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여의도│국회의원이 책을 내는 이유] 공개탈세·불법자금 통로된 출판기념회
신고없이 현금거래, 정치자금으로 지출 … "책이라도 잘 만들라" 질책도
"지역구 사무소는 지방이야 저렴할지 몰라도 대도시나 경기지역이면 월세가 수백만 원이다. 지역구 경조사 중 조문만 챙긴다. 선거법상 부의금을 내지 못하게 돼 있지만 그럴 수 없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낸다. 지역구 도와주는 사람들 만나면 누가 밥값을 내나. 이것도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정치자금으로 못 낸다. 내 이름으로도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값을 치르게 한다. 기자들과 밥 먹으면 누가 돈을 내나. 의정보고서, 세미나비용 부족분도 메워야 한다." 지역구가 수도권인 모 재선 의원이 쉼 없이 토해냈다. 이번엔 수입부문이다. "세비가 세후로 1억 원이 조금 넘는다. 한 푼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선거법상 1년에 받을 수 있는 정치후원금이 1억5000만원이지만 이를 다 채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후원금은 쓸 항목이 크게 제한돼 있고 증빙자료도 필요하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 것은 위험이 너무 커졌다. 나는 아직 변호사사무실이라도 있어 괜찮지만 이마저 없는 초선의원들은 죽을 맛이다. 물론 내년부터는 겸직도 안돼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출판기념회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속살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최근에 출판기념회를 했고 문전성시를 이뤘다.
◆공개된 탈세·탈법 = 최근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여는 도서관이나 의원회관 앞이 시끌벅적하다. 상임위 관련 기관장들의 까만 승용차가 줄을 섰다. 얼굴 도장 찍으러 온 사람들 태반이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저승사자'에 밉보여선 곤란하다. 동료 국회의원들도 품앗이 참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장외투쟁으로 서울시청앞 막사에 있던 김한길 민주당 대표마저 자주 눈에 띌 정도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행사장 입구엔 작은 상자가 놓여있다. 그 뒤엔 신간이 자리하고 있다. 줄을 서서 책을 집어들면서 봉투를 꺼낸다. 책값은 봉투에 들어있다. 액수는 확인되지 않는다. 봉투는 그대로 상자 안으로 들어가 쌓인다. 책 한 권이 1만5000원인지, 2만5000원인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봉투에 들어가 있는 액수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의원은 1억 원 이상을 벌었다는 전언도 들린다. 판매부수는 평균 1만~2만부, 평균순이익은 7000만~8000만원이다. 대필비 1000만원 등 출판비용을 뺀 액수다.
출판기념회에서 거둬들인 돈은 고스란히 의원 몫이다.
세금도 안 낸다. 현찰로 오갔으니 증거도 없다. 신용카드 단말기를 좀처럼 발견할 수 없지만 있어도 내놓지 않고 누구도 신용카드를 꺼내들지 않는다.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구하면 '외계인'이다. 사실상 공공연하게 탈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확보한 수입은 선거법상 정치자금으로 쓸 수 없다. 만약 정치활동의 부족분을 출판기념회 수입으로 메운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 넓은 의미의 정치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불법정치자금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왜 책인가 = 국회의원이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책'출판을 선호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다 △개인의 의정실적으로 남는다 △지역구 홍보와 선거운동에도 유리하다 △품위가 있어 보이고 출판물 자체가 오래 기억된다 등 때문이다.
문제는 '쉽게 만든 책'이다. 국회의원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모 작가는 "한 달이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구술을 받아 적는 것은 그래도 양반이다. 자신이 발표한 보도자료, 발언록 등을 짜깁기 한 책도 적지 않다. 대필 비용마저 아끼려 보좌관이나 인턴을 동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책을 만들고 상임위 관련 기관에 강매하느라 수개월을 시달리기도 한다.
쓴 소리가 나올 법한 분위기다.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은 "정치자금을 모으려면 쓰레기에 버금가는 하찮은 책을 팔지 말고 정치철학이나 현안에 대한 대안 제시 등 보다 가치있고 그럴싸한 행사를 해야 한다"면서 국정감사에 임박해 열고 있는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천박한 짓거리"로 치부했다. 그는 "사람을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면서 "붉은 화환과 1000명이 넘는 하객들의 요란함이 과연 좋은 정치를 만들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최근 정치무크지 형식의 '꽃이 피는 만남'을 낸 유은혜 의원이나 '인사청문회'의 이춘석 의원의 책은 호평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서점에서도 팔릴 수 있는 책 정도는 써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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