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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Why] "뉴스에 여대생 태워준 외국인 얘기 안나와 내 손님인 줄 몰랐다" (조선일보 2013.06.08 13:48)

[Why] "뉴스에 여대생 태워준 외국인 얘기 안나와 내 손님인 줄 몰랐다"

대구 여대생 택시기사 미스터리
신고안해 용의자로 몰렸던 택시기사 인터뷰
포상금 1000만원 걸렸는데 왜 신고안했나
'언니 2명이 택시 태워줬다' 기사 읽어…
'외국인과 노는 된장녀' 오해받기 싫어 일행인 두 언니가 외국인 얘긴 뺐다더라
왜 먼길로 돌아서 갔나
택시 운전대 잡은지 두달돼 길 잘 몰라…내비게이션 찍어서 나오는 길로 다녀
왜 범인의 합승 용인했나
처음엔 의심스러워 얼굴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여자 이름 부르며 깨우고 다독였다
연인이 아닐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경찰이 미안하다고 했지만
집 수색하면서 장롱까지 부숴놓고 환갑인 어머니 속옷까지 다 뒤졌더라…
내가 범인 태워 일어난 일, 나도 울었다

 


	살해된 대구 여대생이 택시를 탄 지점. 대구 삼덕동의 한 클럽 근처다. 당시 여대생 일행들은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주며 여대

살해된 대구 여대생이 택시를 탄 지점. 대구 삼덕동의 한 클럽 근처다. 당시 여대생 일행들은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주며 여대 생을 태워 보냈다. 뒤따라 오던 범인이 택시에 합승했고, 이후 모텔을 전전하던 범인은 여대생을 살해했다. / 뉴스1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은 여대생을 태운 택시기사가 나타났다면 간단히 풀릴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단서를 갖고 있던 택시기사는 사건 6일 만에 이상한 모양으로 등장했다.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이 이 잡듯 찾아내 긴급체포하자 겨우 진실을 말한 것이다. 경찰은 택시기사의 진술에 따라 20대 공익근무요원을 체포했고, 자백을 받아냈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제 발로 신고했다면 그는 자신에서 쏟아진 살인범 의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포상금 1000만원까지 챙길 수 있었다. 대체 그는 왜 신고하지 않았을까?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탓에 인터넷에선 '공범설'까지 흘러나왔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모든 강력 사건은 범인의 사악한 본성(本性)에서 출발한다. 여대생을 성욕의 희생물로 삼은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의 사악함이 사회적 사건으로 발전하는 데엔 수많은 요소가 결합한다.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다. '초짜' 택시기사의 '날갯짓'이 이번 사건의 비극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 4일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왜 신고하지 않았나?

―신고를 안 한 이유는?

"여대생을 태운 택시기사가 나인 줄 몰랐다. 하루에 13시간 정도 운전을 하면서 밤에 자고, 일어나서 운동하다가 나오고 이러니까, 뉴스를 접할 시간이 없었다. 처음 접한 뉴스가 28일인가 나온 기사였는데, '언니 2명이 택시에 태워줬다'라고 나왔다. 내 차에 여대생을 태워 보낸 사람은 외국 남자하고 여자였다."

택시기사가 본 지난달 28일자 ○○뉴스는 실제로 "언니 2명이 피해자를 택시 뒷좌석에 태워 보냈다"고 보도했다. 왜 이런 보도가 나왔을까? 사건을 취재한 현장 기자의 말이다.

"피해 여대생은 언니 2명과 클럽에 갔다. 언니의 친구인 외국인 2명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실종 직후 언니들이 경찰에 외국인이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를 빼고 그냥 '우리가 택시를 태워 보냈다'고 했다. 외국인과 노는 된장녀란 오해를 받기 싫었던 모양이다. 경찰은 언론 브리핑에서 '일행이 택시를 태웠다'고 전했다. 당시 공개된 일행은 언니 2명이었으니, 그렇게 기사가 나간 것이다."

운전기사의 날짜 개념이 일반과 다른 것도 원인이었다. 여대생이 실종된 것은 지난달 25일 새벽이었다. 그는 기사를 보고 "내가 쉬는 날 일어났다"고 단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24일 오후 4시부터 25일 새벽 4~5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근무조였다. 이 경우 택시기사의 근무일은 24일이다. 25일 새벽 근무는 24일 근무의 연장일 뿐이다. 사건이 일어난 25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새벽까지 근무한 뒤 하루를 쉬었다고 했다. "경찰이 잡으러 와서 '25일에 뭐했노' 이러기에 '쉬었다'고 얘기했다." 경찰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란 말에 그는 "그랬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왜 먼 길을 돌아갔나?

택시기사가 여대생을 태운 곳은 대구의 대표적 유흥가인 삼덕동이었다. 여대생을 택시에 태운 언니는 택시기사에게 "(수성구의) ○○맨션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곤 택시비 2만원을 기사에게 줬다. 중구 삼덕동에서 수성구 ○○맨션까지 미터기(디지털 운행기록장치)로 8000원 정도 나온다.

그는 중동네거리를 거치는 경로를 택했다. 비상식적인 경로였다. 경찰은 "대구 택시기사라면 누구나 수성교를 거치지, 중동네거리로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성교를 거치면 목적지까지 7.7㎞. 중동네거리를 거치면 8.4㎞를 달려야 한다. 우연이었을까? 클럽에서부터 뒤쫓아온 범인이 택시에 올라탄 지점이 바로 중동네거리였다. 검거 초기에 경찰이 택시기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왜 그 길로 갔나?

"내가 택시를 운전한 지 두 달 됐다. 길을 잘 몰라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찍어서 다녔다. 대구에서 오래 살았지만 내가 사는 동네 말고는 잘 몰랐다."

이 말은 진실일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T map)에서 실제로 길을 물었다. 내비게이션은 수성교를 거치는 길과 중동네거리를 거치는 두 가지 경로를 함께 제시했다. 거리는 중동네거리가 길었다. 하지만 시간은 검색 시점마다 달랐다. 충분한 요금을 받았기 때문에 택시기사가 시간이 짧은 쪽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충분했다. 문제는 범인이 중동네거리에서 신호에 걸린 택시에 올라탄 뒤였다.

그는 왜 돌발적 합승을 용인했나?

―갑자기 올라탔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했나?

"처음엔 의심했다. 그래서 그 사람 얼굴을 유심히 봐놨던 거고. (나중에 경찰에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런데 택시를 탄 그가 '내가 이 여자 남자친구인데, 술 취했으니까 바래다줘야 한다. 외국인이랑 싸우고 바로 뒤따라왔다'고 했다. 그러곤 내릴 때까지 이름을 부르면서 여자를 깨웠다. '정신 좀 차려봐라, 괜찮나'라고 다독이고. 그래서 내가 멍청하게 그 사람이 연기하는 걸 다 믿었다." 그는 "여자도 '으응' 흐느끼면서 남자한테 기댔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가 몰던 택시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외부만 촬영되는 블랙박스였다.

―그렇다고 해도 인사불성인 상태로 기댄 것 아닌가?

"여대생이 술에 취한 것은 별로 인식하지 않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여자가 타서 자는 경우도 많고, 자다가 일어나서 집에 잘 가고 하니까. 여자가 타면 성추행 이런 걸로 오해받을까 봐 자세히 보지도 않는다."

―연인이 아닐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범인은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경북대 북문(대구 북구 산격동)으로 가자"며 행선지를 바꿨다. 자신의 원룸이 있는 곳이다. 범인은 이곳에서 내려 여대생을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다가 방을 구하지 못하자,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가 살해했다.

―중간에 행선지 바꾼 게 이상하지 않았나?

"원래 행선지로 가야 한다고 했지만 '여자친구니까 내가 바래다주겠다'고 해서 믿었다."

그의 이 같은 대처에 대해 10년 경력의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취객은 귀찮은 존재다. 돈을 받으면 빨리 내려주고 싶다. 취객을 어떻게 모셔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남자친구라고 해도 여자 혼자 탄 차에 남자가 중간에 올라타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이 경우 당연히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걱정을 해야 했다. 택시기사가 범인의 승차를 거부하고, 여성을 목적지에 정확히 내려줬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경북대 북문에 도착하자 차비 5000원을 지불했다. 범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택시기사는 이미 받은 2만원에 5000원을 추가로 받은 것이다. 행선지를 바꿔준 대가였을까? 하지만 범인은 경찰에서 "행선지를 바꾸려고 낸 돈이 아니라 그냥 차비였다"고 진술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그는 지금까지 범인으로 몰릴 수 있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이런 주장을 했다. "만약 중동네거리에서 신호가 안 걸려서 여대생을 집 앞에 내려줬는데, 내가 떠난 뒤에 범인이 여자 집까지 쫓아와서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꼼짝없이 내가 덮어쓸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처음에 당신은 유력한 용의자였다.

"나도 궁금하다. 클럽에서 여대생과 부킹한 범인이 (여대생을) 바로 뒤따라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CC(폐쇄회로)TV 사진 보니까 잘 나왔더라. 경찰은 먼저 왜 그 사람을 찾아보지 않았나?"

―체포될 때 이웃들이 다 봤다는데?

"어휴…. 제일 큰 거는 내 어머니다. 경찰이 왔단 소식을 듣고 파출소까지 오셨다고 하더라. 저를 믿지만 자식이 강간범이나 살인범일 수도 있단 생각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경찰관은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장롱도 다 부셔놓고…. 모친이 예순이신데 어머니 속옷까지 다 뒤졌더라고."

택시기사는 지난달 31일 체포된 뒤 경찰에 "남자를 내려준 장소 근처에 모텔 있으니까 거기 한 번 가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내려줄 때 건너편을 보니까 모텔이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니까 거기에 가겠구나 생각했다." 택시기사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모텔 골목의 CCTV를 확인해 여대생을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던 범인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수사 결과 그는 삼덕동의 같은 클럽에서 동석한 남성 두 명 중 한 명으로 밝혀졌다.

―진범 잡히니 경찰 반응은 어땠나?

"미안하다고 하더라."

―어머님은 이후에 괜찮으신지?

"안 괜찮다.(울먹)"

―다시 택시 운전할 계획은?

"겁이 난다."

―강력 사건을 경험한 충격이 큰가?

"그렇다."

―피해자가 승객이란 사실을 알고 든 생각은?

"내가 (피해자도 범인도) 태운 건 사실이지 않나. 어쨌든 간에 (남자가 범죄 저지른다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나중에 진범이 잡히고 나니까 그제야 내가 태운 게 맞는구나 싶어서 울었다. 그것 때문에 진짜…."

―택시노조에서는 법적 조치도 하겠다는 입장인데 어떤가?

"그런 걸 바라지 않는데 택시노조 입장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계속 택시기사만 의심했으니까….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것) 없다. 태운 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