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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고시 합격女, 고시촌 못 떠나… 왜? (경향신문 2012-03-13 12:08:56)

고시 합격女, 고시촌 못 떠나… 왜?

ㆍ전세금·식대 부담 적어… 직장인·신혼은 되레 늘어

몇년 전
행정고시에 합격해 정부 부처에서 근무 중인 ㄱ씨(28)는 여전히 고시공부를 할 때 지내던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인근 원룸에서 살고 있다.

취업 후 달라진 것은 월 30만원이던 원룸에서 4500만원짜리 전세로 옮겼다는 점뿐이다. 전세금은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마련한 것이라 고스란히 빚이다. 전세 기한도 1년짜리다.

ㄱ씨의 자취 이력은 대학시절부터 10여년째다. 그는 “서울에서 4500만원에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비록 빚으로 전세를 살고 있지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고시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 동네는 집값뿐 아니라 밥값이나 미장원 등 물가도 싸다”며 “집값과 물가 때문에 다른 동네로
이사해 살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행정고시) 동기 15명 중 10명은 고시에 붙은 뒤에도 신림·봉천동에서 살고 있다”면서 “이른바 ‘고시촌’ 거주자도 3명”이라고 했다. 그는 이사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11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고시촌)의 한 골목길에서 행인이 담장에 붙어 있는 고시원과 원룸 전단지를 보며 걷고 있다.

서울 관악구 대학·신림동 일대는 고시공부를 하는 수험생학원들이 즐비해 ‘고시촌’으로 불린다. 대부분 수험생들은 합격의 기쁨과 함께 고시촌을 나가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합격해도 고시촌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치솟는 물가와 더불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전·월세가격 때문이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고시생은 줄었지만 대학 졸업과 취업 후에도 계속 이곳에 거주하는 고시촌 생활자는 더 늘었다.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는 신혼부부들까지 고시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골목바람’ 조희재 대표는 “신림동의 700여개 원룸에 사는 사람 중 직장인과 학생의 비율이 60 대 40 정도로 직장인이 더 많다”고 밝혔다.

고시촌의 가장 큰 장점은 싼 물가다. 신림역과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45만원 선에서 화장실과 취사시설을 갖춘 방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고시촌으로 불리는 녹두거리는 그보다 월세가 5만~10만원가량 더 싸다. 2500~3000원이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분식집, 고시식당, 짜장면집 등이 제법 남아 있다.

대학동의 한 카페 주인은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 값이 1500원”이라며 “여기가 아마 서울에서 가장 커피값이 싼 지역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싸긴 하지만 최근 고시촌 주변 물가도 많이 올랐다. 집 주인들도 현금을 원하기 때문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보증금 없이 월세를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년에 제대한 대학생 배모씨(26)는 “군대 가기 전과 비교해보니 고시생들이 빠져나가 손쉽게 빈 방을 찾았지만, 전반적으로 전세 보증금을 올려받지 않는 대신 매달 내야 하는 월세 부담이 늘어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