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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1600년만에 눈뜬 `장군과 말` (조선일보 2009.06.03)

1600년만에 눈뜬 '장군과 말'

경주에서 신라시대 '중장기병(重裝騎兵) 유물' 출토


장군 갑옷 4~5㎏·말은 90㎏ 견딘 듯 철로 무장한 신라군(軍) 완벽하게 보여줘

철갑을 두르고 적과 싸우던 신라 장수가 1600년 만에 무덤 밖으로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2일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의 공동묘지였던 경북 경주시 황오동고분군(사적 제41호) 쪽샘지구 안의 C10호 무덤에서 말의 갑옷인 마갑(馬甲)과 이 말을 탄 장군이 입었던 찰갑(札甲·비늘식 갑옷) 일체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 전해지던 삼국시대 중장기병(重裝騎兵·중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싸우는 무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완벽한 실물자료가 처음 나온 것이다.

1600년 동안 흙더미에 파묻혀 있던 갑옷은 마치 폭신한 담요 같았다. 하지만 그 오랜 흙을 벗겨 내고 복원 처리를 끝내면 기세등등한 신라 기마 장수의 철갑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전반 신라 장수가 입었던 찰갑과 말에게 덧씌웠던 마갑이 발견된 무덤. 사진 가운데 네모난 부분에는 마갑의 몸통 부분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장수의 찰갑을 펼쳐 깔았다. 왼쪽 부채꼴 모양은 장수의 목가리개와 투구다.

갑옷의 주인공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갑옷의 규모로 볼 때 상당한 지위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갑옷은 마갑이 목·가슴 부분, 몸통 부분, 엉덩이 부분으로 정연하게 깔려 있었고, 마갑의 몸통 부분 위에 장수의 찰갑을 펼쳐 깔았다. 장수의 주검은 이 위에 안치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검의 발치 쪽에서는 투구와 목가리개, 견갑(肩甲·어깨 보호용 갑옷) 등이 발견됐다.

장수의 갑옷은 대략 4~5㎏, 말의 갑옷은 이보다 4~5배 무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장수가 60㎏이었다고 가정했을 때, 이 말은 최소 90㎏ 이상의 무게를 견디어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신라에서는 이 시기에 이미 철 생산이 일반화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동아시아 3국을 통틀어 중장기병의 무장 상태를 완벽히 보여주는 세트가 출토된 것은 처음"이라며 "5세기 전반 신라가 고구려에서 중장기병 제도를 받아들여 힘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마갑을 쓴 말을 탄 고구려 장수의 모습. 중국 지안(集安)현 서안12호 고분 벽화다.

이번에 발굴된 고분은 하나의 봉분 속에 2개의 덧널이 있는 5세기 전반의 목곽묘(木槨墓)로, 무덤의 주인공이 묻힌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넣는 부곽(副槨)이 구분되어 있다. 말의 갑옷은 말 얼굴 가리개인 마주(馬胄)를 비롯, 안교(鞍橋·안장틀), 등자(발을 거는 장치), 재갈, 행엽(杏葉·말띠 드리개) 같은 부속품이 다량 포함되었다.

지병목 소장은 "이번에 수습된 갑옷류를 복원하는 데는 최소 5~10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