 대고 국정 현안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부처 다른 국장은 "하루하루 넘긴다는 느낌일 뿐"이라며 "혹여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못 챙기고 있는지 불안불안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중앙부처 국·국장이라면 부처의 중심을 잡고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할 위치인데 지금은 대부분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기차와 버스, 지하철 그리고 커피전문점에서 보내야 한다"며 "시간 낭비나 출장비보다 보이지 않는 손실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세종청사의 사무관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전화로 지시받다보니 답안지 제출에만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함께 정책을 고민할 여유도, 과거 경험이나 방식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 세종청사에 내려온 고참 사무관은 "함께 부닥치면 일하는 게 갈수록 줄어든다"며 "국·과장한테 배우는 게 많은데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진퍼가기 이용안내 |
undefined ![]() ![]() |
또 하나 비효율의 극치는 국회 관련 업무다. 국회가 호출하면 하루가 꼬박 소요된다. 이번 국정감사가 대표적이다. 수시로, 불시에 벌어지는 국회 일정도 다반사다.
법안 설명을 위해 의원마다 찾아 다니다 보니 같은 사안을 갖고 1주일 내내 국회를 찾는 사례가 적잖다. 한 서기관은 "A의원실에 한시간 설명하고 그 다음날 B의원실에 한시간 설명하는 식"이라며 "세종청사에서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효율의 개선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스마트 워크센터나 영상회의 등 인프라·시스템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이에 대해 한 고위공무원은 "스마트워크센터 등은 세종청사가 아니라 과천청사에 있었어도 마련했어야 할 업무 보조 시스템이다"며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연말 2단계 부처 이전이 완료되면 힘의 균형추가 옮겨올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국회와 청와대 등의 이전 없이는 비효율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행정의 중심인 청와대와 국회가 오지 않은 한 세종시가 '행정중심'이 되긴 어렵다는 얘기다.
"낮엔 차(車)관, 밤엔 장(莊)관" 세종시 공무원의 비애
( 머니투데이 2013.10.22 05:55)
[길바닥 위의 공무원들-세종/서울 '기형 행정' 이대론 안된다①-2]
![]() |
"텅 빈 어두운 방에 혼자 누워있으면 이게 뭐하는 짓인지라는 생각이…"(경제부처 A국장)
"서울 일정이 늦게 끝나 찜질방에서 잠 잔 뒤 세종행 출근버스타는 심경이…"(경제부처 B과장)
세종청사 시대는 공무원 일상을 뒤바꿔버렸다. 세종시에 이주를 했건 그렇지 않건 '두 집 살림'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의 모습은 애처롭다.
중앙부처 국·과장들은 대부분 원룸 생활이다. 자녀 교육 등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인근 대전, 오송, 조치원 등에 작은 방 하나를 구해 생활한다.
또 하나의 생활 터전이지만 자주 들르지 못한다. 서울 일정이 많은 국·과장들은 원룸에서 잠자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본 날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울로 간다. 그렇다보니 원룸은 거의 빈집이다.
A국장은 오랜만에 원룸에 들렀다. 현관 앞에 각종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있다. 냉장고를 여니 음식물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TV를 따로 놓지 않아 마땅히 할 게 없다. 스마트폰을 좀 보다 잠자리에 든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런 생활 하려고 고시 쳐서 공무원 됐나"하는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런 우울함보다는 차타고 이동하는 피곤함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undefined ![]() ![]() |
제법 적응을 잘 하는 C국장도 속내는 비슷하다. 야근을 한 뒤 원룸에 들어오는 길에 늦은 식사를 해치웠다. 소주 한 잔 하자고 할 사람이 죄다 서울에 있다. 밤 9시를 넘긴 시간, 와이셔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여유 있을 때 다려놔야 생활이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또 되뇌인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경제부처 B 과장은 가족이 모두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다 특별분양을 받은 집이 있어서다. 서울 출·퇴근의 고단함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도 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울 일정을 소화하느라 더 힘들다. 하루건너하루 '서울 출장'이다.
당일치기 거리지만 쉽지 않다. 새벽 회의를 챙기러 전날 서울로 올라가기도 한다. 친척집에 하룻밤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이젠 염치가 없다. 밤 일정이 길어지면 다들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멍 하니 서 있어야 한다.
찜질방에서 토막잠을 잔 뒤 세종시 출근 버스를 탄다. 모텔의 경우 하루 투숙을 잘 받아주지 않아 2~3명이 자면서 웃돈을 줘야 가능하다.
정부 시책에 맞춰 세종시 이주를 했는데 정작 찜질방과 여관을 전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낮엔 차관, 밤엔 장관'이라고 자조한다. 차관(車官)은 낮에 차로 이동하며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을, 장관(莊官)은 밤에 여관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그래서 다시 '서울행'을 고민하는 이들이 적잖다. '서울 출장'보다는 '세종 출장'을 택하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다.
세종시 부처 국감도 서울서 "5억짜리 회의장 놔두고"
(머니투데이 2013.10.22 05:58)
[길바닥 위의 공무원들-세종/서울 '기형 행정' 이대론 안된다①-3]
![]() ![]() |
5억원을 들여 만든 세종청사 국회상임위 회의장 모습. 국회 상임위회의장과 동일한 구조로 설치됐으며, 의사중계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회의 상황을 인터넷과 국회방송으로 중계도 가능하다. |
안전행정부는 이달 초 국회 요구에 5억원 예산을 투입해 정부세종청사 내 국회 상임위 회의장을 지었다. 세종청사 원년을 맞아 세종에서 열릴 국정감사에 대한 공무원들과 지역의 관심이 컸다.
그러나 정작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감은 20일 기간 중 3일에 불과했다. 상임위 회의장에서 열린 국감은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과 해양수산부 등 두 번뿐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은 아예 국회에서 진행하는가 하면 기재부 국감은 하루는 세종, 하루는 국회에서 하는 기형적인 행태가 연출됐다.
'거리'를 이유로 한 국회의 이런 입장은 해외 국감을 대하는 태도와는 대조적이다.이번 국감에서 정무위는 영국, 독일, 중국 등 한국 금융기관의 해외지점을 방문하기로 의결까지 마쳤다. 기간도 21일부터 1주일이나 잡아놓았지만 동양그룹 사태에 대한 당국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슬그머니 일정을 취소했다.
세종에서 열린 국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충분했다.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들은 국토부 국감 첫날(14일) 오후 11시를 넘길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날은 '귀경'에 집중해 오후 7시30분이 채 되지 않아 종료했다. 해수부는 단 하루뿐이었지만 역시 7시를 전후해 서둘러 끝냈다.
같은 정무위 국감이었지만 세종과 서울은 너무 달랐다. 15일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 국감은 서울행 KTX 시간표에 맞춰 8시가 되기 전 일정을 마친 반면 국회에선 식사시간을 넉넉히 늘려가며 오후 11시께 끝났다.
국회는 세종청사 주변 편의시설 부족을 이유로 위원회별 일정을 하루씩 더 늘리기도 했다. 피감기관에서 국감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세종청사는 그렇지 못하다.
'슈퍼 갑' 국회는 세종청사 공무원들을 옆집 사람 부르듯 틈나는 대로 서울로 불러올린다. 정부 업무 비효율은 별 관심이 없다는 식이다.
국감 기간 뿐 아니라 1년 내내 공무원들은 국회를 상대하기 위해 서울과 세종 청사를 오가야 한다.
국회도 서울과 세종의 거리감만큼이나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올해 말 2단계 부처 이동 이후에는 '국회발 비효율'은 더 확대·심화될 수 밖에 없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국감을 시작으로 세종과의 지리적·심리적 간극을 좁히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부딪히고 보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며 "효율만 보면 국회가 세종으로 내려가는 게 맞지만 여야 모두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세종이전' D-50...비효율·불편 대책없이 "일단 GO"
(머니투데이 2013.10.24 08:10)
[길바닥 위의 공무원들-세종/서울 '기형 행정' 이대론 안된다②-1]
![]() ![]() |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말 제2차 국가 철도망 계획에 'KTX 세종역' 신설에 관한 연구용역을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했다. 하반기 나올 예정이던 보고서는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고 있다.
이전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건설에 발맞춰 교통인프라의 핵심으로 오송역을 세우면서 행복도시 내 KTX역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KTX역 건설로 서울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이 출퇴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이들이 행복도시로 이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KTX 세종역을 다시 얘기하고 있다. 한 정부 고위 공무원은 "부산 센텀시티가 쇼핑하기 좋고 주변 환경이 우수해 서울 사람들이 KTX를 타고 부산을 자주 찾는다"며 "고속열차 인프라가 지역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KTX 세종역'은 행복도시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획은 그럴듯하지만 여전히 미완이며 정치적 이해타산에 의해 언제든 수정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부부처 2단계 이전이 'D-50'(24일)으로 임박했다. 행복도시의 기능이 강화될 거라는 기대보다는 행정 비능률 확대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이전 대상 공무원들은 악화될 삶의 질을 걱정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국가보훈처 등 6개 부처가 2차 이전 대상이다. 거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경제 부처라는 큰 틀에서는 이전하는 게 맞지만 결정권을 갖고 있는 안전행정부조차 어정쩡한 입장이다.
'행복도시 특별법'에는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여성가족부 등만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다. 외교통일 관련 업무는 세종보다는 서울이 좋겠다는 논리였다. 안행부는 지원부서로서 서울에 남는다는 이유지만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은 부처 이기주의와 막후 파워게임의 결과라는게 공무원들의 공감대이다.
법대로만 보면 미래부는 이전 대상이 맞다. 그러나 당정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표, 수도권표(과천)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 위에 정치 논리가 자리 잡은 전형적인 사례다.
2단계 이주 시점을 내년 초로 미뤘다가 지역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원안으로 돌아간 것도 비슷한 사례다. 갈피를 잡지 못하다보니 정부 운영에 관한 원칙과 철학이 없다는 매서운 비판을 받는다.
여기저기 분산된 정부 효율은 국회와 세종청사만큼이나 떨어진다. 취득세 영구인하만 봐도 그렇다. 취득세를 인하해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자는 국토교통부와 취득세 인하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할 지자체 입장을 대변하는 안행부, 국세로 지방세를 보전해줘야 하는 기획재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지난 8월 세종청사에서 취득세 영구인하 방침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이때 서울에서 안행부 공무원들이 내려왔다. 이후 논의는 대부분 서울에서 이뤄지고 있다. 세종청사 내 공무원들이 국회와 안행부를 오가는 식이다.
'세종정부'의 비효율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어떻게든 세종으로 이전하지 않으려는 부처들과 공무원들이 있는 한 정부의 진일보한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서울과 과천, 세종으로 찢어지기까지 이를 방조한 정부가 정책의 비효율을 얘기하는 건 넌센스이다.
세종청사 내 한 부처 공무원은 "정부조차 행정효율을 외면하면서 국회에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세종으로 이원화된 기형정부가 계속되는 한 공무원과 국민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과거 외교통상부의 통상 부문 공무원이나 교육과학부의 과학 부문 공무원들이 '날벼락' 맞듯 세종으로 내려오는 일이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을 믿지 못하는 공무원들은 온전히 세종으로 이전할 수가 없다. 사정이 이런대도 이전 대상 공무원들에게는 일단 짐부터 싸라고 한다. 좌충우돌식 부처이전이 반복되는 한 지역균형 발전 취지는 사라지고 지역 경제 혼란만 초래할 게 뻔하다.
불확실성은 세금낭비로 이어진다. 공무원들이 근무할 청사건설이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행복도시 건설청에 따르면 6개 부처 이전까지 50일을 앞두고 2단계 청사 건설 공사는 공정률 92% 수준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모두 4800명의 공무원이 업무를 볼 공간이다. 언제든 세종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래부 공무원이 800명이다. 2단계 청사에서 이들이 생활할 공간은 없다.
3단계 청사 건설도 마찬가지다. 1단계와 2단계 청사를 이어주는 3단계 청사(7,8동)에는 법제처와 국민권익위원회 이외에 인원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별도 건물로 마련되는 국세청 청사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래부가 이전한다고 하면 계획에 없던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예산도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규모에 따라 연간 재정 운영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전 한국주택토지공사(LH)는 행복도시 내 7만5000㎡ 면적의 부지를 새로 매입했다. LH는 아직도 공공청사를 건설할 땅을 사들이고 있다. LH가 땅을 사들이고 터를 닦으면 정부가 LH로부터 땅을 매입해 건물을 만드는 순서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공공청사 부지는 모두 59만6000㎡. 이중 건물을 올릴 땅 면적은 41만2000㎡다. 계획 이외에 여유 땅이 18만㎡가 넘는다. 정부 부처들이 온전히 세종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예산낭비는 '미래진행형'이다.
김광구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눠져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며 "정부 공무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구상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건 또 하나의 비효율"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서울서 일하는데, 세종에 집 구할 필요없죠"
(머니투데이 2013.10.24 08:11)
[길바닥 위의 공무원들-세종/서울 '기형 행정' 이대론 안된다②-2]
![]() ![]() |
오는 12월13일부터 3주에 걸쳐 과천청사에서 세종청사로 이주하는 산업부 공무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세종시와 인근에 아파트 분양을 받아 집을 마련한 공무원들은 문제 없지만, 출퇴근을 하거나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한 공무원들은 걱정이 많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현재 세종청사에 둥지를 튼 부처는 국무총리실과 기재부, 국토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공정위원회 등 7개이고 올 연말 산업부와 고용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등 6개 부처가 2차로 내려간다.
산업부는 청사이전에 앞서 지난 9월 이주문제와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산업부 공무원 5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대상 1/3에 해당하는 171명(33%)이 '서울에서 세종으로 출퇴근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이주했거나 추후 세종으로 이주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공무원은 374명이었는데, 이중 아파트 분양을 받은 사람은 93명이었고 전세 130명, 월세 102명, 기타 49명이었다. 특히 본인만 이주하는 사람은 192명에 달했고, 가족전체가 가는 사람은 93명에 불과했다. 설문을 진행한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설문 결과를 보고 "출퇴근 응답자가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출퇴근 공무원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사무실과 책상만 세종으로 이전하는거지 사실상 서울에서 업무가 많이 이뤄지기 때문. 산업부는 부처 특성상 기업과 해외 투자가들을 상대로한 회의나 행사 등이 잦다. 장·차관은 물론 실·국장들이 통상 일주일에 소화해야하는 조찬과 각종 세미나는 줄잡아 30~40건에 달한다. 윤상직 장관은 일주일 내내 서울의 호텔에서 조찬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사엔 담당 과장과 사무관 등도 가야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살다시피 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많다는 거다. 간부들이 외부일정이 많은 탓에 일요일에 실시하는 1급 회의도 출퇴근 공무원들을 감안, 주중으로 옮겨야할 처지에 놓였다.
특히 통상업무가 산업부로 이관됐기 때문에 통상 관련 공무원들은 서울에 있는 외교부 공무원들이나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수시로 회의를 하고 저녁모임도 가져야 한다. 역시 서울에서 주로 업무가 이뤄져, 세종에서 일하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고 업무는 비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출퇴근을 결정한 직원들은 장거리 출퇴근으로 피로누적과 업무능률 저하를 지적한다. 출퇴근을 결정한 B과장은 "출퇴근 직원들은 야근이 어렵기 때문에 세종시 이주직원들은 업무량이 자신들에게 편중될까 걱정하고 있다"며 "직원간 갈등도 무시못할 변수다"고 말했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산업부는 실물경제 정책을 다루다보니 기업들을 비롯해 투자자들을 수시로 만나야하는데, 아무래도 서울에서 업무가 많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세종에 내려가 있는 기재부나 다른 부처보다 서울 출장이 훨씬 잦을 것이기 때문에 집을 구하기 보다 출퇴근을 선택한 공무원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연말에 내려가는 고용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노사문제 등을 다루고 고용정책을 펼치기 위해 기업 관계자와 수시로 회의가 잡히는 고용부 직원들도 불만을 쏟아낸다. 취업 관련 세미나나 포럼 등 각종 행사가 기업들 주도로 주로 서울에서 열리는 탓에 방하남 고용부 장관과 정현옥 차관은 주로 서울에서 업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국장급 이상은 대부분 출퇴근하거나 원룸을 얻어서 생활하고, 과장급 일부와 사무관들은 세종에 집을 얻어서 생활하는 것으로 안다"며 "간부들의 서울 출장이 잦을 경우 업무 공백이 심해지는 등 비효율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로 아내 돌려 보낸 세종시 공무원
(머니투데이 2013.10.24 08:12)
'공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총리 “순번 승진 없어야” 능력·기여 따라 발탁 강조 (서울신문 2013-10-18 11면) (0) | 2013.12.14 |
---|---|
7급 → 5급 승진하려면 교육부 21년, 기재부 9년 (서울신문 2013-10-17) (0) | 2013.12.14 |
그들은 쉰 나이에 9급 공무원이 됐다 (중앙일보 2013.09.19 00:01) (0) | 2013.09.19 |
타 부처·기관 근무경력 있어야 고위공무원 승진 가능 (한국경제 2013-09-01 14:46:36) (0) | 2013.09.19 |
정부기관, 서기관급 이상 4000명 명부 공개 (경향신문 2013-09-19 12:49:36) (0) | 2013.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