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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군자’ 공자도 쾌락주의자였다 (한겨레 2013.05.03 19:50)

‘도덕군자’ 공자도 쾌락주의자였다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
이호영 지음/책밭·1만6000원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

알쏭달쏭, 개 발에 편자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축구와 골프는 노는 것, 즐거운 것, 곧 쾌락을 뜻한다. 공자는 익히 아는 대로 지금부터 2500년쯤 전에 ‘예’를 내세워 유학을 창시한 분, 양주는 그 1~2세기 뒤 전국 시대에 ‘나’(爲我)를 앞세워 쾌락주의 학설을 편 분.

발칙한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중국 고대 사상가 공자와 양주의 사유를 각각 축구와 골프에 비유하면서, 두 사상가를 쾌락이란 공통의 열쇳말로 오늘에 불러들여 즐겁게 찧고 까부는 책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공자는 ‘같이 노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힘을 썼고 양주는 ‘혼자 노는’ 조건을 만드는 데 애를 썼다. 단체 게임의 전형인 축구는 공자를, 혼자서 자기 컨트롤에 집중하는 골프는 양주를 제대로 설명하는 데 요긴하단 얘기다.

지은이 이호영(49·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전임연구원)씨는 양주뿐 아니라 공자 역시, “문명과 육체적 쾌락을 한데 엮어 그 가능성의 공간을 찾아다녔던 인물”인바, 공자를 도덕적 근엄함의 장막에 가둬두는 건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오독이라고 주장한다. “공자는 예악의 두터운 장막 안에서 사실은 즐거움과 쾌락의 행복을 이야기했으며, 양주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가 겸 사상가인 공자의 면모를 풀어놓기 위해 지은이가 빌려 쓰는 ‘연장’은 20세기 독일의 문명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론’이다.

공자의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3세기)는 수백 제후국이 이합집산하며 전쟁의 살육이 끊이지 않던 때다. 폭력 만연은 중앙권력이 부재한 탓이었다. 공자가 본 것은 군주를 죽이는 신하, 아비를 죽이는 왕자, 아들을 죽이는 아비, 배가 고파서 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이었다. 그 속에 살던 공자의 메시지는 전쟁 속에서 적을 도륙하고 피 뚝뚝 떨어지는 칼로 동물이나 사람의 살을 썰어 먹는 즐거움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공자는 폭력보다는, 평화로운 계급사회에서 ‘예’를 통해 서로 눈치껏 노는 것이 더 즐겁다고 보았고, 그 결과 공자가 제시한 길은 주나라의 계급 질서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엘리아스는 18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절대왕정 아래의 궁정사회, 곧 당시 베르사유 궁정에 모여들던 각 지역 귀족들 간의 예절 관계가 지니는 정치적인 의미에 주목했다. 궁정 귀족사회의 예절과 문물이 귀족들이 궁정에 끌어들인 신흥 부르주아를 통해 사회 전반으로 퍼져 결국엔 대중들에게 파급되는 과정을 그는 문명화 과정이라 불렀다.

지은이는 엘리아스가 분석한 절대왕정으로부터 근대 국가들이 생겨나 각축하는 과정은, ‘예’라는 원리로 움직이던 주나라 궁정사회가 붕괴하면서 각국이 대립하는 춘추전국 시기로 옮겨가는 양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본다.

엘리아스의 연장으로 뜯어 보면, 공자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사상가가 된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새로이 떠오른 지식인·무사 계급인 사인(士人)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무당, 아버지는 지식인 계급으로 뛰어오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던 하급 무사였다. 공자는 ‘도’와 ‘예’를 통해서 종전 주나라 궁중사회의 의례와 예절을 신흥 계급에 맞게끔 재해석한 인물이며, 사회에 만연한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려고 애쓴 계몽적 문명주의자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양주의 핵심 사상은 ‘나를 귀하게 여김’이다. 양주는 삶의 목적이 쾌락이라고 주창했다. 그는 맹자로부터 “군주도 부정하는 이기주의자”라고 비판받았지만, 그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양주는 사람이 편히 쉬지 못하는 이유로 수명, 명예, 지위, 재화의 네 가지 욕망을 지목하면서, 이런 욕심을 가진 이를 멍청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는데, 그 멍청한 사람이란 공자, 맹자처럼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신흥 부르주아 사인 계급을 뜻했다.

지은이의 주장은 <논어> 같은 경전이나 고전을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이 아니라 발치에 놓인 연장통 속 연장처럼 보자는 것이다. 3000년 전 주나라에선 예가 유일한 문명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공자건 양주건 그 무게에 주눅들지 말고 우리 삶의 즐거움을 위해 활용하자. 지은이는 이 방식이 외려 두 사상가를 오독하지 않고 정독(正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학은 동아시아를 한 문명권으로 묶는 데 근간이 돼온 학술·종교이다.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는 동아시아 문명 안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들에게 이 문명이 낳은 고전을 향유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