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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

퇴직하면 뒤바뀌는 '甲·乙 인생'… 결국 살아남는 건 乙이더라 (조선일보 2013.05.04 09:45)

퇴직하면 뒤바뀌는 '甲·乙 인생'… 결국 살아남는 건 乙이더라

대한민국 乙이여, 당당하게 살자

乙은 甲 되지만, 甲은 절대 乙 못한다
외환위기후 은행 나온 대출담당 직원들
서비스업 시작했다 퇴직금 날리기 일쑤
반면 예금유치 위해 머리 숙여본 직원들
밑바닥 생활 경험덕에 택시회사 등 운영

미래 모르는 甲, 되레 불쌍하더이다
섬유업체 中企사장, 거래처 접대자리서
20대·30대 대리에 자주 반말 들어도…
"왕노릇해라, 그래봐야 넌 연봉 3000만원
돈 못버니 접대라도 받으려는게지, 쯧쯧"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카카오톡 인사말은 "웃으며 삽시다"다. 청문회 때 너무 웃어 문제가 될 정도로 그는 인사말처럼 늘 웃으면서 살았다. 천성이 그럴 수도 있지만, 웃음이 절실히 필요했던 업무 성격이 윤진숙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 중앙정부 공무원은 "윤 장관이야말로 을(乙) 생활을 잘해 갑(甲) 위에 오른 '대한민국 대표 을'"이라고 말했다. 지리학 박사인 그는 장관에 오르기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원과 본부장을 지냈다. '연구'라는 본업 이외에도 그가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것이 중앙정부를 드나들면서 개발원이 사용할 예산을 따내는 일이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의 말이다. "자신보다 스무살 어린 정부부처 사무관과 주무관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몇달 전만 해도 장관을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6, 7급 공무원을 찾아다니며 부탁했다. 그는 늘 웃고 다녔다. 하위 공무원에게 더 상냥하고 친절했다."

'웃으며 삽시다'는 대한민국 을(乙)들의 대표 금언(金言)이자 경구(警句)다. '갑질'이라고 불리는 갑(甲)들의 횡포에 힘들고 서러울 때마다 이 경구를 떠올리고 찌그러진 안면 근육을 바로잡는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 얼굴과 마음을 단련한 '을'과, 얼굴 근육을 펴지 않고 살아온 '갑'의 처지는 훗날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나는 甲인가 乙인가(갑을 진단법)
을은 갑이 되지만, 갑은 절대 을노릇 못 한다

포스코 계열사 상무가 승무원을 때린 사건과 관련해 "45년간 '갑 대우'를 받아오던 포스코의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포스코 간부의 발언이 최근 한국 사회에 '갑을(甲乙)' 문제를 부각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한 퇴직자는 "공기업, 또는 독과점기업 출신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45년 갑 생활의 대가를 퇴직 후 치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갑' 업무에 오래 있었던 사람일수록 퇴직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퇴직 후 실패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또 다른 직업이 은행원들이다. 한 전직 은행원은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당한 은행원 중에 지금 퇴직금을 원금이라도 유지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했다. 퇴직금으로 서비스업을 시작했는데, 은행원 습관대로 갑의 자세로 일하다 보니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5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다가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김모(65)씨는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은행에서 을 생활을 한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80대 정도 택시를 굴리는 그는 예금을 끌어오는 수신 쪽에서 주로 근무했다. 요즘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가 재직할 때만 해도 은행 업무 가운데에서도 수신은 '을'로 분류되는 분야였다. 그는 예금을 부탁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동창회에 가서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아내와 함께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전단도 뿌렸다. 허리도 굽혀봤고, 고개도 숙여봤다.

김 사장의 이야기다. "기사가 교통사고나 신호위반을 하면 뒤처리를 해야 한다. 승차 거부나 승객 불만으로 고발이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기사를 데려오기 위해 회사를 알려야 한다. 이 나이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닥에서 뛰었던 경험 때문이다."

그가 '을'의 일을 할 때 '갑' 입장에서 일하던 동료는 지금 대부분 실업자다. 김 사장은 "갑으로 살았던 친구들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절대로 못한다"고 말했다. 을은 갑이 될 수 있지만, 갑은 을이 못 된다는 얘기다.

을의 복음은 '목표'… 을은 늘 꿈꾼다

8년째 제약 영업을 하는 서모씨는 얼마 전 병원 입구에서 '개하고 ○○제약 관계자는 출입금지'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리베이트 처벌의 영향이었다. "나도 예쁜 자식을 가진 사람인데…" 병원 앞에서 이런 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영업은 연애와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당신 좋다'며 받아주는 사람 있나?"

제약 영업에 뛰어들었을 때 회사는 그에게 술 먹는 교육부터 시켰다고 한다. 의사들이 술자리에 부르면 무조건 가야하고 술 취해서 자칫 실수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소주 2잔이었는데, 지금은 소주 4병을 마신다. 마시면서도 긴장한다.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마신다. 내가 쓰러지는 것은 항상 의사가 쓰러진 다음이다."

그는 을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법을 묻는 말에 '목표'라고 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기 어렵다. 목표가 없는 영업사원은 한두 곳에서 상처를 받으면 다음 거래처로 발길을 옮길 힘을 잃는다." 그는 "나에겐 단기, 중기, 장기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단기는 실적을 올리는 것, 중기는 영업왕이 되는 것, 장기는 내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가 말한 두 번째 생존법은 '존경'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하는 의사들은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냥 배운다는 생각으로 대하면 마음이 상할 일이 없다." 그리고 세 번째 생존법을 '선(線)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영업을 하다 보면 형님, 아우 하면서 친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망한다. 갑을 대하는 을의 철칙은 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을의 맛'은 어떤 것일까?

"정말 잘나가는 폐암의 권위자가 있었다. 진료가 있는 날마다 우리 회사 음료수를 갖다 놨다. 하루도 안 빠졌는데, 한마디가 없더라. 그런데 2년째 되는 날 의사가 나를 불렀다. '내가 원래 한 3년은 사람을 지켜보는데, 보니까 넌 정말 된 놈이다. 앞으로 내 방으로 와라.' 이런 맛이 있다. 이 맛을 알면 '갑질'을 이겨낼 수 있다."

을은 '대책 없는 갑'을 불쌍히 여긴다

국내 항공사간 서비스 경쟁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아시아나항공이 생기면서 항공업계가 경쟁체제로 진입하면서다. 승무원 출신 교육업체 대표인 권경리씨의 말이다. "승객 중에서 승무원 엉덩이를 몰래 터치하는 사람이 있다. 고의적으로 그랬더라도 무조건 곧바로 '죄송합니다. 손님, 몸에 스쳤습니다'라고 하도록 돼 있다."

승무원 세계에선 선배들이 후배에게 비공식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승객을 대하는 마음이다. "가장 중요한 게 승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일등석, 비즈니스석을 타는 승객이라도 실제로 그럴 수 있다. 10시간 이상 긴 시간을 타고 가서 낯선 땅에서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불쌍한가."

대구에서 섬유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사장은 50개의 거래처에 납품하고 있다. 모든 업체는 아니지만, 상당수 업체의 구매 담당 직원이 접대 대상이다. 밥을 사주고, 룸살롱도 데려간다. 명절과 휴가철에는 거래 규모에 따라 A·B·C로 나눠 100만·50만·30만원 상품권을 나눠준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대리가 '자, 한잔하라'며 반말을 쓴다. 내 여자 파트너(접객원)가 예쁘다며 파트너를 바꾸기도 한다. 하룻밤 100만원이 넘는 술자리에서 왕 노릇하지만, 그 대리 연봉은 3000만원이다." 그들을 보면서 "돈을 못 버니까 접대라도 받으려고 하지…. 저 위치에서 내려오면 나락으로 떨어질 텐데…"하며 측은해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밑바닥에서 빡빡 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훨씬 잘살 것이라고 다짐한다. 실제로 그럴 것이고."

 

 

 '甲질(甲의 부당행위)'에 치떨고 '乙死조약(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 한탄… 乙의 삶은 고통 그 자체

 (조선일보 2013.04.30 05:17)

[甲乙관계로 멍든 대한민국]

-대기업 눈치보는 中企
대기업 부조금 상한선 정하자 5만원씩 봉투 10개에 넣어 보내… 계약서에 없는 서비스 제공도

-甲중의 甲 공무원
서울에 출장 온 세종市공무원, 대기업 직원에 "숙소 잡아달라"
공기업 팀장도 사무관에겐 乙

-乙의 반란
기내 女승무원 폭행사건, 대기업 임원의 부당한 '갑질'에 대중들 비판·조롱으로'응징'

 

5대 그룹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세종시로 근무지를 옮긴 공무원으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업무 때문에 서울에 왔는데 저녁이나 한 끼 하자"는 전화였다. A씨는 선약이 있었지만 호출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무원은 약속 장소에서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던 순간 황당한 부탁을 했다. "내일도 서울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데 잘 곳이 없다"며 숙소를 잡아달라고 했다. A씨는 "세종시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 서울에 출장 오는 공무원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새 접대 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甲乙) 문화는 개발 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온 뿌리 깊은 병폐다. 기업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과실을 따 먹기 위해, 대기업은 관청에 청탁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에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목매는 중소기업의 비애

갑을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현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다.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 문자로 명확히 규정되지만, 을은 계약서에 없으면서 사업과도 전혀 무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에선 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을 '을사(乙死)조약'이라고 부른다.


	갑과 을을 말한다 - 일러스트, 목록
/그래픽=이철원 기자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C대표는 최근 대기업 직원의 결혼식에 가면서 봉투 10개를 준비해 갔다. 최근 이 대기업이 내부적으로 부조금을 5만원 이상 받지 못하도록 임직원 윤리 규정을 강화하자, 봉투 10개에 직원들의 이름을 쓰고 5만원씩을 넣은 것이다. C대표는 "부조금을 달랑 5만원만 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부조금 쪼개기'를 했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중견 건설업체의 D대표는 얼마 전 핀란드에서 사우나 시설을 수입해 들여왔다. 이 사우나가 설치된 곳은 거래하는 대기업 임원의 집이었다. D대표는 "그 임원이 최근 이사를 한 뒤 술자리에서 부인이 '사우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면서 "이 정도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 이 바닥에서 사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갑 중의 갑"… 군림하는 공무원

대기업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하는 E씨는 얼마 전 낯선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받았다.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은 결과 오래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명함을 주고받은 공무원의 청첩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E씨는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성의는 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은 어디서든 갑이다. 대형 증권사의 50대 영업 담당 임원은 금융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공기업 40대 팀장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이 임원은 약속 당일 30대 정부 사무관이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공기업 팀장이 "식사를 한번 모시겠다"며 사무관을 부른 것이었다. 졸지에 저녁 약속은 50대 대기업 임원이 40대 공기업 팀장을 접대하고, 40대 공기업 팀장이 30대 사무관을 접대하는 자리가 됐다.

'을의 반란' 움직임도

을이 갑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갑과 을 간 힘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납품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 관계를 끊긴 중소기업은 한순간에 망하게 되고, 공무원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간인이 쉽게 알기 어려운 규정을 내세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갑을 관계의 오랜 폐단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존 갑을 관계를 뒤집는 '을의 반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에너지 임원 A씨의 '기내 승무원 폭행' 사건에서 보인 대중의 반응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은 거의 뭇매에 가까운 수준으로 A씨를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했다. 이는 비즈니스석 승객 대(對) 승무원이라는 확실한 갑을 관계에서 발생한 부당한 '갑(甲)질'에 대한 집단 응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갑을 문화는 우리의 성공 지향적인 수직적 문화가 만든 대표적 병폐"라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우리 사회가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가는 시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甲乙關係)

‘갑’과 ‘을’은 원래 계약서 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갑은 을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식이다. 통상 ‘갑’이 ‘을’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당사자일 경우가 많다. 여기서 권력적 우위인 쪽을 ‘갑’, 그렇지 않은 쪽을 ‘을’이라 부르며 ‘갑을 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이 생겨났다. 지금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업주와 종업원, 상사와 직원, 고객과 서비스업체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

 

 

甲도 누군가의 乙 억눌러 왔던 분노 弱者에게 표출

 (조선일보 2013.04.30 03:00)

甲만 되면 돌변하는 이유는

 

평소 멀쩡해 보였던 사람이 갑(甲)의 위치에 서면 폭언·폭행 등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뒤에는 어떤 심리가 숨어 있을까.

박진생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폭언·폭행 등을 하는 갑의 심리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조직 대 조직의 관계에서 갑 쪽 조직에 속한 사람도 개인으로서는 언제나 갑일 수는 없기 때문에 평소 억눌러 왔던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표출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다른 기업과의 관계에서 갑의 입장인 대기업 임원도 회사 안에서는 상사의 질책에 시달리는 을의 처지일 수 있다. 을의 입장에서 쌓여왔던 스트레스나 화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상대에게 표출될 수 있다.

박진생 전문의는 "화(火), 분노는 무의식적인 성격이 강해 사소한 자극으로도 쉽게 폭발한다"며 "이렇게 폭발하면 평소 머리가 좋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해도 이성적으로 쉽게 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권력을 가진 갑의 심리를 동물의 습성에 빗대 설명했다.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은 주변을 경계하느라 시야가 넓어지지만,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捕食者)는 자신이 노리는 먹잇감만 바라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다. 사람의 심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곽 교수는 "사람도 권력을 가질수록 자기중심적, 목표지향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며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 일과 관련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기분이 나쁘다'는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위주로 시야가 좁아져 있기 때문에 거기서 어긋나는 일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면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80% "나는 乙이다"… SNS·인터넷으로 甲의 횡포 '고발'

 (조선일보 2013.04.30 05:17)

-乙의 '소심한 반란'
직장에서의 甲乙관계 다룬 드라마·코미디 등 인기

 


	직장인이자 인기 만화가인 루나는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는‘갑’을 회화화했다(사진 위). 아래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갑을 컴퍼니’.
직장인이자 인기 만화가인 루나는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는‘갑’을 회화화했다(사진 위). 아래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갑을 컴퍼니’.
건축설계사였던 40대 A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GAP'이란 글씨가 크게 쓰인 티셔츠를 사 입었다. 의아해하는 지인들에게 그가 답했다. "나도 이제 '갑'으로 살고 싶어서." 건축가였던 그도 '갑 노릇'하는 고객(클라이언트)에게 질려버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최근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9.5%가 자신을 '을'이라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을'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72.7%는 '갑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에선 '갑질(갑의 부당 행위)' '네가 갑이다' '갑 마인드'란 유행어를 넘어서서 '수퍼 갑' '울트라 갑'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한쪽이 '무한권력'을 행사하고, 다른 쪽은 '무한 봉사' '무한 비굴'을 강요 당한다는 피해 의식이 깔려 있다.

'갑을 관계'가 소재인 코미디나 드라마도 있다. 얼마 전 끝난 '개그콘서트'의 '갑을 컴퍼니'는 직장 상하 관계에 적응하는 신입 사원의 애환을 그렸다.

드라마 '직장의 신'은 월등한 능력을 갖춘 계약직 근로자 '미스김'이 정규직을 압도하는 내용이다. '을'이라 믿는 시청자에게 대리만족감을 준다. 출판계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인터넷 카페 '대나무숲'은 '을'을 자처하는 이들이 각종 부당 사례를 고발하는 공간이다. 객관적 사실관계를 따지는 언론의 도움 없이 일방적으로 "나는 이렇게 당했다"는 주장도 SNS나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을의 발언' '을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DB '미디어가온'을 검색한 결과, '갑을 관계'나 '갑을 문화'라는 말의 용례가 나타난 것은 2004년이다. IMF 사태 이후 민주화·정보화의 진전과는 반대로 일부 대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갑을'로 치환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세계 15위 경제 규모지만 투명성 지수는 45위(지난해 말 기준)에 그치는 사회 현실이 '갑을 관계'에 투영돼 있다.

차명호 평택대 피어선심리상담원장은 "갑을이란 말의 유행은 역으로 압축 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거나 불분명해지는 시대가 닥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력'이 '갑을'을 대체하기를 희구하는 심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갑을 관계'에 대한 집착은 '승복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계약 관계, 혹은 상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갑의 횡포'라 치부하는 '집단적 핑계'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로서 부끄러운 얘기 하나 해도 될까요?

 (한겨레  2013.05.10 21:4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갑질하는 기자가 되지 않으려는 친절한 기자 윤형중입니다. 저는 지난해 경력기자로 <한겨레>로 옮겨 두달 전부터 토요판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기자랑 교수, 검사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누가 계산을 하는지 아세요? 정답은 식당 주인이에요. 그만큼 기자, 검사, 교수들이 밥값을 안 낸다는 얘기죠. 이 이야기는 어디 가서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들을 비꼰 겁니다.

웬 밥값 얘기냐고요. 밥값은 중요합니다. 갑을을 가르는 기준이 되거든요. 대개 밥값을 안 내는 쪽이 ‘갑’이 됩니다. 심지어 갑을관계가 뒤바뀌면 계산하는 쪽도 바뀝니다. 디스플레이 업황이 좋을 땐 엘지디스플레이 사장이 아시아나항공 사장에게 밥을 사고, 안 좋을 땐 그 반대가 되죠. 업황이 좋으면 항공편 잡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이처럼 ‘누가 밥값을 내느냐’가 중요한 기준인데도 밥값을 참 안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기자’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기자의 모습은 제가 이 세계에서 경험한 첫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직업상 만남이 잦은데도 기자들은 커피값, 밥값, 술값을 잘 내지 않습니다. 기자가 되기 이전엔 이 정도로 얻어먹고 다니는지 몰랐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은 분들은 모르겠죠. 저도 예외가 아니라 부끄럽긴 합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취재원들은 기자에게 밥을 살까요. 기자와 언론이 갑이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요즘 많은 언론들이 사회 곳곳의 갑을관계를 다루고 있는데요. 언론이 자행하는 ‘갑의 횡포’는 간과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갑질하는 언론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많은 기자들이 회삿돈이 아닌 기업과 공공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갑니다. 기자들을 상대하는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한 매체의 기자가 해외출장에 가족들을 데려와 애초에 책정한 것보다 비싼 호텔방을 예약해달라고 요구해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습니다. 일부 언론사 간부들은 기업이 출시한 신제품이나 비싼 공연티켓 등을 출입기자에게 얻어 오라고 요구합니다. 회사 안에서는 ‘을’인 기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취재원에게 ‘갑질’을 해야 하는 경우죠. 언론사가 엠티나 워크숍, 피크닉 등을 갈 때 기업이 숙박시설을 예약해주고, 기자들에게 나눠줄 각종 경품을 지원하곤 합니다. 이럴 때 센스있게 잘 도와주는 기업은 큰돈 안 들이고 괜찮은 로비를 하는 셈이죠. 지금까지 나열한 사례들은 찌질한 갑질에 불과합니다.

진짜 언론의 갑질은 ‘수익’과 관련돼 있습니다. 업계에선 ‘광고를 받는 두 가지 방법’이 쪼찡과 조지기라고 합니다. 쪼찡은 일본말 조친(提燈)에서 유래한 말로 홍보성 기사를 의미합니다. 효과는 쪼찡보다 조지는 것이 좋습니다. 2년 전 제가 한 대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를 썼을 때 이 기업의 홍보실장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얘기해봐라. 임원과 상의해서 최대한 들어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언론사 간부들은 분기·반기별 광고수주 실적을 확인한 뒤에 특정 기업을 지목해 기사 쓸거리를 찾아오라고 지시합니다. 이럴 때 괜찮은 기삿거리를 찾아서 해당 기업의 고위급 임원이 언론사로 찾아오게끔 하는 기자는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기도 하죠. 종합편성채널을 준비했던 언론사들은 자본금을 유치하기 위해 몇몇 기업을 상대로 무력을 과시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종편 언론사들은 거꾸로 주요 주주로 참여한 기업들의 ‘을’입니다. 조선일보가 동국제강, 대한항공, 에스피시(SPC)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잘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언론사가 참가비가 일인당 수십만원, 수백만원에 이르는 세미나, 포럼 등을 자주 여는 이유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갑의 지위를 활용해 출입하는 기업과 기관에 표를 팔 수 있기 때문이죠. 일부 언론들이 운영하는 투자정보 전문 뉴스서비스 역시 기자들이 수십만원짜리 구독권을 기업들에 판매하곤 합니다.

수습기자 때 기사를 쓰려고 회의시간에 제출한 아이템이 ‘한국 사회의 갑을관계’였습니다. 그때 ‘밥을 누가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사회 각 부문의 갑을관계를 정리해 ‘지위를 남용하는 갑’과 ‘유착된 갑을관계’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부장이 “너랑 나 중엔 누가 갑이냐”고 물었고, 한 선배가 “밥 먹을 때 부장이 계산하니까 얘가 갑이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이 아이템은 묻혔습니다. 요즘 저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갑의 횡포를 고발하고 싶은 분들은 연락 주세요. 밥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윤형중 토요판팀 기자 hjyoon@hani.co.kr

 

 

‘乙중의 乙’ 계약직·인턴 女의 눈물 “성희롱 당해도 해고될까봐 말 못해”

 (서울신문 2013-05-12)

‘윤창중 파문’ 속 직장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 갑을관계’ 도마에

 

#지난해 안모(26·여)씨는 직원이 12명인 무역회사 사장실의 인턴 비서로 입사했다. 첫 출근 후 일주일 내내 안씨는 사장의 술 접대 자리에 따라가야 했다. 어느 날 사장은 “사무실에 일이 남았으니 같이 가자”며 안씨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호텔로 향했다. “방까지 따라오라”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객실 복도까지 따라간 안씨에게 사장은 “내가 여기 왜 온 것 같으냐?”며 빤히 쳐다봤다.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듯 나온 안씨는 곧바로 회사를 그만뒀다. 그녀는 “물리적으로 폭행당하진 않았지만 충격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택배회사의 파견직 전화 상담원인 최모(34·여)씨는 본사 인사과장과 첫 술자리 직후 택시 안에서 추행을 당했다. 과장은 “근무평정을 할 게 있다”며 불러냈다. 몸을 더듬고 강제로 입을 맞추려고 했지만 거부했고 최씨는 이튿날 본사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본사 대표, 인사과장과의 3자 대면에서 최씨에게 돌아온 것은 “계속 일하고 싶으면 소문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요구였다. 최씨의 반발에 결국 과장은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최씨는 “비정규직이 멀쩡한 직원 하나 쫓아냈다”는 뒷이야기에 시달려야 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진실공방 속에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을 중의 을’ 신세인 계약직이나 인턴 여사원들에게 자행되는 상사의 성폭력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지난해 직장 내 성폭력 상담 125건 중 계약·파견직 등 비정규직 여성의 피해 사례는 61건으로 거의 절반(48.8%)에 이른다. 여성가족부의 최근 성희롱 실태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비율은 정규직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이들 중 92.9%는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이유는 “업무 인사 고과상 불이익 우려”가 29%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하면 바로 계약해지나 해고 등 고용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다 보니 오랜 기간 반복되는 피해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도 많다. 박지선 경찰대 교수는 “윤 전 대변인 사건은 사실관계를 떠나 사회적 힘을 가진 권력자에 의한 폭력인 측면이 짙다”고 규정했다.

박 교수는 “직장 내 성폭력은 ‘만졌지만 성추행은 아니다’는 상사의 합리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부장적이고 위계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 문화가 피해를 본 하급 직원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조은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사건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나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정규직 여직원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비정규직 피해 사례가 많다”면서 “사업주가 비정규직 근로자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