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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일제강점기 때 포획 625마리 (주간조선 2013.04.29)

일제강점기 때 포획 625마리

한반도는 표범의 왕국이었다”

 

▲ 경남 창녕의 부곡하와이호텔에 박제된 상태로 전시돼 있는 표범. 1981년 경남 함안에서 포획됐고 잔존하는 국내 유일의 한국표범으로 알려져 있다. photo 부곡하와이

 

‘625마리’. 일제강점기 때 포획된 한국 표범의 숫자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의 공식 수치다. 35년간의 공식기록 중 1910~1914년, 1925~1932년 등 13년가량의 기록은 비어 있는데도 이 정도의 표범이 잡혔다.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밀렵까지 합친다면 이 시기(35년간) 한반도에서 1000여마리의 표범이 포획됐을 것으로 일부 전문가는 추정한다. 당시 한반도는 아무르 표범이 집중 서식했던 이른바 ‘표범의 왕국’이었다.

191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작성한 표범 포획 기록을 보면 1924년까지 총 521마리의 표범을 무더기로 포획했고 그 이후 포획 수가 크게 감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933년 이후 포획된 표범 수는 매년 15마리 이하로 급격하게 줄어든다. 일제강점기 초기 지나치게 많은 표범이 포획되면서 개체 수가 급감했거나 2차 세계대전이 고조되면서 기록 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밀렵이 횡행해 포획 신고 자체가 크게 줄어든 결과일 수도 있다.

왜 일본인들은 이처럼 많은 표범을 포획했던 것일까. 일본은 당시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을 제거한다는 미명하에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인이 사냥을 즐기기 위해 해수구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고 얘기된다. 일본인들이 호피 등 동물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표범이나 호랑이를 대거 사냥했다는 것이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동물자원과장은 “당시 일본에서 출간된 수렵 관련 잡지를 보면 한반도 내에서 무슨 동물이 어느 지역에서 자주 출몰하고 잡혔는지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조선인은 주로 사냥몰이꾼이나 안내자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당시 일본에 서식하지 않던 호랑이나 표범을 귀한 동물로 여겼다고 한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동물을 잡아 집안에 전시하려 했던 일본인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영웅적 인물로 치장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상징물로 표범을 활용했던 것이다. 심지어 1921년 조선인이 잡은 표범을 일본 순사들이 잡은 것처럼 꾸며 본국으로 가져가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는 그나마 표범에 대한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감독기관이었던 산림청에는 표범에 대한 자료가 없다. 밀렵을 통해 표범을 잡는 사례는 종종 지방 언론에 보도됐지만 불법 포획이라는 점을 의식해 공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공식적 표범 포획 기록이 마지막으로 남겨진 건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생포된 표범 관련 내용이다. 당시 포획자는 합천경찰서를 통해 자신이 잡은 표범을 창경원에 보냈다.

▲ 전남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박제된 한국 호랑이. photo 유달초등학교

 

그렇다면 광복 이후 표범은 한반도에서 사라진 걸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광복 이후 포획된 표범이 족히 30마리는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동물자원과장이 1984년부터 현장조사, 목격자 청문 및 문헌조사를 통해 수집한 비공개 자료를 봐도 올 초까지 표범의 목격담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한 지역 일부 산악지대에 소수의 표범이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 과장이 제시한 ‘광복 이후 국내 표범 포획 및 목격 자료’를 보면 1945년 이후 총 20여건의 표범 포획담과 20여건의 표범 의심 제보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예컨대 1949년 경북 구미 금오산 자락에서 표범이 포획됐다는 기사가 2000년 9월 20일자 대구매일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선산경찰서 경찰관과 포획자가 표범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한 사진이 1949년 표범 포획의 근거자료로 뒤늦게 공개됐다.

1950~1960년대에도 전북 무주군과 강원도에서 표범이 잡혔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었고 이는 환경부 멸종위기종 분포조사 원문에도 등장한다. 1962년 창경원으로 옮겨져 사육됐던 오도산 표범의 생포 당시 상황은 포획자 황홍갑씨 사망 후 생물자원관이 황씨 부인에게 확인했다. 이에 앞서 1987년 일본의 범연구가인 엔도 기미오가 오도산 현장을 찾아 황홍갑씨 가족과 마을주민들을 촬영한 사진도 남아 있다.

1963년에는 서울동물원 오창영 전 부장이 전북 익산의 한 성당 지하실에 가둬 놓은 야생 표범을 구입하려고 가격 흥정을 하다 끝내 실패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한국동물원 80년사에 기록돼 있다. 1960년대에는 충북 영동과 전남 구례, 강원도 춘천 등지에서도 표범을 포획한 사실이 마을 주민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당시 포획된 표범의 수는 비록 적었지만 전국에서 고루 잡혔다는 점으로 볼 때 이때까지 표범의 서식지가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70~1980년대는 표범이 포획된 지역이 충북, 강원, 경남 일대로 좁혀졌다. 주로 충북 지역과 경남 합천군 일대, 강원도 인근 지역에서 표범이 포획된 사실이 전해진다.

▲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사이에 경남 합천군 가야산에서 포획된 표범. 2006년 현지를 방문한 일본 야생동물 전문가 엔도 기미오가 마을 주민들이 기념 촬영한 당시 사진을 확보했다. photo 엔도 기미오

1990년대 들어서는 표범을 포획한 사례가 아니라 표범을 봤거나 표범의 흔적으로 의심할 만한 근거에 대한 제보들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다. 실제로 포획을 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밀렵꾼들이 표범을 포획한 사실을 숨겼을 수는 있다. 강원도와 경남 일대에서 주로 표범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게 특징이다. 2006년과 2013년에도 표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강원도 일대에서 접수됐다. 야생동물연합 조범준 국장의 목격담이 있었고 관동대 이상영 교수도 표범을 목격했다고 제보했다.

지난 4월 23일에도 한상훈 과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한 과장은 “강원도 강릉에 인접한 오대산 자락의 한 초등학교 분교 학생들이 이틀 동안 나무 위에 있는 커다란 동물을 보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주말에 이곳에 가서 영상트랩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살아 있는 표범을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표범의 DNA를 채취하는 건 가능하다. 생물자원관에 따르면 1981년 경남 함안에서 생포된 것으로 알려진 표범의 박제물이 경남 창녕의 부곡하와이호텔에 전시돼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표범의 사체다. 부곡하와이 홍보 담당자는 “1982년에 회사로 귀속된 표범인데 예전 자료가 없어서 한국표범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 보존은 잘 돼 있는 편이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 잡힌 호랑이의 유일한 박제품은 전남 목포의 유달초등학교에 전시돼 있다. 1908년 2월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생포한 호랑이를 일본인 하라구치 효지로씨가 구입해 일본에서 박제를 한 뒤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김찬호 교장은 “조선 호랑이로는 마지막 남은 박제라고 들었다. 한때는 일본에서 가져가겠다는 연락이 온 적도 있고 영광군청에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졸업생과 동문들이 반대해 그대로 두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