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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그댄 어디 갔기에 날 까맣게 잊었는가` (조선일보 2009.02.11)

채제공 죽으니 안개속에 앉아 있는 듯"


正祖의 비밀편지에 드러난 인간미"헤어진 뒤로 어느덧 달이 세번 바뀌고 50일이 지났는데, 그리운 마음에 잊지 못하고 있다. 요사이 강가에 거처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일을 보느라 바빠 잠깐의 틈도 내기 어렵다.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가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밥을 먹으니, 피로하고 노둔해진 정력이 갈수록 소모될 뿐이다."

정조(正祖·1752~1800)가 1797년 10월 7일 노론 벽파(僻派) 영수 심환지(沈煥之·1730~1802)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다.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정적(政敵)을 '요리'하기 위해 보냈다고 하더라도 꽤나 감상적이다. 정조는 당시 예조판서였던 심환지를 우의정에 임명하기 위해 금강산에 피신 여행을 보냈다.

지난 9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공개한 정조의 비밀편지 299통에는 '정치가' 정조의 노회함과 아울러 애틋한 인간미를 드러내는 표현이 가득하다. 정조는 칠순인 심환지가 더 늙기 전에 그의 아들을 과거에 합격시키고 싶었지만, 아들의 실력이 모자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300등 안에 미치지 못했으니, 이미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기나긴 세월이 있으니 어느 때인들 합격할 수 없겠는가? 내가 굳이 이번에 하려고 한 것은 경이 심하게 노쇠하기 전에 자식이 과거에 합격하는 경사를 보도록 하고 싶었다."(1799년 10월 1일)

그러나 노(老)신하가 입 조심하지 않는다며 '생각 없는 늙은이'라고 꾸짖기도 했다. "나는 이처럼 경을 격의 없이 대하건만 경은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 이후로는 경을 대할 때 나 역시 입을 다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스운 일이다. 참으로 이른바 '이 떡을 먹고, 이 말을 참아라'는 속담과 같으니, 다시금 명심하는 것이 어떠한가? 경은 이제 늙어 흰 머리가 되었다. 게다가 처지와 신임이 어떠한가? 그런데 매번 입을 조심하는 일 한가지만은 탈이 생기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경은 생각 없는 늙은이라 하겠다. 너무나 안타깝다."(1797년 4월 10일)
정조는 자신을 보필하던 신하의 죽음을 겪은 뒤 '밤마다 방안을 맴돈다'고 호소한다. "채제공이 죽었으니 텅 비어 사람이 없다고 하겠다. 근래에는 풍속이 야박하여 남인이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배꼽 잡는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한다. 저 대신은 유독 남인이 아니란 말인가? 마치 안개 속에 앉아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보탬이 되고 굳건히 하는 방법이 될지를 모르겠다. 어찌 밤마다 방안을 맴돌지 않을 수 있겠는가."(1799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