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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

26세女, 엘리베이터 안에서 화장 했다가… (조선일보 2013.03.31 14:32)

26세女, 엘리베이터 안에서 화장 했다가…

택시 블랙박스 3일, CCTV 30일, 포털 접속 999일, 교통카드 5년, 금융기록은 평생…


- 20대 직장인 하루 보니
집에서 회사까지 CCTV만 총 31차례 찍혀
문서·이메일 보면 내용까지 고스란히 저장
휴대폰 통화내역 6개월, 카톡은 3~10일


- 지우고 싶어도 못지운다
카드 사용내역 5년, 통장내역은 영구보존…
사고나면 증인·구세주 역할 하겠지만
본인 뜻과 무관하게 피해 발생 가능성도


- 사생활 침해 '빅브라더'
지나가기만 해도 찍히는 '구글 안경'
출시되기 전부터 반대 여론 들끓어
美 일부 카페 '착용자 출입금지' 선언

 

사회 최고위층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별장 성 접대'는 당사자에겐 감추고 싶은 과거다. 하지만 그 과거가 별장에 설치된 CCTV에 의해 3년 후 실제 영상으로 발가벗겨지고 있다. CCTV는 '보안'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불특정 다수의 과거를 무차별 포박해 그 기록이 훗날 당사자의 인생에 비수처럼 꽂힐 수 있다.

사람들의 과거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 마음먹으면 한 개인의 과거를 낱낱이 재구성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평범한 일상의 나, 기념하고 싶은 나…뿐만 아니라 지우고 싶은 내 과거가 누군가의 저장 장치에 남아 있다면? 이런 세상을 우리는 '디지털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을까.

2년차 직장인 이선희(가명·26)씨는 지난 27일 오전 6시 49분 경기도 평촌의 자택 현관을 나섰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고, 1층에 내려 코트 깃을 여미며 아파트 앞에 서 있는 택시를 향해 뛰어갔다. 이씨가 탄 택시는 5분 후 평촌역에서 멈춰 섰고, 이씨는 현금으로 2300원을 지불했다. 이씨는 이 일들을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씨의 이런 과거는 어딘가에 고스란히 저장되고 있다.

이씨의 과거는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저장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는 이씨가 탑승한 시각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1층 현관에 있는 CCTV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저장된 이씨의 과거는 아파트 관리실에 있는 서버에 30일 동안 보관된다.

이씨가 탔던 택시의 블랙박스에도 이씨의 승차 모습과 차 안에서 조는 장면, 전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블랙박스의 저장 용량은 32GB다. 용량이 다해 이전 자료를 지워야 할 때까지 저장된다.

CCTV가 30일 동안 저장하고 32GB까지 저장하는 것은 용량의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학자들은 "기술 발전으로 컴퓨터 저장 용량이 늘어나고 있어 기록을 삭제해야 할 기술적 한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무한 저장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 밖 활동의 90%가 기록된다

다시 이씨의 일상으로 돌아가 보자. 이씨는 이날 오전 6시 49분 집을 나와 8시 17분 사무실 출입문에 사원증을 댈 때까지 총 31차례 CCTV에 찍혔다. 평촌역에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면서 찍혔고, 편의점에서 바나나맛 우유와 빵 1개를 사는 장면도 CCTV를 통해 찍혔다. 7시 1분에 교통카드를 대고 지하철역에 들어가는 모습이나, 3―1 승강장에서 지하철 기다리는 장면도 역사 안에 있는 CCTV에 녹화됐다. 지하철 4호선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내린 삼각지역에서는 내리고 환승하고 올라타는 장면이 다섯 차례 찍혔다.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는 8시 2분에 2번 출구로 나가서 셔틀버스를 타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씨의 과거는 CCTV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씨가 지하철을 타는 데 사용한 신용카드에는 그가 지하철을 타고 내린 장소는 물론 시간 정보, 1450원을 냈다는 것까지 카드회사 서버에 담긴다. 이 정보는 5년 동안 보관된다. 이씨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보기 위해 한 포털사이트에 로그인하고, 뉴스도 봤다. 이 역시 포털사이트 서버에 남았는데, 최대 999일 동안 보관된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한 음악사이트에 접속해서 노래를 들었는데, 여기에는 이씨가 들었던 음악 목록과 시간 기록이 남았다.

출근과 동시에 이씨의 하루는 계속 기록된다. 이씨는 컴퓨터를 켜고 사내 이메일을 확인했다. 이 기록은 회사 서버에 무슨 내용인지도 고스란히 남는다. 결재받을 문서를 작성했는데, 문서 작성기에도 이씨가 문서를 열고 저장한 시간이 저장돼 있다. 이날 이씨는 사무실에서 휴대전화 2통, 일반전화 7통, 카카오톡 3회 등을 했다. 이는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이씨가 사용하는 A통신사는 이씨의 통화 내역을 6개월 동안 저장한다. 친구와 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당사자가 지워도 상대가 지우지 않으면 영원히 남는다.

밤 9시 42분 귀가한 이씨가 이날 집 밖에 나와 있었던 시간은 모두 14시간 53분. 그런데 기록의 공백이 있었던 것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세 차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와 오전 9시부터 15분 정도 있었던 부서 회의 때다.

이런 이씨의 과거는 짧게는 1달, 길게는 평생 보관된다. 경찰이 방범용으로 운용하는 전국의 CCTV 6만4596대(2012년 12월 현재)는 촬영 영상을 30일간 보관한다.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이메일을 사용한 기록은 6개월치가 보관되고, 인터넷 사이트 접속 내역은 각 사이트가 설정한 기간에 따라 최대 999일까지 남아 있다. 금융 정보는 더 오래 남는다. 신용카드사는 개인의 카드 사용 내역을 5년간 보관하고, 은행은 영구적으로 통장 거래 내역을 보존한다. 이씨는 과거를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가 없다.

일생 전체를 기록

지난달 28일 딸을 낳은 A씨는 임신 사실을 안 직후 아이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 임신 4~5주차 처음 아이의 크기는 1.5㎝였다. 이후 매달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초음파 사진과 동영상에 담았고, 몸무게와 키, 심장박동수도 기록했다. A씨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근처에 있는 사진 촬영 업체와 계약을 해서 분만 후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을 수 있게 했다. A씨는 딸이 태어난 직후까지 수많은 기록을 저장했다.

기술 발달로 한 개인의 일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저장되고 있다. 엄마 배 속에서는 초음파 검사에서부터 아이의 건강 상태가 저장된다. 태어난 직후부터는 표정이나 울음소리도 동영상으로 저장된다. 과거에는 백일·돌에나 찍던 아이 사진이 휴대전화 카메라가 보편화 된 이후 처음 일어선 날, 걸음마 연습 등 일상생활이 사진으로 남았다. 이후 병원을 드나들면서,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면서, 회사에서 일하면서 개인의 정보는 낱낱이 기록돼 저장된다. 카메라와 녹음 기능이 소형화 정밀화되고, 저장매체의 용량이 급격히 커지면서 미래에는 개인의 모든 일상이 저장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미 인류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좀 더 손쉽게 녹음하고, 사진을 찍어서 저장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나아가 별 노력을 없이, 신체의 특정 부위에 접촉만 하면 자동으로 개인의 일상이 기록되고 저장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첨단 기술 개발에 각국 정부와 구글·삼성 같은 IT업체가 나서고 있다. 손목시계를 통해 건강 상태를 저장하고, 안경을 통해 보는 장면을 모두 기록한다.

구글이 개발 중인 구글 안경은 무게가 50g도 되지 않는 일반 안경과 차이가 없지만, 카메라에 마이크, 스피커 등이 장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경을 쓰면, 내가 하루 동안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일상이 저장될 수 있다. 이렇게 저장된 나의 과거를 필요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개인에 대한 정보를 가장 활발하게 기록하고 사용하는 분야는 의료분야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배창석 박사는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기록하겠다는 의사가 가장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몸속에 칩을 넣고, 전자 기억 되돌리기

2004년에 나온 영화 '파이널 컷'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조(zoe)라는 메모리칩을 아기의 뇌에 이식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부모들은 이 메모리칩을 통해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을 기록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칩은 전문적인 '제거인'에 의해 제거되고, 삶의 기억은 '리메로리(rememory)'라고 불리는 장편영화 형태로 편집돼 장례식에서 친구나 가족들을 위해 상영된다.

미래에는 이런 방식으로도 우리의 일생이 기록될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실제 현재 미국에서는 이 방식을 사용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가로·세로 1×4㎜ 크기의 패치를 몸에 붙이면, 이 패치에는 개인의 혈당과 혈액, 콜레스테롤, 암과 관련된 종양의 상태 등이 실시간으로 체크가 된다. 이 패치는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이나 병원 서버에 저장된다. 이를 통해 건강 상태를 꾸준히 기록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오는 2017년 정도에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개인의 몸에 최첨단 칩을 넣는 것도 연구되고 있다. 이 칩이 몸에 들어가면 당뇨와 심장병, 암 등 개인의 모든 건강 상태가 상세하게 실시간으로 꾸준히 파악돼 기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무한히 저장되는 상황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다.

구글 안경의 경우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출시도 되기 전부터 미국에서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5포인트카페'라는 술집은 구글 안경 착용자의 출입을 금한다고 선언했다. 이 카페의 주인은 "구글 안경을 쓴 사람이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바로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장 기술의 발달도 무심코 했던 행동이 한 개인에게 재앙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정준길 당시 새누리당 공보위원은 출근길 택시 안에 안철수 전 교수 측 금태섭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금씨가 "정 위원이 협박성으로 안 교수의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공개하자, 정씨는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면서 통화를 했으며 협박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탔던 택시의 기사가 "정씨가 누군가를 협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통화했던 기억이 있다"며 블랙박스를 확인하겠다고 나섰다. 그때야 정씨는 "착각이 있었다"며 전화를 건 사실을 인정했다. 과거를 포착한 블랙박스는 금씨에겐 구세주였지만, 정씨에게는 재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