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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만난 日국보 1호 `신라 불상과 꼭 닮았네` (조선닷컴 2010.09.20 11:18)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교토에서 만난 日국보 1호 "신라 불상과 꼭 닮았네"

신사·고분·성·사찰… 우리 선조들의 숨결 스며 "法隆寺는 삼국문화 종합판"

"이번 여행에서 네 가지에 중점을 두고 관찰하시길 바랍니다. 신사(神社)·고분·성(城)·사찰 등은 각각의 특성에 맞게 일본의 역사를 담고 있지요. 그런데 거기에 스민 우리 선조들의 숨결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제27회 '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에 참가한 523명(교사 355명, 일반인 168명)의 탐방단은 지난 12일 첫 방문지인 규슈(九州) 다자이후(大宰府)에 도착해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제27회‘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참가자들이 교토 코류지(廣隆寺)에 있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관람하기에 앞서 서정석 공주대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서기 660년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열도(당시는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이 없었다)의 덴지(天智) 덴노(天皇) 나카노오에노(中大兄)는 2만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출정한다. 다자이후는 나당(羅唐)연합군에 대패한 뒤 돌아온 나카노오에노가 신라의 침입에 대비, 백제 유민들의 선진기술을 이용해서 쌓은 백제식 토성과 산성이다. 부산에선 200㎞, 도쿄에선 300㎞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탐방단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유적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최종섭(61·남양주 심석고) 교장은 "교직 초기에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리 상고사에 매료됐었다"며 "이런 곳에 진작 와봤다면 현역 교사 시절에 훨씬 더 풍부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지난 1987년에 잘못된 한·일관계사를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시작했고, 그동안 1만3300여명의 교사와 일반인들이 참여했다. 지난 11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제27회 탐방단은 2만3000t급 크루즈선과 버스로 부산항~규슈(
후쿠오카·후나야마·구마모토·오이타·벳푸)~혼슈(오사카·나라·교토)로 이어지는 2000여㎞의 여정을 소화했다.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신한은행포스코가 협찬했고, 삼성서울병원이 의료진을 지원했다.

한국의 영향을 받은 오이타의 우스키석불군을 둘러보고 있는 탐방 참가자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일본 문화재 속에 새겨진 한국 문화의 자취를 찾는 일은 밤낮으로 계속됐다. 낮에는 사찰이나 고분에서 현장 강의가 벌어졌고, 배로 돌아온 후에는 저녁 식사 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선상 강의가 이어졌다. 강사로 참여한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손승철 교수, 서정석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번갈아가며 '한국 문화의 일본 전파' '조선통신사와 21세기 한·일관계' '백제와 왜(倭)' 등의 주제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전달했다.

한민족이 일본에 끼친 영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오이타현에 위치한 우사(宇佐)신궁에는 신라 범종(梵鐘)이 소중히 보관돼 있었다. 725년 쇼무(聖武) 덴노의 칙명으로 세워진 이 신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높이 86㎝, 둘레 154㎝의 중형 동종(銅鐘)이 전형적인 신라 범종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토 최고(最古)의 사찰 코류지(廣隆寺·603년 건립)에 있는 일본 국보 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그 형태나 솜씨가 한국 국보 83호인 신라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쏙 빼닮았다. 이 불상이 신라에서 왔는지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불상의 재료가 일본에는 없고 한반도에서 많이 자라는 적송(赤松)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라 제작설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한국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왼쪽)과 일본 국보 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오른쪽)/조선일보 DB
그러나 강사진은 '일본 문화의 뿌리는 한반도'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경고음을 울리기도 했다. 정영호 교수는 나라(奈良) 호류지(法隆寺)에 대해 "'삼국시대 문화의 종합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건축물과 불상, 그림을 통해 일본이 한반도의 직접적인 문화적 영향권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도 "호류지의 유명한 금당(金堂) 벽화를 고구려의 담징이 그렸다고 단정 지을 역사적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35년 동안 금융계에 종사하고 은퇴한 뒤 역사 공부에 미련이 남아 칠순의 나이로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광열(
경기 용인)씨는 "4인 1실로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동료 탐방객들과 저녁 선상 강의 후 갑판에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고 했다. 교사 황인자(46·울산 동대초)씨는 "조선통신사가 쓰시마를 경유해 오고 갔던 세 개의 섬(규슈·혼슈·시코쿠)이 둘러싸고 있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따라 여행한 것만으로도 많은 얘깃거리를 얻었다"고 즐거워했다.

5박6일 탐방의 마지막날 밤에 합류한
정호승 시인이 '내 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시'라는 주제로 석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일반 참가자 전현희(27·서울 삼성동)씨는 "역사 공부도 좋았지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던 수많은 별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