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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도성 유적에서 목간 발견 (조선일보 2013.01.13 10:57)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도성 유적에서 목간 발견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도성이 있었던 부여 쌍북리 184-11 유적에서 최근 발견된 목간. 목간에서 묵흔(墨痕·먹물이 묻은 흔적)이 확인됐으며 전면부에 4개의 글자가 쓰여 있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도성이 있었던 부여 쌍북리에서 목간이 발견됐다.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는 작년 말 부여 쌍북리 184-11 유적에서 목간 두 점을 확인했다.

이 유적에서는 목간 두 점을 비롯해 남북도로 1·2, 우물, 수로, 목재 구조물, 우물 관련 구덩이, 건물지, 수레바퀴 흔적, 구상유구(도랑 모양의 유적) 등 백제 사비기(538~660년) 유적과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목간 두 점은 모두 남북도로 1의 측구(側溝)에서 발굴됐다. 이 중 한 목간에는 상단부 쪽에 끈 등으로 묶을 수 있게 ’ ’의 흠이 나 있었으며 또 다른 목간에는 묵흔(墨痕·먹물이 묻은 흔적)이 확인됐다.

묵흔이 발견된 목간은 판상형(널빤지처럼 생긴 모양)으로, 윗부분은 반원 모양을 띠며 아랫부분은 결실된 상태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길이는 10.1cm, 폭은 2.45cm, 두께는 0.3cm 이하로, 전면부에 4개의 글자가 쓰여 있다.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의 심상육 연구원은 목간에서 확인된 네 글자는 “’근지수자(斤止受子)’로 판독된다”고 밝혔다.

심 연구원은 “이번에 확인된 목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여) 관북리 백제 유적에서 나온 ’중방향(中方向) 목간’(유물번호 833)과 형태상 비슷하다”면서 “중방향 목간은 문서 목간으로 분류되지만 이번 ’근지수자’ 목간은 인명(人名)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추정했다.

긴 판자모양으로 자른 나뭇조각에 글을 써넣은 목간(木簡)과 대나무 목간인 죽간(竹簡)을 합쳐서 간독(簡牘)이라고 하는데 간독은 백서(帛書·비단에 글을 써넣은 것)와 함께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사용됐다.

간독과 백서는 문헌 자료만으로는 풀리지 않았던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로 평가된다.

특히 최근 백제 마지막 도읍인 부여 유적에서 목간이 잇따라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4월 부여읍 쌍북리 173-8ㆍ172-5번지 일대에서는 마약의 일종인 오석산(五石散)을 백제인들이 복용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적힌 목간이 발굴됐으며 이어 그해 10월 부여읍 구아리 교회 증축공사 예정지에서는 쌀의 일종인 ’적미’(赤米)라는 글자가 적힌 백제 시대 목간 8점이 나왔다.

심 연구원은 “부여 지역의 경우 유기물질이 땅속에서 잘 보존될 수 있는 환경이어서 목간, 나무그릇 등 유기물로 된 유물들이 썩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고 설명했다.

백제 제26대 왕 성왕(523~554)은 백제 중흥의 큰 뜻을 품고 538년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겼지만 백제는 천도 122년 만에 패망하고 말았다.

심 연구원은 12일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회장 주보돈) 정기발표회에서 이번 발굴 조사 결과를 담은 연구 논문 ’부여 출토 문자자료 신출 보고’를 공개했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1924년 평양 석암리 194호 유적에서 나온 죽간에 대한 분석 결과도 소개됐다.

평양 석암리 194호 유적은 평양시 낙랑구역 석암동에 위치한 귀틀무덤(목관묘·木槨墓)이다. 무덤 내부에는 3개의 목관이 남북 방향으로 배치돼 있었는데 관 내부에서 죽간 조각을 비롯해 다양한 명문이 새겨진 칠기 그릇, 벼루와 휴대용 벼루 케이스 등이 출토됐다.

죽간 등 유물 사진과 발굴 현황 자료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암리 194호분 출토 죽간’이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한 안경숙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를 토대로 죽간을 분석한 결과 “재질은 대나무”였으며 “일반적인 (중국) 한(漢)대 죽간 표준형이었지만 문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안 학예연구사는 또 “정밀 조사 결과 표면에는 칠이 되어 있었고, 비록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위아래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2-3단 정도 끈으로 엮었던 흔적이 드러나 죽간의 표제를 적는 부분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1992년 평양 낙랑구역 정백동(貞柏洞) 364호 목관묘에서는 논어가 기록된 죽간이 발굴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안 학예연구사는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의 존재는 고대 한반도에 문자문화가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안 학예연구사의 연구 논문은 다음 주 발간 예정인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지 최신호에 실릴 예정이다.

한국목간학회 총무이사인 김재홍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부여에서 출토된 목간 자료와 낙랑 죽간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부여 목간 자료는 발굴 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고, 낙랑 죽간은 일제강점기에 출토된 자료지만 이번에 새로이 죽간인 것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