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SW기업 44%가 연매출 10억 이하… "3D(Dirty·Difficult·Dangerous)도 아닌 꿈 없는 4D(3D+Dreamless) 업종"
[좌절하는 한국의 SW개발자들]
-창의성 좀먹는 SW 하도급
정부 발주 억대 SW 개발, 件개발자엔 2100만원 돌아가 "잘 만들어야 할 동기 없어"
-열악한 환경에 인력 부족
고학력 SW인력 대다수는 甲인 전산 관리직 선호… SW인력 중 개발자는 23%뿐
16년간 기업 정보 소프트웨어(SW) 기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스윙사(社)가 지난 3월 폐업했다. 사장 백남웅(52)씨는 서울 잠실의 아파트를 경매로 넘기고 인천 구월동의 누나 집에 얹혀산다. 아내와 자식들은 처가로 갔다. 이 회사는 직원 20여명에 불과하지만 대학 정보화 시장에선 1~2위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강소(强小) 기업이었다. 왜 망했을까. IT 업계 전문가들은 "하도급·재하도급이라는 한국 SW 생태계의 갑을병정(甲乙丙丁) 먹이사슬에 먹힌 것"이라고 했다.
이스윙의 위기는 작년에 S대학이 발주한 정보화 시스템 구축 사업에 2차 하도급 업체로 참여하면서 찾아왔다. S대는 시가 60억원짜리 입찰을 냈고, D사는 이를 70%(42억원) 가격에 저가 수주했다. D사는 교무, 학사 관리, 인사 등 분야별로 나눠 이스윙 등 3개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 이스윙은 이 가운데 학사 관리 시스템을 7억8000만원에 수주했다. 백씨는 "원가로 따지면 10억원 정도인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그 가격에 계약을 했다"며 "다신 소프트웨어 사업은 안 한다"고 했다.
◇하도급에 재하도급… 창의적 개발 어려운 현실
2011년 당시 경력 2년차였던 이모(32)씨는 정부 발주 정보화 사업의 핵심 소프트웨어 개발을 7개월간 수행했다. 이씨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인력 파견 업체와 계약을 하고 참여했다.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가 산하기관인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을 통해 발주한 190억원 규모의 도로명 주소 정보화, 지자체 운영 환경 개선 사업이었다.
당초 사업을 총괄 수주한 곳은 대기업 S사. S사는 지리 정보 시스템(GIS) 전문 기업 H사 등 5개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 이 중 H사가 수주한 금액은 35억원이었다. H사는 이 중 소프트웨어 개발 부분을 나눠 4개 업체에 재하도급을 줬다. 재하도급 업체 중 한 곳인 I사는 자사가 맡은 6000만원 소프트웨어 개발건을 다시 인력 파견 업체 W사에 3000만원을 주기로 하고 통째로 넘겼다. W사는 이씨에게 2100만원을 주고 900만원을 챙겼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S사→H사→I사→W사→프로그래머 이씨로 이어진 6단계 하도급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 완성도는 뒷전이었다. 이씨는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일을 일찍 끝내면 다른 일까지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끌며 주어진 일만 했다"고 말했다.
SW 개발은 한 사람의 창의성이 수천명의 공동 작업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다. 평범한 인재 10명은 아무리 시간을 줘도 핵물리학에 쓰이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문가들은 "중층적 하도급 구조에선 저급한 SW들만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력 부족에 빚만 늘어"…SW 인력의 77%가 전산실 관리
아예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해외로 나갈 것을 고려하는 사업가도 나온다. 모바일 SW 개발 업체 Z사 김상복(49) 사장은 요즘 회사를 영국으로 옮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 30명인 직원도 일단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Z사는 2009년 창업 후 국토해양부, 외교부, 중소기업청 등 매년 10곳 정도의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유지 보수 일을 해온 유망 중소기업이었다. 김 사장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인력 공급이 안 되다 보니 인건비가 올라가 빚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SW 하나만 개발해도 '대박'을 터트리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좋은 학벌의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 전산 관리직을 선호한다. 대기업·은행 등의 전산 관리직으로 취직해 지시를 내리는 '갑'을 한다. '소프트웨어 코딩'(software coding·특정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꺼린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인력은 73만명이지만 56만명(77%)이 전산실 관리 인력이다. SW 개발자는 17만명에 불과하다.
국내 최고의 SW 기업으로 불리는 안랩조차도 세계시장에선 무명(無名)이다. 작년 매출 1315억원 가운데 수출은 겨우 7%(87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내수시장을 지키는 이유는 보안 SW의 경우 국가별로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 SW 업체조차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셈이다.
2011년 현재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숫자는 총 6678개. 이 중 매출 10억원 이하 영세 기업이 전체의 44.0%에 달한다. 이정근 한국소프트웨어전문기업협회 회장은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SW 시장"이라며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항공기용 SW 같은 분야는 국내에선 손도 못 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SW 납품가 산정, 건설 현장처럼 '人頭稅' 방식
(조선일보 2013.08.03 01:34)
투입 인력 능력은 고려 않고 머릿수 세서 비용 계산 "연구·개발 투자여력 안생겨"
소프트웨어(SW) 개발 사업이 하도급 구조가 된 것은 대금 지급 방식이 건설 현장 일당 노무자와 같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인두세(人頭稅) 방식'이라고 한다. SW 개발에 투입되는 사람 수에 노임(勞賃)을 곱해 납품 가격을 정하는 것.
예컨대 대졸자(경력 3년 미만)는 '초급 기술자'로 일당 17만2789원, 경력 3년 이상에 정보처리기사 1급 자격증 소지자인 '중급 기술자'는 20만7710원 하는 식이다. 투입 인력의 능력은 따지지 않는다. 마치 고물장수가 헌책을 저울에 달아 사가는 것처럼 값을 매긴 것이다. 하도급 업체들 입장에선 고급 기술자 한 명 대신 중급·초급 기술자를 여러 명 투입하는 게 이윤이 더 많이 남는 구조다.
중소기업인 T사의 이모(53) 사장은 대기업 A사의 하도급을 받아 진행하는 금융회사 정보화 사업에 고급 10명, 중급 10명, 초급 10명 등 30명을 투입하고 있다. T사는 A사로부터 하도급 대금을 투입된 기술자의 숫자와 근로 일수에 맞춰 받는다. 고급 기술자 한 명당 월 800만원, 중급은 700만원, 초급은 50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이 사장은 "건설 인력업체가 돈을 받는 방식과 동일하다"며 "이런 현실에선 굳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도 없고, 그럴 만한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비판에 따라 지난해 11월 24일부터 '기술자 등급제'를 폐지했다. 소프트웨어 노임 단가제도 없어졌다. 그러나 업계에선 여전히 기술자 투입 숫자와 근로 일수에 따라 대금 결제를 하고 있다.
박환수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산업정책실장은 "심지어 정부조차도 인건비 수준밖에 안 되는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며 "저가 입찰 관행 때문에 우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한국은 노래 표절엔 엄격하지만 SW 베끼기엔 관대"
(조선일보 2013.08.03 01:35)
-SW 가치 무시하는 문화
프로그램 도둑질 잦아 개발업체들 순식간에 도산… SW 불법 복제율 40% 달해
"노래는 몇 소절만 베껴도 표절이라고 하면서 소프트웨어 도둑질엔 관대한 게 대한민국입니다."
신동선 한국비즈텍 사장은 기자와 만나 "우리 회사가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째로 도둑맞고 회사가 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살을 여러 번 생각했다"고도 했다.
신 사장이 1991년 창업한 한국비즈텍은 건설업체에 통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ERP(전사적 자원 관리)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2000년 삼성SDS와 산업은행의 지분 투자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잘나가던 회사는 2008년 건설업계 불황에 1차 타격을 받았다. 이어 2008년 말 김모 전 상무 등 직원 3명이 핵심 기술을 갖고 중견 건설업체 S사로 옮기면서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0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신 사장은 S사 대표와 김씨 등 전 직원들을 형사 고발했다. 정부 기관인 한국저작권위원회도 2011년 1월 '한국비즈텍의 소프트웨어와 S사의 프로그램이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3년 가까이 1심 소송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한국소프트웨어전문기업협회가 조속한 재판 진행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한국 기업, 나아가 우리의 문화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의 가치를 무시한다. 제조업·대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소업체가 그럴듯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똑같은 제품을 대기업이 내놓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작년 12월 경찰은 중소 협력업체 A사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관련 핵심 기술을 불법 복제한 혐의로 롯데피에스넷 김모 전 대표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김 전 대표가 여러 차례 A사에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할 것을 강요했지만 A사가 거부하자 몰래 빼낸 것으로 판단했다.
무형자산의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불법 복제도 심각하다. 사무용 소프트웨어연합(BSA)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불법 복제율은 40%, 피해액은 8900억원에 이른다. 미국(19%)·일본(21%)·오스트리아(23%) 등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甲의 횡포 막아야… 선진국처럼 대등한 하도급을"
(조선일보 2013.08.03 01:47)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
"甲이 SW 소유권 독차지, 乙의 핵심기술 내놓으란 말… 우수인재는 의대·법대 몰려"
이석우(47·사진) 카카오 공동대표는 한국과 외국 소프트웨어(SW)산업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한국만의 '갑(甲)의 횡포'를 들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큰 업체가 계약을 따낸 뒤 전문기업에 발주하는 하도급 관행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갑을이 아니라 대등하다는 것이다.
"대기업과의 계약서를 보면 SW의 소유권은 무조건 갑이 갖게 돼 있는데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회사의 핵심 기술을 통째로 내주든지 아니면 입찰에서 빠지란 얘기죠. 갑과 을(乙) 서로 공정하게 SW의 가치를 평가해줘야 합니다. "
SW 제품만큼이나 SW 인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도 강조했다. "개발자 개개인의 능력과 노하우가 크게 좌우하는 분야가 SW예요. 건설 노동자처럼 몇 명을, 얼마나 투입했느냐가 아니라 최종 결과물인 SW의 가치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죠."
인재가 SW업계로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이과는 의대, 문과는 법대'라는 공식처럼 정해진 안전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풀려면 IT업계 자체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IT업계에서 자꾸 성공 신화를 만들어야 해요. 김정주나 이해진, 김범수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성공하고 비전을 보여줘야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자식들 공대에 보내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어요?"
SW 교육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상에 붙잡아두고 기술을 가르쳐봐야 소용없어요. 창의적인 생각을 펼치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야죠. 우리나라엔 글로벌 SW서비스가 없어요.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합니다."
甲乙도 모자라 丙丁관계까지
(조선일보 2013.08.03 01:21)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SW 먹이사슬' 실력 있어도 再하도급으로 연명
지난달 서울 서초동 오피스텔 10층에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 STC 사무실. 40㎡(12평) 사무실에 6개의 책상이 다닥다닥 들어차 있다.
이 회사는 작년에 디지털 영상 자료를 자동 분류하는 프로그램 '닥터패드'를 개발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매출은 재(再)하도급을 받아 일으킨다.
작년 실적은 매출 8억1800만원에 당기순이익 330만원. 재작년엔 간신히 100만원 이익을 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약탈적 먹이사슬' 하단에 있는 하도급 업체여서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발주처(갑·甲)로부터 IT 중견기업 을(乙)이 1억원 계약을 따내면 STC 같은 하도급 업체인 병(丙)은 을로부터 5000만원에 물량을 얻는다. 병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인력 파견업체들로부터 단순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 정(丁)을 고용하는 방식이다.
심한 경우 하도급 구조가 5~6단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업체 상당수가 매출 10억원 이하의 영세 업체다. 이들 영세 업체 직원들은 스스로 "4D 직종에서 일한다"고 말한다.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에다 'Dreamless(꿈이 없는)'를 더한 조어(造語)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모바일 소프트웨어 업체 I사는 임직원 15명 중 임원 3명만 결혼했다. 임원이 아닌 40대 노총각 3명을 포함해 30대 7명, 20대 2명 등도 모두 미혼이다. 장모(43) 부사장은 "매일 밤 11시 퇴근이 기본이고 일이 몰리면 밤을 새울 때도 많다"며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데 연봉이 많지 않다 보니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김진형 카이스트 소프트웨어 센터장은 "하도급에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업계 구조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스타가 나올 가능성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美 공공정책·금융 혁신도 SW 엔지니어가 주도
(조선일보 2013.08.03 01:48)
다른 도시와 데이터 비교… 지방정부 낭비 막는 SW 나와
투자전략 알려주는 SW 개발… 금융 주도권 소비자로 넘어와
미국의 금융·공공기관 개혁에도 소프트웨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요즘 뜨는 벤처 금융회사 아데파(Addepar). 이 회사 CEO(최고경영자)인 마이클 파울루스(Michael Paulus), COO(최고운영책임자) 프와리어(Eric Poirier)는 모두 금융인이 아니다. 둘 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왔다.
이 업체는 금융 주도권을 소비자 개개인에게 돌려주는 금융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프와리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입장에서 볼 때 그동안 금융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놓치는 게 더 많았다"고 했다.
아데파의 사업 모델은 이렇다. 회원이 아데파 사이트에 들어가면 채권, 펀드 등에 투자 내역이 나온다. 환율 변화를 집어넣으면 최상의 투자 전략이 나온다. 금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투자를 바꿔야 할지 바로 나온다. 그걸로 금융전문가와 상의하면 된다. 판단의 주도권을 고객이 가져갈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데파의 길 건너편 델파이(Delphi). 이곳은 공공 예산 개혁을 하는 곳이다. 지방정부의 낭비를 막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다. 이 회사 영업매니저 마이크 맥캔(McCann)은 시티그룹에서 일했다. 엔지니어링 매니저 마이크 로젠가르텐(Rosengarten)은 야후 출신이다. 여기에 캘리포니아 주정부 공무원이 가세했다. 원래는 스탠퍼드대학의 학부과정에서 과제로 시작된 벤처다.
맥캔은 "우리의 목표는 각 시정부의 데이터 분류 방식을 통일하고, 이를 완벽하게 분석해내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각 시정부가 델파이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만 깔면 "우리 정부의 이 항목이 다른 시정부보다 많이 쓰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3] 선진국선 SW개발자가 농업·건축·미디어 등 전통산업 혁신 이끌어
(조선일보 2013.08.03 01:44)
[세계는 SW 산업혁명 중]
-日, SW로 농업 경쟁력 높여
작물환경 데이터 모으고 물·비료 주기 등 작업 관리… 출하·물류 스케줄도 자동으로
-佛, 건축설계를 협업 SW로
세계 각국의 여러 건축가가 온라인으로 함께 설계·디자인… 시간·비용 획기적으로 절약
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현 '구마모토 테크노 리서치 파크'. 후지쓰(富士通), 르네사스 마이크로시스템 등 IT기업 연구소 사이에 가지쓰도(果実堂) 본사가 있다. 본사 2층 칸막이 하나 없이 탁 트인 230㎡(70평) 정도의 사무실에서 직원 10여명이 컴퓨터 작업을 벌인다. 여느 IT기업처럼 모두 자유복 차림이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이 기업은 농업회사다. 본사 인근 330만㎡(100만평)에 이르는 경작지에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어린잎 채소를 재배한다.
◇SW가 운영하는 농업
이 회사 근처 비닐하우스. 24세 직원 겸 농부인 다카키 쇼마(高木翔真)가 왼손에는 태블릿 PC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어린 채소잎을 만져보고 있었다. 30초 정도 후 그는 태블릿PC 화면 하단에 '크기 2㎝, 벌레 먹은 정도는 양호'라고 메모했다. 화면 상단에는 오늘 줘야 할 물의 양, 비료의 양 등 작업 지시 사항이 표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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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농업 회사인 가지쓰도 직원이 비닐 하우스에 설치된 데이터 센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센서를 통해 이산화탄소 등의 정보를 읽어내고 이를 본사에 전송한다. /최현묵 기자
비닐하우스 안에는 지상에서 20㎝ 높이에 두 개의 흰 박스가 천장에 연결된 줄에 매달려 있었다. 박스 하나에는 온습도계가, 다른 하나에는 이산화탄소(CO2) 측정센서가 들어 있다. 이곳에서 24시간 측정된 데이터는 입구 쪽에 설치된 가로 30㎝, 세로 50㎝ 크기의 컨트롤 박스로 보내진다. 이 박스에 무선송신기가 달려서 데이터를 가지쓰도 본사로 전송하며, 이 데이터가 다시 다카키씨의 태블릿 PC에 뜬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회사는 전국 수백개 판매현장의 재고까지도 실시간 관리한다. 이 모든 과정은 후지쓰가 개발한 '아키사이(秋彩)'란 소프트웨어에 의해 진행된다.
고노 준코(河野淳子) 업무추진센터장은 태블릿PC를 통해 도쿄 오케이스토어(편의점)에서 팔리는 '가지쓰도 시금치'의 재고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유통 현장의 재고량을 파악해, 생산·출하·물류 스케줄을 짠다. 이데 쓰요시(井出剛) 가지쓰도 사장은 "농장 운영도 소프트웨어의 도움으로 도요타 자동차 공장처럼 표준화할 수 있었다"며 "이를 통해 농업생산성을 20% 올렸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덕에 농업에서도 생산부터 출하까지 관리하는 지트(JIT·Just In Time)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이다.
SW 덕에 농사에 문외한인 도시인들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축적한 영농기법을 실행할 수 있다. 다카키씨 역시 2009년 7월 가지쓰도에 입사하기 전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미장공으로 일하다가 어린잎 채소 농업이 장래성이 있다는 생각에 입사했다"며 "아키사이 프로그램 지시만 따르면 농사일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SW가 산업판도 바꾼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SI(시스템통합)나 게임 프로그램 짜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국과는 달리, 선진국에선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농업은 물론 미디어·건축 등 기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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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팰로앨토시 중심부 유니버시티 애버뉴에 있는 튠인(Tune IN)의 내부 사무실. 지정석 없고, 일도 서서하거나 앉아서하거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식사시간을이용한 소프트 인력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자, 이 회사는 하루 세 끼를 모두 제공하고 있다. /이인열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로앨토시 중심부 유니버시티 애버뉴. 튠인(Tune IN)사는 전 세계 8만개 라디오 방송국과 제휴, 청취자 4000만명에게 원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예컨대 싸이의 방송 프로그램을 듣고 싶을 때 청취자는 튠인의 프로그램을 깔고 난 뒤 '싸이'로 검색하면 전 세계에서 싸이의 노래가 방송 중이거나 방송될 프로그램의 리스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노래뿐만 아니다. 뉴스, 토크쇼, 스포츠까지 망라한다.
이 거대한 방송국의 직원은 80여명에 불과하다. 이 중 방송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마케팅 전문가들이다. 라디오와 같은 전통 미디어조차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운영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 근교 볼로뉴 숲에는 새로운 명물이 들어서고 있다. 올 연말 완공을 앞둔 '루이뷔통 창조재단 미술관'이다. 총건축비는 1억4300만달러에 달한다.
이 미술관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했던 프랭크 게리(84)가 설계를 맡았다. 그는 '게리 테크놀로지(GT)'란 건축설계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든 뒤 다소시스템의 3D 솔루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협업 시스템인 '디지털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미국 LA에 있는 건축가들이 현 공정률에 따라 3D 건물도면을 작성하면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에 있는 건축가들이 동시에 이 도면 위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보태는 식이다. 15개 전 세계 설계팀이 물 흐르듯 협업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