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삼국통일의 저력을 보여준 마갑]
"고구려 고분보다 생생한 기마병 복원"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2일 직접 주재한 경주 쪽샘지구 발굴설명회를 통해 공개된 신라시대 마갑 유물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쪽샘지구 발굴조사단인 경주연구소가 '쪽샘 C10호묘'라고 명명한 이 고신라 고분은 이미 오래 전에 봉분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시신 등을 매장하기 위해 판 구덩이인 묘광(墓壙)만 남아있었다.
이 시대 신라고분이 으레 그렇듯이 이 고분 또한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 마련하고 시신 머리는 동쪽에 두되, 그 한쪽 끝에는 토기와 같은 부장품만을 매장하기 위한 구덩이를 별도로 팠다.
그래서 시신을 매장하는 공간을 주곽(主槨)이라 하고, 부장품을 넣어 두는 곳을 부곽(副槨)이라 해서 이런 무덤 양식을 고고학계에서는 주ㆍ부곽식 목곽묘(主副槨式木槨墓)라고 부른다. 목곽묘라고 이름을 붙이는 까닭은 주곽 안에 목곽(木槨)이라는 덧널, 혹은 나무 상자를 별도로 설치하기 때문이다.
C10호묘에서 마갑은 주곽(440×220㎝) 바닥에 질서정연하게 깔린 채 발견됐다. 그 모양은 흡사 담요나 장판을 연상케 했다. 이 마갑은 명칭 그대로 말이 착용한 갑옷을 말한다.
한데 이 마갑 위에는 또 다른 갑옷이 발견됐다. 찰갑(札甲)이라고 하는 비늘식 갑옷이었다. 찰갑은 가슴 가리개인 흉갑(胸甲)과 등 가리개인 배갑(背甲)이 모두 발견됐다.
시신은 그 흔적이 완전히 없어지긴 했지만, 환두대도(環頭大刀)라고 하는 둥근 자루 갖춤 큰 쇠칼 방향을 보건대, 이들 갑옷 위에 동쪽으로 머리를 둔 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환두대도에서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시신 오른쪽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무덤 주인공은 왼손잡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평소엔 오른손에 칼을 쥐었으니,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때는 반대편 왼손으로 뽑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신 발치 쪽에서는 목가리개와 투구가 발견됐다.
이로 보아 주곽에는 시신과 함께 마갑, 그리고 이 사람이 생전에 착용하던 갑옷을 함께 매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나머지 마구(馬具)류는 부곽에서 발견됐다. 당시 전투용 말 또한 요즘 군인들이 철모를 쓰듯이 마주(馬胄)라고 하는 철판 얼굴 가리래를 썼는데 이것이 부곽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아가 부곽에서는 말 안장인 안교(鞍橋), 발걸이인 등자, 재갈, 말 치렛거리 일종인 행엽(杏葉)이라는 다른 마구류가 함께 발견됐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마갑과 마구류, 그리고 사람이 착용한 갑옷이 한꺼번에 발견됐으니, 경주문화재연구소가 흥분하지 않을 리 없었던 것이다.
지병목 소장은 "고고학도라면 누구나 이런 발굴을 꿈꾸는데 오늘 그런 성과를 공개할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감격스럽다"는 감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건무 청장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을 바로 이곳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제 앞으로 남은 문제는 유물 수거와 보존처리.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자문회의 등을 거쳐야겠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에서 직접 (보존처리를) 할 생각"이라면서 "보존처리에 얼마나 많은 시일을 소요할 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신라 기마병 혹은 기마장군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런 작업을 통해 고구려 고분벽화에 더러 보이는 기마병보다 더욱 생생한 신라 기마병(기마장군)을 복원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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