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야? 물이야?"…15도 소주 '즐겨찾기', 즐겨 찾을까?
# 인파가 북적이는 점심시간, 서울 광화문 청계천거리. 8명의 젊은 남녀 일행이 실제 소주박스로 보이는 듯한 인쇄물을 들고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줄을 서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횡단보도 앞. 이번엔 ‘즐겨찾기’라는 문구가 크게 인쇄된 광고용 신문을 보며 주변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지난해 12월6일 출시한 알코올 15.5도의 소주 ‘즐겨찾기’를 알리기 위해 진로 (35,350원 50 -0.1%)가 최근 본사 직원 150여명을 동원해 펼친 이색 마케팅의 한 모습이다. 86년 전통의 소주 강호 진로는 기존 18.5도의 ‘진로제이'를 과감히 버리고 3도나 낮춘 15도대의 저알콜 소주를 내놓으며 저도 소주시장에 본격 등장했다.
15도 소주, 술과 물의 경계?
한국의 대표주류 소주는 알콜도수 ‘25도’가 오랜 정석이었다. 맥주, 와인보다는 강하고 양주보다는 덜 독한 술인 소주의 적정 알콜도수는 ‘25도’라는 것이 암묵적인 공감대였던 것.
그러나 ‘25도 소주’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지난 2006년을 기점으로 저도 소주의 트렌드에 맞물려 점차 퇴색기를 맞고 있다.
2006년 출시돼 '순한 소주' 열풍을 일으켰던 롯데주류(당시 두산주류)의 '처음처럼(20도)'이 그 변혁의 스타트를 끊었고 진로의 ‘참이슬 후레쉬(19.5도)’, ‘진로제이(18.5도)’ 등이 뒤를 이었다.
무엇보다 저도 소주의 중심에는 16도 도수의 소주들이 자리한다. 2006년 11월 출시해 처음으로 17도의 벽을 깬무학의 ‘좋은데이(16.9도)’를 시작으로 대선 ‘봄봄(16.7도 : 2009년 4월)’, 롯데주류 ‘처음처럼 쿨(16.8도 : 2009년 8월)’, 선양 ‘버지니아(16.5도 : 2009년 11월), 금복주 ’스타일(16.7도 : 2010년 3월)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최근 이 틈새사이에서 진로의 ‘즐겨찾기’가 ‘15도 소주’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즐겨찾기에 쏠리는 주류업계의 시선은 뭐니뭐니해도 '과연 15도 소주가 먹힐까’라는 점에 집중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가 저도 소주시장에 본격 뛰어든 만큼 진로의 마케팅 영업력을 대거 활용한다면 일단 점유율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소주시장에서 17도 미만 저도 소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1.7%에 불과했으나 2010년 3분기 들어 3.7%로 증가하는 등 저도 소주시장이 점차 무르익고 있는 상황. 따라서 진로가 이 같은 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출시직후 펼친 이색적이고 다양한 마케팅이 일단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아, 실제 매출로 연결만 시킬 수 있다면 조기 시장안착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진로 관계자 역시 “15.5도라고 해서 물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주 특유의 맛이 남아 있어 좋다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많다”면서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업소들의 호응 역시 좋은 상황이라 기대가 크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다만 저도 소주시장이 전국 단위보다는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위주의 지역 단위에서의 판매량이 큰 만큼 짧은 기간 안에 진로가 지역시장의 점유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가 관전포인트다.
업계 관계자는 "진로가 저도 소주시장 성장성을 얼마나 좋게 보느냐와 마케팅에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변수"라며 "저도 소주시장을 단순 틈새시장으로 보는지, 성장성이 높은 시장으로 보는지에 따라 진로의 투자액과 점유율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로 "싱거운 소주? 주질 높은 소주!"
진로의 즐겨찾기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은 파격적인 15도 소주를 내세운 만큼, ‘소주만의 정통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반된 비평도 잠식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점이다.
실제 즐겨찾기를 맛 본 몇몇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밍밍하다” “싱겁다” “소주같지가 않다”는 평가가 있고, 이를 토대로 “진로가 전통소주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지나치게 주류시장의 속성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소비자는 “소주의 저도화는 소주의 본질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 같다”며 “한병 먹어 취하던 것이 이제는 두병까지 마셔야 될 정도로 소주가 시장생존의 개념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싱거운 소주’라는 평가에 대해 진로는 ‘주질 높은 소주’라는 점을 공격 포인트로 내세운다.
진로 측은 “즐겨찾기는 알코올 분해에 도움을 주는 알라닌, 아스파라긴, 글리신, 글루타민, 메티오닌 등 5가지 아미노산과 핀란드산 결정과당을 첨가해 편한 맛, 편한 목넘김, 편한 뒷맛이 특징인 신개념 소주”라며 “저도 소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 숙성된 증류식 소주 원액을 최적의 블렌딩 비율로 첨가해 소주 본연의 깨끗하고 깔끔한 맛을 살리면서도 부담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입장이다.
또 즐겨찾기 개발을 위해 시장진단에서 제품생산까지 1만여명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주질 테스트를 진행, 젊은 소비층의 기호와 감각을 반영한 제품 디자인과 편한 소주에 어울리는 브랜드명을 선정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출고가격에 있어서도 기존 참이슬(888.9원)보다 저렴(845원)한 점을 우위 포인트로 삼았다.
윤종웅 진로 사장 역시 "즐겨찾기는 올 들어 진로의 영업망 통합을 기점으로 저도 소주를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시장에서 대대적인 판촉전을 개시할 예정"이라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한편 15도 소주의 효시는 지난 1992년 보해양조가 출시한 ‘보해라이트’로 꼽히나 지금은 생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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