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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공모전

국정원 여직원 120개 ‘정치적 글’ 게시… 정상업무 여부 논란 (동아일보 2013-02-01 10:42:17)

국정원 여직원 120개 ‘정치적 글’ 게시… 정상업무 여부 논란

 

 

대선 개입 의혹을 받아온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 씨(29)가 선거 직전 인터넷 사이트에 4대강 사업이나 국가보안법 존폐 등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포함해 모두 120여 건을 올린 사실이 확인됐다. 국정원 직원이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사회 이슈에 관해 한쪽을 대변하는 의견을 표출한 것이다. 이를 국정원의 정상 업무로 볼지, 부당한 정치 개입으로 판단할지 논란이 일고 있다.


○ 북한과 통진당 비판, 보수정책 지지

서울 수서경찰서는 김 씨가 지난해 8월 28일부터 12월 11일까지 좌파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와 중고차 매매사이트 ‘보배드림’에 각각 91개, 29개의 글을 게시했다고 31일 밝혔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김 씨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사용한 11개의 ID로 해당 게시물을 검색한 결과 북한과 야당, 좌파성향 단체의 주장을 비판하는 글이 대다수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 정책을 옹호하는 내용도 있었다. 본보가 확인한 46개의 글 중 북한 비판이 18건, 대통령 칭찬 8건, 민주통합당 비판 1건, 통합진보당 비판 5건이었다. 김 씨는 자신의 ID로 올린 글에 다른 ID로 추천을 누르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올린 글도 발견됐다

김 씨는 북한을 비난하는 글을 가장 많이 썼다.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핵실험하고 미사일 쏘는 게 정상인가?”(지난해 12월 5일) “북한이 ‘제2의 6·25’까지 운운하면서 대놓고 우리나라 대선에 개입하려고 한다”(지난해 11월 21일) 등이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논란이 되자 지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야당 후보들의 발언과 관련한 의견도 나왔다. 김 씨는 12월 5일 ‘남쪽 정부’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제 토론 보면서 정말 국보법 이상의 법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표현하는 지경이라니”라고 썼다. 전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TV 토론회에서 ‘남쪽 정부’라고 말한 것을 비판한 글이었다.

11월 2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조건 없는 금강산 관광 재개하자”고 주장했을 땐 “금강산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목숨 걸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썼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 경비병에게 피격돼 숨진 박왕자 씨 사건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 해군기지 예산안이 민주당의 반대로 보류된 것과 관련해선 “(국가안보에)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입만 여는 반대세력 덕분에 국가안보가 보류되고 말았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찬양하는 글도 있었다. “이 대통령이 발리 민주주의 포럼에서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압박했다”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을 유치한 걸 보니 이 대통령의 외교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등의 내용이다.

○ “선 넘은 부당 처신” vs “정상적 업무”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김 씨가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적 이념적 성향의 게시글을 직접 올린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이 제기된다. 설령 글의 내용 중 대부분이 종북주의에 맞선 이념적 선전 활동이었다 해도 국정원 직원이 업무시간에 이런 게시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그가 올린 글 가운데는 특정 대선 후보 진영에 불리한 내용이 있다. 민주당은 31일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라며 “국회 정보위를 즉각 소집해 국정원과 경찰에 강력하게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 사이버요원 1명이 선동 글을 게재하면 핵심 추종세력 9명이 실시간 퍼나르고, 이를 90명이 본다. 오늘의 유머는 북한에서 쓴 걸로 보이는 글들이 다수 발견돼 심리정보국이 이에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에 관한 글에 대해선 “보수 성향인 김 씨가 개인적으로 쓴 글이다. 주로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에 대한 내용이라 국내 정치와는 무관한 데다 치적에 관한 글은 1, 2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보 취재 결과 김 씨의 ID로 작성된 이 대통령을 칭찬하는 글은 확인한 것만 8개였다. 이 중 일부는 삭제됐다.

전문가들은 김 씨의 이 같은 행위가 정상적인 업무 범위를 넘어섰다는 의견을 내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국정원이 심리전 업무 활동으로 글을 올려도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이 포함돼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선거 기간에는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4대강 예산, 해군기지 등 국내 정치 이슈에 대한 언급도 비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 국민을 상대로 정치적 성향이 강한 글을 올리는 것은 여론몰이의 가능성이 있다”며 “대선 후보의 이름을 지칭하지 않았더라도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정원의 심리전이 북한의 대남세력, 종북세력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철저하게 국익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며 “북한이 인터넷 심리전을 상당히 고차원적으로 펼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 은폐 논란 자초한 경찰

경찰은 김 씨가 올린 글이 뒤늦게 알려지자 은폐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은 1월 3일 김 씨의 정치 관련 글의 내용을 확인하고서도 “김 씨가 연예나 요리 등 사적인 내용의 글밖에 올리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광석 수서경찰서 서장은 “박근혜 문재인 등 키워드가 포함돼 있지 않은 글은 대선과 관련 없다고 보고 발표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