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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이란 대선 아마디네자드 재선 성공… 거센 선거 후폭풍 (동아일보 2009.06.15)

이란 대선 아마디네자드 재선 성공… 거센 선거 후폭풍


“선거 무효다”이란 대선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압승으로 나타나자 분노한 미르호세인 무사비 후보 지지자들이 13일 수도 테헤란의 거리로 몰려나와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제10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재선됐다. 13일 이란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62.6%로 당선됐다. 개혁파 후보인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는 33.8%로 집권에 실패했다.

이란의 이번 대선은 ‘30년 만의 대접전’으로 전 세계의 화제를 모았다. 아마디네자드 4년 집권 동안 실업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이 심화돼 재선이 위험하다는 예측도 있었지만 그가 내건 서민 위주의 포퓰리즘 정책이 시골, 소도시에서 몰표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막판 개혁파 후보의 돌풍이 오히려 보수세력을 결집시켜준 것으로도 풀이됐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선거불복 움직임도 거세 후폭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 선거 결과 불복

무사비 후보는 14일 “이란 대선 결과를 취소하기 위한 선거감시위원회 소집을 요구한다”며 “속임수로 집권한 정권의 타도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강세지역으로 꼽혔던 타브리즈, 시라즈 등에서는 투표용지가 없어서 많은 사람이 투표를 하지 못했고, 일부 개표소에서는 참관인의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공정 개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무사비 후보 지지자 수천 명이 테헤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선거 무효”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흥분한 젊은이들이 “또다시 4년간 독재정치에 시달리란 말이냐” “현 정권의 쿠데타”라고 외치는가 하면 여성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뉴욕타임스는 “들끓는 분노와 부서진 희망, 미래에 대한 좌절감이 테헤란 거리를 뒤덮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보도했다.

이란 당국은 14일 무사비 전 총리를 지지했던 개혁그룹 지도자 10여 명을 비롯해 시위대 170여 명을 체포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이란 대선은 자유롭게 치러졌다”며 “서방언론은 이란 국민에 대한 선동과 심리전쟁을 당장 그만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각국 반응

레바논에 이어 이란에서 ‘오바마 효과’를 기대했던 미국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14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이란 선거결과에 대해 엄청난 의심(awful lot of doubt)을 갖고 있다”며 “(불법선거 여부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외교장관은 13일 “국제사회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비타협적 대응을 해야 한다”며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일간 하아레츠는 “이스라엘 시각에서는 아마디네자드가 오히려 낫다”며 “개혁파 후보가 승리하는 것은 이란의 핵 야망에 마스크를 쓰고 분칠을 하는 격”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사상 최초 TV토론 생중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으로 젊은 세대들 사이에 ‘민주화 열망’의 불을 지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개혁파 집권은 실패했지만 선거운동 기간에 튀어나온 ‘민주화의 지니(알라딘 요술램프 속 요정)’는 다시 램프 안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 아마디네자드는

서방엔 거침없는 독설… 국내선 서민정책으로 높은 지지


“이란에서의 핵문제는 이미 과거사가 되었다. 전 세계적인 핵 군축회담을 갖자.”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53·사진)은 14일 제10대 이란 대통령선거 승리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핵 보유(우라늄 농축)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이란 유권자 85%가 참여한 이번 선거는 세계를 지배하는 ‘압제 시스템(oppressive system)’에 한 방을 날린 것”이라고 자평했다. ‘압제 시스템’은 미국을 뜻한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강경보수파 정치인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005년 10월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이스라엘을 아예 지상에서 지워 없애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올 4월에는 유엔 연설에서 이스라엘을 “사악하고 억압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서방국가 외교관들의 집단퇴장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방에 대해선 거침없는 독설과 강경 발언으로 악명이 높지만 국내에서는 서민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저소득층의 굳건한 지지를 받아 왔다. 2005년 공개한 그의 재산목록에는 테헤란 동부 중하위층 단지의 175m²짜리 주택 1채와 출고된 지 30년 된 푸조 승용차 1대, 잔액이 거의 없는 은행 예금계좌 2개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는 1956년 테헤란 인근 빈민촌 가름사르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1976년 이란과학기술대에 입학해 토목학을 전공했다. 2005년 대선 출마 때 ‘석유 수입을 국민의 식탁으로’라는 구호 아래 빈부격차 해소, 부정부패와의 전쟁 등을 강조해 서민층의 지지를 이끌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집권 2기를 맞이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경제난 해결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지난달에 밝힌 대로 올가을 유엔본부에서 미국 대통령과 ‘맞장 토론’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