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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로 시작된 한국 考試史 (조선닷컴 2010.09.19 01:52)

[유석재의 타임머신] 속임수로 시작된 한국 考試史

소년은 열두 살이었다. 곧 서해를 건너갈 배 앞에서 부친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신라 경문왕 8년인 서기 868년, 그 '조기 유학생'의 이름은 최치원이었다.

도착하는 대로 편지 보내거라? 아니다. "10년 안에 당나라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넌 내 아들도 아니야!" 어린 아들을 만리타국으로 보내며 아버지 최견일은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그들 '계층'의 처지가 그토록 절박했기 때문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유학을 보내 성공시키지 않으면 도무지 취업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이야기는 그로부터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 잘 두면 다냐!" "분명히 지방관 정원은 독서삼품과 출신들로 채운다고 하지 않았어?" 하숙촌에 플래카드를 내걸면서 집단행동에 나섰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지만, 아마 서라벌의 웬만한 주막들은 조정을 성토하는 젊은 육두품의 울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렇다. 분명 한국 고시사(考試史)의 첫머리는 사기(詐欺)로 점철되며 시작하고 있었다. 신라는 건국 800년이 넘도록 유력 귀족의 자제가 주요 관직에 특채되는 것이 전통이었다. 통일 이후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으로 출세하려는 지식인 집단인 육두품이 대두했지만, 골품제의 벽을 넘기란 어려웠다.

이들이 주로 공부한 곳은 682년에 생겨난 국가인가교육기관 국학(國學)이었다. 하지만 100년이 넘도록 국학 졸업생들을 관직으로 채용할 공식 루트가 없어 고급 실업자만 양산했다. 그런데 788년, 출신성분이 불안했던 38대 임금 원성왕은 진골 귀족세력을 견제할 신진 세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국학 졸업시험 겸 특정 관직 채용시험'인 독서삼품과였다. "분우(分憂)나 사(史)는 독서삼품과로 채용한다!" '분우'란 임금의 근심을 나눈다는 뜻으로 태수·현령·소수 같은 지방관의 별칭이었고, 사는 중앙 1급 행정관청의 5등급 직책이었다.

요약하면 '공무원 직책 중 육두품 정원을 별도로 마련하고 고시를 쳐서 뽑는다는 방침'이 한국사 최초로 세워졌던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권력과 재력을 갖춘 부모를 만나지 못해 불우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육두품들에겐 드디어 제대로 된 일자리로 올라갈 '사다리'가 마련된 셈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양평쯤의 지방관으로 자옥이라는 진골 귀족 자제가 떡하니 임명됐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이랬다. "우리 자옥이는 당나라 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온 애야."

'해외유학이 고시에 앞선다'는 이 전례 하나로 육두품들은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도대체 귀족과 육두품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유학파가 많았겠는가?

이제 귀족들에게 당나라 유학은 필수 코스가 됐다. 당시 서라벌 귀족 자제들의 책상머리에는 '일야독서후 욕유낙양천(一夜讀書後 欲遊洛陽天)'이란 시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이 말을 이렇게 '현대어'로 해석했다. "오늘 밤은 토플공부, 내일 낮은 맨해튼의 하늘 밑에서 한잔!"

일부 육두품들 또한 이를 악물고 새로운 길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도 유학을 보내자…." 기둥뿌리 뽑아서라도 아이들을 배에 태우고 실력으로 겨루게 한다면 귀족 아이들을 이길 수 있다는 결심이었다. 당나라의 과거제도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선발되는 제도였기 때문이었다.

천재소년 최치원은 유학을 떠난 지 6년 만에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하고 벼슬길에도 올랐으나 결국 신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당나라 역시 이미 망해 가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는 귀국한 뒤 개혁정치에 실패하고 은둔했지만, 많은 육두품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신라 말의 호족 세력과 결탁해 반체제 세력이 된 것이다. 이들은 세월이 흐른 고려 초 과거제가 정식으로 도입되면서 관료 진출의 인재풀 역할을 하게 된다.

최치원과 비슷한 시기 빈공과에 급제했던 육두품 최승우는 아예 신라를 배신하고 후백제에서 벼슬했는데, 견훤이 서라벌을 침공해 경애왕을 죽인 직후 고려 태조에게 보내는 국서에서 "의풍(義風)으로 위태로운 나라(신라)를 바로잡았다"며 새 주인을 미화했다. 수많은 선비들을 불만세력으로 만드는 것은 정권으로서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메인 타이틀 "아버지 잘 두면 다냐?" 에 기자의 교양을 의심합니다. "자녀를 둔다" 는 말이 되지만, "아버지를 둔다." 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사가 바둑알을 두지 바둑알이 기사를 두지 않은 이치와 같습니다. 그 표제어에는 다분히 반항적인 저속어의 이미지가 담겨 있군요. 부모는 자녀가 모시는 분이지 두는 분은 아닙니다.[2010.09.19 10:52:56]

고시제도는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같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성군 노무현 대통령님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셨고 그분이 남기신 고시 합격기는 사법고시 준비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갔다고 사다리 없애는 것은 후안무치하다![2010.09.19 10:19:14]

그럼 청년 대한민국도 이젠 기득권층의 대물림의 탐욕에 각종 제도를 고치고 사회의 활력은 사라지고 폐습과 구습이 판을 쳐서... ㄷㄷ 이제 망조가 들기 시작한건가요?[2010.09.19 08:02:56]

현실을 잘 짚은 재미있는 글입니다. 소위 집안의 배경과 해외생활의 경력이 공직을 차지하는데 가산점으로 불공정하게 작용해 왔기에 소위 저층 출신 무직이나 보수가 열악한 일자리밖에 얻지 못한 학구파들을 반사회 인물로 만드는것이 역사적임을 일깨워 주는군요. 과학기술을 우대하는 국가적인 분위기 쇄신과 누가봐도 공정한 공직선출만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살아남을 길입니다.[2010.09.19 05:45:42]

선비가 밥먹여주나? 이공계 인재들이 이나라를 본격적으로 등지고 있다. 고시출신들이 나라를 지배할수 있을지는 모르나, 나라를 먹여살리지는 못한다. 이공계에 차관급 이상 고위직의 50%를 강제 배정이라도 하지 않는한 이나라의 미래는 조선시대로 회귀할 것이다.[2010.09.19 03: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