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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그래도 EU통합은 계속된다 (매일경제 2009.06.17)

그래도 EU통합은 계속된다

지난 6월 4~7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파 득세, 좌파 패배, 낮은 선거 참가율이라는 결과를 통해 유럽 각국의 자국 중심주의가 더욱 팽배해지고, 유럽통합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최근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성공적 지역주의 모델이라는 유럽연합(EU)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부각됐는데, 의회 선거 결과는 이러한 시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과연 EU는 어디로 갈 것인가?

현재 EU가 당면한 과제는 임기가 만료되는 집행위원회 위원장인 조제 마누엘 바로수의 연임, 그리고 유럽의회 구성과 의장 선출 문제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그의 연임에 대해 동의하고 있고, 집행위원회 임명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는 유럽의회가 이를 지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럽의회나 우파 정부들은 집행위원회의 구성에서 중도좌파인 유럽사회당(PES) 지분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선거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은 이미 유럽사회당과 자민당(ALDE)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자국 중심주의와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확실한 과반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극우파 선전으로 인해 유럽에서 파시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는 기우일 뿐이며 유럽인들이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외국인 혐오주의나 이민자 집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보다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EU의 향후 일정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리스본 개혁조약`의 성공적 완결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조약은 2004년에 마련됐다가 부결된 유럽헌법을 재포장한 것이다. 개혁조약은 그간 6개월씩 맡아온 EU 의장국제도가 효과적이지 못하므로 임기 2년 반의 대통령제를 신설하고 5년직의 외교 고위 대표직을 유지함으로써 경제 통합에 이어 정치 통합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유럽의 대외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보다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보장하고, 더 나아가 유럽의회 권한 강화를 통해 민주적 대표성을 담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회원국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것이어서 모두의 동의를 받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며, 단 한 국가라도 반대한다면 다시 좌초될 수 있다. 아일랜드는 가을에 2차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비준을 시도할 예정이다. 유럽 주요국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감안할 때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통합을 시도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유럽 대륙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고, 공동 번영을 추구하며, 장차 있을 미국이나 동아시아와의 경쟁에 단일 국가 차원으로는 부족하므로 유럽이 하나로 통합해 협력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것이었다.

작금의 위기 상황이 단기적 시각에서는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바라보면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시기가 있었음에도 통합의 수레바퀴는 전진을 거듭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통합 주도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책적 조율과 정치적 의지에 있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반세기 유럽 통합사는 위기와 갈등, 그리고 타협과 양보의 산물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유럽인의 지혜는 이번에도 역시 발휘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