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미호 선장 "아덴만작전 후 해적 두려워해"
금미호 석방 6일만에 몸바사항 도착..선원 귀국 당분간 보류
선원금미호 선장 "아덴만작전 후 해적 두려워해"
입력 : 2011.02.15 16:12 / 수정 : 2011.02.15 16:18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개월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의 선장 김대근(54) 씨는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작전’이 금미호 석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15일 밝혔다.
김 선장은 이날 오전 몸바사항에 도착한 뒤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한국 해군이 한국 선박 구출작전(아덴만 여명작전)을 벌여 해적을 사살했다는 소식을 납치 해적으로부터 이달 초 전해들었다”며 “이후 해적들은 자신들도 한국 해군의 작전 대상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적들은 금미호를 모선으로 삼아 해적질에 나서곤 했지만 이후에는 해적질을 나갔다간 해군의 함포 사격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추가 납치행위를 자제했다”고 전했다.
김 선장은 해적에게 몸값이나 식량.유류비가 지원됐을 가능성을 일축하고 “금미호가 낡아 해적질에 사용하기도 원활치 않은데다 몸값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자 우리를 그냥 풀어준 것 같다”고 밝혔다.
금미호는 지난 9일 해적 본거지인 소말리아 하라데레항에서 풀려난 뒤 유럽연합(EU) 소속 핀란드 군함의 호위 아래 운항을 재개, 석방 6일 만인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각 오후 2시) 몸바사항에 도착했다.
금미호는 이날 몸바사 외항에 도착한 뒤 세관, 입국, 검역(CIQ) 절차를 거쳐 부두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선원들은 몸바사 항만 보건당국의 건강검진을 받은 뒤 배에서 내렸다.
김 선장과 김용현(68) 기관장 등 한국 선원 2명과 중국인 선원 2명, 케냐 선원 39명 등 모두 43명의 선원은 장기간 피랍 생활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건강에 큰 지장이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김 선장은 온몸에 퍼진 피부병으로, 김 기관장은 해적으로부터 구타당해 생긴 찰과상 등으로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몸바사항에는 이한곤 주 케냐 한국대사 등 정부 관계자 4명과 금미호의 선박대리점 사장 김종규(58) 씨, 송충석 케냐 한인회 회장 등이 나와 선원들을 맞이했다.
또 케냐 선원들의 가족 수백명도 부두에 나와 선원들과 재회했고, 케냐 취재진 30여 명도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김 선장과 기관장 등 한국 선원 2명은 당분간 케냐에서 어획물 처리 등 잔무를 해결해야 한다며 당장 귀국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김 선장은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당장 귀국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국민 여러분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한국과 케냐 등 이중 선적을 보유하고 있는 금미호는 해적 피해 예방을 위한 자체적인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이전까지는 당분간 조업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선박대리점 측은 밝혔다.
선박대리점 측은 아울러 금미호에 실려 있는 냉동 대게 40t(시가 2억원)이 장기간 냉동보관으로 선도가 떨어진 점을 감안, 시세보다 낮게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미호는 지난해 10월 9일 케냐 라무지역에서 18km 떨어진 해역에서 조업 중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개월 만인 지난 9일 풀려났다.
김대근 금미호 선장 일문일답
“매순간이 지옥같았다..국민들께 감사”
4차례 해적질에 동원되며 죽을 고비 넘겨
해적에게 사정해 받은 위성전화로 구조요청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4개월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의 선장 김대근(54) 씨는 피랍 기간인 124일 동안 매 순간이 지옥같았다고 15일 밝혔다.
김 선장은 이날 케냐 몸바사항에 도착한 뒤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같이 밝히고 해적들이 몸값을 받을 가능성이 떨어지자 금미호를 그냥 풀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선장과의 일문일답.
--피랍 당시 상황은.
▲지난해 10월 9일 오전 6시 30분께 평소와 다름 없이 조업 중이었는데 멀리서 해적들이 탄 보트 2척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걸 발견했다. 어구를 걷어올리고 도망가려 했지만 불과 5분 만에 해적 10여 명에게 납치됐다. 조업구역은 케냐 라무지역에서 10마일(18km) 떨어진 안전한 해역으로 해적이 나타날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해적들이 살해 위협을 가했나.
▲기름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해적들은 기관장을 세 번이나 선수에 끌고 가 무릎 꿇게 한 뒤 총을 겨누며 살해 위협을 가했다. 또 툭하면 AK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머리에 겨누곤 했다. 사형수는 사형 집행 날짜라도 있지만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늘 괴로웠다.
--해적들의 가혹행위는.
▲자기들 기분에 따라 소총 개머리판으로 구타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쏘리, 쏘리, 예스, 오케이(Sorry, sorry, yes, OK)”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야만 덜 맞고 견딜 수 있었다.
--금미호가 해적들의 선박 납치행위에 모선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피랍기간 중 총 4차례 해적질에 동원됐다. 해적 보트로는 먼바다까지 나가기가 어려운 점 때문에 해적들은 보트 2척을 금미호에 싣고 해적질에 나섰다. 피랍 기간에 모두 4차례 나가 2차례는 다른 나라의 선박들을 납치했다. 그러나 스페인 상선을 만났을 땐 상선에서도 총을 쏘며 저항하는 바람에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피랍기간 중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소식을 들어본 적 있나.
▲한국 해군이 한국 선박 구출작전(아덴만 여명작전)을 벌여 해적을 사살했다는 소식을 납치 해적으로부터 이달 초 전해들었다. 이후 해적들은 자신들도 한국 해군의 작전 대상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해적들은 금미호를 모선으로 삼아 해적질에 나서곤 했지만 이후에는 해적질을 나갔다간 해군의 함포 사격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추가 납치행위를 자제했다.
--해적에게 돈이 전달됐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몸값이 지불되지 않았다면 해적들은 왜 아무 조건 없이 금미호를 풀어줬다고 생각하나.
▲해적에게 전달된 돈은 한 푼도 없다. 해적들은 내가 금미호 한 척만 소유하고 있고 소속 선사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몸값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 식비와 유류비 지출도 점점 커지는데다 금미호가 낡아 추가 해적질에 동원하기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해적 입장에서는 금미호를 포기하고 다시 상선이나 유조선을 납치하는 것이 훨씬 큰 돈이 될 거라는 생각에 몸값을 받지 않고 그냥 풀어준 것 같다.
--해적에 풀려난 이후 구조요청은 어떻게 했나.
▲해적이 떠나면서 위성전화 1대를 주고 갔다. 소말리아 부족 중 그나마 심성이 온순한 편인 남부 출신 해적들인 점을 감안해 사정사정했다. 결국 해적이 떠난 뒤 이 전화로 두바이 영국상선단에 구조요청을 보냈고 이어 청해부대와 연결됐다.
--현재 심경은.
▲해적에게 잡혀 있었던 날들을 떠올리기조차 싫다. 어쨌든 국민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해주셔서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민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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