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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유 머

헬로 키티 [한겨레 21 /2009.08.21 제774호]

헬로 키티 [2009.08.21 제774호]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17]

소녀의 ‘분홍빛’ 꿈

런던 태생이지만 일본적인 ‘가와이’ 문화의 산물… 세상을 알기에는 무력한 소녀가 이상형인 나라에서 왔어요

■ 진중권 자유기고가

일본인의 발상은 언제나 내 상상력을 가볍게 능가하곤 한다. 원고를 쓰려고 자료를 찾아 일본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헬로 키티 변신 세트’. 글자 그대로 애완용 고양이를 헬로 키티로 변신시켜주는 세트다. 원리는 간단하다. 고양이 머리 위에 두 귀와 분홍색 리본이 달린 하얀 벙거지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이 간단한 조작으로 생물학적 종의 다양성을 넘어 집에서 기르는 모든 종류의 고양이가 졸지에 하얀 고양이 인형이 된다. 가격은 무려 1만8천엔. 우리 돈으로 20만원이 넘는다. 사용례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고 뒤집히는 줄 알았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얀 벙거지를 뒤집어쓴 검은 고양이도 있었다!

» 헬로 키티.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소녀 넘어 사내애로, 소아기 넘어 성인으로

키티는 1974년 플라스틱 동전지갑에 그려진 캐릭터로 처음 등장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이름이 없어 그냥 ‘이름 없는 하얀 고양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고양이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듬해인 1975년. ‘키티’라는 이름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뒤의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동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앨리스는 잠결에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를 마구 들어 흔들어대면서 깨어나는데, 그 고양이의 이름이 바로 ‘키티’다. 일본에서는 보통 ‘키티짱’이라 불리나, 정식 명칭은 ‘키티 화이트’다. ‘화이트’라는 성은 물론 나중에 붙인 것이다. ‘키티’라고 하면 분홍색부터 떠오르지만, 고양이 자체는 하얀색이다.

키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분홍색은 알고 보면 끔찍하게 촌스러운 색깔이다. 보통 유치한 몽상을 가리킬 때 흔히 ‘분홍빛’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한마디로 그 색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녀가 가진 취향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키티의 성공은, 유난히 귀여운 것을 밝히는 일본 사회의 ‘가와이’(カワイイ) 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 소아적 취향이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키티 취향은 이미 소녀의 벽을 넘어 사내애들로, 소아기의 벽을 넘어 성인 여성으로, 일본을 넘어 전세계로, 심지어 문구류를 넘어 모든 제품으로 확산된 상태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키티 팬들을 일본에서는 ‘키티라’(キティラ)라고 부른다. ‘키티라’는 한마디로 제 주위의 물건을 몽땅 키티 모티브로 바꿔놓아야 비로소 만족하는 족속이다. 1970~80년대에 키티와 함께 소녀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어느덧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키티 취향을 물려주었다. ‘키티 맘’을 통해 새끼를 못 낳는 키티는 제 존재를 영속화하는 생식에 성공한 셈이다. 서구에서는 키티 취향이 여전히 소녀층에 한정된다 하나, 그것도 일시적 현상일지 모르겠다. 성인 키티라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마일리 사이러스, 캐머런 디아즈, 머라이어 케리, 힐턴 자매,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의 유명인이 키티라로 알려졌다.

그저 귀여운 이미지만으로 키티의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은 캐릭터에 개인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즉 ‘까만 눈과 까만 머리를 가진 이탈리아계의 배관공’이라는 설정이 없었다면, 슈퍼마리오는 아마도 지금 누리는 국제적 명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키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개인사가 있다. 생년월일은 1974년 11월 1일. 이 날짜는 초대 디자이너 시미즈 유코의 생일에서 따왔다. 출신지는 런던 근교, 신장은 사과 5개, 몸무게는 사과 3개, 혈액형은 A형.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애플파이.

페르시아 고양이를 기르는 키티

1976년 2대 디자이너인 요네쿠바 세쓰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키티에게 가족사를 부여했다. 키티의 쌍둥이 여동생 미미 화이트. 그녀는 왼쪽에 리본을 달고 있다. 엄마가 둘을 구별하기 위해서 키티의 반대편에 노란색 리본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키티의 아버지는 조지 화이트로 회사원이다. 어머니 메리 화이트는 원래는 피아니스트였으나, 지금은 주부로 지내면서 과자를 만드는 게 취미다. 할아버지 앤서니 화이트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 할머니 마거릿 화이트의 취미는 자수다. 3대 디자이너인 야마구치 유코는 1993년 키티에게 ‘대니얼 스타’라는 남자 친구를 선사한다.

2004년에는 심지어 고양이 키티가 애완용 고양이를 기르는 이상한 상황까지 등장한다. 키티가 의인화한 고양이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아무튼 키티는 아빠에게서 페르시아 고양이를 선물로 받아 기르기 시작한다. ‘차미 키트’라는 이 고양이는 다음해에 동생을 본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하니 큐트’. 남자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햄스터 ‘슈가’도 키티가 기르는 반려 가족에 속한다. 남자 친구 대니얼 스타는 1993년 사업상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나면서 키티와 이별했다가 1999년에 다시 만났다. 세상에, 고양이 한 마리가 이렇게 복잡한 인생사와 가족사와 연애사를 가졌다.

인형에 서사를 부여하는 전략은 키티에게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가령 미국에는 올해로 50세 생일을 맞은 바비 인형이 있잖은가. 바비 역시 교사, 요리사, 스튜어디스, 에어로빅 강사, 우주인 등 100개가 넘는 화려한 이력서를 갖고 있다. 키티에게 대니얼이 있다면, 바비에게는 켄이 있다. 이들의 연애사도 극적이다. 몇 년 전 바비는 43년간 사귀었던 켄과 결별하고, 서핑보드를 탄 멋진 남자 블레인과 새롭게 만났다. 바비 인형의 매출이 떨어진 게 결별의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블레인이 켄이 떠난 자리를 채울지는 미지수. 그 사이에 켄도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며 다시 바비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단다.

‘무국적성’ 일본 대중문화의 전형적 특성

물론 키티와 바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세계 어린이에게 미국 백인 중상층 여성의 욕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바비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해 마텔사는 동양인 바비, 흑인 바비, 히스패닉 바비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른 인종 바비에게서 우리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바비가 철저하게 백인 여성의 미를 절대화했다는 고백을 읽는다. 반면 키티는 ‘무국적성’라는 일본 대중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갖는다. 키티는 영국의 국적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엄연히 일본의 산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키티에게는 사실 국적이 없다. 이 고양이는 아이들에게 특정한 나라의 생활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키티에게 일본적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을 하든 못하든 디자이너가 특정한 문화적 환경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소녀처럼 귀여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취향이 존재한다. 서구에서 키티 취향이 열두 살 아래의 소녀로 한정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거기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소녀를 연출했다가는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세상사를 알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무력하여 보호 본능마저 자아내는 ‘가와이’(귀여운) 소녀가 어떤 문화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이것이 무국적 키티의 바탕에 어쩔 수 없이 깔린 일본적 특성이리라.


나는 입 있는 토토로가 좋다

스토리텔링이 없고 동일시도 쉽지 않은데, 헬로 키티는 왜 그렇게 여자를 사로잡는가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몇 년 전 뉴욕에서 방학을 보낼 때 얘기다. 미국인 동료 교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 집 딸 책상에서 ‘헬로 키티 현미경’을 발견했다. 세상에나, 헬로 키티가 현미경도 만들다니! 조리개 옆에서 키티가 멍 하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분홍 본체의 현미경을 보며 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요즘 애들 방은 그야말로 ‘헬로 키티의 성지’다. 헬로 키티 침대와 베개, 헬로 키티가 그려진 이불과 작은 서랍장, 리본 달린 키티 모양의 쿠션과 천장에 붙은 반짝이는 헬로 키티 풍선들. 기저귀 가방도, 일회용 기저귀도, 젖병과 숟가락도 모두 헬로 키티의 서식처가 됐다. 1974년 산리오사가 만들어낸 이 귀엽고 앙증맞고 새치름한 캐릭터는 매년 1조원 이상 매출액을 올리는 ‘황금알을 낳는 하얀 고양이’이자,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번식하는 ‘자기복제 고양이’다.

» 키티는 ‘무국적성’이라는 일본 대중문화의 전형적인 특성을 반영한다. 키티 인형이 가득한 매장(사진 한겨레 자료)과 키티를 도안에 넣은 상품들.

소비자는 기억하지 않는 개인사

1972년생인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헬로 키티 필통이나 가방을 학교에 가져오는 여학생은 그날 친구들 사이에서 ‘완전 스타’가 되곤 했다.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상이 없던 시절, 헬로 키티는 아버지가 일본에 출장을 다녀오거나 일본에 사는 친척이 한국에 방문하면서 선물로 사다주어야만 가질 수 있는 ‘희귀품’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여학생들이 ‘완전 스타’ 책상 주변에 둘러앉아 헬로 키티 필통을 한 번씩 만져보는 모습은 남학생들에겐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광경이었다. 건담 프라모델이나 울트라맨 피겨라면 모를까.

헬로 키티는 왜 그토록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마케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헬로 키티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입이 없어 감정이입이 쉽고 자유롭다는 것. 입이 없어 키티의 표정을 알 수가 없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 상태대로 키티의 감정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키티 매력의 두 번째 비밀은 만화나 영화에 먼저 등장했다가 인기를 끌어 ‘캐릭터 마케팅’에 사용된 여느 캐릭터들과는 달리, 이야기 없이 순수한 캐릭터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키티를 볼 때 만화나 영화 속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지 않고 캐릭터 자체로 받아들인다.

물론 키티에게도 개인사가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쌍둥이 여동생 미미도 있고, 남자 친구 대니얼, 회사원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도 있다. 헬로 키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여러 차례 제작된 바 있으며, 미국 TV에서 상영되기도 했다(나도 본 적이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선 대사를 해야 하니 키티에게 입이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저건 키티가 아니야!”라고 울부짖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런 개인사는 모두 키티가 탄생한 후 나중에 억지로 붙여진 것이며, 무엇보다 키티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대부분 그의 개인사를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헬로 키티 애니메이션도 그다지 재미있는 편은 아니어서 일본에서도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헬로 키티의 매력을 이런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은 너무 ‘미국적인 시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커다란 눈

키티가 가진 매력에 대한 내 해석은 남들과 크게 다르다. 우선 ‘입이 없다’는 것이 헬로 키티의 매력이긴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다르게 읽는다. 기쁨(:-))이나 슬픔(:-()을 표현하는 미국식 이모티콘이나 스마일 표시()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주로 입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동양인은 눈 표정에 변화를 주어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의 이모티콘(^·^ ㅠ_ㅠ ㅜ_ㅜ @@)을 떠올려보라.

실제로 ‘사람들이 얼굴 중 눈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어낸다’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적인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아이오와 대학 동료들과 함께 2005년 1월 <네이처>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편도체가 망가져 사람의 감정(특히 두려움)을 잘 읽지 못하는 환자 SM과 일반인에게 ‘다양한 얼굴 표정’을 보여주며 감정 상태를 읽게 했다. 그리고 시각추적장치(eye-tracking system)를 통해 그들이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읽는 동안 ‘특히 어디를 보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정상인은 얼굴을 보며 상대의 감정 상태를 잘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졌는데, 주로 눈을 관찰하면서 감정을 읽었다. 하지만 편도체가 망가진 SM은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들은 상대의 눈을 제대로 보지 않고 코와 입을 주로 관찰했다. 결국 ‘눈의 표정’을 제대로 읽어야만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티의 표정이 오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눈이 아무런 감정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흰자위 없이 까만 눈동자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키티는 그저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뿐 아무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람들은 키티의 눈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다양하게 감정을 읽는다.

서양의 마케터들은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며, 제품과 캐릭터에게 이야기를 입힐 것을 권한다. 하지만 키티는 브랜드 마케팅의 전통적인 견해를 상당 부분 뒤집는다. 그는 만화 속 주인공도, 영화 속 인물도 아니며, 개인사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키티는 입이 없어서 우리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헬로 키티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항상 신비로울 뿐이다. 그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캐릭터 마케팅의 핵심은 ‘의인화와 동일시’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앙증맞은 고양이 키티는 의심의 여지없이 누구나 ‘동일시하고 싶은 캐릭터’다. 그런데 이야기가 없고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다 보니, 동시에 ‘동일시가 쉽지 않은 캐릭터’다. 인형 하나, 필통 하나를 가진다고 해서 나를 키티와 동일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키티는 다른 캐릭터와는 달리 ‘키티라’라 불리는 ‘모든 소지품과 온 방을 헬로 키티로 채운, 키티에 미친 사람들’이 존재한다. 온 방을 채우고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그와 동일시하기 힘들기에, 키티라가 탄생한 것이다.

소통을 위해 입을 그려넣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여성의 뇌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공감하기(empathizing)’에 더 적합하게 진화했다고 믿는다 (남자의 뇌는 ‘체계화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공감하기’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매력적이어서’ 공감하고 싶은데 아무리 공감하려 해도 그것이 쉽지 않다면, 대량구매를 할 수밖에. 그것이 아마도 키티라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소설가 이지민은 단편소설집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에 실린 단편 ‘키티 부인’에서 자신의 방을 헬로 키티의 ‘사설 물류창고’로 만든 키티 마니아를 보여준다. 키티 부인은 방 안 가득 헬로 키티로 채운다고 해도 결코 자신이 ‘사랑받는 분홍색 키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은 ‘그 흔한 캐릭터 상품 몇 개로 영혼의 충만을 확인하려는’ 아내를 안쓰러워 한다. 그래서 검정 유성펜으로 그녀의 헬로 키티에 다양한 표정의 입을 그려준다. 비로소 소통하는 부부. 헬로 키티와 소비자들이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바로 그 ‘소통’을 그들은 하게 된 것이다.

1974년에 태어난 헬로 키티가 이제 35세가 됐다. 일본 캐릭터들이 그렇듯, 키티도 여전히 국적 불문이다(개인사에 따르면 영국 출생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남녀노소,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친근한 캐릭터가 된 키티를 구입하며 우리는 ‘잃어버린 동심’을 충전한다. 아이에게 키티를 사주며, 내 어린 시절을 키티로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아마도 키티는 50년은 더 인기를 끌겠지? 하지만 나는 입이 있는 ‘토토로’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