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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러시아 특수요원이 진압 중 한국말로 `엎드려` 외쳐(조선일보 2012.02.13 09:26)

러시아 특수요원이 진압 중 한국말로 "엎드려" 외쳐

1995년 현대전자 연수단 붉은광장서 인질로..전원 무사구출
김석규 前 주러시아대사 회고..“낙심보단 낙관이 성공해결 열쇠”

“대사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 국민이 괴한에게 인질로 붙잡혔답니다!”

1995년 10월14일,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의 평화를 깨고 주(駐)
러시아 대사관저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현대전자 해외 연수단 일행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잡혀 있다는 다급한 보고였다.

보고를 받은 김석규 당시 주(駐)러시아 대사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마침 제1차 체첸사태로 인해 테러나 인질극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결국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닥치는 것인가’. 아무리 억눌러 보려 해도 극도의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김 대사는 옷을 챙겨입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대사관으로 달려갔다. 관저에서 대사관까지는 차량으로 10분 정도에 불과한 거리였지만, 그날만큼은 천릿길처럼 느껴졌다.

대사관에 도착한 김 대사는 최혁 공사로부터 상황 설명을 들은 뒤 즉각 비상대책반 구성과 외무부 본부 연락 등을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김석규 전 주일대사가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수단이 탄 버스는 레츠키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인질극은 연수단이 오후 5시30분께 크렘린궁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탄 직후 권총을 든 복면 괴한이 버스 뒷문으로 침입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인질은 한국인 26명과 러시아인 운전사 1명 등 모두 27명이었다. 연수단 단장인 박연수 현대전자 부장과 여직원 1명은 인질범 침입 직후의 혼란을 틈타 탈출했다. 러시아 경찰과 우리 대사관에 납치 소식을 알린 것도 이들이었다.

범인은 스스로를 카프카스 출신의 러시아인이라고 밝혔다. 동생 가족과 자신의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어 돈이 필요하다며 100만 달러와 비행기를 요구했다. 자신의 몸에 폭탄을 지니고 있다면서 허튼 짓을 하면 폭파 단추를 누르겠다는 협박도 했다.

붉은광장에서는 유리 루쉬코프 당시
모스크바 시장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루쉬코프 시장은 김 대사를 보자마자 “그렇게 입고서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사태 해결에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바깥에서 밤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대사는 그제야 자신이 외투조차 제대로 입지 않고 달려왔음을 깨달았다. 10월 중순이었지만 모스크바는 이미 겨울 날씨였다. 서둘러 대사관저로 돌아가 철야용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붉은광장으로 돌아왔다.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취재진이 모여 있었고, CNN은 시시각각 붉은광장의 상황을 속보로 전하고 있었다. 그때 루쉬코프 시장이 김 대사에게 다가와 한국어로 “엎드려, 엎드려”라고 하면서 자신의 발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김석규 전 주일대사가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현대전자 직원 단체관광 인질사건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사는 직감적으로 러시아 경찰이 무력진압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눈치챘다. 실제로 레츠키 다리 아래서는 러시아 국가보안부(FSB)의 대테러특수부대인 알파부대와 특수경찰인 ’오몬’ 요원들이 소리없이 모의 진압훈련을 하고 있었다.

김 대사는 루쉬코프 시장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혹시 지금 무력집안을 계획하고 있는 겁니까? 러시아 측의 진압계획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인질들이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의 인명피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루쉬코프 시장은 대답 대신 김 대사의 손을 꼭 쥐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오후 9시께 인질범과의 협상이 시작됐다. 체첸 사태로 납치 사건을 자주 겪어서인지 러시아 측은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은행이 모두 문을 닫은 토요일 밤이었지만 바로 협상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 측이 이런 일에 대비해 현금을 준비해놓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흰색 바바리를 입은 러시아 경찰 두 명이 돈가방을 들고 레츠키 다리 위에 있는 버스를 오갔다. 러시아 측은 돈을 여러 차례에 나눠 전달하면서 버스 안의 정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진압 작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범인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돈가방을 받을 때마다 인질 일부를 풀어줬다. 전달책을 맡은 러시아 경찰들은 인질들이 그 와중에도 서로 먼저 나가라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한국인의 침착한 태도와 희생 정신에 감탄했다.

자정을 20분쯤 넘긴 시각, 이제 남은 인질은 현대전자 직원 4명과 러시아인 운전기사, 유학생 통역 등 6명뿐이었다. 무력진압을 위한 준비도 마무리 단계였다. 러시아 측은 일요일이라 나머지 돈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며 시간을 끌었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새벽 2시45분께 흰색 바바리의 경찰이 돈가방을 범인에게 건네주기 위해 버스 운전석 방향으로 향했다. 납치범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 반대편에서는 버스 차창과 같은 높이의 무개 차량이 서서히 접근했다.

범인이 돈가방을 건네받는 순간 무개 차량에 타고 있던 특수부대 요원들이 도끼로 버스 유리창을 부수고 버스 안에 연막탄을 터뜨렸다. 특수요원들은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한국말로 “엎드려!”를 외쳤고, 이 말을 못 알아듣고 그대로 서 있는 범인을 총살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진압 작전은 21초 만에 마무리됐다. 버스에서는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새벽 3시께, 인질들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인질사건이 시작된 지 9시간17분 만에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모두 구출된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납치범과의 협상을 시작할 즈음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이제 제법 굵어져 있었다. 사건의 무사 해결을 예고한 서설(瑞雪ㆍ상서로운 눈)이었던 셈이다.

구출된 현대전자 직원들은 현장에서 러시아 법무반의 간단한 조사를 받은 뒤 대사관으로 이동해 언 몸을 녹였다. 대사관 측은 이들이 서울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전화기를 제공하고 한국 라면을 끓여 허기를 채우도록 했다.

그 사이 김 대사는 현장에 있던 루쉬코프 시장과 러시아 경찰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한 뒤 대사관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일은 공로명 외무부 장관에게 ’상황 끝’이라는 보고를 하는 것뿐이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대사관으로 향하는 김 대사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었다.

다음날 한국 언론은 일제히 러시아 인질 구출 작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모든 언론이 한러 양국 정부의 긴밀한 협조와 신속한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이를 두고 김 대사는 “단 한 곳의 예외도 없이 국내외 모든 언론의 칭찬을 받아보기는 그때가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러시아 외무성의 알렉산드르 파노프 차관이 김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인질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파노프 차관은 이와 함께 한국 정부의 긴밀한 협조에 감사했으며 한국인 인질들이 보여준 인내와 침착한 태도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이후 현대전자 측은 김 대사의 조언을 받아 인질사건 해결에 앞장섰던 루쉬코프 시장과 국가보안부대장, 알파부대에 소나타 승용차 1대씩을 기증했다. 또 알파부대 요원들을 한국에 초청해 융숭하게 대접했다. 인질사태 사상 가장 흐뭇하고도 성공적인 마무리였다.

지난 1995년 10월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 인근에서 발생한 현대전자 직원 단체관광객 인질사건이 있은 뒤 현대전자 박연수 노사합동 연수단장이 김석규 전 외교관에게 보내온 감사의 서신. /연합뉴스
김 전 대사는 이 사건이 우리 외교에 던지는 교훈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사건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발생했고,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틀림없이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몸을 던져 일해야 한다”면서 “납치범과의 협상은 해당국 정부가 맡는다 해도 결국에는 여러 사람의 힘이 합쳐져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 외교관들은 굳건하게 현장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협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규 전 주(駐)러시아 대사 = 경북 성주농고 출신으로 고등고시(11회)를 거쳐 4강 대사를 두 차례나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좋은 ’화합형 외교관’이며, 특히 스페인어 실력이 빼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미 참사관 시절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로 불린 박동선씨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한 일솜씨를 인정받아 미주국장에 발탁됐으며 이후 제1차관보와 주이탈리아 대사, 주러시아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일본 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퇴임 후에는
한양대 국제학대학원과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기여했으며, 39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담은 회고록 ’코리아게이트의 현장에서’를 펴내기도 했다.

▲경북 성주(76) ▲서울대 정치학과 ▲중남미과장 ▲주미 참사관 ▲주스웨덴 공사 ▲미주국장 ▲주파라과이 대사 ▲제1차관보 ▲주이탈리아 대사 ▲주러시아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일본 대사