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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노르웨이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까닭 (내일신문 2009.03.12)

노르웨이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까닭
최병구 주노르웨이대사, 2009.3.12 내일신문 게재


우리나라에서 영어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한 해에 14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 외교통상부 예산 1조2136억원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엄청나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돈을 쓰면서 그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각종 테스트 결과에 의하면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영어 배우기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노르웨이는 상황이 다르다. 이곳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한다. 산간벽촌에서 만나는 사람, 길가는 사람 누구와도 쉽게 영어로 통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처럼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영어에 대한 생소함이 적다. 언어 자체의 유사성과 문화적 친근감 때문이다. 노르웨이 정부의 외국어 교육정책을 살펴보면 영어는 거의 모국어처럼 취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어 교육은 빠를수록 효과적이라듯이, 특히 초등학교 1학년(6세)부터 시작해 7학년까지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영어에 더하여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 하나를 필수과목으로 선택해야 한다.

외국어 학습 목표는 언어 사용

또 다른 배경에는 노르웨이에서는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대단히 실용적이라는데 있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시험을 의식하지 않는다. 어떤 외국어를 배우든 그 목표는 언어를 실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데, 노르웨이 국민들은 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

학생들은 영어 수업시간에 첫 시간부터 교사와 일대일로 말하도록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영어 배우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이렇게 하니 영어를 배우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입이 트인다. 물론 언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그 언어가 속한 문화에 대한 이해도 자연적으로 넓어진다.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한국과 노르웨이의 또 다른 차이는 이곳 국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 방송에서는 더빙되지 않고 자막 처리된 영화나 방송프로그램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TV방송에서는 BBC 뉴스를 항상 자막 처리해 내보내준다.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를 쓸 기회가 많다. 외국인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노르웨이는 50여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9.3%에 이른다.

수도인 오슬로의 경우 외국인 출신 비율은 무려 25%나 된다. 그러니 실생활에서 영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영어의 유용성을 실감한 노르웨이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영어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해외여행도 영어학습의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한다. 영어를 써야 하는 기회가 많은 것이다.

영어 학습동기 부여가 중요

노르웨이 정부가 다양한 청소년 해외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교환학생으로 영어권 국가에 수개월을 머무는 경우가 흔하다. 성장기 시절부터 외국어와 외국문화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노르웨이 교육부의 영어교육 모토가 ‘외국어는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외국어가 의사소통, 지식·정보 습득을 가능하게 해주는 열쇠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노르웨이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여러 이유의 핵심은 바로 ‘동기부여’다. 미래세대의 주역들에게 세계를 접하게 하고,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